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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불륜해드립니다.: Capítulo 131 - Capítulo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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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22시 17분의 기록

미정은 집에 들어오기 전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손잡이를 잡은 채,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TV 소리도, 발소리도. 이런 정적은 언제나 불길했다.미정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주방 쪽에서 희미한 냉장고 불빛만 새어 나왔다.술병이 열려 있다는 뜻이었다.“왔어?”남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소파에 누운 채였다.“응.”미정은 괜히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괜히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이건 습관이었다.그의 기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몸의 기억.“오늘은 늦었네.”“병원 갔다가.”거짓말은 아니었다.다만 설명을 덜 했을 뿐이었다.남편은 고개를 돌려 미정을 봤다.눈빛이 이미 조금 흐려져 있었다.“병원?”“어디 아파?”“아니.”“그냥.”그의 시선이 미정의 얼굴에서 목으로, 어깨로 내려갔다.“근데.”“왜 화장했어?”미정의 손이 순간 굳었다.“했나?”“그냥… 립밤만.”“아니.”“했어.”그는 몸을 일으켰다.술 냄새가 확 끼쳤다.“누구 만났어?”미정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이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설명하지 마세요.“아무도.”짧게 말했다.그 짧음이 남편의 신경을 건드렸다.“아무도가 뭐야.”“말을 그렇게 해?”“피곤해서.”“피곤하면.”“집에 바로 와야지.”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왜 꼭 밖에서 시간을 써.”미정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만해.”그 말이 선을 넘었다.남편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술을 마시기 전과 후,그리고 이 순간 미정은 그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만?”“지금 나한테 그만하라고 했어?”그는 탁자 위의 술병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너.”“요즘 말투가 달라졌어.”미정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아니야.”“아니긴 뭐가 아니야.”“나를 무시하잖아.”그는 미정의 팔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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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숨을 고르는 폭력

미정은 그날 밤 거의 잠들지 못했다.눈을 감으면 남편의 손이 어깨를 밀치던 감각이 다시 살아났고,잠깐이라도 의식이 가라앉으려 하면 ‘기록해 보라’던 그의 비웃음이 귀에 남았다.아침이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잠든 적이 없었다.부엌에 나가 물을 마시다 싱크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눈 밑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입술은 이유 없이 갈라져 있었다.화장은 하지 않았다.그럴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셔츠는 다려져 있었고, 구두도 정리되어 있었다.“오늘 일찍 나가야 해.”그는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어제와 이어진 말은 아니었다.그래서 더 잔인했다.“아침 안 먹어?”미정은 고개를 저었다.“안 먹어.”“그래.”“요즘 입맛 없더라.”그는 그 말을 던지듯 하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묻지 않는다는 게 배려가 아니라는 걸 미정은 이미 알고 있었다.현관문이 닫히고, 그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미정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휴대폰을 꺼냈다.메모 앱을 열었다.08:12아침,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 어제 일 언급 없음적으면서 손이 떨렸다.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이수의 말이 떠올랐다.-폭력은 늘 다음 단계를 준비해요.-전날보다 오늘이 평온하면, 그건 멈춘 게 아니라 숨 고르는 거예요.미정은 메모를 저장하고 가방을 챙겼다.오늘은 미용실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장미 미용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이수는 가위를 손에 쥔 채 머리를 자르고 있었지만,손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공간을 편하게 만들었다.미정이 문을 열었을 때, 종이 울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이수는 거울을 통해 미정을 봤다.어제보다 조금 더 굳은 얼굴.“어서 오세요.”미정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머리는… 다음에요.”“오늘은 그냥.”이수는 의자를 가리켰다.“앉으세요.”하빈은 카운터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다미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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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처음으로 받지 않은 밤

미정은 그날 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미용실을 나서며 이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도망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거예요.그 문장은 생각보다 오래 붙잡혔다.미정은 그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버스를 탔다.버스 안은 조용했다.저녁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휴대폰 화면 속으로 고개를 묻고 있었다.아무도 미정을 보지 않았다.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버스에서 내려 작은 모텔 간판 앞에 섰을 때, 미정은 잠시 멈춰 섰다.손이 가방 끈을 놓지 못한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오늘 하루뿐이야.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문을 밀었다.그 시간, 장미 미용실에는 이수와 하빈만 남아 있었다.영업을 마친 뒤에도 불을 바로 끄지 않았다.어둠이 들어오기 전의 애매한 시간대는 둘에게 익숙했다.하빈은 창가에 기대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연락 올 것 같아?”그가 물었다.“올 거야.”이수는 서랍을 정리하며 말했다.“오늘은.”“왜.”“처음으로 집에 안 들어간 날이니까.”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이번 남편.”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전보다 위험해 보여.”“응.”“술 때문만은 아니야.”“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눈이야.”이수는 손을 멈췄다.“그 사람도 그랬어.”그 이름이 나오자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하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괜히 말을 얹으면 이수가 더 멀어질 것 같았다.“미정 씨 남편은.”이수가 말을 이었다.“밖에선 완벽한 사람이야.”“그게 더 문제지.”“응.”“그래서 균열은 안에서부터 생겨.”하빈은 이수 쪽으로 돌아섰다.“이번엔.”“네가 직접 나서야 할 수도 있어.”이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알아.”“근데 이번엔 그게 무서워.”하빈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왜.”“겹쳐 보여서.”“미정 씨 남편이 민준 씨랑.”그 말은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이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계속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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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폭우

아침부터 하늘이 낮게 깔려 있었다.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공기가 눅눅했다.미정은 모텔 방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하며 남편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었기 때문이다.-어디야.-지금 장난해?-전화 받아.마지막 메시지는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그 뒤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그 고요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미정은 이수에게 짧게 메시지를 남겼다.-집에 안 들어간 지 하루째예요.-연락은 끊겼어요.잠시 후 답장이 왔다.-오늘은 들어가세요.-대신 기록은 계속하세요.-혼자 들어가지 마시고요.미정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혼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장미 미용실.이수는 가위를 닦다가 멈췄다.비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그리고 곧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툭.툭.툭.하빈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오늘 터지겠네.”“응.”“그 집도.”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가위 날에 비친 자기 얼굴이 잠깐 낯설어 보였다.“오늘은,”하빈이 말했다.“직접 부딪힐 수도 있어.”“알아.”“준비됐어?”이수는 가위를 닫았다.“그 사람.”“밖에선 완벽하다며.”“그래.”“그럼 안에서 무너질 때 더 세게 무너지겠지.”이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오늘.”“선은 확실히 긋고 와야 해.”하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설계 시작하는 거야?”“응.”“위험할지도 몰라.”“알아.”하빈은 한 발 더 다가왔다.“이수야”“응.”“이번엔… 네가 남자를 흔드는 쪽이야?”이수는 잠시 침묵했다.“그래야 해.”그 말은 차분했지만 단단했다.오후,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졌다.미정은 집 앞에 서 있었다.우산을 접으며 현관문을 올려다봤다.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남편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술은 마시지 않은 얼굴이었다.오히려 지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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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붙잡지 못한 손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창문을 두드리던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두드림이 아니라,밀어붙이는 힘처럼 느껴졌다.미정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남편은 소파에 다시 앉아 있었다.아까 턱을 잡았던 손은 이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잠시 전의 긴장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그저, 모양만 바뀌었을 뿐이었다.“변호사라며.”그가 말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웃음기가 실려 있었다.“어디 변호사인데.”미정은 침을 삼켰다.이수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었다.“상담 받았어.”“누구한테.”“그건 말 안 해도 되지.”남편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그 눈은 이미 취한 사람처럼 흐릿해졌다.“너.”“나 무서워?”그 질문은 다정한 것처럼 들렸지만, 실은 확인이었다.자신이 여전히 상대를 지배하고 있는지 확인하는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하는 순간, 어느 쪽으로든 붙잡힐 것 같았다.“나 술 끊겠다고 했잖아.”그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센터도 다녀왔고.”“병원도 가봤고.”“약도 먹었고.”“근데.”미정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다시 마시잖아.”그는 한숨을 쉬었다.짜증이 아니라, 피곤함처럼 연기된 한숨이었다.“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완벽을 바라는 게 아니야.”“그럼 뭐야.”“무섭지 않게만 해달라는 거야.”그 말이 떨어졌을 때,거실 안의 공기가 잠깐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남편은 고개를 숙였다.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울음처럼 보였다.미정은 잠깐 흔들렸다.이 남자는 늘 이랬다.폭력 다음엔 후회,후회 다음엔 다짐,다짐 다음엔 눈물.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나도,”그가 말했다.“나도 힘들어.”그는 얼굴을 감쌌다.“술 안 마시면.”“손이 떨려.”“숨이 막혀.”그 목소리는 진짜였다.적어도, 연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미정의 가슴 어딘가가 쿵 내려앉았다.동정과 공포는 자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나타난다.“그래서.”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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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피난

“저… 나왔어요.”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이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귓가에 남은 것은 오직 그 한 문장뿐이었다.“어디쯤이세요?”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흔들리면, 상대도 흔들린다.“골목 끝… 편의점 앞이요.”이수는 하빈을 바라봤다.말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차 키를 들고 있었다.“같이 가.”“응.”둘은 미용실 불을 끄지 않았다.잠시 비워둘 뿐이었다.차 안은 조용했다.와이퍼가 규칙적으로 움직였고, 그 리듬이 이상하게도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쫓아나오진 않았대?”하빈이 운전대를 잡은 채 물었다.“모르겠어.”이수는 짧게 답했다.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신할 수 없다는 쪽에 가까웠다.폭력적인 남자는 붙잡지 못한 순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편의점 불빛이 보였다.미정은 유리문 옆에 서 있었다.비를 맞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있었고, 가방 하나가 발치에 놓여 있었다.도망쳐 나온 사람의 모습이었다.그러나 울고 있지는 않았다.이수는 우산도 쓰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괜찮아요?”그 질문이 공허하게 들릴 걸 알면서도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의미에 가까웠다.하빈이 가방을 들었다.“차에 타세요.”미정은 한 번 뒤를 돌아봤다.어둠뿐이었다.그 어둠이 더 무서웠다.미용실 문을 다시 열었을 때 형광등 불빛이 낯설게 밝았다.“여기 앉으세요.”이수는 수건을 건넸다.머리를 닦는 손이 작게 떨렸다.“그 사람… 전화할 거예요.”미정이 말했다.“하겠죠.”이수는 담담히 답했다.“받지 마세요.”“그럼 더 화낼 텐데요.”“화내게 두세요.”그 말은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상대를 달래는 방법이 아니라 패턴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 – 남편.미정의 손이 멈췄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스피커로 받아요.”미정은 숨을 고르고 통화를 눌렀다.“어디야.”목소리는 차분했다.너무 차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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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내 과거와 닮은 눈빛

밤새 잠을 설친 건 미정뿐만이 아니었다.위층 작은 방에 불이 꺼진 지 오래였지만, 이수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그대로였다.하빈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둘 사이에는 식지 않은 머그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자는 것 같아.”하빈이 낮게 말했다.“응.”이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미정이 미용실 위층에서 밤을 보내는 건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수는 이미 이런 밤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침착했다.“이번 건,”하빈이 말을 꺼냈다.“생각보다 깊어.”“알아.”“불륜으로 바로 가기 어려워.”“응.”이수는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렸다.“저 사람은,”그녀가 말했다.“술이 핑계야.”“본질은?”“통제.”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술은 기폭제고, 폭력은 결과고, 통제는 습관이지.”이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그래도,”하빈이 덧붙였다.“불륜 설계는 필요해.”이수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왜.”“법적으로 가장 빠르니까.”그 말은 차갑지만 현실적이었다.이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저 사람,”그녀가 낮게 말했다.“다른 여자 있을 가능성 있어.”“확신이야?”“아니.”“그럼.”“촉.”이수는 웃지 않았다.“의심이 과한 사람은 대개 자기 그림자를 숨기고 있어.”하빈은 팔짱을 풀었다.“확인부터 하자.”“응.”“회사 동선, 카드 내역, 주말 이동 패턴.”이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리고,”하빈이 그녀를 바라봤다.“네가 직접 접근하진 마.”이수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왜.”“이수야.”그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말했다.“저 사람 눈빛, 어제 봤지.”“봤어.”“그거… 정상 아니야.”“정상인 사람을 상대하는 일 아니잖아.”“그건 알아.”하빈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근데 넌.”“뭐.”“그 눈을 보면 너도 흔들릴거야.”이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하빈이 말하는 ‘흔들림’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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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도발

술은 늘 핑계였다.사람이 본모습을 숨기고 싶을 때 가장 쉽게 꺼내 드는 변명.기억이 안 난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미안하다.하지만 미정의 남편은 그 말을 너무 능숙하게 반복해왔다.이수는 그 남자의 이름을 천천히 입 안에서 굴렸다.박태훈.밖에서는 자상한 남편.회사에서는 유능한 팀장.술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그리고 집에서는 손이 먼저 나가는 남자.“술만 마시면 달라진대요.”미정의 말이 계속 귓가에 남아 있었다.술만 마시면. 그 말이 이수를 자극했다.‘술이 아니라, 허용이겠지.’이수는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천천히 묶었다.오늘은 일부러 차분하게. 튀지 않게.누가 봐도 동네에 사는 평범한 여자처럼.하빈은 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오늘 바로 가?”“응.”“계획은.”“술자리.”짧은 단어 하나로 정리되는 위험. 하빈의 눈이 굳었다.“혼자는 아니지.”“아니.”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근처에 있을 거잖아.”하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이수.”“응.”“도발은 하지 마.”그 말은 부탁에 가까웠다.이수는 작게 웃었다.“도발 안 해도, 저런 사람은 스스로 넘어와.”그 말이 더 불안했다.저녁이 되자 비는 잦아들었고,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태훈이 자주 간다는 단골 술집은 회사 근처 골목 안쪽에 있었다.크지 않은 공간,적당히 시끄러운 음악,적당히 밝은 조명.이수는 안으로 들어서기 전, 한 번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안쪽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태훈은 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잔을 들고 있었고, 웃고 있었다.그 웃음은 집에서의 얼굴과 전혀 다를 것 같지 않았다.이수는 바 쪽에 앉았다.메뉴판을 펼치고, 술을 주문했다.소주 한 병.그는 그녀를 아직 보지 못했다.이수는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이런 남자들은 먼저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게 되는 사람’을 선택한다.십 분쯤 지났을까.태훈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그녀 쪽으로.한 번. 그리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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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확인하고 나면 달라지는 것

술집 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공기가 한 번 바뀌었다.그 변화는 아주 미세했지만 분명했다.시선이 한 방향으로 기울었다가,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흩어졌다.이수는 그 흐름을 느끼면서도 모르는 척했다.어깨를 펴고,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태훈은 이미 그녀를 보고 있었다.전날과는 달랐다.오늘은 웃고 있지 않았다.그 대신, 눈이 조금 더 가늘어져 있었다.‘확인.’그 눈은 상대를 재는 눈이었다.이 여자가 어제의 우연인지,아니면 오늘도 반복되는 선택인지.이수는 바 쪽 자리에 앉았다.조용히 술을 주문했다.태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또 오셨네요.”목소리는 가볍게 올렸지만, 속은 가볍지 않았다.“네.”“생각 정리 잘 됐어요?”“아직이요.”짧은 대답. 여지를 남기는 말투.태훈은 옆자리에 앉았다.거리감은 전날보다 가까웠다.“저는요,”그가 잔을 들며 말했다.“어제 좀 기분이 이상했어요.”“왜요.”“그냥.”그는 웃었다.“자꾸 신경 쓰여서.”그 말은 돌려 말한 표현이었다.‘관심.’이수는 눈을 잠깐 들어 그를 봤다.“저도요.”태훈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확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어제… 남편 없다고 했죠?”그가 물었다.이수는 고개를 기울였다.“왜요.”“그냥.”“확인하는 거예요?”태훈은 웃었다.“그럴 수도 있죠.”이수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확인하고 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그 질문은 날카로웠다.태훈은 잠깐 말을 잃었다.그는 이런 식의 응수에 익숙하지 않았다.대개는 웃거나 피하거나, 부드럽게 넘어가는 여자들이 많았다.“달라질 수도 있죠.”“뭐가.”“가능성이.”이수는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가능성.”“네.”“위험한 단어네요.”태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위험한 건 싫어요?”“상황에 따라.”그는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었다.“전 위험한 거 싫어해요.”이수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그럼 왜 여기 와요.”한 박자 늦게, 태훈의 웃음이 나왔다.“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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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반응

다음 날은 유난히 조용했다.장미 미용실 유리문에 비친 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이수는 자꾸만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보게 됐다.연락은 오지 않았다.“안 와?”하빈이 물었다.“안 와.”“의외네.”“아니.”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저런 사람은 바로 안 움직여.”하빈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왜.”“자기가 밀린 걸 인정하기 싫으니까.”이수는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면서도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았다.어제 태훈의 손.짧았지만 분명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놓는 순간의 표정.‘들켰다’는 얼굴.그건 중요한 장면이었다.폭력은 항상 작은 균열에서 먼저 드러난다.그리고 들켰다고 느끼는 순간,그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더 숨기거나, 더 세게 누르거나.“오늘 안 오면,”하빈이 말했다.“네가 먼저 움직일 거야?”“아니.”“왜.”“기다리는 게 더 불안하거든.”그 말에 하빈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너.”“응?”“요즘 더 차가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이수는 웃지 않았다.“차가운 게 아니라 계산하는 거야.”“같은 말이야.”잠깐의 정적.하빈은 덧붙였다.“계산하다가 다쳐.”이수는 대답 대신 손님의 머리를 말렸다.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떨어졌다.발신자: 태훈.이수는 바로 받지 않았다.벨이 세 번 울리고, 네 번 울릴 즈음 받았다.“네.”잠깐의 침묵.그쪽에서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어제.”태훈이었다.목소리가 낮았다.술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네.”“어제 일은.”“뭐요.”“미안합니다.”형식적인 사과였다.이수는 차분하게 말했다.“뭐가요.”그는 잠깐 말을 고르는 듯했다.“손.”“기억하네요.”태훈의 숨이 한 번 멈췄다.“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그 말이 나왔다.이수는 조용히 웃었다.“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그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오늘.”그가 말했다.“시간 되세요?”“왜요.”“얘기 좀 하고 싶어서.”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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