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o / 로맨스 / 불륜해드립니다. / Capítulo 141 - Capítulo 150

Todos los capítulos de 불륜해드립니다.: Capítulo 141 - Capítulo 150

201 Capítulos

141. 내가 당신을 이용하면

와인바에서 돌아온 뒤로도 이수의 머릿속은 잠잠해지지 않았다.태훈의 말투.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고 말하던 순간의 눈빛.그 눈빛은 부정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의 눈이었다.“기억 안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복한다.”하빈은 운전석에 앉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그래.”이수는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근데 이번엔 단순 폭행으로 가면 길어져.”“그래서.”“불안.”이수는 고개를 돌렸다.“저 사람은 폭력보다 불안이 먼저야.”하빈은 그녀를 봤다.“아내가 밖에 나가는 게 불안했고.”“통제 안 되는 게 싫고.”“그래서 붙잡는 거고.”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불륜을 만들려면 욕망이 필요해.”“근데 태훈은?”“욕망보다 소유욕이 커.”차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하빈이 물었다.“그럼 어떻게 도발할 건데.”이수는 짧게 웃었다.“질투.”다음 날 오후. 미정은 장미 미용실에 앉아 있었다.손이 아직 조금 떨렸다.어제 집을 나왔다가, 밤늦게 다시 들어갔다.아이 때문에. 남편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이었다.“어제는 어땠어요.”이수가 묻자 미정은 씁쓸하게 웃었다.“미안하대요.”“그리고.”“나 없으면 못 산대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상 그대로였다.“그래도.”미정이 덧붙였다.“눈이 이상했어요.”“어떻게요.”“붙잡고 싶어 하는 눈.”이수는 잠시 생각했다.“좋아요.”“뭐가요.”“이제 그 눈을 더 흔들 거예요.”미정은 놀란 표정이었다.“저… 위험해지지 않나요?”“조심할 거예요.”이수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번엔 물리적으로 붙잡히는 상황 안 만들 거예요.”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남편분 요즘 술은?”“끊겠다고 했어요.”“완전히요?”“아니요… 집에선 안 마신대요.”이수는 미묘하게 웃었다.“밖에서 마신다는 말이네요.”저녁에 태훈은 헬스장 로비에 서 있었다.이수는 운동복 차림이었다.머리는 묶었고,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다.와인바에서와는 다른 분위기
Leer más

142. 선넘

불은 이미 붙어 있었다.태훈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술잔을 드는 손이 그 증거였다.‘한 잔만.’그 말은 늘 시작이었다.미정은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전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눈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운동.”태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요즘 운동 열심히 하네.”“응.”“누구랑.”“혼자.”태훈의 눈이 미세하게 좁아졌다.“헬스장에 남자 많지.”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태훈을 더 자극했다.“나 바보 아니야.”“누가 뭐래.”“요즘 너.”그는 잔을 비웠다.“평소랑 달라졌어.”“그래”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달라졌어.”그 한 문장이 방 안 공기를 갈랐다.태훈의 얼굴이 굳었다.“왜.”“이제 무섭다고 말했잖아.”“그거랑.”“연결돼.”그는 잠깐 멈췄다.“누가 옆에서 말했지.”“아니.”“그럼 혼자?”“응.”태훈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주먹으로 변했다.“너.”그가 낮게 말했다.“남자 생긴거 아냐?”미정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그런거 아니야.”“눈이 그래.”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핸드폰 줘봐.”“싫어.”짧은 대답.태훈은 그 한 단어에 잠깐 얼어붙었다.“뭐?”“싫다고.”그의 눈동자가 확연히 흔들렸다.“너.”“이제 안 보여줄 거야.”태훈의 숨이 거칠어졌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없어.”“그럼 왜.”“당신이 이제는 싫고 무섭거든.”그 말은 조용했지만 정확했다.태훈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손이 올라갔다.미정은 본능적으로 한 발 물러섰다.손은 멈췄다.허공에서.그 멈춤이 더 위험했다.“봐.”태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그 문장은, 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문장이었다.미정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아니.”“뭐가 아니야.”“당신이야.”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 순간, 태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회사 동료였다.그는 이를 악물며 전화를 받았다.“어.”목소
Leer más

143. 난 들리는 것도 무서워

깨지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쨍’ 하는 소리 대신 ‘탁’ 하고 무거운 소리가 먼저 났다.그 다음에야 조각들이 흩어졌다.미정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일부러지.”태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아니.”“또 아니래.”그는 천천히 다가왔다.어제보다 조용했고, 그게 더 무서웠다.“요즘 왜 이렇게 당당해.”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하는 순간, 그의 프레임 안으로 다시 들어갈 것 같았다.“핸드폰.”그가 말했다.“오늘은 보여줘.”“싫어.”짧은 거절. 태훈의 턱이 굳었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으니까 안 보여주는거 아냐?”“숨기는 거 없어.”“그럼 왜 안 보여주는데?”미정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당신이 무서우니까.”태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또 그 소리.”“맞아.”“내가 뭐 했는데.”그 말이 나왔다.그 말은 늘 그를 보호했다.‘내가 뭐 했는데.’기억하지 않는 척하는 문장.“어제.”미정이 말했다.“손 들었잖아.”“안 때렸잖아.”“때리려고 했잖아.”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웃었다.“그 정도도 못 참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미정은 깨달았다.이 사람은 폭력의 기준이 다르다.그에게 폭력은 피가 나야 성립한다.“난.”미정이 낮게 말했다.“들리는 것도 무서워.”태훈의 표정이 굳었다.“요즘 누가 자꾸 말해주지.”“뭐를.”“내가 나쁜 사람이라고.”그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했다.미정은 가만히 그를 봤다.“아니.”“그럼 왜 이렇게 변했어.”“원래 그랬어.”“거짓말.”그는 한 발 더 다가왔다.“남자 생겼지.”“아니.”“헬스장.”그 단어가 나왔다.미정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왜.”“거기서 누구 만나는 거 아니야?”그는 이미 결론을 내린 얼굴이었다.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몰아가려는 표정.“당신이 가서 봐.”미정의 말은 의외로 차분했다.태훈은 잠시 멈췄다.“뭐.”“가
Leer más

144. 압박

태훈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지만, 곧바로 출발하지는 못했다.핸들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숨이 거칠게 올라왔다가 내려갔고, 이마에 맺힌 땀이 천천히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받지 않는 전화.거절된 영상통화.헬스장에 없던 여자.생각은 단순했지만,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의심은 논리가 아니라 상상으로 자라났다.그리고 그 상상은 점점 구체적인 얼굴을 만들어냈다.‘누구지.’그는 스스로에게 묻는 대신, 이미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고 있었다.액셀을 밟는 순간 차가 튀듯 앞으로 나갔다.젖은 도로 위로 타이어가 얕은 물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달렸다.집 안은 고요했다.미정은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깨진 휴대폰 액정 위로 가느다란 금이 여러 갈래로 퍼져 있었다.손목에는 아직 태훈의 손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태훈이 들어왔다.술 냄새는 진하지 않았다.그 대신, 눈이 붉어 있었다.“왜 안 받아.”목소리는 낮았지만, 눌린 분노가 묻어 있었다.“받고 싶지 않았어.”미정의 대답은 예상보다 담담했다.“왜.”“지금은 말해도 안 통하니까.”태훈은 웃었다.짧고 비틀린 웃음이었다.“그래서 누구랑 통하는데.”그는 천천히 다가왔다.한 걸음, 또 한 걸음.“헬스장?”“아니.”“그럼 누구.”“아무도.”“거짓말.”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미정의 가방을 뒤졌다.지퍼가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방 안을 긁었다.“그만해.”“왜.”“이제 그런 거 안 보여줄 거야.”태훈의 손이 멈췄다.“안 보여줘?”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네가 뭔데.”그 문장은 낮았지만, 날이 서 있었다.남편이 아니라 주인이 말하는 어투였다.미정은 그 눈을 똑바로 보았다.“나도 사람이야. 더이상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라고”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 틈이 미정에게는 처음으로 생긴 공간이었다.“말 다 했어?.”“아니...이제 나도 물러서지 않고.”미정은 천천히 말했다.“지킬거야.”
Leer más

145. 본인이 흔들리는 겁니다

비는 예고 없이 쏟아졌다.오후까지만 해도 흐리기만 했던 하늘이 해 질 무렵 갑자기 무너졌다.빗줄기는 굵었고, 바닥을 때리는 소리는 일정하지 않았다.규칙 없이 쏟아지는 소리. 그건 사람의 감정과 비슷했다.헬스장 로비는 유난히 습했다.젖은 우산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을 따라 길게 번졌다.이수는 일부러 러닝머신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이어폰은 귀에 꽂았지만 음악은 틀지 않았다.주변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태훈이었다.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는 우산을 접으며 로비를 훑었다.그리고, 이수를 발견했다.눈이 멈췄다.그 멈춤이 길었다.이수는 모르는 척 속도를 조절했다.숨이 일정하게 오르내렸다.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태훈이 다가왔다.“또 보네요.”그는 웃는 얼굴을 만들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그러게요.”이수는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비 많이 오네요.”“네.”짧은 대답.그의 시선이 그녀의 어깨, 손목, 다리로 천천히 내려갔다.확인하듯, 훑듯.“요즘 자주 오시네요.”“건강 챙기려고요.”"아직.. 만나시는 분은""없어요이수의 대답은 전과 같았지만, 이번엔 살짝 웃음이 섞였다.그 작은 변화가 태훈의 신경을 건드렸다.“확실해요?”“왜요.”“그냥.”그는 물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요즘 이상하게 불안해 보여서.”그 말은, 며칠 전 이수가 그에게 던졌던 문장이었다.이수는 고개를 기울였다.“제가요?”“네.”“왜 그렇게 생각하세요.”태훈은 대답하지 못했다.자신이 불안한 건지, 상대가 불안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얼굴이었다.이수는 머신을 멈추고 내려왔다.“저 먼저 갈게요.”태훈의 눈이 흔들렸다.“벌써요?”“네.”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누가 기다려서.”그 문장은 일부러 던진 것이었다.태훈의 얼굴이 굳었다.“누가...”“일일이 대답할만큼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죠”그녀는 가볍게 웃고 돌아섰다.태훈은 그 자리
Leer más

146. 확신

태훈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휴대폰을 꺼냈다.손이 가볍게 떨렸다.술 때문은 아니었다.확신 때문이었다.의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하지만 어제 헬스장 앞에서 본 장면,비를 맞으며 통화를 받던 이수의 얼굴,그리고 그 직후 나타난 남자.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지금 가는 중.’그 한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태훈은 소파에 앉아 화면을 켰다.SNS, 메시지, 사진.이수의 이름을 검색했다.별다른 흔적은 없었다.그 부재가 오히려 불안을 키웠다.“숨겼네.”누군가를 의심하는 순간, 상대의 결백은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건 스스로가 납득할 이야기다.태훈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헬스장.같은 시간.같은 공간.그 남자.그는 기억을 짜 맞췄다.“있네.”다음 날, 그는 헬스장에 일찍 갔다.러닝머신 위에서 운동하는 척하면서계속 출입문을 주시했고, 이수가 들어왔다.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그가 다가갔다.“오늘도 오셨네요.”“네.”“어제.”그가 말을 멈췄다.“어제 뭐요?”“그 남자.”이수는 잠시 멈칫했다가 웃었다.“지인이에요.”짧은 대답.그 웃음이 태훈을 자극했다.“친한가 보네요.”“그냥.”“그냥이 뭐예요.”이수는 물병을 들고 말했다.“왜요. 질투라도 하세요?”그 한 문장이 선을 건드렸다.태훈의 눈이 변했다.“아니요.”“그런데 왜 자꾸 물어요?”이수는 다시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여기까지.’그녀는 계산했다.태훈의 눈이 이미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자극이 필요했다.태훈은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질투는 분노보다 조용하게 타오른다.그리고 그 조용함이 더 위험하다.저녁 시간, 태훈은 일부러 이수를 주차장에서 기다렸다.“집에 가요?”그가 말했다.“오늘은 차 안 가져왔어요.”“그럼 태워줄게요.”이수는 잠시 망설이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조수석 문이 닫히는 순간, 태훈의 표정이
Leer más

147. 이탈한 좌표

하빈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작은 점 하나가 지도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평소와 다른 방향이었다.헬스장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선이 아니라, 점점 외곽으로 벗어나는 선.“너....”그가 중얼거렸다.전화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끊겼다.다시 걸었다.이번엔 아예 받지 않았다.지도 위 점이 멈췄다.공사 중인 부지 표시가 떠 있는 지역.하빈의 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내려앉았다.차 안. 태훈은 핸들을 거칠게 꺾으며 외곽 도로로 빠져나갔고,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갈랐다.이수는 안전벨트를 붙잡은 채로 창밖을 봤다.하지만, 길이 낯설었다.“어디 가는건데요?”태훈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숨이 거칠었고, 턱 근육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이거.”그가 휴대폰을 흔들었다.“지금 누가 추적하고 있지?”“아니에요.”“거짓말.”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이거 켜져 있잖아.”“자동이에요.”“누가.”이수는 말을 고르려 했다.이 순간에 잘못된 단어 하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수 있었다.“지인이에요.”“그 남자지.”확신에 찬 목소리였다.태훈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대답은 필요 없었다.차는 공사장 입구 쪽에 멈췄다.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공간. 철골 구조물들이 어둠 속에 엉켜 있었다.엔진은 꺼지지 않았다.차 안은 좁았고, 공기는 무거웠다.태훈은 몸을 돌려 이수를 정면으로 마주봤다.“나 바보 아니야.”“그런 말 안 했어요.”“나 미치게 만들지 마.”그의 손이 다시 이수의 손목을 잡았다.이번엔 훨씬 세게.이수의 숨이 짧게 끊겼다.“놔요.”“누구냐고.”“아니라니까요.”태훈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그 남자 볼때 너... 웃었잖아.”이수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민준의 손이 겹쳐 보였다.‘진정해.’그녀는 스스로를 붙잡았다.“그냥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거짓말.”그는 이수를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그렇게
Leer más

148. 추격

공사장 뒤편은 생각보다 더 어두웠다.철근이 엉켜 있는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스치며 낮은 쇳소리를 냈다.비는 그쳤지만, 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다.차의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어둠이 훅 내려앉았다.태훈은 이수의 팔을 놓지 않은 채 창고 쪽으로 걸었다.“여기서 얘기하자.”“차 안에서 해도 되잖아요.”“좁잖아.”그의 말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이 더 위험했다.이수는 발을 멈췄다.“놔요.”“놓으면... 도망이라도 가려고?”“아니요.”“그럼 여기서 해.”그는 그녀를 반쯤 끌듯이 안쪽으로 데려갔다.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반쯤 열린 철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창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바닥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구석에는 공사 자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태훈은 그녀를 안쪽으로 세웠다.“이제 말해.”“뭘요.”“그 남자.”“아무 관계 아니라니까요. 몇번을 말해요”“계속 그 소리네.”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숨이 거칠었다.“내가 미치는 거 보고 싶어?”이수는 침을 삼켰다.여기서 더 밀면 안 된다.그녀는 이걸 여러 번 겪었다.민준과의 기억이 겹쳤다.닫힌 공간.낮은 목소리.다정한 말투로 시작해서갑자기 뒤집히는 눈빛.“저는.”이수는 일부러 시선을 낮췄다.“아무도 안 만나요.”태훈이 다가왔다.“그럼 왜 숨기는건데?”“숨긴 게 아니라…”“그럼 보여줘.”그는 손을 내밀었다.“휴대폰.”이수는 잠시 멈췄다.휴대폰을 건네는 순간,위치 공유 앱이 보일 것이다.“배터리 없어요.”“거짓말.”태훈은 직접 빼앗았다. 화면이 켜졌다.상단에 떠 있는 문자 알림창.태훈의 얼굴이 굳었다.“누구야?”“지인이라고 말했잖아요.”“그 남자.”“아니에요.”“그럼 누구.”그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말해.”이수는 입을 다물었다.하빈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이건 더 위험해진다.태훈의 눈이 번들거렸다.“너 날 바보라고 생각하는거야?”그는 휴대폰을 바닥에 던졌다.액정이 또 한 번
Leer más

147. 여기까지 온 건 내가 아니잖아

철문이 덜컹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아직 창고 안에 남아 있었다.태훈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이수를 밀어붙이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눈은 여전히 붉었지만, 그 안에 깔린 건 분노보다 당황에 가까웠다.“미쳤네… 진짜.”그는 이를 악물고 하빈을 노려봤다.“너..대체 뭔데?”하빈은 대답하지 않았다.시선은 오직 하나, 이수에게 가 있었다.이수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눈은 멍했지만, 울지는 않았다.하빈이 천천히 이수에게 다가갔다.“괜찮아?”이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태훈이 비웃듯 말했다.“쇼하지 마.”그 한마디에 하빈의 시선이 돌아섰다.“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태훈은 코웃음을 쳤다.“둘이 짜고 날 바보 만든 거 아니야?”“여기까지 데려온 게 누군지 생각해보세요.”하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태훈은 잠깐 말이 막혔다.그 짧은 정적이 창고 안을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잠깐 얘기하려고 온 거야.”그가 변명하듯 말했다.“잠깐?”이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나왔다.“잠깐이 여기까지 끌고 와요?”태훈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난 네가…”말을 잇지 못했다.‘떠날까 봐.’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하빈은 휴대폰을 꺼냈다.“경찰 부르겠습니다.”태훈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뭐?”“폭행, 감금, 협박.”“감금?”그는 헛웃음을 쳤다.“차에 태운 게 감금이야?”“원하지 않는 장소로 이동시키면 감금입니다.”짧은 설명.감정 섞이지 않은 문장.태훈의 시선이 다시 이수에게 향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이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무서웠어요.”그 말은 작았지만 또렷했다.태훈은 처음으로 시선을 피했다.“난…”그는 머리를 쓸어올렸다.“난 네가 다른 남자 만나는 줄 알았어.”“그래서요?”이수의 눈이 차게 식었다.“그래서 날 여기로 끌고 와요?”태훈은 대답하지 못했다.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Leer más

148. 도망만 안 가면 돼

“왜 이렇게까지 해.”그가 낮게 물었다.“왜 자꾸 네가 다치는 선택을 하는건데.”이수는 눈을 감았다.“나 때문이잖아.”“뭐가.”“미정 씨”그녀의 목소리가 흐려졌다.“내가 밀었어.”하빈은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이 밀었지.”잠깐의 침묵.그리고.“아까 널 사랑하는 말...진심이야”이번엔 급하게 말하지 않았다.담담하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처럼. 이수의 숨이 멈췄다.“오래전부터.”그는 덧붙였다.“네가 도망치던 날부터.”이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난…”그녀는 말을 멈췄다.“난 아직 정리 안 된 사람이야.”하빈은 웃지 않았다.“괜찮아. 상관없어”“뭐가.”“그냥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하니까. 상관없다고”그 말은 과하지도, 가볍지도 않았다.이수는 처음으로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떨어졌다.“지금은.”그녀가 낮게 말했다.“미정 씨가 먼저야.”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그래도...”멀리서 경찰차 불빛이 사라지고 있었다.오늘 밤, 한미정의 집에는 균열이 생겼고 태훈은 선을 넘었다.그리고 동시에, 이수와 하빈 사이에도 넘지 않으려던 선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밤은 이미 깊었는데,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창고를 떠나 돌아오는 차 안,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다.하빈은 운전에만 집중하는 척했고, 이수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차창에 번졌다가 흘러내렸다.그 빛이 마치 물처럼 흔들렸다.“집에 가서 쉬자.”하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조금 전, 그의 품 안에서 들었던 심장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나 너 사랑해.'그 말이 차 안 어딘가에 아직도 떠 있는 것 같았다.집에 도착했을 때도 둘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신발을 벗고, 각자의 자리에 섰다.늘 하던 대로.하지만 오늘은 늘 하던 대로가 어색했다.이수가 먼저 물을 꺼내 마셨다.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하빈아.”“
Leer más
ANTERIOR
1
...
1314151617
...
21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