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이수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직 멀게 느껴졌지만, 적어도 이 사람과는 도망치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창밖에서 멀리 차 소리가 지나갔다. 이수는 눈을 감으며 천천히 말했다.“내가 진짜 무너질 때가 오면.”“응.”“그때도 옆에 있을 거야?”“있을 거야.”짧지만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이수는 그 대답을 의심하지 않았다.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지만, 의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차이가 지금의 그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잠이 서서히 내려앉았다.이수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잠들었고, 하빈은 한참 동안 그녀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숨이 안정되자 그제야 눈을 감았다.그날 밤은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평범한 밤이었지만, 그 평범함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줄여 놓았다.그리고 어딘가에서,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움직임이 천천히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수는 아직 알지 못했다.아침 햇빛이 커튼 사이로 길게 들어왔다.이수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떴다. 밤새 깊게 잠들었는지, 몸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손을 움직이려다 멈췄다. 옆에 누워 있던 하빈의 팔이 아직 그녀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그녀는 한동안 그 체온을 가만히 느꼈다. 도망칠 필요도, 핑계를 만들 필요도 없는 아침이라는 게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깼어?”하빈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물었다.“응.”“왜 가만히 있어.”“그냥.”이수는 솔직하게 말했다.“이게 진짜인지 확인 중.”하빈이 눈을 떴다. 미소를 짓지도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 대신 팔에 힘을 조금 더 주며 말했다.“진짜야.”이수는 작게 웃었다. 확인은 이미 끝난 셈이었다.미용실은 오전부터 바빴다. 단골 손님이 들어와 앉으며 말했다.“요즘 얼굴 좋아졌네.”이수는 가위를 들며 웃었다.“그런가요.”“전엔 좀 날 서 있었어.”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처음이었다.사랑을 재촉하지 않는 사람.집에 들어와 불을 켰다.거실은 따뜻했고, 익숙한 냄새가 났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하빈은 물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두었다.잠깐의 정적.“나 무너질 수도 있어.”이수가 말했다.“응.”“그때 너도 힘들 거야.”“응.”“그래도 괜찮아?”하빈은 그녀 앞에 앉았다.“무너질 때 옆에 있는 게 힘든 거면, 떠나는 건 뭐야.”짧은 침묵.“더 힘들지.”이수는 고개를 숙였다.가슴이 천천히 조여왔고, 이번엔 불안이 아니었다.누군가를 잃을까 봐 두려운 감정이 아니라, 잃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그 차이를 그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밤이 깊어졌다.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거리는 여전히 조금 남아 있었지만 예전처럼 멀지는 않았다.이수는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말했다.“하빈.”“응.”“도망가면 잡아.”“알았어.”“진짜로.”“알았다니까.”그의 목소리는 웃음 섞여 있었지만 단단했다.이수는 그걸 들으며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괜찮을지도 몰라.아직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도망칠 준비부터 하지는 않았다.그리고, 그 평온이 조금 더 깊어졌다.밤은 생각보다 빨리 깊어졌다.불을 끈 뒤에도 창밖의 불빛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어 방 안을 옅게 밝혔다. 이수는 등을 대고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바로 옆에서 하빈이 뒤척이는 기척이 났지만, 그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있다는 걸, 이수는 느끼고 있었다.“자?”이수가 낮게 물었다.“아직.”“왜.”“네가 안 자잖아.”이수는 작게 웃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대화조차 부담스러웠을 텐데, 지금은 그저 숨이 맞는 느낌이었다.“하빈.”“응.”“나 요즘 이상해.”“어떻게.”“불안한데… 동시에 편해.”그녀의 말은 모순처럼 들렸지만, 감정은 분명했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도와, 그걸 잃을까 봐 드는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하
이수는 그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더 무섭지.”“왜.”“내가 또 못 보고 있는 게 있을까 봐.”그 말은 남을 향한 의심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불안에 가까웠다. 사람을 믿는 순간, 자신이 약해질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쳤다. 하빈이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그걸 귀 뒤로 넘겨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손길을 피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다. 숨이 아주 잠깐 흔들렸을 뿐, 몸을 빼지는 않았다.“나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어.”이수가 먼저 말했다.“알아.”하빈의 대답은 짧았지만 단단했다.“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더 힘들어.”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럼 하지 마.”“뭐?”“괜찮은 척.”하빈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위로하려는 말투도 아니었고, 억지로 단단해 보이려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처럼 꺼낸 말이었다.이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무릎 위에 얹어둔 손을 조금 움직였다.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하빈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스치듯 닿는 정도였지만, 이번엔 바로 거두지 않았다.“편하다.”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뭐가.”“지금.”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래서 무섭기도 해.”하빈은 웃지 않았다.“편해지면 잃을까 봐?”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하빈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잃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네가 여기 있는 게 더 중요하지.”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선택이 들어 있었다. 미래를 장담하지도, 약속하지도 않으면서 지금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이수는 난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도망 안 가려고.”“응.”“노력해볼게.”하빈은 그녀를 바라봤다.“잡을 준비는 돼 있어.”그 말에 이수는 피식 웃었다.“뭘 그렇게 준비해.”“말 안 해도 알아.”“뭘.”“네 표정.”이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누
저녁이 조금 늦었다.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가 눅눅했다.미용실 간판 불이 꺼지기 직전의 시간.골목은 한산했고, 건너편 편의점 불빛만 희미하게 새어나왔다.남자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엔진은 끈 상태였다.운전석 창문을 아주 조금 내린 채, 그는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장미 미용실.낯선 이름.낯선 삶.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문. 유리창. 안쪽 의자. 거울.그리고, 문이 열렸고, 이수가 나왔다.앞치마를 벗으며, 머리를 묶은 고무줄을 풀고 있었다.지친 표정. 그러나 무너지지 않은 얼굴.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그저 시선만 따라갈 뿐.이수는 문을 잠그고,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확인했다.잠깐, 고개가 들렸다.골목을 스치는 바람 때문인지 이유 없는 기척 때문인지.차 안의 남자와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그 방향을 스쳐갔다.남자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익숙한 버릇. 익숙한 걸음.“……”말은 없었다.대신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찾은 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오늘은 확인일 뿐. 하빈이 미용실 안에서 나왔다.“늦었네.”그가 말하며 이수 옆에 섰다.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었다.거리도, 속도도 익숙했다.남자의 시선이 그 간격에 잠시 머물렀다.하빈이 무언가 말했고, 이수가 작게 웃었다.그 웃음이 차 안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보였다.남자의 턱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손이 핸들을 쥐었다가 천천히 풀렸다.질투는 아니었다.분노도 아니었다.계산.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사진을 찍지 않았다.녹음도 하지 않았다.그저 화면을 켰다가 껐다.아직은 아니다.두 사람이 골목 끝으로 사라지자 남자는 시동을 걸었다.차는 천천히 움직였다.골목을 빠져나가기 직전, 그는 한 번 더 백미러로 간판을 봤다.불 꺼진 장미 미용실.“…….”아주 낮게, 거의 숨처럼.“이제야.”그 한 마디. 찾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움직일 시간이라는 의미. 차는 골목을 벗어났다.그날 밤.
그날 이후로 이틀 동안 연락은 없었다.서연도, 재호도. 이수는 일부러 먼저 묻지 않았다.이번 사건은 설득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선택은 당사자 몫이었다.미용실 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드라이기 소리, 가위 소리,손님들의 가벼운 수다.그런데 이상하게, 이수의 귀에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마치 모든 감각이 조금 예민해진 것처럼.“생각 많지.”하빈이 말했다.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이상하게 조용해.”“무슨 뜻이야.”“사건이 끝날 때마다 남는 소리 있잖아.”하빈은 잠시 생각했다.“후회?”“아니.”이수는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바라봤다.“사람이 무너질 뻔하다가 멈춘 소리.”짧은 정적.그 표현이 묘하게 정확했다.그날 밤. 문자가 왔다.보낸 사람, 재호.[잠깐 뵐 수 있을까요.]이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대신 하빈을 바라봤다.“혼자 갈 거야?”그가 물었다.“응.”“괜찮겠어?”이수는 짧게 웃었다.“이번엔 싸움 아니니까 괜찮아.”카페는 조용했다.재호는 먼저 와 있었다.수염이 조금 자랐고, 눈 밑이 어두웠다.“죄송합니다.”앉자마자 말했다.“뭐가요.”“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이수는 고개를 기울였다.“그건 본인 선택입니다.”“그래도.”재호는 손을 모았다.“저도 시험했어요.”“어떻게요.”“말 안 했습니다.”짧은 숨.“어머니 병세도, 회사 문제도.”“왜요.”“지키려고.”이수는 천천히 말했다.“그건 지키는 게 아니라 혼자 짊어지는 겁니다.”재호는 고개를 숙였다.“이혼 안 하기로 했습니다.”짧은 문장. 그 안에 무게가 있었다.“조건은요.”“부부 상담.”“재산 분리.”“그리고.”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덧붙였다.“다시 말하기로 했습니다.”“뭘요.”“무섭다고.”그 말이 떨어지자이수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무섭다고 말하는 것.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칠 뒤, 서연도 찾아왔다.혼자였다.눈은 붉었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다.“제가 먼저 사과했습니다.”
이수는 두 사람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불렀다.서연에게는 “진전이 있다”고 말했고, 재호에게는 “정리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둘 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오후 네 시.미용실 문 위의 종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서연이 먼저 들어왔고, 뒤이어 재호가 멈칫한 채 문 앞에 섰다.서로의 눈이 마주쳤다.순간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왜 여기에…”재호가 말을 잇지 못했다.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이수는 조용히 말했다.“앉으세요.”네 사람의 숨소리가 미묘하게 엇갈렸다.하빈은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두 사람을 지켜봤고, 이수는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외도 증거는 없었습니다.”짧은 정적.재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서연의 손은 더 단단히 모였다.“그리고.”이수의 시선이 천천히 이동했다.“문자 조작 기록은 확인됐습니다.”공기가 무너졌다.“그게 무슨…”재호가 먼저 말을 꺼냈지만,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계정 번호.”“위조된 메시지.”“호텔 동선.”이수는 하나씩 천천히 말했다.몰아붙이지 않았고, 설명하듯 천천히“설명하시겠습니까.”서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입술이 하얗게 질릴 뿐, 재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서연.”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이게 뭐야.”짧은 침묵.서연의 어깨가 아주 작게 떨렸다.“당신이 먼저 변했어.”그녀가 말했다.“무슨 소리야.”“돈이 생기고, 사람들한테 둘러싸이고.”“그게 변한 거야?”재호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였다.“그게 죄야?”“아니.”서연은 고개를 저었다.“근데 나를 안 봤잖아.”정적.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증거 싸움이 아니었다.감정의 균열이었다.“난 무서웠어.”서연이 낮게 말했다.“당신이 나를 버릴까 봐.”“그래서 먼저 버리려고 했어?”재호의 말이 날카로웠고,서연은 눈을 감았다.“지키려고.”그녀의 말은 모순이었다.하지만 진심처럼 들렸다.“보험 수익자 변경 시도는 왜 했습니까.”이수가 물었을 때, 서연의 숨이 멈췄다
비는 밤새 그쳤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아침이 되자 길 위엔 물기가 남았고,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무언가 씻겨 내려간 뒤의 냄새였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어제와 같은 말이었다.하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눈빛이었다.말보다 먼저 인식하는 방식.그건 습관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손이 앞치마 끈을 묶는 동안,진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을 따라갔다.손목, 손가락, 매듭.이수는 그 시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네.”이수는 짧게 답했다.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
남자들은 너무 완벽한 것 앞에서 경계한다.완벽은 함정의 냄새가 난다.대신 ‘조금 과한 듯한 자연스러움’이 필요했다.그래야 자기 욕망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다.이수는 파운데이션을 얇게 올렸다.눈매를 길게 뺐다.립은 선명하지만 젖지 않게. 향수는 거의 쓰지 않았다.향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나중에 문제가 된다.옷은 고민하지 않았다.고민이 길어지면 마음이 늦어진다.이수는 얇은 니트와 코트를 걸쳤다.너무 화려하지 않은 색.하지만 얼굴은 눈에 띄게.거울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표정은 비워두었다.웃는 얼굴
비는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속도였다.우산을 쓴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어차피 젖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들 같았다.구급차가 교차로를 가르며 지나갔다.사이렌 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둔해졌고,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어떤 소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오후였다.이수는 미용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기보다는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진동을 느꼈다.장미 미용실.간판의 ‘장미’는 오래전에 색이 바랬다.붉었던 글자는 연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