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한 거지.”그녀가 낮게 말했다.그 질문은 누군가에게 묻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확인이었다. 그날의 선택이 사랑이었는지, 포기였는지, 도망이었는지 수없이 되물어왔지만, 결국 결론은 늘 같았다. 고통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하빈이 옆에 앉았다.“후회해?”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그 사람이 그걸로 날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더 화나.”그 말은 처음으로 분노가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는 구조를 읽는 태도였지만, 이제는 감정이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을 죄책감으로만 정의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약속 당일 아침, 이수는 평소보다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 과하게 꾸미지도, 지나치게 무심하지도 않았다. 감정이 아니라 태도로 대면하겠다는 의지였다.하빈은 현관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묻는다.”그가 말했다.“지금이라도 안 가고 싶으면, 가지마.”이수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가야 끝나.”그 말은 단순한 만남을 의미하지 않았다. 과거와의 정면 대면이었다.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근처에 있어.”이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이번엔… 나 혼자 도망치지 않을게.”그 말에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호텔 로비는 생각보다 밝았다. 낮 햇빛이 유리벽을 통과해 바닥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고, 커피 향이 공기 중에 섞여 있었다. 이수는 지정한 자리 근처에 섰다. 심장은 빨리 뛰었지만, 숨은 고르게 유지했다.몇 분 뒤, 로비 입구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걸음걸이, 어깨선, 고개를 드는 각도까지.시간이 흘렀어도 바뀌지 않은 방식.이수는 눈을 떼지 않았다.그도 이수를 발견했다.그리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전쟁은 이제, 그림자 속이 아니라 햇빛 아래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호텔 로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늦은 오후의 햇빛이 통유리를 통과해 대리석 바닥 위로 길게 번졌고, 그 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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