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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불륜해드립니다.: Capítulo 191 - Capítul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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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뭐 봐.”그가 묻자, 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그러나 그 ‘아무것도’라는 말 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담겨 있었다. 사건은 끝났지만, 어딘가에서 새로운 기류가 움직이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었다.어느 날 저녁, 미용실 문을 닫고 돌아가는 길에 이수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맞은편 골목 입구에 서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깨선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들기 전에, 그 남자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왜 멈췄어.”하빈이 물었다.이수는 잠시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그냥.”그녀는 말을 흐렸다.“어디서 본 것 같아서.”“누굴.”“몰라.”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의 표면을 스치는 그림자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부처럼, 그러나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각이었다.하빈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골목은 평범했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집으로 돌아온 뒤, 이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성 빌런의 사건은 끝났고, 자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마음 어딘가가 가볍지 않았다.“왜지.”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하빈은 옆방에서 나와 물을 마시며 말했다.“뭐가.”“끝났는데… 안 끝난 느낌.”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사건은 끝났어도, 네 기준이 바뀌었으니까.”이수는 눈을 감았다. 맞는 말이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시험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제는 다음 이야기를 불러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창밖에서 아주 약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간판은 흔들리지 않았고, 골목은 조용했다. 그러나 이수는 알 수 없는 기류를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가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그 이름을 아직은 떠올리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다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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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도망 안 간다고 했잖아

“왜 자꾸 뒤를 봐.”하빈이 물었다.이수는 솔직하게 말했다.“누가 있는 건 아닌데, 누가 있는 느낌이야.”하빈은 그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그는 무심한 척 주변을 한 번 더 훑었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역시 최근 몇 번 골목에 낯선 차량이 잠시 멈췄다가 가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이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신경을 써야 했다.“내가 조금 더 신경 쓸게.”그가 말했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같았으면 “괜찮아”라고 넘겼을 것이다. 혼자 감당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게 반응했다.“응. 같이 보자.”그 말은 조용했지만 의미가 있었다.그날 밤, 이수는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어났다. 꿈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차가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골목은 고요했고, 가로등 불빛이 바닥에 길게 번져 있었다.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뭐가 불안한 거지.’여성 빌런의 사건은 정리되었다. 태훈의 문제도 일단은 법적 조치로 묶여 있다. 당장 터질 폭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피부 아래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때 문득 병원 복도의 형광등이 떠올랐다. 차갑게 빛나던 바닥, 그리고 그날의 공기. 이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오래전의 기억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생각을 멈추려 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마음은 논리와 다르게 움직였다.다음 날 오후, 미용실 문이 열렸다. 평범한 차림의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예약은 없었지만 급하게 머리를 다듬고 싶다고 했다. 이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안내했다.여성은 거울을 통해 이수를 한 번, 두 번 바라보았다.“원장님이 서이수 씨 맞죠?”순간, 이수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네.”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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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시작이네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이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사건이 끝난 직후의 고요는 늘 그렇듯 잠깐의 숨 고르기처럼 느껴졌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다음 파동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미용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단골 손님이 들어와 머리를 다듬으며 동네 소식을 전했고, 젊은 직장인은 이직을 고민한다며 조언을 구했다. 이수는 평소처럼 듣고, 정리하고,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았다. 말의 방향을 잡아주되, 결론을 대신 내리지는 않았다. 여성 빌런 사건 이후로, 그녀는 그 선을 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그런데 사소한 것들이 겹치기 시작했다.어느 날은 예약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또 어느 날은 상담 문의라며 전화가 걸려왔는데, 정작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이수의 근무 시간과 퇴근 시간을 묻고 끊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연이 반복되면, 사람은 패턴을 감지하게 된다.하빈은 그 변화에 먼저 반응했다. 그는 미용실 근처 CCTV 위치를 다시 점검했고, 골목 초입에 설치된 카메라 각도가 바뀐 것을 확인했다. 관리 업체에 문의하자, 최근 점검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소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타이밍이 마음에 걸렸다.“너 최근에 외부 상담 요청 늘었어?”그가 물었다.이수는 고개를 기울였다.“조금. 사건 기사 때문에 그런가 했어.”“상담이 아니라 정보 확인 같아.”하빈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직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이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들어 자신의 이름이 의도적으로 호출되는 느낌이 있었다. 굳이 확인할 필요 없는 것들을 확인하려는 질문들, 의미 없이 반복되는 시선들. 누군가가 단번에 접근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 데이터를 쌓고 있다는 기분이었다.그녀는 문득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민준은 늘 한 번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읽고, 패턴을 만들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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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접근선

우편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인쇄된 종이 한 장이 이렇게까지 공기를 무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 안에는 명확한 문장도, 노골적인 위협도 없었다. 단지 날짜와 병실 번호, 그리고 검게 가려진 몇 줄의 기록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몇 줄이 이수의 숨을 천천히 옥죄고 있었다.그녀는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날짜는 정확했다. 아버지가 일반 병실에서 VVIP 병실로 옮겨진 직후의 기록이었다. 그때는 그런 변화가 왜 필요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보호자의 동의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병원 측의 설명은 ‘안정을 위해서’라는 말로 정리되었다. 그녀는 그때 너무 지쳐 있었고, 판단을 유예한 채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이걸 보낸 사람이 병원 내부 기록을 본 거야.”하빈이 낮게 말했다.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외부 조회로는 접근할 수 없는 자료였다. 최소한 내부 협조가 있거나, 과거에 정식으로 열람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어려운 정보였다. 그리고 그 병실 변경은 당시 그녀의 남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일이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이건 그냥 상기시킨 거야.”“뭘.”“내가 어디서 가장 약한지.”하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수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종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말했다.“이게 끝은 아닐 거야.”“알아.”이수의 대답은 짧았지만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본편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그날 밤, 이수는 오랜만에 아버지의 마지막 날을 떠올렸다. 산소호흡기 소리, 형광등 아래에서 느껴지던 건조한 공기, 그리고 자신이 내린 선택. 그 선택이 옳았는지, 혹은 다른 길이 있었는지에 대해 수없이 되뇌었지만, 결국 결론은 늘 같았다. 그때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더 이상 고통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고, 그 판단에는 사적인 이익이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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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죄책감으로는 날 흔들 수 없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도 이수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집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서는 늦은 밤 차량 소리만 간헐적으로 지나갔다. 우편 봉투는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얇은 종이 한 장이 공간의 중심처럼 느껴졌다.하빈은 일부러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대신 그는 노트북을 켜서 병원 관련 법규와 기록 보존 기준을 다시 확인했다. 당시 병실 변경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공동 보호자 권한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열람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는지 하나씩 점검했다.“그때 병실 옮길 때.”이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그냥 고개만 끄덕였어.”하빈은 고개를 들었다.“설명은 들었고?”“들었지. 안정, 프라이버시, 보호. 그런 말들.”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덧붙였다.“근데 내가 요청한 건 아니야. 나는 그날… 선택만 했지.”그 선택이라는 단어에 미묘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산소호흡기 제거 동의서에 서명하던 순간, 그녀는 이미 모든 감정을 소진한 상태였다. 병실 이동의 세부 과정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구조를 정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병실 변경에 공동 보호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는 건.”하빈이 말했다.“그 사람이 공식적으로 접근 권한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야.”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지금도.”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과거에 합법적으로 접근했던 기록을,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그 설계 방식이 너무 익숙했다.며칠 뒤, 두 번째 우편이 도착했다.이번에는 병원 로고가 없는 일반 봉투였다. 안에는 짧은 인쇄 문장이 한 줄 들어 있었다.[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기록이야.]문장 아래에는 날짜 하나가 적혀 있었다. 산소호흡기 제거 동의서에 서명한 날이었다.이수는 종이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문장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했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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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선제

병원 기록 열람 사실을 확인한 뒤부터, 이수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불안에 흔들리는 대신, 먼저 구조를 짚기 시작했다. 감정이 먼저 올라오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건 사실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심어놓은 질문인가.’ 그 차이를 구분하려 애썼다.하빈 역시 움직였다. 병원 열람 기록 요청자 정보는 법적으로 더 이상 확인이 어려웠지만, 당시 공동 보호자였던 사람의 접근 권한 범위를 다시 정리했다. 열람 시점과 우편 발송 시점이 거의 겹친다는 점, 기록 일부만 선택적으로 인쇄해 보냈다는 점, 무엇보다 문장의 어조가 지나치게 계산적이라는 점을 종합하면, 이건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설계된 압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상대는 네가 먼저 반응하길 기다리고 있어.”하빈이 말했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아직은 직접적인 공격이 없는 거지.”그녀의 말에는 분석이 담겨 있었다. 사진도 없고, 노골적인 협박도 없다. 단지 기억을 상기시키고, 열람 사실을 드러내며, ‘나는 준비되어 있다’는 신호만 보낸다. 상대가 불안에 먼저 흔들려 움직이길 유도하는 방식이었다.“움직이지 않으면?”하빈이 물었다.“그럼 다음 조각이 오겠지.”이수는 차분하게 답했다. “더 구체적인 것.”그 예감은 오래가지 않았다.사흘 뒤, 이번에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비공개 처리되어 있었고, 제목은 단순했다.[확인]본문에는 짧은 문장 하나와 이미지 파일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이미지는 병원 복도 CCTV 캡처처럼 보였다. 화질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복도 끝에서 병실 쪽으로 걸어가는 이수의 뒷모습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날짜와 시간이 찍혀 있었고, 그 시간은 산소호흡기 제거 동의서 서명 직전이었다.이수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숨이 막히지 않았다. 예상한 수순이었다.“왔다.”그녀가 낮게 말했다.하빈은 곧바로 노트북을 열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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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그때도 최선이었고, 지금도 최선이다

두 번째 이미지가 도착한 이후, 이메일은 며칠간 잠잠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불안정했다. 이수는 이미 다음 수순을 예측하고 있었고, 기다림 자체가 압박의 일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상대는 조급하지 않았다. 조각을 던지고, 시간을 두고, 반응을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이수가 먼저 움직이길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하빈은 그 점을 짚었다.“우리가 반응을 최소화하니까, 더 큰 조각이 올 거야.”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아니라 환경을 건드리겠지.”그 말은 정확했다. 지금까지는 과거의 장면만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 장면이 외부로 확산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병원 복도에서의 모습이 기사화되거나, 편집된 형태로 유포된다면,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생긴다.그 예감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어느 오후, 하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기자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그는 통화를 받으며 표정을 굳혔다.“무슨 소리야.”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하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 사진, 어디서 받은 거지.”이수는 멀리서 그 대화를 지켜보며 이미 직감했다. 판이 확장되고 있었다.통화를 마친 하빈은 천천히 말했다.“병원 복도 사진, 제보 들어갔대.”이수는 고개를 들었다.“기사화?”“아직은 아니야. 사실 확인 차원에서 연락 온 거야. 내용은 이렇더라. ‘아버지의 임종 직전 병실을 오가던 딸의 수상한 행적.’”문장은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의도는 명확했다. 감정을 비틀어 해석하면 충분히 자극적인 제목이 될 수 있었다.이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심장이 빨라졌지만, 표정은 무너지지 않았다.“그 사람.”그녀가 말했다.“이제는 외부를 쓰는 거네.”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에 흘려서 압박 수위를 올리는 단계야.”이수는 곧장 기자에게 직접 연락했다. 도망치지 않고, 먼저 구조를 제시하는 쪽을 택했다. 통화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고, 상대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제보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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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직면

기자와의 통화 이후 며칠은 미묘한 긴장 속에서 흘러갔다. 기사화는 되지 않았지만, 확인 요청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수는 판이 이미 바깥으로 확장되었음을 실감했다. 더 이상 병실 복도에서의 장면은 개인적인 기억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에서 재구성될 수 있는 ‘자료’가 되었고, 맥락을 잃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소비될 수 있는 이미지가 되었다.하빈은 언론 대응 전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먼저 공개할지, 상대의 다음 수를 기다릴지, 법적 대응을 병행할지. 선택지는 여러 개였지만, 결정은 서두르지 않았다. 상대는 시간을 무기로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흐름을 읽은 뒤 움직여야 했다.그러던 어느 저녁, 미용실 문을 닫고 나오는 길에 이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번호는 표시되지 않았다. 순간 망설였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여보세요.”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랜만이네.”그 한 마디에, 공기가 달라졌다.이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 목소리는 과거의 시간과 함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왜 지금이야?”그녀가 차분하게 물었다. 놀라거나 격앙되지 않으려 애썼다.상대는 낮게 웃었다.“지금이 제일 적절하니까.”“뭘 위해.”“정리.”그 짧은 단어에 여러 의미가 겹쳐 있었다.이수는 한숨처럼 숨을 내쉬었다.“사진 보내는 방식이 네 스타일이야?”잠시 침묵이 흘렀다. 부정도, 긍정도 없었다. 대신 돌아온 말은 다른 방향이었다.“그날 기억나?”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굳었다.“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기록이잖아.”상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단정적인 어조로만 말을 던졌다.이수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낮게 말했다.“왜.”상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너랑 나 사이에 남은 걸 끝내야 하니까.”그 말은 애정도, 분노도 아닌, 묘하게 계산적인 어조였다. 이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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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그래, 내가 선택하지

그가 물었다.이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고, 일상은 변한 것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고요가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도망치지 않겠다고 했잖아.”그녀가 말했다.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같이 가.”이수는 그를 바라보았다.“이번엔 내가 먼저 가야 해.”그 말은 고집이 아니라 판단에 가까웠다. 상대가 원하는 건 둘 사이의 균열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빈이 동행하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하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네가 가더라도, 혼자는 아니야.”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단단했다.그날 밤, 이수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통화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상대의 어조는 변하지 않았다. 다정하지도, 노골적으로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 중간에서 가장 위험한 톤이었다. 감정을 흔들지 않고, 대신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네가 선택해.”그 말이 계속 귓가에 남았다.이수는 낮게 중얼거렸다.“그래. 내가 선택하지.”이번에는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상대가 조각을 던져 판을 만들었다면, 자신은 그 판 위에 새로운 구조를 올릴 생각이었다.전쟁은 더 이상 그림자 속에 머물지 않았다. 이제는 직접적인 직면이 다가오고 있었다.그리고 이수는 알고 있었다.이 만남이 단순한 재회가 아니라, 모든 흐름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거라는 것을.통화를 끊은 이후로, 이수의 표정은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용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 때도, 가위를 들고 머리를 다듬을 때도, 목소리는 일정했고 손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단순한 평온이 아니었다. 오히려 결심에 가까웠다. 감정이 먼저 치고 올라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정렬한 상태였다.하빈은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평소보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질문이 더 정확해졌고,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상대의 수를 예측하는 대신, 대응의 구조를 먼저 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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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회수

“나 잘한 거지.”그녀가 낮게 말했다.그 질문은 누군가에게 묻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확인이었다. 그날의 선택이 사랑이었는지, 포기였는지, 도망이었는지 수없이 되물어왔지만, 결국 결론은 늘 같았다. 고통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하빈이 옆에 앉았다.“후회해?”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그 사람이 그걸로 날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더 화나.”그 말은 처음으로 분노가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는 구조를 읽는 태도였지만, 이제는 감정이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을 죄책감으로만 정의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약속 당일 아침, 이수는 평소보다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 과하게 꾸미지도, 지나치게 무심하지도 않았다. 감정이 아니라 태도로 대면하겠다는 의지였다.하빈은 현관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묻는다.”그가 말했다.“지금이라도 안 가고 싶으면, 가지마.”이수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가야 끝나.”그 말은 단순한 만남을 의미하지 않았다. 과거와의 정면 대면이었다.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근처에 있어.”이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이번엔… 나 혼자 도망치지 않을게.”그 말에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호텔 로비는 생각보다 밝았다. 낮 햇빛이 유리벽을 통과해 바닥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고, 커피 향이 공기 중에 섞여 있었다. 이수는 지정한 자리 근처에 섰다. 심장은 빨리 뛰었지만, 숨은 고르게 유지했다.몇 분 뒤, 로비 입구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걸음걸이, 어깨선, 고개를 드는 각도까지.시간이 흘렀어도 바뀌지 않은 방식.이수는 눈을 떼지 않았다.그도 이수를 발견했다.그리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전쟁은 이제, 그림자 속이 아니라 햇빛 아래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호텔 로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늦은 오후의 햇빛이 통유리를 통과해 대리석 바닥 위로 길게 번졌고, 그 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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