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지우고, 내 작품을 대신 세우려는 거예요.”서윤은 메일 화면을 닫지 않았다. 유리 온실을 닮은 아치, 흰 튤립이 흐르는 동선, 로비 중앙을 비워 두는 방식까지. 그녀가 태경호텔에 제출했던 초안과 거의 같았다.다른 점은 하나였다.그 어디에도 한서윤 플라워 스튜디오의 이름이 없었다.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바로 항의할까요?”“아니요. 지금 항의하면 저쪽은 실수였다고 할 거예요.”서윤은 프린터를 켜지 않았다. 대신 원본 메일을 저장하고, 첨부 파일의 속성 화면을 캡처했다. 발송 시각, 수정자, 파일명, 내려받은 시간. 눈에 보이는 꽃보다 먼저 남겨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우리가 보낸 최종 제안서, 초안, 도면 수정 요청, 납품 리스트 전부 묶어 주세요. 특히 회의 때 제가 말한 유지 시간표요.”“유지 시간표요?”“흰 튤립은 호텔 로비 조명 아래에서 빨리 벌어져요. 그래서 제가 원래는 수입 튤립을 쓰지 않겠다고 했죠. 꽃을 바꾸고, 물통 높이까지 계산했어요.”직원들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저들이 훔친 것은 예쁜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그림이 하루 동안 살아남는 방법까지 훔친 것은 아니었다.“그 자료를 지금 공개하면요?”“저쪽이 고치겠죠. 우리가 가진 원본과 다른 물건으로.”서윤은 초안 폴더의 날짜 순서를 정렬했다.“그러니 지금은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언제부터 이 설계가 우리 손에 있었는지만 남겨요.”태오가 낮게 말했다.“행사장은 사흘 뒤입니다. 지금 공개 항의하면, 강유라는 시안을 바꿀 겁니다.”“그래서 안 해요.”서윤은 초청장 하단을 확대했다. 참석자 등록 링크가 살아 있었다. 초청 대상은 ‘업계 관계자 및 협력사’였다. 계약은 끊었지만, 문은 일부러 열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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