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오는 그날 밤, 결국 이혼 서류에 서명하지 못했다.펜은 손에 쥐고 있었다. 검은 만년필의 뚜껑도 열려 있었다. 서류 맨 아래, 한서윤의 이름 옆 빈칸은 지나치게 깨끗했다.차태오.석 자만 쓰면 끝나는 일이었다.3년 전에도 그랬다. 결혼 서류에 이름을 적는 데 걸린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그때의 그는 결혼이란 사업상 필요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한서윤은 그 결정의 조용한 상대였다.말수가 적고, 선을 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여자. 공식 석상에서 웃어야 할 때 웃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며, 그의 곁에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태오는 그런 서윤이 편했다.편하다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그는 그때 몰랐다.펜촉이 종이 위에 닿았다.차.거기서 멈췄다.태오는 한참 동안 미완성된 성씨 하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잉크가 종이 섬유 사이로 아주 조금 번졌다. 마치 지워지지 않을 흠처럼.그는 펜을 내려놓았다.서명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아니었다.다만 지금은 할 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넓은 집 안에 길게 울렸다.그는 습관처럼 주방 쪽으로 걸었다.컵장 두 번째 칸. 서윤이 늘 찻잔을 두던 자리였다. 손잡이가 얇은 흰 도자기 잔. 그녀는 그 잔을 태오의 것이라고 했다.태오는 그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이 잔은 당신이 쓰세요.”“굳이 정할 필요 있습니까.”“필요 없으면, 제가 정할게요.”그때 서윤은 살짝 웃었다. 눈꼬리가 아주 부드럽게 접히는 웃음이었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날도 차를 반쯤 남겼다.그 잔은 없었다.컵장 안은 정리되어 있었다. 지나칠 만큼 말끔하게.태오는 문을 닫지 못했다.그는 주방 상판을 짚었다. 손끝에 차가운 대리석 감촉이 닿았다. 새벽마다 불이 켜져 있던 주방. 아무 말 없이 데워져 있던 국. 그가 손대지 않아도 다음 날이면 사라져 있던 찻잔.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있었다.그는 그걸 너무 늦
Last Updated : 2026-06-0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