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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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풀숲 사이로 터져 나왔다.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가를 적셨지만 한결은 손등으로 대충 문질러 닦으며 달렸다.뒤쪽 길가에서 사내들의 고함이 간발의 차로 들려왔지만, 높게 자란 갈대밭은 한결의 몸을 숨겨주기에 충분했다.한참을 뛰어 도로에서 멀어진 한결은 상가 건물 구석의 낡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처참했다.이마의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고, 옷은 흙과 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한결은 휴지를 뭉쳐 이마의 피를 지그시 누르며 품 안의 서류 가방과 휴대폰을 확인했다.마지막 무기명 채권과 대포 통장, 그리고 어젯밤 촬영해 둔 윤은선의 해외 계좌 정보는 무사했다.손끝이 가늘게 떨렸지만, 머릿속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결은 휴대폰을 꺼내 윤은선의 번호를 눌렀다.수신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강한결 씨? 무슨 일입니까?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자금 이체 소식이 없어서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전화 너머 윤은선의 목소리에는 차분함 속에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한결은 거친 호흡을 일부러 가다듬지 않은 채 긴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윤 실장님… 오태환이 절 지금 해외로 보내서 죽이려 했습니다.”“무슨 소리예요?”“오늘 아침 작업실을 나서자마자 김 실장과 덩치들이 절 둘러쌌습니다. 오태환 사장이 자금 정리만 마치면 바로 공항으로 끌고 가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태우라고 했다더군요. 제가 고의로 차 사고를 내고 겨우 도망쳤습니다.”잠시 전화기 너머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윤은선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오태환이 예상보다 일찍 강한결을 치우려 했다는 것은, 비자금 세탁의 주도권을 오태환이 가져가려 한다는 뜻이었다.또한 강한결이 잡히거나 남은 채권을 오태환에게 빼앗기면, 그 자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려던 자신의 오랜 계획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지금 어디입니까? 남은 채권이랑 대포 통장은 무사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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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택시는 낯선 신도시의 오피스텔 단지 앞에 세워졌다.강한결은 이마의 상처를 숨기려 모자를 눌러쓴 뒤, 주변을 살피며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윤은선이 문자로 보내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오피스텔 문이 열렸다.방 안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 썰렁한 기운이 가득했다.거실 한가운데 놓인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보안 랜선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한결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노트북 전원을 켜자 바탕화면에 해외 법인 계좌 접속 창이 떠 있었다.윤은선이 오태환의 비자금을 자기 손에 넣기 위해 마련해 둔 판이었다.한결은 모자를 살짝 고쳐 쓰며 천장을 슬쩍 흘겨보았다.화재경보기 구석에서 작은 렌즈가 미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윤은선이 이 방 안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한결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의자에 앉아 서류 가방을 열었다.마지막 채권과 대포 통장, 보안 카드를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그때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대포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찍힌 이름은 윤은선이었다.“도착했습니까, 강한결 씨?”“네. 방금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좋습니다. 오태환 쪽에서 손을 쓰기 전에 화면에 떠 있는 계좌로 남은 돈을 전부 이체하세요. 작업이 끝나면 당신들 부부가 도피할 자금을 챙겨서 따로 연락하겠습니다.”뻔한 거짓말이었다.한결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알겠습니다, 윤 실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랑 민아 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걱정 말고 자금 이체부터 끝내세요.”전화가 끊겼다.한결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이체 절차를 시작했다.하지만 그의 목적은 단순히 윤은선이 지시한 계좌로 돈을 보내는 것만이 아니었다.한결은 모니터 하단의 암호화 설정창을 유심히 살폈다.그리고 어젯밤 모텔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던 스위스 비밀 계좌의 마스터 라우팅 번호와 보안 코드를 차분히 확인했다.이체 최종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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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노트북 화면에 송금 완료 문구가 뜨는 순간, 강한결은 1초도 지체하지 않았다.그리고 생각해 두었던 계획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은선이 자신을 검찰에 팔아넘길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한결은 옷소매로 노트북 키보드와 마우스에 남은 지문을 재빨리 닦아냈다.그리고 마지막 채권과 보안 카드가 들어 있던 서류 가방을 챙겨 들었다.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결은 서둘러 오피스텔 문을 열고 복도로 빠져나갔다.비상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빠져나간 지 불과 몇분 뒤였다.간발의 차이로 검은 정장 차림의 검찰 수사관 수명이 들이닥쳐 한결이 머물던 오피스텔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도어락을 강제로 열고 들어간 수사관들을 맞이한 것은 텅 빈 방과 홀로 켜져 있는 모니터뿐이었다.한결은 멀리서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수사관들의 뒷모습을 슬쩍 살피며 유유히 대로변으로 걸어 나갔다.윤은선이 짠 판에서 탈출해 강한결과 신민아가 열 새로운 세상이었다. 같은 시각, 본사 최상층 사장실.밀실 안을 서성대던 오태환의 귀에 바깥 비서실 쪽의 거친 소란이 들려왔다.누군가 비서진의 제지를 뿌리치고 사장실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오는 발소리였다.“뭐야? 김 실장인가? 잡았어?!”오태환이 일말의 기대를 안고 밀실 문을 열고 사장실 본실로 튀어 나갔다.그러나 사장실 바깥쪽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김 실장이 아니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단정한 차림의 사내 십여 명이 사장실 안으로 신속하게 밀려 들어왔다.그들은 모두 검찰 마크가 있는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 선 사내가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과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검찰 특수부입니다. 오태환 씨 되십니까?”오태환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순간에 싹 가셔 나갔다.“이, 이게 무슨 짓거리야! 당장 나가지 못해?!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여길 들어와!”오태환이 핏발 선 눈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수사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법원에서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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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강남의 한 오피스.윤은선은 창가에 서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의 진동음이 조용한 사무실 안을 울렸다.미리 포섭해 둔 검찰 내부 정보원의 연락이었다.윤은선은 수신 버튼을 누르고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됐습니까? 강한결 신병은 확보했나요?”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수사관의 목소리는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땐 이미 빈방이었습니다. 노트북 지문까지 깔끔하게 닦고 빠져나갔더군요. 간발의 차로 놓쳤습니다.”윤은선의 미간이 좁아졌다.“놓쳤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그 친구,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찌질하고 멍청한 놈입니다. 얼른 추적해서 처리 하세요.”전화를 끊은 윤은선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찌질하고 무능하다고 여겼던 강한결이 자금 이체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윤은선은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스위스 비밀 계좌의 접속 창을 열었다.하지만 정상적으로 로그인된 화면 하단에 알 수 없는 시스템 동기화 메시지가 짧게 스쳐 지나갔다.[최고 관리자 복구 키 패어링 완료.]“이게 뭐지…?”윤은선은 눈을 찌푸리며 계좌 권한 설정을 확인하려 했지만, 이내 시스템은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잔고에 찍힌 수백억의 금액은 그대로였으나, 윤은선의 가슴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맴돌았다.같은 시각, 서울 외곽의 한 조용한 모텔.모자를 눌러쓴 강한결이 현관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여성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민아야, 나야."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신원을 밝히자마자 문이 열리고 민아가 나타났다. “오빠!”민아는 한결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한결 역시 피가 얼룩져 있는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아내를 부서져라 꼭 끌어안았다.지옥 같던 시간과 생사의 위기를 견뎌낸 두 사람의 호흡이 뜨겁게 얽혀들었다.“민아야…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나 괜찮아, 오빠. 오빠는 피가 왜 이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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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요란한 진동음을 내며 테이블 위를 구르던 휴대폰을 집어 든 윤은선의 표정에는 드디어 왔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검찰 수사망에 쫓겨 공포에 빠진 강한결의 구걸 섞인 애원이 들려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윤은선은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강한결 씨?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검찰 수사관들이 밀닥치기 전에 당장 내가 보낸 주소로…”“윤 실장님.”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강한결의 목소리는 윤은선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듯 낮고 냉정했다.“검찰에 팔아넘긴 짐꾼이 안 걸려 들어서 당황하셨습니까?”순식간에 윤은선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며 표정이 굳어버렸다.“…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강한결 씨?”“모르는 척 연기할 필요 없습니다. 미리 포섭해 둔 검찰 수사관들 붙여서 날 잡아넣으려던 그 계획, 다 알고 있으니까.”강한결의 떨림 하나 없는 담담한 말투에 윤은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싸늘한 가짜 웃음을 터뜨렸다.“자기 처지도 모르고 지금 뭐라는 거예요? 당신은 오태환 사장의 비자금을 직접 움직인 실행범입니다.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과 신민아 씨는 평생 감옥 안에서 썩게 될 겁니다.”“과연 그럴까요?”강한결이 낮게 읊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당신이 비자금 빼돌린 그 스위스 계좌 모니터 화면에서 이상한 점 못 느끼셨나요?”윤은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자금 이체가 완료되고 화면을 열었을 때, 시스템 잔상처럼 잠시 떴다가 사라졌던 바로 그 경고 메시지가 생각났다. 단순한 오류라고 생각하며 넘겨버렸던 그 잔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너, 무슨 짓을 한거야?”“윤 실장님이 지시한 계좌로 돈을 넘기는 척하면서, 내가 복구 키를 시스템 설정에 몰래 넣었습니다. 지금 그 스위스 계좌의 최고 관리자 접속 권한은 전부 내 휴대폰으로 백업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윤은선 씨는 그 돈에 손 댈 수 없다는 뜻이죠.”“뭐라고?! 감히 네놈 따위가... 으악!!”윤은선이 히스테리를 부리며 짐승같은 비명을 질렀다.강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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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밤 11시 정각, 인천 항만 외곽의 낡은 폐물류 창고.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축축하고 비린 바닷바람이 뼈 시리게 불어오고 있었다.묵직한 엔진 소리와 함께 검은색 대형 세단 한 대가 창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차 문이 열리고, 명품 코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윤은선이 홀로 내렸다.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텅 빈 창고 바닥을 울리며 서늘하게 퍼져 나갔다.윤은선의 표정은 고고하고 차가웠지만, 그녀의 뒤편 어둠 속에서는 이미 매복해 있던 서너 명의 험악한 그림자들이 스르륵 움직이고 있었다.창고 중앙에 꼿꼿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던 강한결과 신민아의 시선이 윤은선을 향했다.“일찍 와 있었군요, 강한결 씨, 신민아 씨.”윤은선이 낡은 천장을 흘깃 둘러보며 나직하고 오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런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곳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당신들 수준에는 딱 맞는 무덤이네요.”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고 구석 어둠 속에서 쇠파이프와 흉기를 든 사내들이 걸어 나와 한결과 민아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사내들의 눈빛에는 피비린내 나는 살기가 짙게 감돌고 있었다.“설마 내가 순순히 협상에 응할 거라고 생각한건 아니죠?”윤은선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당신들이 가진 서류 원본 파일과, 스위스 계좌 접속 권한 당장 내놔요. 그러면 최소한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까.”당장이라도 들이닥칠 듯한 사내들의 살기 앞에서도 한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입가에 차갑고도 당당한 조소가 번졌다.“윤 실장님, 당신은 오태환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돈에 미쳐 눈이 돌아간 건 그 인간과 똑같군요.”한결이 품속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윤은선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화면 중앙에는 붉은색 타이머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하며 맹렬하게 줄어들고 있었다.“이게 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한결의 당당한 목소리에 윤은선의 미간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내가 5분 안에 안전 코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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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다음 날 새벽, 서울 외곽의 인적 드문 최고급 프라이빗 요정의 지하 밀실.항상 단정하고 고고했던 윤은선의 평소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차가운 다다미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창백한 등과 허벅지, 그리고 억세게 결박당했던 손목 곳곳에는 방금 전까지 가해진 피학적인 체벌의 흔적이 시뻘건 멍과 핏자국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통과 수치심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덜덜 떠는 그녀를,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는 검은 정장 차림의 사내 대여섯 명이 거대한 벽처럼 둥글게 에워싸고 내려다보았다.그 살벌하고 강압적인 원의 중심에는 짙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금융위원장을 비롯한 대한민국 정·재계 VIP들의 검은돈을 총괄하는 실세, 통칭 '백 영감'이었다.그 늙고 마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오태환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오태환이가 검찰 특수부에 끌려갔다는 소식은 들었다.”백 영감이 건조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윤 실장. 어째서 이번에 50억만 입금된 거지?”그 낮고 쉰 목소리에 윤은선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증발했는지, 이 늙은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보라는 뜻이야.”윤은선은 여전히 알몸인 채로 바닥에 머리를 더욱 깊이 조아렸다.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변명을 하거나 망설이면, 방금 전의 끔찍했던 징벌과는 비교도 안 될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영감님… 완벽하게 세팅된 작업이었습니다만….”윤은선은 애써 목소리의 떨림을 억누르며 거짓말을 토해냈다.“자금 운반과 세탁을 담당했던 놈들이 오태환 사장을 배신하고 돈을 빼돌려 달아났습니다.”“끄나풀?”“네. 원래는 오태환 건물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부부인데, 오태환이 남편의 사무직 취업을 대가로 아내를 유린하고 남편에게 자금 세탁을 심부름 시켰는데, 오태환의 뒤통수를 치고 제게 넘어오던 자금의 권한을 중간에서 가로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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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서울 외곽의 한 프라이빗 요정.깊은 지하 밀실에는 어두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잠시 후, 백 영감의 전산 직원이 가져온 서류 몇 장이 낮은 테이블 위에 조용히 놓였다.스위스 비밀계좌에서 방금 이체된 자금 거래 내역이었다.거래 기록에는 윤은선 명의의 차명계좌로 10억 원, 그리고 그녀의 전남편 명의의 신안은행 계좌로 또 다른 10억 원이 송금된 사실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의자에 앉아 서류를 내려다보던 백 영감의 눈빛에 분노가 서렸다. “오태환이 밑에서는 개 노릇을 하는 줄 알았더니.”백 영감이 낮게 중얼거렸다.“뒤로는 전남편 몫에 자식 몫까지 알뜰히 챙겨 주고 있었군.”그는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했다.그 신호 하나에 방 안을 지키던 거구의 사내들이 아무 말 없이 밀실을 빠져나갔다.같은 시각.윤은선은 새벽 도로에 차를 세운 채 초조한 얼굴로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아직도 못 찾았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요. 지금 당장!”흥신소를 다그치던 바로 그때였다.끼이익!검은 승합차 두 대가 순식간에 그녀의 차량 앞을 가로막았다.윤은선이 놀라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승합차 문이 열렸고, 거구의 사내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사내들은 윤은선의 양팔을 거칠게 제압한 채 망설임 없이 승합차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불과 몇 시간 전, 같은 지하 밀실에서 혹독한 체벌을 받고 풀려난 몸이었다.온몸에 남은 멍과 상처는 아직도 선명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녀가 끌려온 곳은 익숙한 요정 지하 밀실이었다.윤은선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차가운 바닥 위로 힘없이 무너졌다.그녀의 옷차림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방 안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대여섯 명이 말없이 둘러서 있었다.그들은 거대한 벽처럼 윤은선을 에워싼 채 냉담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공포와 수치심, 그리고 몸을 짓누르는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숨을 가다듬으려 할수록 어깨는 더욱 떨렸다.평소 누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당당한 기세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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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새벽, 번화가의 불빛마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자정까지 비자금을 되찾지 못하면 전남편과 자식까지 목숨을 잃게 된다는 백 영감의 경고.그 말은 윤은선의 마지막 이성마저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그녀는 사설 흥신소 인원들을 모텔촌 일대에 모조리 풀어놓았다.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숙박업소를 하나씩 돌며 저인망식 수색을 시작했다.고요한 모텔 3층 복도.정적을 깨는 둔탁한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쿵. 쿵. 쿵.사내들은 객실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고, 복도에는 갑자기 봉변을 당한 손님들의 고함과 발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객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강한결은 그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본능적으로 숨을 죽인 그는 조심스레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험악한 말투의 남자들이 객실 문을 하나씩 확인하며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윤은선이 풀어놓은 추적자들이 끝내 이곳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한결은 지체 없이 침대로 달려가 민아를 흔들어 깨웠다.“민아, 일어나. 놈들이 왔어. 지금 당장 나가야 해.”민아는 눈을 번쩍 뜨더니 상황을 직감한 듯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두 사람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둔 모자와 겉옷, 가방을 챙겨 창문으로 향했다. 그들이 묵은 모텔은 창밖에 작은 테라스가 있고, 난간 하나만 뛰어 넘으면 외부 계단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탈출이 쉬운 모텔을 골랐던 것이다. 그때였다.복도에서 발소리가 멈춰 서더니, 객실 문밖에서 도어락 버튼을 무작위로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삑. 삑. 삑.아마도 모텔 주인을 협박해 마스터 번호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한결은 민아의 손을 잡고 테라스 난간을 뛰어 넘어 비상계단으로 향했다.비상문을 조심스럽게 연 두 사람은 숨을 죽인 채 계단을 내려가 건물 뒤편의 사각지대로 빠져나왔다.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굵은 빗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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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빗소리가 창문을 흔들었다.한결은 빗물에 젖은 자신의 상의와 바지를 주저 없이 벗어 던졌다.단단하게 탄력이 붙은 그의 맨살이 민아의 새하얀 나신 위로 뜨겁게 밀착했다.차가운 빗방울이 맺혀 있던 민아의 피부 위로 남편의 뜨거운 숨결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어깨가 기분 좋은 소름으로 떨려왔다.한결은 민아의 유려한 목선과 쇄골을 지나, 빗물에 젖은 가슴 골 위를 입술로 거칠고 깊게 핥아 올렸다.“아읏… 오빠…”민아는 가슴이 터질 듯한 자극에 머리를 뒤로 젖히며 자지러지는 신음을 내뱉었다.한결의 손길은 더 이상 예전의 주저함이나 무능함이 느껴지지 않았다.한결은 민아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쥐고, 매끈한 허벅지 안쪽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애무하며 파고들었다.은밀한 부위에 남편의 단단한 체온이 직접적으로 스치자, 민아는 온몸을 비틀어대며 한결의 허벅지를 다리로 꼭 감싸 안았다.“민아야… 오빠 봐봐.”한결이 민아의 턱을 들어 올리며 낮게 속삭였다.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깊은 죄책감과, 그녀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다시는 널 아무한테도 빼앗기지 않아. 내 목숨을 걸고… 널 유린했던 것들 모조리 바닥에 끌어내릴 거야.”민아의 눈시울이 뜨겁게 적셔졌다.과거 오태환의 가학적인 손길 아래서 느꼈던 수치심과 공포가, 남편의 뜨겁고 다정한 애무 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응… 알고 있어, 오빠… 나 안아줘… 오빠 거로 가득 채워줘…”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한결은 민아의 허벅지를 넓게 벌려 자신의 허리 춤으로 끌어당겼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녀의 깊은 곳으로 단숨에 밀어 넣었다.“아앗…!”민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단 비명이 터져 나왔다.아랫배를 채우는 압박감과 함께, 뼛속까지 느껴지는 절정의 쾌감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곧장 뻗어 올라갔다.한결은 아내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 규칙적이고 거친 삽입을 시작했다.살과 살이 부딪히는 자극적인 마찰음이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함께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민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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