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취업의 대가는 아내로 하겠습니다.: Chapter 101 - Chapter 110

118 Chapters

101화

오전 아홉 시 정각,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긴급 공지가 떠올랐다.[긴급 인사 발령 : 사장실 총괄 비서실장 신민아 발령의 건]사내 전 층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불과 얼마 전까지 남편과 함께 회사의 청소부였다가 비서실로 발탁된 여자.하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던 여자.온갖 흉흉한 소문만 남긴 채 사라졌던 신민아가 하루아침에 회사의 실세인 비서실장으로 복귀한 것이었다.게다가 특채로 입사하여 궂은 일을 도맡아 했던 남편 강한결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다. 탕비실과 복도 곳곳에서 직원들이 목소리를 죽인 채 수군거렸다.“신민아 씨가 비서실장이라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게다가 강한결 씨는 어떻게 된거야, 아직 소식도 없잖아.”직원들은 당혹감과 불신을 감추지 못했지만, 누구 하나 대놓고 의문을 제기하지는 못했다.수년 동안 2인자로 군림하던 윤 실장조차 하룻밤 사이에 회사에서 지워져 버린 곳이었다.오태환 사장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고 돌아온 신민아는 이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사장실 안쪽의 밀실.원래는 사장의 원활한 집무를 위해 휴게실 개념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신민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민아는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침대 위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에어컨과 공기 순환 시스템이 있어 나름 쾌적했다. 지난밤 오태환이 새겨놓은 난폭한 소유의 흔적이 온몸에 뻐근하게 남아 있었지만, 민아의 표정에는 피로 대신 생기가 감돌았다.민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뒤 화장대 앞에 앉아 능숙하게 메이크업을 올렸다.드레스룸에는 청담동에서 쓸어 담아 온 최고급 명품 의상들이 정리되어 있었다.민아는 단정하면서도 매혹적인 실루엣의 실크 블라우스와 H라인 스커트를 골라 입었다.가느다란 목선에는 어제 오태환이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던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걸쳤다.준비를 마친 민아는 문을 열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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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특별할 것이 없는 오후였다. 신민아는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자금세탁 거래 내역을 천천히 훑어내렸다.수백억 원의 검은돈이 복잡한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흩어지고 모여드는 거대한 자금 줄.오태환 사장은 이 거대한 조직의 정점에 서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 방대한 물줄기 사이에는 어김없이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하지만 민아는 숫자에 약했다. 계속 들여다 봐도 알 수 없는 것들만 가득했다. ‘오 사장의 눈을 피해 완벽하게 세탁된 돈을 빼돌리려면… 조력자가 필요해.’민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유리로 된 파티션 너머를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자리를 동경에 찬 눈빛으로 흘깃 훔쳐보는 막내 비서, 김혜진이 있었다.그녀는 열심히 일하는척 했지만 민아는 그녀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크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일하고, 남는 시간은 뭔가 더 재밌는 일은 없을까 궁리하는데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혜진의 모습은 몇 달 전에 자신의 모습과 비슷했다. 민아는 인터폰으로 혜진을 호출했다. 잠시 후,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혜진이 조심스럽게 실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손에는 결재 서류 파일이 들려 있었다.“실장님, 오후 보고 드릴 서류 가져왔습니다.”“어, 혜진 씨. 이리 와서 앉아요.”민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자 앞자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혜진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그녀의 시선은 민아가 차고 있는 다이아몬드 팔찌와 책상 위에 놓인 명품 가죽 수첩에 머물렀다.그 탐욕스러운 눈빛을 민아는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우리 혜진 씨는 입사한 지 얼마나 됐죠?”“네? 저, 이제 겨우 두 달 됐습니다…”“업무는 할만해요? 비서실 일이 생각보다 벅찰 텐데.”“힘들긴 하지만, 실장님께서 멋지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실장님처럼…”말끝을 흐리는 혜진의 목소리에는 짙은 선망과 결핍이 묻어났다.민아는 그 결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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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오전 열한 시, 비서실장실.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김혜진이 들어왔다.그녀의 손에는 무겁게 보이는 서류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실장님, 말씀하신 곳에서 처리하고 가져왔습니다.”혜진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빛에는 일을 무사히 해냈다는 성취감과 흥분이 어려 있었다.민아는 가방을 건네받아 지퍼를 열었다.안에는 가지런히 묶인 5만 원권 현금 다발이 가득 차 있었다.금과 귀금속을 한 번에 처분해 오태환이 예상했던 기준치보다 훨씬 높은 환금률로 챙겨온 결과였다.민아는 그중에서 현금 뭉치 몇 개를 꺼내 미리 준비해 둔 개인 파우치에 능숙하게 챙겨 넣었다.오태환에게 보고할 금액만 남겨둔 채, 차액으로 발생한 수백만 원의 돈이 민아의 몫으로 떨어졌다.민아는 남은 현금 뭉치에서 스무 장을 빼내어 혜진의 손에 쥐여주었다.“수고했어요, 혜진 씨. 이건 혜진 씨 몫.”혜진의 눈이 커졌다.손끝에 닿는 지폐의 감촉에 혜진은 숨을 삼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실장님! 앞으로도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 저한테 맡겨주세요.”“잘 챙겨둬요. 혜진 씨가 날 믿고 따라오면,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니까.”민아는 부드러운 미소로 혜진을 내보냈다.문이 닫히자마자 민아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자신만의 비자금을 쌓아 올릴 완벽한 통로가 확보되었다.이제 이 돈들이 모여 오태환의 손길에서 벗어날 진짜 힘이 될 터였다.오후 두 시, 사장 집무실.민아는 현금 가방과 정돈된 결재 서류를 들고 사장실로 들어섰다.오태환은 소파 옆에 마련된 골프 연습 장비를 이용해 자세를 보정하고 있었다. “사장님, 말씀하신 물품 정산 완료되었습니다.”민아가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자, 오태환은 돈을 세어보지도 않은 채 턱짓으로 책상 위를 가리켰다.“수고했어. 장부는 거기 두고.”오태환의 시선이 다시 연습을 하려다 말고 민아의 몸을 훑어내렸다.몸에 딱 달라붙어 풍만한 가슴 굴곡을 만들어 내는 흰색 실크 블라우스와 둔부가 매우 타이트한 H라인 스커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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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보안팀 직원이 조심스럽게 태블릿을 앞으로 내밀었다.화면 안에는 실시간 CCTV 영상이 분할되어 재생되고 있었다.사옥 정문 앞과 지하 주차장 진입로 부근을 서성이는 한 사내의 모습이 확대되어 잡혔다.물에 젖어 흙탕물이 튄 낡은 점퍼, 며칠 동안 깎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 그리고 퀭하게 파인 눈동자.강한결이었다.그는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사옥의 사장실이 있는 창문 쪽을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어제저녁부터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쫓아내면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실장님 이름을 부르며 들여보내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보안팀 직원이 민아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덧붙였다.“행색이 너무 불량해서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도 방해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처리할까요?”민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화면을 내려다보았다.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여관방 침대에서 함께 몸을 뉘었던 남편이었다.자신을 위해 청소부로 밑바닥을 기고, 목숨을 걸고 카르텔과 맞서 싸웠던 사내.하지만 지금 민아의 가슴속에 떠오른 것은 애틋함이나 죄책감이 아니었다.지긋지긋한 가난의 냄새, 곰팡이 핀 단칸방의 기억, 그리고 자신이 간신히 올라탄 이 화려한 세계에 위협이 될까 걱정스런 마음 뿐이었다. “더 이상 사옥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쫓아내세요.”민아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다시 소란을 피우면 영업 방해로 경찰을 부르든, 경비 인력을 동원해 강제로 끌어내든 알아서 정리하세요. 회사 이미지에 먹칠하지 않게요.”“알겠습니다, 실장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보안팀 직원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민아가 몸을 돌리자, 책상 너머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혜진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민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혜진에게 눈길을 한번 던지고는 사장실 문을 열었다.사장실 안, 오태환은 의자에 깊이 앉은 채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보안팀에서 이미 전송한 한결의 CCTV 캡처 사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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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장대비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빗줄기는 아스팔트를 쉴 새 없이 두드렸고, 화단 가장자리로 튄 흙탕물이 한결의 옷자락과 손등을 엉망으로 물들였다.인도 바닥에 내팽개쳐졌던 한결은 한참 만에 몸을 일으켰다.손바닥을 짚은 자리에서 진흙이 미끄러졌다.손톱 밑이 찢어진 모양인지 붉은 피가 빗물과 섞여 손등을 타고 흘렀다.온몸이 쑤셨다.그래도 통증은 이상할 만큼 멀게 느껴졌다.머릿속에는 조금 전 민아가 내뱉은 말만 남아 있었다.‘치워버려? 날 치워버리라고 했다고…?’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없는 사람처럼 처리하겠다는 말이었다.한결은 고개를 들자 비에 젖은 얼굴 위로 핏물이 흘렀다.눈가에 맺힌 것이 빗물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화단 옆에 깨져 나뒹구는 보도블록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한결이 천천히 그것을 집어 들었다.양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때 마침 로비 앞에는 검은 외제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차에서 누군가 내리는 모습을 확인하느라 경비 인력들의 시선이 잠시 한쪽으로 쏠렸다.그 짧은 순간이었다.“으아아아악!”한결이 보도블록을 움켜쥔 채 로비를 향해 뛰었다.“어? 저 사람 뭐야!”경비원 하나가 뒤늦게 소리쳤다.콰아앙!날아간 보도블록이 회전문 옆 통유리를 강타했다.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유리 표면에 금이 번졌고, 거미줄처럼 퍼진 균열은 순식간에 벽면 절반을 뒤덮었다.하지만 한결은 멈추지 않았다.금이 간 틈으로 몸을 밀어 넣고 1층 로비 안으로 뛰어들었다.“꺄악!”안내 데스크에 말끔한 정장을 입고 서 있던 여직원이 비명을 질렀다.황당한 광경에 방문객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곧 비상경보가 울렸다.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넓은 로비를 가득 메웠다.피와 흙탕물로 범벅이 된 한결은 하얀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중앙 홀을 가로질렀다.“신민아!”그의 목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울렸다.“신민아, 나와!”한결은 숨이 넘어갈 듯 외쳤다.“오태환! 이 개자식아! 민아 내놓으라고!”주변에 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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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지하 2층 보안창고의 철문이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끼이익.문틈 사이로 먼저 스며든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향이었다.짙고 건조한 샌들우드 향.이 축축한 지하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향기가 곰팡내와 녹슨 쇠 냄새 사이를 천천히 밀어냈다.잠시 뒤, 또각.또각.대리석 바닥을 걷는 듯한 킬힐 소리가 어둠 속에서 가까워졌다.의자에 묶인 채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던 한결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렸다.온 몸이 욱신거리며 머리는 부숴질 것처럼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다. 피와 땀에 엉겨 붙은 한결의 속눈썹 사이로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들어왔다.초점이 몇 번 흔들린 끝에야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오태환.그리고 민아였다.한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민… 아야….”갈라진 목소리는 제대로 소리조차 되지 못했다.민아는 오태환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몸에 꼭 맞는 스커트와 구김 하나 없는 실크 블라우스.목에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귀걸이와 반지는 형광등 아래서 은은하게 빛났다.이런 상황에서도 한결은 그녀가 몸에 걸고 있는 악세서리들이 가품이 아닌 진짜 보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그 앞의 한결은 피투성이였고, 온 몸을 두들겨 맞은 채 묶여 있는 신세였다.찢어진 옷에는 흙과 피가 뒤섞여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은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손목은 케이블 타이에 쓸려 벌겋게 부어올랐다.두 사람 사이에는 몇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그런데 한결에게 민아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민아야.”한결이 다시 몸을 움직였다.케이블 타이가 살을 파고들며 손목에서 따끔한 통증이 번졌지만 멈추지 않았다.“왜 이러는 거야.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한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뺨에 묻은 피와 섞여 턱 아래로 떨어졌다.민아의 시선은 잠시 한결에게 머물렀다.예전처럼 흔들리지는 않았다.한결은 그 눈빛에서 자신이 알던 민아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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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올라가 최상층에 멈췄다.문이 열리자 눅눅한 지하실의 곰팡내 대신 에어컨이 내뿜는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밀려들었다.오태환은 집무실 안쪽 밀실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수트 재킷을 벗어 소파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걸친 뒤, 시가를 찾아 입에 물었다.시가 끝을 커트한 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그가 시가를 한가득 들이마시며 말했다.“독한 년.”라이터 불꽃 너머로 오태환의 시선이 민아에게 닿았다.비웃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기색이 그의 눈가에 어려 있었다.“남편 목숨을 내 손으로 끊어 달라 할 줄 알았더니, 염전으로 보내 버려? 아주 피도 눈물도 없군, 그래.”민아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신고 있던 킬힐을 벗어 바닥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발바닥에 닿는 카펫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협탁으로 다가갔다.얼음을 채운 크리스털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르는 민아의 손끝에는 흔들림이 없었다.“거기 가면 한 달도 못 버틴다면서요... 사장님 손에 굳이 피 묻히실 필요 없잖아요. 그게 사장님한테도 더 깔끔하고요.”잔을 건네받은 오태환이 짧게 헛웃음을 쳤다.그러고는 한 손으로 위스키를 단숨에 털어 넣더니, 빈 잔을 협탁에 내려놓으며 민아의 턱을 틀어쥐었다.“예쁘장하게 생겨 가지고 입은 참 잘 놀린단 말이야.”사내의 억센 손이 민아의 어깨를 밀쳐 침대 위로 쓰러뜨렸다.스커트가 허벅지 위로 아무렇게나 말려 올라갔다.오태환은 민아가 입고 있던 실크 블라우스의 앞섶을 움켜쥐고 뜯어내듯 풀어헤쳤다.후두둑, 단추들이 뜯겨 나가며 침대 시트와 바닥 카펫 위로 어지럽게 흩어졌다.속옷 위로 드러난 쇄골과 풍만한 가슴을 거칠게 쥐어짜는 손아귀에 무지막지한 힘이 들어갔다.“아읏….”통증과 함께 붉은 손자국이 새하얀 살갗 위로 도드라졌다.하지만 민아는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오히려 두 팔을 뻗어 오태환의 단단한 목덜미를 끌어안았다.손가락을 사내의 짧은 머리칼 사이에 깊숙이 밀어 넣으며 제 쪽으로 더 바짝 당겼다.지하 보안창고에 버려두고 온 남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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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었을 때 김혜진이 비서실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문이 열리고 들어선 혜진의 손에는 묵직한 가죽 캐리어 하나가 들려 있었다.“실장님, 다녀왔습니다.”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쳐내는 혜진의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숨을 고르는 입술 틈으로 묘한 흥분감이 배어 나왔다.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실 문을 안쪽에서 잠갔다.그러고는 캐리어를 응접 테이블 위에 눕혀 번호 잠금장치를 풀었다.지퍼를 끝까지 내리자 5만 원권 현금 다발들이 가지런히 묶인 채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특유의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가 좁은 방 안에 확 퍼졌다.오태환의 개인 금고에서 반출된 골드바와 다이아몬드 루스를 종로의 지정 거래처에서 일괄 처리한 대금이었다.장부에 기재할 기준가를 제하고도 오천만 원에 달하는 차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민아는 두툼한 현금 묶음 세 개를 집어 망설임 없이 혜진의 품에 안겨 주었다.“수고 많았어요, 혜진 씨.”혜진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양손으로 다 감싸 쥐기에도 버거운 두께였다.혜진이 받는 월급의 다섯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이, 이걸 전부 다 제가 받아도 되는 건가요…?”“약속했던 몫이에요. 그런데 반출증이랑 영수증 명의는 확실하게 혜진 씨 이름으로 처리해 뒀죠?”“네, 실장님. 제가 직접 서명하고 제 명의로 영수증 끊어 왔습니다. 뒷말 나올 일 전혀 없게 해 뒀어요.”“잘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일은 혜진 씨한테만 맡길 테니까.”혜진은 가방 깊숙이 돈뭉치를 자신의 핸드백에 집어넣으며 연신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혜진이 나가자마자 민아는 남은 차액을 서랍 속 개인 파우치로 옮겨 담았다.노트북을 켜고 차명 계좌의 잔고 메모장에 새로 늘어난 숫자를 차분하게 기록했다.남의 손을 빌려 쌓아 올리는 돈의 무게만큼, 발을 딛고 선 자리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다음 날 오후, 청담동 부티크 숍의 수석 디자이너와 스태프들이 사장실 안쪽 VIP 피팅룸을 찾았다.마네킹에 걸려 있던 옷은 은은한 광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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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북한강 줄기를 따라 달리던 마이바흐가 한적한 국도를 벗어나 인적이 끊긴 숲길로 접어들었다.가로등 하나 없는 비포장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자 육중한 철제 정문이 모습을 드러냈다.정문 양옆으로는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고, 검은 유니폼을 입은 사설 경호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경호원이 차량 번호와 탑승자 명단을 확인한 뒤 무전기에 짧게 몇 마디를 읊조렸다.이내 무거운 철문이 안쪽으로 천천히 열렸다.숲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웅장한 대저택이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호수를 등지고 서 있는 3층 규모의 현대식 석조 별장이었다.외부의 시선이 완벽하게 차단된 요새 같은 공간이었다.넓은 전면 주차장에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페라리 같은 최고급 차량들이 이미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차가 멈춰 서자 운전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오태환이 먼저 내렸고, 민아의 손을 잡아 부축했다.초가을 밤공기가 드러난 등줄기를 스치며 서늘한 소름을 돋웠다.민아는 걸음을 옮기며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은은한 윤기가 감도는 블랙 실크 드레스는 굴곡진 몸선을 따라 빈틈없이 감겨 있었다.앞섶은 V자로 깊게 파여 하얗고 풍만한 가슴선과 도드라진 쇄골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냈고, 등은 꼬리뼈 바로 위까지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쪽 허벅지를 타고 길게 갈라진 옆트임 사이로 곧게 뻗은 다리선이 스치듯 드러났다 사라졌다.군더더기 없이 조여진 허리와 탄력 넘치는 골반의 실루엣은 킬힐 소리에 맞춰 묵직한 관능을 풍겼다.목선과 귓가에 걸린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시리도록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육중한 나무 문이 열리며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밀려나왔다.은은한 재즈 선율과 함께 짙은 시가 냄새, 고급 샴페인 향, 그리고 진한 향수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넓은 홀은 붉은 톤의 간접 조명으로 채워져 있었다.대리석 바닥 위로 샹들리에의 불빛이 산란했고, 벽면을 따라 앤틱 가구와 고가의 미술품들이 늘어서 있었다.홀 안에는 이미 수십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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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1층 홀 안쪽의 거대한 유화 액자 뒤편에 숨겨져 있었다.경호원이 리모컨을 누르자 벽면 전체가 소리 없이 뒤로 밀려나며 아래로 이어지는 넓은 계단이 드러났다.발을 내딛자 붉은색 간접 조명이 계단참을 따라 층층이 켜졌다.벽면을 감싼 두꺼운 패브릭 흡음재 때문인지 발소리는 물론 뒤따르는 사람들의 낮은 숨소리마저 먹먹하게 가라앉았다.계단 끝에 다다르자 육중한 철제 이중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열렸다.문 너머로 드러난 공간은 지상 1층의 화려함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발목이 살짝 묻힐 만큼 푹신한 암적색 벨벳 카펫이 바닥 전체에 깔려 있었고, 층고는 아득할 정도로 높았다.공기 중에는 묵직한 머스크 향과 함께 시가 연기,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은하고 달콤한 최음향이 뒤섞여 코를 찔렀다.중앙의 넓은 홀을 둘러싸고 계단식 단이 둥글게 조성되어 있었다.단마다 성인 서넛은 족히 뒹굴 수 있을 만한 대형 원형 침대와 가죽 카우치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침대 둘레로는 천장에서부터 반투명한 시폰 커튼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그 안쪽의 실루엣만 붉은 조명 아래 흐릿하게 일렁였다.벽면을 따라 마련된 프라이빗 부스에는 얼음을 채운 은색 버킷과 최고급 샴페인, 그리고 크리스털 글라스들이 즐비하게 세팅되어 있었다.지상의 체면을 벗어던진 사람들의 눈빛이 벌써부터 기름지게 번들거렸다.가면을 쓴 사회자가 중앙 단상 위에 올라섰다.그의 손에는 마이크 대신 작은 은제 종이 들려 있었다.짤랑.맑고 서늘한 금속음이 울려 퍼지자 웅성거리던 홀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가평에 오신 귀빈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사회자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단정하고 예의 발라, 오히려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이곳 지하 홀에는 바깥세상의 법도, 직함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비밀 보장과 원초적인 쾌락만이 규칙입니다.”사회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 사방의 원형 침대들을 가리켰다.“오늘 밤은 서로의 파트너를 기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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