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대라 슈퍼마켓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잔잔하고 거의 들리지 않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계산원들은 다음 손님을 기다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앤은 카트 손잡이에 무심코 손을 얹은 채 유제품 코너를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앤? 앤, 너 맞아?"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렸고, 몇 초 만에 익숙한 여자와 마주쳤다. 소피였다. 소피 모렐, 오랜 친구이자, 한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친구, 학창 시절 수많은 웃음과 비밀을 나눴던 바로 그 소피였다. 거의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알렉상드르 가 손님들 앞에서 소피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깎아내리던 그 저녁 식사 자리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상처받고 굴욕감을 느낀 소피는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났다. 앤은 소피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남편이 부끄러웠고, 소피를 변호해주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알렉상드르가 소피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동안 침묵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부끄러움은 멀어졌고, 멀어진 기억은 잊혀졌다."소피," 그녀는 심장이 갑자기 쿵쾅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정말 놀랍네."소피는 쇼핑 카트를 끌고 다가왔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소피는 앤을 바라보았고, 표정이 변했다. 친구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수척한 이목구비, 짙은 다크서클, 윤기 없고 단정하지 못한 머리카락. 소피는 앤의 몸을 내려다보며 낡은 청바지, 헐렁한 스웨터, 구부정한 어깨를 살폈다. 그리고는 눈빛이 흐릿해졌다."맙소사, 앤," 그녀가 중얼거렸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 몰골이 말이 아니네..."그녀는 마치 상처를 주지 않을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 말을 끝맺지 못했다."피곤해?" 앤이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알아. 밤이 짧고, 앨리스가 요즘 잠을 잘 못 자거든."그건 거짓말이었다. 앨리스는 아주 잘 잤다. 너무 잘 잤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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