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혁은 서이나의 작업실에 우두커니 한 시간 동안 서 있다가, 비로소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그의 내면에서는 서이나를 강제로라도 데려올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보내줄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예전의 그였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납치하듯 그녀를 끌고 갔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곁에만 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으니까.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바보처럼 서이나가 예전처럼 제 발로, 사랑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며 굉음을 냈고 그 소음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그는 술집을 찾아 테이블 가득 독한 술을 채워놓고는, 쉼 없이 잔을 비워댔다.뜨거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지만, 가슴 속 깊이 침전된 먹먹한 우울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잔이 비어갈수록 심장의 통증은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붉어진 눈시울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분명 우리는 서로의 전부였고 이나는 단 한 걸음도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던 여자였는데.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녀를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뜨려 떠나보내고 만 것일까.’십 년 전, 하지혁은 길거리에서 방계 형제들이 보낸 무리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경찰이 출동했다고 거짓 외침을 질러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서이나였다.당시 그녀가 걸치고 있던 옷은 누더기처럼 낡고 해졌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깨끗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맑은 눈동자, 단 한 번의 눈 맞춤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똑똑히 기억했다.“거지가 이렇게 깔끔해서 누가 돈을 준대? ”그가 짓궂게 놀려대자 그녀는 턱을 당당하게 치켜세우며 불쾌하다는 듯 받아쳤다.“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 난 내 방식대로 배를 채울 수 있으니까 신경 꺼. 오히려 얼굴이 피떡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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