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나가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모든 업무를 제쳐두고 함께 해외 유학길에 올랐고, 수천억 규모의 주식 손실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명품을 트럭째 실어 나르고, 무려 999일 연속 라이브 방송으로 청혼을 감행하기도 했다.심지어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쟁취하기 위해 가문이 내린 가혹한 체벌을 사흘간 견뎌냈고, 견고했던 정략의 틀을 무너뜨린 끝에 세상에서 가장 몽환적인 웨딩마치를 올리며 그녀를 신데렐라로 만들었다.그런데 그토록 지극정성이던 사내가 이제 겨우 알게 된 지 반년도 안 된 내연녀 때문에 변해버렸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에 그는 서이나를 얇은 슬립 한 장만 걸친 채 무릎 꿇리고 있었다.내연녀가 연락을 끊고 잠적한 것이 모두 서이나의 짓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자기야, 효연이한테 대체 뭐라고 한 거야?”하지혁은 맞은편에 나른하게 앉아 잔을 굴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의 눈빛은 매서운 바람보다 차가웠지만 목소리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다정해서, 마치 지금 눈 풍경이 아름답냐고 다정하게 묻는 듯했다.온몸이 얼어붙어 감각조차 희미해진 서이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턱이 덜덜 떨려 제대로 된 발음조차 나오지 않았다.“지혁아, 난 심효연을 만난 적도 없어.”하지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이나야, 거짓말은 나빠.”그가 손짓을 하자 경호원이 허리를 굽혀 휴대폰을 바쳤다. 화면 속에는 영상 통화가 연결되어 있었다.영상 너머로 인공호흡기를 떼인 남동생 서진우가 산소 부족으로 안색이 끔찍한 보라색으로 질린 채 온몸을 경련하고 있었다.“지혁아, 진우는 내 유일한 혈육이야. 제발 이러지 마.”서이나는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기어가 하지혁의 다리를 붙잡았다.“내 말 믿어줘, 난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여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난 진짜 모른단 말이야.”하지혁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가만히 문질러 닦아주었다.“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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