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파리의 하늘은 흐림이었다.한낮임에도 짙은 구름이 지붕 위를 덮고 있었고, 바람은 창문 틈새로 싸늘하게 스며들었다.유리는 식탁 앞에 앉아 조용히 손가락을 깍지 끼었다 풀었다.이현은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머그컵 안에 차오르는 진한 향이 은근하게 주방을 채우고 있었다.“따뜻한 거 마실래요?”이현이 물었다.유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조심스럽게 잔을 건넸다.따뜻한 도자기 잔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을 때, 그녀는 묘하게도 낯선 기분에 휩싸였다.지금 이 순간, 이현은 너무 익숙한 사람인데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만은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이현은 노트북을 펼쳐 업무 메일을 정리하고 있었다.그의 이마 위엔 작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화면 속 숫자들과 보고서 사이를 오가는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깊고 바빴다.유리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문득 눈을 떼었다.그의 옆얼굴. 그토록 오래 바라봐 온 얼굴이었는데,지금은 알 수 없는 장벽 너머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이 사람은 나에게 어디까지 보여주고 있는 걸까.’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표정 하나, 시선 하나를 분석하고 있었다.사랑하고 있다는 전제 속에서도그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하루 종일 가슴 어딘가를 찔렀다.오후시간, 그녀는 혼자 카페로 향했다.낮은 구름 아래에서 유리는 길가 작은 화단에 피어 있는 연분홍색 제라늄을 바라보며 잠시 멈춰 섰다.그 꽃은 멀리서 보면 연약해 보이지만, 바람을 오래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녀는 그 순간, 자신도 저렇게 겉으론 괜찮은 척 서 있지만안에서는 수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녀는 파리 초입에서 마주쳤던 그 관광객 남자의 얼굴을 문득 떠올렸다.그의 말투, 그의 무심한 다정함, 그리고 오래 앉아 있던 테이블 위의 정적까지.그 모든 것이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에게선 어딘가 따뜻한 바람이 났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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