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회색 하늘 아래, 이현은 혼자였다.회사 기숙사의 작고 단정한 방,희미한 형광등 아래 놓인 얇은 책상과 무채색의 침대 시트는 그의 감정과 닮아 있었다.그는 유리의 곁을 떠나온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을 먼저 하지 않았다.그것이 배려라 믿었고, 시간이 그녀에게 필요하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설득했다.하지만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자신이‘기다리고 있는’ 쪽이 아니라 ‘잊혀지고 있는’ 쪽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맞은편 베개가 비어 있는 것을 보지 않아도 그녀의 부재는 또렷했다.그는 씻고 옷을 입고, 정리된 책상에 앉아 무의미하게 노트북을 켰다.일을 하다 말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그럴 때면 문득, 유리의 작은 습관들이 떠올랐다.말없이 냅킨을 곱게 접던 손끝, 식탁을 정리한 후에도 남은 소스를 아까워하던 웃음,자신은 맛보지 않고 이현의 표정을 먼저 살피던 시선.그것들은 지금 와서 어쩌면 사랑보다 더 이현의 하루를 지탱하던 것이었다.퇴근길, 그는 습관처럼 그들이 함께 걷던 거리를 피했다.한번은 무심코 두 사람이 함께 갔던 카페 앞을 지나쳤고,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순간 숨을 멈춘 적도 있었다.물론 그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슴 속이 어딘가 찢긴 듯 저려왔다.'나는… 그녀가 없는 하루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그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가 그보다 더 무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혹시, 그녀는 이미 익숙해진 건 아닐까.’밤이 되어, 그는 조용히 침대에 앉았다.핸드폰 화면에는 마지막으로 나눈 문자 대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유리 씨, 우리 조금 떨어져 있어요.내가 당신을 더 이해하고 싶어요. 기다릴게요. 언제든.그때는 진심이었다. 지금도 진심이었다.하지만 그 진심이 더는 닿지 않을 곳에 있다는 생각이 그를 무너뜨리고 있었다.그녀가 그 진심을 받아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면 아니,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사랑의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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