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밤은 오늘따라 유난히 느리게 흘러갔다.유리는 커튼을 걷은 채,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창밖에서는 빗방울이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렸고,그 소리는 마치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일깨우는 듯했다.그녀는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라기보다, 스스로의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그래서 ‘민우’라는 이름을 떠올렸다.한국에 있는 민우. 한때 자신의 식당에 들렀고,자신보다 먼저 삶의 균열과 회복을 겪었던 사람.무심한 척 조용히 건넨 말들 속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위로했던, 그 유일하고 단단한 사람.그녀는 펜을 들었다.민우 씨, 잘 지내시죠.여기 파리는 지금 비가 내려요.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보면서 문득, 예전 식당의 창가를 떠올렸어요.그때 그 공간에서 민우 씨가 앉아 있던 자리가,이상하게 지금 제 앞에 있는 창가랑 겹쳐져 보이더라고요.참 이상하죠.저, 요즘 누군가와 자주 식사를 해요.처음엔 그 사람이 그냥 이국의 낯선 얼굴이라 생각했어요.나를 모르는 사람. 나의 상처를 모르는 사람.그래서… 부담이 없고 편하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그런데요.그 사람의 식사 방식이, 자꾸 제 마음을 건드려요.젓가락을 드는 각도, 밥을 다 먹고 난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는 태도, 국을 식히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무는 숨결.그 조용한 리듬 안에 저도 모르게 같이 걸어가고 있어요.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제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걸 느껴요.무섭기도 해요.‘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어쩌지?’‘또 상처받으면 어쩌지?’그런데… 민우 씨.제가 놀란 건, 그 사람 앞에선 그런 생각보다 먼저‘나답게 있어도 괜찮다’는 이상한 확신이 생긴다는 거예요.그건 이현 씨와는 달라요.이현 씨는 제가 사랑을 애써 만들어야 했던 사람이었고,지금 이 사람은…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그냥 있는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주는 사람이에요.그런 차이가 처음엔 미묘했는데, 지금은 아주 크게 느껴져요.그래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