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은 책상 위 노트를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오전 회의가 길어지고, 브리핑이 이어졌지만 머릿속엔 다른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기억 속, 식당 한가운데 놓인 작은 테이블.국물 위로 피어오르던 수증기.그리고 그 건너편, 조심스레 웃던 유리의 얼굴.그건 어쩌면 그의 하루 중 가장 ‘느린 장면’이었고, 그래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기도 했다.그는 곧장 메신저 창을 열었다.혹시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시간 괜찮을까요?당신 음식이 필요한 자리가 있어서요.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짧은 한 줄을 더 붙였다.일이지만, 마음은 초대예요.유리는 그 문자를 받자 한동안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당신 음식이 필요한 자리’‘일이지만, 마음은 초대’그 말은 낯설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읽혔다.이현의 세상은 늘 정제된 자리였다.지분, 비율, 입장과 전략이 교차하는 세계.그곳은 유리의 감각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하지만 그 속에 ‘음식’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초대받는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짧게 답장을 썼다.메뉴는 제가 정해도 되죠?당신 스타일로 말고, 제 방식으로.그리고 잠시 후, 이현의 답장이 왔다.당신 방식이면, 그걸로 충분해요.금요일 저녁. 행사는 한 갤러리 공간에서 열렸다.S그룹이 후원하는 문화 프로젝트. 초청 인사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낯설고 익숙한 이름들이 섞여 있었다.유리는 식재료 박스를 하나씩 옮기며 간이 주방을 정리했다.검은색 앞치마, 머리를 높이 묶은 단정한 모습.그녀는 사람들 틈에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그 공간 어딘가에 이현이 있었다.행사 총괄자로, 공식 인사로. 그러나 그의 시선은 자꾸만 주방 쪽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행사 내내 단 한 번도 직접 마주보지 않았다.대신, 서로의 시야 끝에서 조용히 존재를 확인하는 식이었다.첫 번째 플레이트는 작은 달걀찜 위에 얹은 감태와 깨.두 번째는 유자가 살짝 배인 무쌈 안에 가늘게 채 썬 소고기 조림.사람들은 조용히 먹고, 입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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