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Chapter 261 - Chapter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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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당신의 식탁에 내 손이 얹힌 느낌

이른 아침, 식당 안엔 햇살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서이현.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작은 종이 가방을 조리대 옆에 내려놓았다.“아직 문도 안 열었는데요.”문 너머로 들어오는 유리의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약간 놀란 톤이었다.“그냥… 오늘은 내가 먼저 와보고 싶었어요.”유리는 앞치마를 매며 그를 바라봤다.“낯설어요. 이곳에 당신이 먼저 있는 거.”“괜찮아요? 방해 아니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그 말에 유리는 작게 웃었다.“도움이 되려면, 우선 앞치마부터 해야 해요.”그날은 식자재 정리일이었다.냉장고를 비우고, 새로 들어온 채소를 다듬고, 밀가루 봉지를 하나하나 정리하는 일.이현은 처음엔 어설펐다.애호박을 다듬다 손끝에 물을 튀기고,무게를 몰라서 유리가 웃을 만큼 한 움큼씩 들어 올리기도 했다.“무 세 개면 2.4kg쯤 돼요. 그만큼 들고 땀 흘릴 필요 없어요.”“이게 운동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요.”“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 없어요. 오늘은 그저… 조용히 손만 빌려주면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주방 안에서 각자의 자리로 움직였다.유리는 칼을 들고, 이현은 수세미로 채소를 씻었다.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움직임은 조금씩 리듬을 맞춰갔다.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유리는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이따가… 반죽할 거예요. 들깨 수제비.”“먹는 건 자신 있어요.”“만드는 건요?”“자신 없는 만큼, 열심히 해볼게요.”유리는 밀가루를 큰 대야에 담고 물을 조금씩 섞으며 손으로 천천히 반죽했다.이현은 그녀 옆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이런 거, 어릴 때 엄마 옆에서 본 기억은 나요. 도와드릴게요.”유리는 잠시 그의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밀가루는 너무 세게 쥐면 거칠어져요. 손 안에 두고, 가볍게 구기듯이.”“그거… 사람 마음 다루는 거랑 비슷하네요.”그 말에 유리는 작게 웃었다.“맞아요. 조금은 덜 쥐고, 조금은 더 느슨하게.”두 사람의 손끝에서 반죽이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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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당신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일

봄비가 잦아들고, 서울의 나무 가지엔 여린 녹색이 피어나고 있었다.그날은 평일 오후였고, 유리는 가게 문을 닫은 채 가만히 주방 뒷문 앞에 앉아 있었다.가게 앞쪽은 햇살로 환했지만, 이곳은 그늘이 져 있어 조금 더 시원하고 조용했다.손에는 종이봉투 하나. 그 안엔 방금 받은 메모와 인쇄 견본 샘플이 들어 있었다.이현이 건넨 거였다.“잠깐, 시간 괜찮아요?”며칠 전 이현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카페로 유리를 불렀다.한쪽 벽엔 손으로 쓴 글귀가 걸려 있고, 자그마한 테이블에는 갓 내린 커피와 작은 견과류 접시가 놓여 있었다.이현은 가방 안에서 정갈하게 정리된 서류를 꺼냈다.“이건… 회사 일은 아니고요. 내 개인 프로젝트예요.”유리는 서류를 바라봤다. ‘식탁 사이’라는 이름,그 아래엔 손글씨처럼 자연스러운 서체로 적힌 부제목.당신의 요리가 머무는 자리,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온기.“이거… 뭐예요?”“소규모 식음 브랜드예요. 대단한 건 아니고, 작은 팝업 행사랑 케이터링 중심으로 시작하려고 해요.”“이걸… 저한테 보여주는 이유는요?”이현은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당신 이름이 이 안에 들어갔으면 해서요. 브랜드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주인이 당신이었으면 해서요.”유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왜요? 내가 왜요?”“이건, ‘같이 해보자’는 말보다 먼저인 감정이에요.”“그게… 무슨 말이에요?”“당신의 방식, 당신의 손끝,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내가 함께 있어도 괜찮을지 묻는 거예요.”유리는 한동안 서류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브랜드를 하겠다는 사람치고… 말이 참 조용하네요.”“조용한 방식밖에 몰라서 그래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속도예요.”그날, 유리는 명확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현의 말은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았다.오늘, 그 말이 다시 떠올라 유리는 뒷문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류를 펼쳐보면 작은 시안들이 있었다.그 중 하나엔 이런 문장이 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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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128화.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들

그날은 흐린 아침이었다.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고, 도로는 지난밤 비에 살짝 젖어 있었다.이현의 SUV에 유리의 보냉 박스가 조심스럽게 실려 있었다.작은 케이터링 요청이었다. 서울 근교의 한 공방에서 10인분의 점심 식사를 주문했고, 유리는 ‘직접 만들고, 직접 가져다주겠다’고 했다.“당신, 운전은 괜찮겠어요?”조수석에 탄 유리가 물었다.이현은 미소 지었다.“당신 음식 실은 차니까 더 조심할 거예요.”그 말에 유리는 작게 웃었다.“그럼 오늘은 내 국물이 내리기 전까진 급브레이크 금지예요.”“그렇게 중요한 국물이라면, 방향도 조심해야겠네요.”이현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렸다.차 안엔 말이 없었지만, 그 고요는 편안한 종류였다.창밖으로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풍경.나무 가지엔 아직 이파리가 없었지만,도로 옆 풀밭에선 연둣빛 새순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차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작은 공방 앞에 도착했다.흰 벽과 나무 문, 앞마당엔 흙으로 만든 화단과 작은 평상이 놓여 있었다.유리는 박스를 들고 문을 두드렸다.그곳에선 도자기를 굽는 부부가 조용히 유리를 맞이했다.“직접 오셨네요.”“네. 배달 기사님 손에 맡기기엔 오늘 메뉴가 너무 예민해서요.”그녀는 테이블 위에 하나하나 그릇을 올려놓았다.들깨 수프, 갓 지은 잡곡밥, 무나물, 유자 소스를 얹은 우엉샐러드.그 모든 것이 흔한 재료였지만, 그릇 위에서 조용히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이현은 멀찍이 서서 유리의 손끝을 바라봤다.그 순간, 그녀는 아무 말 없이도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리는 평소보다 말을 덜 했다.이현은 라디오를 켰다. 어떤 진행자가, ‘좋은 하루를 만드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는 사람과 같은 속도로, 같은 고요로 하루를 보내는 것.”그 말이 차 안을 조용히 채웠다.이현은 조수석 쪽을 바라보았다.“오늘, 어땠어요?”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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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천천히 다시 데우려 해요

조용한 월요일 아침.식당 문 앞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이번 주는 잠시 쉬어갑니다. 국물도 마음도, 천천히 다시 데우려 해요.’흰 종이에 적힌 짧은 문장. 글씨체는 변함없이 단정했고,문장을 붙인 테이프조차 하얀 벽에 얌전하게 붙어 있었다.유리는 가게 문을 닫은 채 주방 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불 꺼진 조리대, 정리된 도마와 칼,그리고 식기 위에 덮인 하얀 천.오랫동안 해왔던 일에 하루 멈춤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더 무거웠다.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그녀는 지금 그저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점심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오늘 저녁, 당신이 쉬는 김에 나도 조금 쉬어볼까 해요.같이 가요. 아무 계획 없는 산책.유리는 그 짧은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그리고 짐을 꾸리지 않은 채 그 말 하나만 들고 나섰다.이현이 안내한 곳은 서울 외곽의 오래된 공원이었다.크게 알려지지 않은 산책길.벚꽃도, 사람도 많지 않은 조용한 곳.입구엔 철제 그네가 삐걱이며 움직이고 있었고,나무 계단 아래로는 느릿하게 흐르는 개울물이 반짝이고 있었다.“이런 데가 있었어요?”유리가 물었다.“예전엔 자주 왔어요. 생각 정리할 데가 없을 땐, 걷는 게 가장 낫더라고요.”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말은 많지 않았다. 바닥을 밟는 소리,옷깃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기척.그 모든 것이 지나치지 않고 조용히 존재했다.한참을 걷다가 작은 쉼터에 도착했다.낡은 벤치, 그리고 옆엔 허름하지만 고운 찻집 하나.유리는 자리에 앉았고, 이현은 찻집 안으로 들어가 두 잔의 유자차를 받아왔다.“오늘은 말 없이 마셔도 돼요.”그가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마주 앉은 채 유자차를 마셨다.말없이, 그냥 온도로 서로를 느끼며. 차의 향은 은은했고, 그 속엔 유리의 된장국처럼 작은 쉼이 담겨 있었다.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두 사람은 산책을 마치고 작은 호숫가 옆에 섰다.물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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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말 없이 전해지는 마음

식당 영업이 끝난 늦은 밤. 유리는 조용히 수세미를 헹구고 있었다.조리대 위에는 다 마른 접시들이 반듯이 정리되어 있었고,선반엔 남은 양념 병들이 서로 의지하듯 붙어 있었다.불은 대부분 꺼져 있었지만, 주방 안 조명 하나만이 은은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그때, 휴대폰에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밖이에요. 시간 괜찮으면 잠깐만 나와봐요.이현이었다.유리는 앞치마 끈을 풀고 가게 문을 조용히 열었다.밤공기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식당 앞, 이현이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이 시간에 뭔가요?”“오늘은 내가 밥을 차릴 순 없으니까, 이거라도 준비해봤어요.”그가 건넨 봉투 안에는 손편지 한 통과 작은 유리병이 하나 들어 있었다.병 안에는 말린 감귤 껍질과 생강 조각,그리고 몇 가닥의 계피 스틱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이건…”“그날, 당신이 감기에 걸렸을 때 끓여줬던 차 기억나요? 그 맛을 흉내 내봤어요.”유리는 유리병을 조심히 꺼내 빛에 비춰보았다.자신이 무심코 했던 작은 행동이 그의 손끝에서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편지까지 썼어요?”“읽어보면 알아요. 근데 지금 말로는 못 하겠더라고요.”유리는 종이 봉투를 살짝 접어 가슴께 품고 말했다.“이런 방식, 당신답네요.”“시끄러운 걸 잘 못해서요.”“그런데도… 참 크게 들려요.”그들은 잠시 가게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서로를 보지 않고, 밤하늘만 올려다본 채. 잠시 후, 유리가 입을 열었다.“오늘 손님 하나가 혼자 와서 조용히 밥을 먹었어요. 말없이 먹고, 말없이 나갔어요.근데… 식기 치울 때 보니까 물컵 밑에 작은 쪽지가 있었어요.”“뭐라고 적혀 있었어요?”유리는 가볍게 읊조렸다.‘오늘, 괜찮았어요. 그거면 충분했어요.’그 문장은 오늘 유리가 버틴 이유이기도 했다.그리고 지금 이현이 옆에 앉아 있는 이유 같기도 했다.그날 밤, 유리는 집에 돌아와 이현의 편지를 펼쳤다.글씨는 정돈되어 있었고, 그의 말투처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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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

토요일 오후. 식당은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이현의 생일이었고, 유리는 특별한 식사 대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재료들을 준비했다.들기름을 두른 두부전, 말린 가지를 부드럽게 조린 반찬,된장을 조금 묽게 풀어넣은 된장국.그 어떤 화려함도 없었지만 그녀는 그 재료들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한 손길을 담았다.“이게 생일 상이에요?”이현이 식당 주방에 들어오며 물었다.“응. 축하 대신, 밥.”“그게 더 당신답네요.”“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예요.”이현은 식탁에 앉으며 조용히 웃었다.“전부라니요. 이건 이미 넘치는 건데요.”그의 말은 장식 같지 않았다. 진심이었다.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조용히 주방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물을 마셨다.바깥엔 바람이 살짝 불고 있었고, 작은 화분은 창가에서 잎을 흔들고 있었다.“오늘 국물, 당신 거랑 조금 달랐어요.”이현이 말했다.“조금 연하게 풀었어요. 묽은 맛이 오늘은 어울릴 것 같아서.”“왜요? 생일이라서?”“응. 조금 가볍게, 그리고 덜 짜게.”이현은 잔을 내려놓으며 유리를 바라봤다.“당신은… 내가 없을 때에도 내 입맛을 기억할 사람 같아요.”“그건,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유리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나도 당신이 없을 때에도 당신 식탁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그 말은 그들만의 약속처럼 조용히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잠시 후, 이현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우리, 이런 식탁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유리는 고개를 돌렸다.“무슨 뜻이에요?”“결혼 같은 단어 없이, 이렇게 한 식탁에 앉는 삶을요.”“당신 형식 없이 괜찮아요?”“나는 이 방식이 더 당신 같고 더 우리 같아요.”유리는 잔을 쥔 손에 힘을 아주 살짝 주었다.“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는 관계라도, 당신이 내 옆에 있으면 나는 충분해요.”이현은 조용히 웃었다.“가끔은 나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당신 같아요.”“아니에요. 나는 아직도 당신 말 한마디에 기분이 흔들리는 사람이에요.”그 말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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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단단한 말로 손을 놓지 않겠다 다짐하는 고요한 온기

식당에 오전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날.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유리에게 아주 낯익은 얼굴이었다.회색 머리에 검은 셔츠, 표정은 여전히 단정했고, 걸음엔 나지막한 품위가 묻어 있었다.“유리야.”그 짧은 한 마디에 시간이 거꾸로 흘러내렸다.“셰프님…”유리는 잠시 국자에서 손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그는 유리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처음으로 주방을 배운 사람. 그리고 스스로 무너졌을 때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하지만 지금은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지금도 된장국 끓이니?”그의 질문에 유리는 조용히 웃었다.“네. 그날그날 조금 다르게요.”“그래. 넌 늘 그랬지. 같은 국도 매번 다르게 만들었으니까.”둘은 조용히 마주 앉았다.식당은 오늘 예약 없이 문을 열었지만, 마침 손님도 없었다.그건 마치 이 시간을 위해 준비된 공백 같았다.“그때,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했었지.”그가 말했다.“아니에요. 셰프님은 기대하신 만큼 기회를 주셨어요.”“근데 나는 그 기회를 내 방식대로만 이해했어.”유리는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셰프님은 당신 음식이 왜 감동이 없냐고 하셨죠. 정확했어요.”“지금은 어때?”“지금은요… 감동까지는 모르겠지만, 국물을 다 마시고 나가시는 분들이 있어요.”그 말에 스승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감동이야. 말보다 오래 남는 거.”잠시 후, 서이현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유리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이현 씨예요. 제가… 같이 걷고 있는 사람.”스승은 이현을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반갑습니다. 이 친구, 좋은 손을 가졌어요.그 손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사람 하나를 살릴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지요.”이현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그 손을 붙잡고 있는 건 제가 아닐지 몰라도, 옆에서 놓치지 않도록 지켜보겠습니다.”그 말에 스승은 작게 웃었다.“말이 단단하군요.”이후, 유리는 셰프를 위해 조용히 점심상을 차렸다.된장국, 우엉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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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오늘은 당신 마음이에요

그날 저녁, 유리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식당을 닫았다.별다른 이유는 없었다.그냥, 오늘은 일찍 불을 끄고 싶었다.하루 동안 손님은 많지 않았고,그 속에서도 정성껏 국을 끓이고, 조심스레 밥을 지었다.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 날엔 조용한 시간이 오래 필요했다.가게 문을 닫고 나서 이현에게 연락을 하려던 참에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오늘 저녁, 식사 예약해놨어요.장소는 내가 정했어요. 가볍게 나와줘요.그리고 함께 도착한 위치는 도시 외곽의 작은 갤러리 카페.그곳은 예전에 ‘식탁 사이’ 팝업을 처음 시작했던 장소였다.유리는 순간 망설였다. 그날의 기억, 그 긴장과 설렘,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조용한 성공의 밤.그곳을 다시 찾는다는 건 그때보다 더 ‘함께’라는 의미를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는 일이었다.도착하자 이현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양손을 가볍게 뒤로 감춘 채 평소보다 편안한 옷차림이었다.“환영합니다. 오늘은 제가 주방장이고, 당신은 손님이에요.”유리는 작게 웃었다.“진짜 요리했어요?”“진짜로, 정성껏 데웠어요.”그 대답에 유리는 더 깊은 미소를 지었다.공간 안엔 작은 테이블 하나만 놓여 있었다.하얀 린넨보 위에 단정하게 접힌 냅킨,수저는 한 쌍만 놓여 있었고, 중앙엔 초 하나가 고요히 빛을 내고 있었다.주방에선 은은한 국물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앉아요. 오늘은 당신이 묻지 않아도 내가 설명해줄 거예요.”이현은 조심스럽게 첫 접시를 그녀 앞에 내놓았다.들깨 수프, 그 위에 감자채를 부드럽게 올려 마무리한 요리였다.“이건… 내가 예전에 해준…”“응. 그날 이후 당신이 다시는 해주지 않아서 기억을 더듬어봤어요.”유리는 조용히 한 입 떴다.익숙한 재료였지만, 조금 다른 온도. 그리고 그 위에 얹힌 마음.“솔직히 말하면 맛은 내 것보다 덜해요.”그녀가 웃으며 말했다.“그건 알아요. 근데… 오늘은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두 번째 요리는 유자가 들어간 우엉 샐러드.“그때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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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지키고 싶은 자리

그날 아침, 유리는 낯선 봉투 하나를 식당 문 틈에서 발견했다.하얀 종이봉투, 가늘게 접힌 가장자리, 그 위에 적힌 짧은 문구.‘건물 계약 만료 안내’그 문장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깊숙이 들어왔다.계약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세 달.건물주는 리모델링을 이유로 재계약 없이 정리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유리는 종이를 조용히 접었다.식당 안은 여전히 평온했고, 주방엔 된장국 냄새가 은근히 배어 있었다.그러나 그녀의 심장 아래, 무언가 아주 작게 울리고 있었다.점심 장사를 마친 후 이현이 식당으로 왔다.유리는 말없이 봉투를 내밀었다.이현은 종이를 다 읽은 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말이라도 먼저 들었으면…”“그럴 틈도 없이 그냥 도착했어요. 예고도 없이.”“어떻게 할까요?”유리는 고개를 숙였다.“아직 모르겠어요. 이 자리가… 그냥 장사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서요.”그녀의 말은 묵직했다.식탁 하나하나, 숟가락, 나무 의자, 벽에 걸린 작은 액자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손끝에서, 그리고 그녀의 ‘하루들’ 위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그날 저녁, 이현은 유리를 근처 조용한 찻집으로 데려갔다.그곳엔 손님이 거의 없었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다른 자리, 생각해본 적 있어요?”“없어요. 내가 이 공간과 천천히 호흡을 맞췄거든요.”“만약, 그 호흡을 옮겨갈 수 있다면?”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그건… 숨을 멈췄다가 다시 쉬는 거예요. 쉽지 않죠.”이현은 그녀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내가 같이 있어요. 호흡이 멎을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들이쉴게요.”그 말은 어떤 위로보다 깊게 가라앉았다.며칠 뒤, 유리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주변 건물 매물들을 보기 시작했고, 장부를 다시 정리했으며, 주방 설비를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겼다.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옮겨가기 위한 준비였다.그걸 보고 이현은 말없이 도와주었다.사진을 찍고, 계약서를 대신 검토하고, 하나씩 박스를 정리했다.“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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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당신 없이 익히는 하루

새 식당의 첫날 아침.유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주방에 들어섰다.아직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조리대,새로 놓인 찬장, 약간 덜 익은 나무 냄새.모든 것이 조금은 낯설고, 그 낯섦 안에서 그녀는 천천히 손끝을 움직였다.오늘 끓일 국은, 조심스럽게 손님에게 건넬 하루의 인사였다.첫 손님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찾아왔다.검은 코트를 입은 노부인.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도 묻지 않고 조용히 한 자리에 앉았다.유리는 앞치마를 매고 다가갔다.“안녕하세요. 오늘 첫 국물, 묵은지와 두부 넣고 끓인 국인데 괜찮으실까요?”노부인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밥은… 한 숟갈만 주세요. 국물은 조금 넉넉하게요.”그 요청은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한 그릇의 국물, 그리고 한 숟갈의 밥.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음식을 내놓고 유리는 주방 안쪽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노부인은 국을 입에 대기 전, 손을 가볍게 모으고 눈을 감았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국을 한 숟갈 떠넣었다.그 한 동작이 유리의 심장 어딘가를 눌렀다.무언가가… 묵직하게 지나갔다.점심시간 무렵, 이현이 식당에 도착했다.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첫마디는 인사보다 짧았다.“국물 냄새가… 좋아요.”유리는 웃었다.“이 공간이, 내가 끓이는 국물 온도를 잘 받아주나 봐요.”“당신이 공간을 먼저 받아줬잖아요. 그러니까 그도 당신을 안아주는 거죠.”그날 오후,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왔다.이전 식당을 기억하는 단골들,소문을 듣고 찾아온 조용한 손님들.누군가는 처음이었고, 누군가는 예전 자리를 떠올리며 앉았다.“예전엔 창가 자리에 앉았었는데, 여기선… 햇빛이 더 고요하게 들어오네요.”“이 벽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생각이 오래 머물러요.”“국물 맛이… 변했는데요. 조금 더 부드러워졌어요.”그 말에 유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저도… 조금 부드러워졌거든요.”장사가 끝난 밤. 유리는 주방을 정리하며 조용히 물었다.“이현 씨.”“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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