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그녀의 곁에 그녀와 같은 속도로 걸으려 했다.그들은 함께 있는 순간에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그러나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그날 밤. 유리는 이현에게 처음으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이현 씨.”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나 오늘 당신 옆에 있어도 되죠?”그녀의 말은 어쩌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이현은 그녀의 그런 말을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네. 언제든요.”그의 대답에는 과거처럼 조급함도, 소유하려는 마음도 없었다.그것이 유리를 더 편안하게 했다.그날 이후. 그들은 더 이상 숨지 않았다.유리는 가게 문을 닫은 뒤 이현과 함께 조용히 골목을 걷기도 했고,작은 라면 가게에 들어가 한 그릇을 조용히 나눠먹기도 했다.둘의 대화는 많지 않았고, 그들의 움직임도 서툴렀다.그러나 그 서툼조차 이제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자연스러운 호흡이 되어 있었다.유리는 그렇게 이현이라는 남자를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자신의 곁에 두고 있었다.그녀의 손끝은 예전처럼 긴장하지 않았고,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았고, 그의 상처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들이 서로를 향해 가는 길은 더 이상 폭풍 같지 않았다.조용했고, 묵직했고,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자신의 속도로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발걸음 속에서 조금씩 녹여내고 있었다.유리는 그게 사랑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서이현이라는 남자를 쉽게 밀어내지 않으려 했다.그녀는 그의 곁에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만들어두고 있었다.그들의 겨울은 어느새 다른 온도로 흐르고 있었다.그들은 그 온도를 서로의 속도로 같이 걸으며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날 밤, 유리는 처음으로 이현에게 자신의 식탁을 허락했다.그녀가 만든 요리를 같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와 마주 앉는 것이 이렇게 조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