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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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민영순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은희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야 은희의 가슴에 와닿았다.은희의 눈물이 더 거세게 쏟아졌다. “그래도 할머니가 충격받아서 쓰러지셨잖아요.”“그렇지.” 민영순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가짜라는 걸 알아도 보미 이야기를 그렇게 들으니까, 할미도 어쩌지 못...”민영순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은희가 몸을 숙여 민영순을 꼭 끌어안았다.“죄송해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네 탓 아니야.” 민영순은 은희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우리 은희,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민영순은 은희가 보미의 죽음을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앞에서는 계속 아무 일 없는 척해 왔다는 걸 짐작했다.보미가 해외에서 치료를 잘 받고 있고, 아직 희망이 많은 것처럼 애써 꾸며 왔다.그 거짓말을 지켜 내는 일은 은희에게 오히려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많이 힘들었겠네.’ 그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은희는 온몸의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그동안 은희는 모든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진 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민영순 앞에서만큼은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저는 괜찮아요. 할머니만 건강하시면 돼요.”민영순은 은희를 품에서 놓고 가만히 얼굴을 살폈다. “많이 말랐네, 우리 은희.”민영순은 안쓰러운 손길로 은희의 뺨을 쓰다듬다가 문가에 계속 서 있던 남우를 돌아봤다.목소리는 곧 차갑게 변했다.“남우야, 이리 와.”남우는 아무 말 없이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남우 넌 그동안 은희를 어떻게 돌본 거야?”남우가 대답하지 않자 민영순의 눈매가 더 날카로워졌다.“애가 이렇게 마를 때까지 넌 몰랐어?”남우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내가 쓰러진 일도 그래. 너 또 다 은희 탓했지? 또 은희 말 끝내 안 믿었지?”연달아 쏟아지는 질문에 남우는 아무 변명도 하지 못했다. 끝내 짧게 대답했다. “네.”“내가 그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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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네?”민영순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앞을 휘휘 저었다.“어디서 ‘벌레’가 한 마리 들어왔나 봐. 얼른 좀 내보내. 괜히 보고 있으면 내 심장이 더 아프겠다.”영은의 울음이 뚝 멎었다.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남우는 앞으로 나와 벽으로 달려들려는 영은을 붙잡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남우야...” 영은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남우를 올려다봤다. “나... 나 진짜 더는 못 살 것 같아.”들어오자마자 죽고 싶다는 말부터 꺼냈지만, 영은의 옷과 상처를 보면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듯했다. 남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영은이 답하기도 전에 민영순이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못 살겠으면 네 마음대로 해.”영은은 다시 훌쩍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그냥 맑음이랑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누가 와서 은희 씨가 저를 찾는다고 하길래 따라갔어요.”말하던 영은은 갑자기 남우에게 달려들어 소매를 꽉 붙잡았다.“밖에 나가 보니까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저한테 그런 짓을...”영은은 더 처절하게 울었다. “남우야, 나도 예전에 겪었던 끔찍한 일까지 다 생각났어. 나 너무 무서워...”영은은 아예 남우 쪽으로 몸을 기댔다.“그만해!”민영순이 날카롭게 호통쳤다. “연기하려면 밖에 나가서 해. 내 병실까지 더럽히지 말고!”영은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얼어붙었다.“저는 정말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뭘 자꾸 이상한 말을 해?”민영순은 영은을 차갑게 노려봤다. 저런 식으로 사람 마음을 흔드는 데는 정말 능숙한 여자였다. “은희가 사람을 시켜 자네를 해쳤다고? 증거는?”“저... 증거는 없어요. 그래도 CCTV 확인하면 돼요.” 영은은 말을 더듬었다.“증거도 없으면서 여기 와서 은희 이름을 함부로 올려?”민영순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내가 아무리 나이 먹은 노인네라고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 자네가 연기하는 것도 못 알아볼 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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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영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 서럽게 울었다.“남우야, 이번에는 정말 내 억울한 일 좀 풀어줘.”남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려던 때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흐으, 엄마...”맑음도 영은의 다리를 꼭 붙잡고 따라 울기 시작했다.“맑음아, 이리 와. 증조할머니한테 와.”맑음은 훌쩍이며 민영순을 조심스럽게 한 번 보고 영은도 바라봤다. 결국 민영순의 품으로 달려갔다.“증조할머니...”맑음은 품에 안기자 더 서럽게 울었다.민영순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맑음을 꼭 안았다. “우리 맑음이, 울지 마. 증조할머니 여기 있잖아.”민영순은 맑음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눈에는 다정한 애정이 가득했다.영은은 아직도 병실 안에 서 있었다. 민영순은 그 모습만 보고 있어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맑음을 품에 안은 채 영은을 차갑게 바라봤다.“남우야, 아직도 뭐 해? 저 여자 빨리 데리고 나가!”민영순은 영은을 단 몇 분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볼수록 화만 치밀었다.영은의 상태도 계속 병실에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남우도 마침 영은을 치료받게 하려고 데리고 나가려 했다.“가자. 일단 상처부터 치료받아.”그때 민영순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바로 남우를 막았다.“의료진이 데리고 가면 되잖아. 남우야, 넌 은희 남편이야. 왜 다른 여자한테 그렇게 붙어 있어?”은희는 이미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남우가 영은을 걱정하는 모습도, 재킷까지 벗어 걸쳐 주는 행동도 모두 보았다.이제 남우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남우가 본능적으로 영은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그렇게 소영은을 사랑하면 왜 나랑 이혼하고 소영은이랑 제대로 살 생각은 안 하는 거야?’“남우야, 가지 마. 나 너무 무서워. 옛날 일까지 다 떠올라서... 나 지금 너 없으면 안 돼.”민영순이 막아도 영은은 곧바로 다시 연기를 이어 갔다. 이런 식으로 남우의 마음을 흔드는 건 영은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남우가 자신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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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은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예전에는 은희가 이혼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민영순이 반대하면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민영순의 뜻대로 할 수 없었다.“할머니, 이혼은 꼭 할 거예요.”그 말을 듣자 민영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가슴을 누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은희야, 그건 안 돼! 나는 내 손주며느리로 인정하는 사람은 너 하나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싫어!”“정 이혼하겠다면 나 죽는 꼴부터 보고 해!”민영순은 격한 말을 쏟아내다 가슴에 통증이 오는지 표정을 찡그렸다.지금은 민영순에게 회복이 가장 중요한 때였다. 은희도 당장 이 시기에 이혼 절차를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다만 방금 말을 꺼낸 건 남우에게 자신의 결심을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남우가 막는다고 포기할 문제가 아니었다.은희는 남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우는 아직 영은을 부축하고 있었다. 참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얼른 소영은 씨나 챙겨. 방금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데 네 위로가 제일 필요하겠지.”남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민영순이 있는 자리라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영은을 부축한 채 민영순에게 짧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갔다.민영순은 급해져 은희의 손을 잡았다. “은희야, 이러지 마. 소영은 저 여자 때문에 그러는 거면 내가 당장 멀리 보내마. 다시는 너희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 테니까 제발 성급하게 이혼하지 말고. 결혼을 끝내는 건 작은 일이 아니잖아.”‘멀리 보내 버린다고?’‘예전에 남우를 나와 결혼하게 만들었을 때처럼?’영은을 아무리 멀리 보내도 남우의 마음이 영은에게 남아 있으면 달라지는 게 없었다.그런 방식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결국 임시방편일 뿐이었다.“할머니, 이제 제 일 때문에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소영은 씨가 없어도 저와 남우 씨 사이에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가 너무 많아요.”“남우 씨는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할머니가 뭘 하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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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은희가 직접 찾아온 건 남우에게도 뜻밖이었다.민영순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남우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할머니한테 무슨 일 생겼어?”은희는 남우를 상대하지 않고 곧장 영은 앞으로 갔다.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소영은 씨, 편하게 잘 쉬고 있어요?”영은은 잠깐 굳었다가 곧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은희 씨,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그렇게 무서운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어요?”‘무서운 일이라고?’ 은희가 보기에는 영은이 오히려 지금 상황을 꽤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무서운 일? 직접 준비한 그 연극 말씀이세요?”정곡을 찔린 영은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목소리가 떨렸고 시선도 불안하게 움직였다.“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은희가 오늘 온 목적은 영은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증거도 없었다.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정면에서 받아들이면 됐다.영은이 인정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은희가 사람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도 않은 일의 죄명을 혼자 뒤집어쓸 이유는 없었다.어차피 죄명을 떠안게 됐다면 그 이름을 이용해 줄 생각이었다.은희는 몸을 숙여 영은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그 사람들 제가 보냈어요. 소영은 씨한테 그런 짓을 하라고 시킨 것도 저고요. 이유요? 간단해요. 제가 소영은 씨를 싫어하거든요.”영은은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도 않은 일을 은희가 스스로 인정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안 됐다.하지만 영은이 그 사정을 따질 이유는 없었다. 은희가 스스로 먹잇감을 내민 이상 그냥 놓아줄 생각도 없었다.영은은 곧바로 크게 놀란 척 표정을 바꿨다.“어떻게...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어요? 남우야, 들었지? 은희 씨가 직접...”남우의 표정이 곧바로 어둡게 내려앉았다. 이를 악문 채 차갑게 말했다.“고은희,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당연히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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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하남우 진짜 이상해진 거 아니야?’‘누가 하남우와 뭘 다시 확인하고 싶다고 했나?’‘양다리 걸치는 전형적인 최악의 남자인데...’은희는 질색한 표정으로 남우를 밀어냈다. “싫어. 더러워. 영은이나 찾아가.”“소영은 씨는 지금 네가 그 사람들 흔적까지 싹 지워 주길 아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말하며 은희는 영은을 대놓고 깔보듯 바라봤다.모욕감이 강한 말에 영은은 분해서 속이 끓었다. 오늘 은희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날을 세우는지 남우는 알 수 없었다.할 말은 다 한 은희는 곧바로 병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말로 한바탕 몰아붙이고 나니 답답했던 속이 조금 풀렸다.굳이 뒤를 돌아 남우와 영은의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둘 다 보기 좋을 리 없었다.기분이 한결 좋아진 채 복도를 걷던 은희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준과 부딪혔다.“아직 안 가셨어요?”세준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한테 꼭 알려 줄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저 지금 형수님 도와드리려고 이러는 겁니다.”‘나를 도와준다고?’은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자 세준이 괜히 헛기침했다.“한 번만 믿어 보세요. 저랑 같이 다시 들어가면 재미있는 거 보실 수 있어요.”은희는 방금도 충분히 볼거리를 만들고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또 볼 게 있다니.‘사람 사는 게 정말 연극 같네.’세준은 자연스럽게 은희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병실로 들어갔다.그러면서 남우를 향해 일부러 도발적인 시선을 던졌다.은희는 세준이 이렇게 가까이 붙는 게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남우가 분해서 굳어질 표정을 생각하니 묘하게 속이 시원했다.그래서 오히려 세준의 손을 잡고 환하고 당당하게 웃었다.“역시 제 마음을 잘 아시네요. 제가 뭘 원하는지도 아시고.”남우의 표정이 곧바로 어두워졌다. 영은을 부축하던 손을 놓고 은희 앞으로 다가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고은희,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은희는 턱을 살짝 들고 남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오히려 가벼웠다.“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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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영은은 그 말을 듣자 일부러 부드럽고 가냘픈 목소리로 답했다.“전무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남우랑 저는 그냥 친구예요.”‘친구 사이에 아이까지 있다니. 정말 대단한 우정이네.’은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농담을 듣는 기분이었다.“친구요?” 세준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소영은 씨, 말 참 쉽게 하시네요. 아까 형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소영은 씨 끌어안고 달래 주던데요. 그것도 친구끼리 하는 일입니까?”영은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은희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애초에 세준이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고 해서 다시 따라 들어온 것이었다.기다리다 못한 은희가 재촉했다.“보여준다는 건 뭐예요? 빨리 해 주세요. 아니면 저 갈 거예요.”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형수님, 소영은 씨가 전부터 자꾸 저한테 연락하고 달라붙었습니다. 저는 분명 제 마음에는 형수님뿐이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형한테 형 ‘친구’ 좀 제대로 챙기라고 말하려던 겁니다.”그 말을 듣자 영은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하세준은 또 왜 이래? 왜 갑자기 나한테 누명을 씌우는 거야?’분명 둘은 같은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준은 오히려 은희를 돕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정말 고은희한테 완전히 넘어간 거야?’“전무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제가 언제 전무님한테 달라붙었다고요? 사람 모함하지 마세요!”세준은 차갑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곧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핸드폰에서는 영은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무님, 자꾸 저 피하지 마세요. 전무님이랑 은희 씨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거 알아요. 결국 같은 편은 저희잖아요.]녹음이 끝나기도 전에 영은의 안색은 새파랗게 굳었다. 몸에 상처가 있다는 설정조차 잊은 듯했다.영은은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세준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세준은 가볍게 몸을 피했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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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세준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핸드폰 화면에는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만화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과장된 효과음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췄다.“하하!”세준이 제일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형, 이 고양이 진짜 웃기지 않아?”병실 안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영은의 안색은 푸르게 질렸다가 하얘졌고,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이 미친 인간이... 감히 나를 이렇게 갖고 놀아?’ 영은은 조금 전까지 정말 모든 게 들킬까 봐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랐었다.은희는 한심하다는 듯 눈을 굴리고 몸을 돌렸다. “유치하네요.”“잠깐만요.” 세준이 은희의 손목을 붙잡았다. “형수님, 벌써 가지 마세요. 진짜 재미있는 건 이제 시작인데.”세준은 은희 귀 가까이 얼굴을 기울여 낮게 말했다. “소영은 씨 표정 보세요. 꽤 볼만하잖아요.”은희도 세준의 시선을 따라가 봤다. 정말 영은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물어뜯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은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람 놀리는 법은 참 잘 아시네요.”은희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세준은 정말 영은을 골려 주려고 일부러 이런 일을 벌인 것이었다.다만 장난을 치는 것과 별개로 영은이 실제로 무너질 정도의 증거까지 꺼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그 장난에 함께 휘말린 남우는 더 참지 못했다. 거칠게 세준의 옷깃을 움켜쥐고 싸늘하게 노려봤다.“대체 무슨 장난질이야?”세준은 두 손을 들며 항복하는 시늉을 했다. “형, 화내지 마. 그냥 농담 좀 한 거야. 그런데...”세준은 영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찔리는 사람 표정이 저렇게 바뀌는 건 꽤 재미있네.”영은은 몸을 흠칫 떨었지만 억지로 웃었다. “전무님, 대체 무슨 뜻이에요? 왜 계속 저를 모함하세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별 뜻 없죠.” 세준은 구겨진 옷깃을 정리했다. “그냥 누군가에게 적당히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겁니다. 계속 선을 넘었다가는...”세준은 말을 멈춘 뒤 영은의 귀 가까이 다가갔다. 둘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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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남우는 영은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하지만 영은이 보지 못하는 남우의 눈은 서늘할 정도로 차가웠다.한참 울던 영은이 지쳐 잠든 뒤, 남우는 소리를 내지 않고 병실을 빠져나와 번호 하나로 전화를 걸었다.“영은이랑 세준이 사이부터 조사해.”남우는 목소리를 낮췄다. “특히 최근 반년 동안 연락하거나 만난 기록 전부.”전화를 끊은 남우는 복도 벽에 기대 관자놀이를 눌렀다.영은을 어느 정도 돌본 뒤 남우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러 자리를 떴다. 최근 하진그룹 쪽 일이 많이 쌓여 있었다.남우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어 있던 영은이 갑자기 눈을 떴다.영은은 베개 밑에 숨겨 둔 예비 핸드폰을 재빨리 꺼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전화가 연결되자 영은은 이를 악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세준 전무님, 미쳤어요?”수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요? 이제 불쌍한 척은 그만하시는 겁니까?]“방금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영은도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하남우가 벌써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겨우 큰 계획 하나를 성공시켰는데 세준이 나타나 흐름을 전부 망가뜨렸다.예전에 은희도 조작된 녹음으로 누명을 쓴 적이 없었다면, 방금 그 파일만 듣고 남우가 영은을 믿어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물론 세준이 재생한 녹음 자체는 진짜였다.[뭘 의심한다는 겁니까?]세준은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소영은 씨랑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아니면...]세준은 잠깐 말을 멈춘 뒤 낮게 덧붙였다. [소영은 씨 뱃속 아이가 형 아이가 아니었다는 걸 의심합니까?]영은은 온몸을 떨며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전무님!”[내가 뭐 잘못 말했습니까?]세준이 차갑게 웃었다. [소영은 씨, 우리가 같은 배를 탄 사이라는 걸 잊으신 건 아니겠죠?]“그런데 왜 고은희를 도와요?”영은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 저를 돕겠다고 약속했잖아요.”‘같은 편이라는 건 기억하고 있었네?’정작 세준은 이미 영은의 계획을 여러 번 방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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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며칠 동안 은희는 대부분 민영순 곁에 머물렀다. 민영순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겪었던 재미있는 일도 들려줬다.남우는 영은과 은희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을 챙기려 했지만, 지금은 민영순과 은희 둘 다 남우를 반기지 않았다.예전 같았으면 민영순이 남우에게 은희 곁을 지키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우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어 아예 병실 출입을 금지했다.민영순의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다. 운이 따랐는지 상태가 크게 호전되어 당장은 심장이식 수술까지 받지 않아도 됐다.그래도 지속적으로 상태를 지켜봐야 했고 큰 충격을 받는 일은 피해야 했다.은희에게도 다음 계획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살았던 옛집으로 가서 남아 있는 단서를 찾아볼 생각이었다.떠날 때 남우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더는 남우가 이 일에 끼어드는 걸 원하지 않았다.민영순의 신변 보호는 남우가 이미 빈틈없이 준비해 둔 상태라 그 부분만큼은 은희도 안심할 수 있었다....외할머니의 옛집은 아주 먼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금방 갈 거리도 아니었다.은희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고 싶어 결국 시외버스를 탔다.버스를 타고 이렇게 멀리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릴 때는 자주 이용했던 기억이 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의 옛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대문 앞 라탄 의자에 앉아 은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리고 은희는 그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끼익-소리를 내는 오래된 나무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 은희는 서재로 향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공간이었다.책장에는 여전히 온갖 책이 가득했다. 은희는 손끝으로 책등을 천천히 훑었다.전부 어린 시절 한 번씩 읽었던 책들이었다. 제목 하나하나를 바라볼 때마다 오래된 기억이 연달아 떠올랐다.그러다 손이 평범해 보이는 낡은 노트 한 권 앞에서 멈췄다.표지는 누렇게 바랬고 겉에는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이건...”어릴 때 아버지가 장난처럼 알려 줬던 방법이 떠오르자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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