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예요.”녹음 속 목소리는 분명 은희의 목소리였다.“요즘 몸은 좀 어떠세요?”“은희야...”민영순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다.“할미는 괜찮아. 그냥 우리 은희가 보고 싶구나. 언제 할미 보러 올 거야?”“저, 요즘 조금 바빠서요.”은희를 흉내 낸 목소리에 흐느낌이 묻어났다. “할머니, 드릴 말씀이 하나 있어요.”은희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자신은 이런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녹음 속 목소리는 너무나도 자신과 똑같았다.“무슨 일인데 그래. 급하게 말하지 말고, 울지 말고 천천히 해.”녹음 속 민영순은 계속 은희를 달래고 있었다.그 목소리를 듣는 은희는 이미 눈물을 걷잡을 수 없이 흘리고 있었다.“보미 이야기예요.”녹음 속 가짜 목소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보미가... 보미가 죽었어요.”“뭐?”민영순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니? 보미가 왜...”“할머니, 죄송해요...”“할머니가 보미를 아끼신 거 알아요. 그런데 저도 이제는 정말 못 버티겠어요. 남우 씨랑 이혼하고 싶어요.”“은희야...”민영순의 목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었다. “네가 어떻게...”뒤이어 여러 소리가 뒤엉켰다. 민영순이 쓰러진 듯한 소란이었다.그 뒤 가짜 은희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한마디를 남겼다. “할머니, 죄송해요.”통화는 그대로 끊어졌다.은희는 손에서 힘이 빠져서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온몸이 얼어붙은 듯 차가워졌다.“자, 이제 변명해 봐.”남우가 냉랭하게 물었다.은희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에서 남우를 올려다봤다. “저거 내가 아니야. 난 할머니한테 그런 전화를 드린 적 없어.”눈앞에 증거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고 은희 자신도 똑똑히 들었다. 그래도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이렇게 기록이 다 남아 있는데도 계속 아니라고 할 거야?”남우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조롱이 섞여 있었다.“고은희,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봤네.”‘아니야. 정말 내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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