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Chapter 201 - Chapter 210

301 Chapters

제201화

은희는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버텨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한계를 넘어선 뒤였는지도 몰랐다.무엇이 자신을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는지, 정작 은희 자신도 알지 못했다.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통증은 여전히 이어졌지만, 겉으로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이 모습만 봐서는 은희가 다쳤다고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세준이 쓴 수법은 잔인할 만큼 교활했다.그곳에서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세준은 은희를 풀어주었다.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은희에게는 그 이유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세준의 부하들은 은희를 대문 앞까지 데려다 놓고 돌아서려 했다. 직접 은희를 데려왔다는 건 자신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최근 남우가 세준을 찾느라 온갖 곳을 뒤지고 있었으니, 이들도 달아날 길은 없을 것이다.은희를 본 남우는 곧장 다가와 휘청이는 몸을 붙잡았다. 손끝에 닿은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은희야, 괜찮아?”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은희는 남은 힘을 쥐어짜 남우를 밀어냈다.‘그때 소영은을 택한 건 너였잖아. 이제 와서 나를 생각하는 척은 왜 하는데...’은희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도 가늘게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지옥 밑바닥에서 겨우 살아서 나온 사람 같았다. 지금은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은희의 상태를 본 남우도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채 은희를 안으려 했지만, 은희에게는 밀어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검사부터 받자.”겉으로만 보면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은희가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을 겪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은희의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끝내 힘이 풀리며 남우의 품으로 쓰러졌다.남우에게 기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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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겉으로 드러난 외상은 없어. 맥박이랑 혈압이 조금 낮긴 한데 정상 범위 안이야.”효찬은 검사를 이어 가며 낮게 말했다.남우의 미간이 더 깊게 좁혀졌다. “그런데 왜 쓰러졌어? 아까 상태는 단순히 기운이 없는 정도가 아니었어.”효찬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은희의 몸을 계속 살폈다.복부를 조심스럽게 눌러 보던 효찬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뭔가를 발견한 듯한 반응이었다.“몸이 많이 약해졌어. 심하게 놀란 데다 피로가 겹친 것 같아. 충분히 쉬면 차차 회복될 거야.”실제로 은희의 몸은 몹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뚜렷한 이상은 잡히지 않았다. 효찬조차 자신의 의학적 판단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그와 별개로, 효찬은 또 하나의 사실을 알아차렸다.은희의 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 듯했다. 그 사실은 효찬마저 놀라게 했다.효찬은 남우와 은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만큼은 남우에게 말할 수 없었다.괜히 남우가 다시 아이를 없애려 들지도 몰랐다. 남우의 강한 집착을 생각하면, 은희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남우는 효찬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냥 몸이 약해진 거라고? 아까 은희 상태가 그 정도로 보였어? 효찬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효찬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남우를 바라봤다. “난 의사야. 환자 상태를 숨길 이유 없어. 못 믿겠으면 병원으로 데려가서 정밀검사 받아.”남우도 효찬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효찬이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당장 생명에 위험이 있는 상태는 아닐 터였다.그런데 세준이 정말 은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건가. 지나치게 이상했다. 남우의 머릿속을 불길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혹시 하세준이랑 은희가 짜고 한 일인가?’ 남우는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억눌렀다.“그럼 언제쯤 깨어나?”“오래 안 걸릴 거야. 지금은 쉬는 게 먼저야.” 효찬은 왕진 가방을 정리하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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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남우는 바닥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차갑게 내려다봤다. 싸늘한 비웃음이 입가에 걸렸다.이미 남우에게 붙잡힌 이상 저들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없었다.“끝까지 말 안 하겠다는 거야?” 남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혀 깨물면 끝날 것 같아? 그렇게 쉽게 끝내 줄 생각 없어.”그중 한 명이 이를 악물더니 제 혀를 깨물려 했다.하지만 남우의 손이 더 빨랐다. 턱을 거칠게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이 가해졌다.“죽고 싶어? 마음대로 안 될 거야.” 남우의 눈빛이 잔혹하게 식었다. “은희를 건드렸으면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도 알아야지.”남자는 턱이 붙잡힌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나머지 사람들의 안색은 더 하얗게 질렸다. 몸도 제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다.남우는 손을 놓고 저들을 차례로 훑어본 뒤 부하에게 손짓했다. “가둬 둬. 천천히 캐내. 대신 죽게 두지는 마.”부하들은 곧바로 사람들을 끌고 사라졌다.세준이 이유도 없이 은희를 돌려보냈을 리 없었다. 분명 따로 꾸미고 있는 일이 있을 터였다.붙잡힌 사람들은 세준에게 목숨까지 내놓은 부하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남우는 조금이라도 단서를 얻어낼 생각이었다.저 사람들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우는 영은에게도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영은 역시 세준에게 붙잡혀 있었던 사람이었다.세준에게 납치됐다가 구출된 뒤로 영은의 상태는 계속 불안정했다. 안색은 초췌했고 작은 인기척에도 겁먹는 기색이 역력했다.영은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있다면 남우는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병실 문을 열자 영은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있다가 문 여는 소리에 고개를 급히 돌렸고, 남우를 알아본 눈가가 금세 젖었다.“남우야...” 영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직 납치됐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남우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 최대한 추궁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눌렀다.“물어볼 게 몇 개 있어.”영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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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분명 남우가 선택한 건 나였는데.’‘난 정말 남우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영은은 고개를 저으며 한층 약한 목소리로 답했다. “없었어. 같이 갇혀 있는 동안 은희 씨도 아무 말 안 했어.”그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 당시 방 안은 어두워 서로의 상태가 잘 보이지 않았고, 은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그 뒤에 은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영은도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었다.“다시 잘 생각해 봐.” 남우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배어 나왔다.영은은 몸을 흠칫 떨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나 정말 몰라. 그냥 너무 무서웠어. 하세준이... 너무 무서워서... 기억도 잘 안 나.”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하고 싶지 않은 쪽에 가까웠다.남우는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은희가 다친 건 알고 있어?”“은희 씨가 다쳤다고? 많이 다쳤어? 혹시 나 때문에... 나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도...”영은의 반응을 보면 은희가 다쳤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다. 적어도 영은이 구출되기 전까지 은희에게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는 뜻이었다.“다친 건 아니야. 몸이 좀 많이 쇠약해졌어.”영은이 자책하는 기색을 보이자 남우도 은희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했다.영은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빠르게 받아들였다.“그렇구나. 그럴 줄 알았어.”남우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럴 줄 알았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영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실수했다는 걸 알아차린 듯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그냥... 하세준이 은희 씨를 정말 해칠 것 같지는 않았어. 두 사람 사이가...”“두 사람 사이가 뭐?” 남우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식었다. 눈빛에도 살기가 어렸다.영은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한참 버티다 낮게 말했다. “말 못 해. 정말 말하면 안 돼.”남우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영은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말해. 누가 너 협박한 거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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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네가 충격받을까 봐 지금까지 말 안 한 거야.”영은은 서러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힘없는 척 머리를 짚었다.“괜찮아. 알고 있는 거 다 말해.”남우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눈빛에 영은은 겁먹은 듯 목을 움츠렸지만, 곧 억울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낮게 말했다.“네가 내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알아. 그래도 거짓말 아니야. 내가 구출됐을 때는 은희 씨가 이미 묶인 데서 풀려나 있었어. 하세준이 은희 씨한테 대하는 태도도... 다른 사람하고 완전히 달랐어.”다른 사람과 달랐다는 말에 남우의 가슴이 깊게 조여 왔다.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손가락 마디가 소리를 낼 정도였지만 남우는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어떻게 달랐는데?”영은은 망설이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남우의 눈을 보고는 결국 말을 꺼냈다.“하세준이 은희 씨한테 앞으로 자기 옆에서 그 집 안주인처럼 지내라고 했어. 은희 씨가 자기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도 했고. 나도 너무 무서워서 더 듣지는 못하고 바로 나왔어.”남우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영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 꼭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가엾은 표정을 지었다.“정말 잘못 들은 거 아니야?”남우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미세하게 떨렸다.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내가 너와 은희 씨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이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 알아. 그래도 정말 거짓말 아니야. 난 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있는 게 싫었을 뿐이야. 은희 씨는... 어쩌면 예전부터 세준이랑 연락하고 있었을지도 몰라.”그 말은 남우가 마음 한쪽에서 품고 있던 의심을 그대로 건드렸다.은희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온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그렇다면 은희와 세준 사이에 남우가 모르는 관계가 있다는 뜻이었다.은희가 그토록 단호하게 이혼을 요구했던 일에도 세준이 적지 않게 관여했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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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고개를 들어 남우의 표정을 바라보던 은희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이미 이혼까지 끝난 사이였다. 이제 와서 저런 얼굴로 찾아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남우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은희를 내려다봤다. 목소리도 차갑게 굳어 있었다. “깼어?”은희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대꾸할 마음도 없었다. 몸만 멀쩡했다면 당장 병실 밖으로 내쫓고 싶었다.“물어볼 게 있어.”남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은희는 남우의 기분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지금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 아닌가? 네가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은희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남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식으로 날뛰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둘은 이미 이혼한,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너랑 하세준, 대체 무슨 사이야?”세준과 무슨 사이냐는 말을 듣자 은희는 힘없이 웃었다. 쇠약한 몸을 억지로 버티며 입을 열었다.“내가 하세준이랑 무슨 사이든 이제 너랑 상관없어. 우리 이혼한 거 잊었어?”세준과 자신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납치해 가둔 것도 모자라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고통까지 줬다.그런데 남우는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묻고 있었다.어이가 없었다. 너무 뻔한 사실을 왜 남우만 계속 알아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은희는 남우와 이혼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제 남우가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고은희, 대답해!”남우가 한 걸음 다가와 은희의 턱을 잡고 억지로 자신을 보게 했다.그 행동에 은희는 바로 화가 치밀었다. 남은 힘을 모아 남우의 손을 세게 쳐 냈다.“한 번만 더 나한테 함부로 손대면 경찰 부를 거야.”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몸도 심하게 약해진 상태였다. 남우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지금 은희의 몸은 조금만 무리해도 흔들릴 정도로 불안정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복도에 있던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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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의료진이 곧바로 병실로 들어와 은희에게 응급 처치를 했다.감정은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몸은 여전히 쇠약했다. 담당 의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병실 밖에 있는 남우에게 엄하게 말했다.“고은희 씨는 지금 몸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면 회복에도 좋지 않습니다.”“당분간 자극을 주는 일은 피하셔야 합니다. 계속 이런 일이 생기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남우는 병실 밖에 서서 굳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은희가 피를 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후회도 됐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알겠습니다.”결국 남우는 효찬에게 다시 연락했다. 병실 앞에 서 있는 남우를 본 효찬은 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은희 씨는 좀 어때?”남우는 대답 대신 효찬을 한 번 바라본 뒤 낮게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효찬도 남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뭔데?”“은희랑 하세준, 둘이 진짜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효찬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남우를 봤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은희 씨가 하세준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너 뭔가 잘못 짚은 거 아니야?”“직접 납치돼서 저 지경까지 됐잖아. 둘 사이에 뭐가 있었다면 저렇게 될 리가 없지.”보통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우는 은희가 겉으로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다는 사실과 영은의 말을 떠올리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잘못 짚었다고? 영은이 직접 말했어. 하세준이 은희만 특별하게 대했고, 자기 집 안주인처럼 옆에 있으라고까지 했다고. 그래도 오해야?”효찬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세준이 은희에게 자신의 곁에서 안주인처럼 지내라고 했다는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렇다면 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랬던 하세준은 왜 은희를 다시 돌려보냈을까?의문은 남았지만 효찬은 남우의 말 속에서 한 가지를 먼저 짚었다. 그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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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남우가 생각을 바꾸는 기색을 보이자 효찬은 속으로 안도했다.그래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다.은희가 가졌던 아이와 세준의 관계였다. 효찬이 아는 은희라면 남우가 생각하는 식으로 행동할 사람은 아니었다.효찬이 보기에는 은희가 아직 남우를 완전히 놓지 못한 흔적도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 어긋났을 뿐이었다.그래서 효찬은 아이가 남우의 아이일 가능성도 꽤 높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남우는 그 아이가 세준의 아이라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그 아이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남우의 아이일 수도 있다고 단정해 말해 봐야 남우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었다.그래서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그래도 효찬은 조심스럽게 반응을 떠보기로 했다.“그 아이가 하세준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사실 남우도 한 번쯤은 그런 가능성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다만 끝까지 생각해 볼 자신이 없었다. “무슨 뜻이야?”놀라기보다는 불쾌해하는 반응에 가까웠다. 효찬은 남우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냥 내 생각이야. 그 아이가 네 아이였을 수도 있잖아. 내가 아는 은희 씨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도 있었다. 당시 은희가 직접 세준의 아이라고 말했었다. 정말 남우의 아이였다면 왜 끝까지 이혼하겠다고 했는지도 설명되지 않았다.“확실해?”“확실한 건 아니야. 그냥 가능성을 말하는 거야. 남우야, 네가 은희 씨를 정말 신경 쓴다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지 말고 한 번은 제대로 생각해 봐.”남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병실 안의 은희만 바라봤다.“내가 직접 확인할 거야.”효찬은 남우가 어떤 마음인지 어느 정도 짐작했다. 남우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였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아니기를 바랐다.자신이 직접 죽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효찬 역시 아이의 친부가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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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그 말을 들은 이섭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섭은 최근 회사에 문제가 잇달아 생겨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그래서 은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이섭이 알고 있기로는 은희가 하씨 집안 쪽으로 돌아가 몸을 돌보고 있는 줄 알았다.하씨 집안 사람들은 은희의 아이가 아직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곳이라면 외부의 위협에서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다.회사 쪽에도 여러 일이 있었다. 은희의 표절 의혹 때문에 떨어졌던 주가도 이제는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당시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다. 한쪽 주장만 그대로 믿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남우의 도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송화와 은희 중 누가 누구의 곡을 베꼈는지는 대중에게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적어도 밖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덕분에 강씨 집안 계열사 주가도 더 내려가지 않았고 오히려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지금 어디예요?]이섭은 은희가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억을 지우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선택인지도 알고 있었다.사람은 괴로운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안고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 그런데 스스로 기억을 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라면,그건 지금의 고통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뜻이었다.“시립병원에 있어요.”병원 이름을 들은 이섭은 망설이지 않고 은희의 부탁을 받아들였다.둘 사이에는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섭도 더 묻지 않았고, 은희도 더 말하지 않았다....통화를 끝낸 은희는 텅 빈 눈으로 천장만 바라봤다.겪은 일이 너무 많았다. 이제는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이섭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결국 마지막으로 한 번 믿어 보는 일이었다. 그 선택마저 틀린다면 자신의 인생은 끝까지 이런 식일 것만 같았다.도망치는 게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은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그 기억들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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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못 갑니다.”그 말을 듣자 은희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뻔했다.“하남우, 계속 막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도 부를 거야.”은희의 태도는 단호했다. 남우는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신고한다거나 변호사를 부르겠다는 말 자체는 남우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은희의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더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조금 전 간호사가 한 말도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남우는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은희도 남우를 외면한 채 이섭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이섭은 가까이에서 은희를 보고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정신적으로 심하게 지친 상태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의학 지식이 없어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일단 내 별장으로 가요. 내 동생이 요즘 시간이 좀 있으니까 은희 씨 곁에 있어 달라고 할게요.”“기억을 지우는 시술은 사흘만 기다려 줘요. 그 안에 꼭 준비해 놓을게요.”‘사흘...’은희는 그 숫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평범한 사람에게 사흘은 짧을 수 있었지만, 지금 은희에게 하루는 지나치게 길었다.사흘이 마치 삼 년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네. 감사합니다.”은희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이섭은 어두워진 표정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었다.이섭도 가능한 한 서둘러 볼 생각이었다. 의사와 상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고, 시술 준비도 해야 했다.“은희 씨, 지금 많이 힘들어서 기억을 지우고 싶은 건 알아요.”“그래도 시술 전에 영상 하나 남겨 두는 게 좋아요. 나중에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이라도 직접 말해 두면 돼요.”“물론 나를 믿는다면, 나중에 은희 씨가 알고 싶을 때 내가 전부 말해 줄 수도 있고요.”이섭은 사실 두 번째 방법을 권하고 싶었다.다만 기억을 잃은 은희가 나중에도 자신을 믿어 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럼 이섭 씨가 나중에 말해 줘요.”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 영상으로 남기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니 또 마음이 흔들렸다.“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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