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Bab 211 - Bab 220

298 Bab

제211화

그 가능성을 떠올린 이섭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은희처럼 버티는 힘이 강한 사람이 저 정도로 무너졌다는 사실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래도 곧 진행할 시술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섭은 은희의 기억을 엿볼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나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기억 제거 과정에서는 뇌파 반응을 통해, 은희가 겪었던 기억을 영상처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당사자에게는 몹시 괴로운 과정이지만,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이기도 했다.그 무렵 은희는 별장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은 계속 아랫배 위에 머물러 있었다.뱃속 아이는 은희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한때 어디서든 시선을 받던 은희가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자 이섭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따뜻하게 데운 우유 한 잔을 들고 다가간 이섭이 말했다. “의사한테 연락됐어요. 내일 저녁이면 시술할 수 있다고 했어요.”은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 눈가가 젖고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결국 참아 왔던 눈물이 터졌다.“감사해요, 이섭 씨.”이렇게 제대로 울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제 정말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괜찮아요, 은희 씨. 이제 그 기억들이 계속 은희 씨를 괴롭히지는 못할 거예요.”“몸이 회복되면 다시 일도 시작하면 돼요. 손도 재활할 수 있게 전문 치료를 알아볼게요.”사람이 절망에 빠졌을 때는 앞으로 붙잡고 갈 희망이 필요했다.이섭이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은희에게 다시 바라볼 곳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효과는 있었다. 은희의 표정이 아주 조금이나마 살아났다.“응. 이섭 씨만 괜찮으면, 앞으로도 곡 작업 계속 도와드릴 수 있어요.”그 말을 들은 이섭의 눈이 밝아졌다. 은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이섭에게는 그보다 반가운 말이 없었다.“나는 당연히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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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그 부작용에는...”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은희가 말을 끊었다.“괜찮아요. 어떤 일이 생겨도 괜찮아요.”다가올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지금 계속되고 있는 고통을 견디는 일보다는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다.“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설명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반응만 봐도 은희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에게는 이후의 위험까지 따질 여유가 남지 않는 법이었다.“준비됐습니다. 은희 씨, 저를 따라오세요.”노레드의 집에는 별도의 의료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일반적인 별장이라기보다 개인 진료시설에 가까운 구조였다.1층은 생활 공간, 2층은 휴식과 취미를 위한 공간이었고, 3층 전체가 진료실과 시술실로 꾸며져 있었다.이섭의 설명에 따르면 노레드에게 진료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요즘은 공식 진료도 거의 줄인 상태라고 했다.노레드가 직접 시술을 맡고, 개인 공간까지 환자를 들이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먼저 약을 주입할 겁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다음 과정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지우려는 기억은 한 번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겪었던 고통을 다시 느끼실 수도 있어요.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기억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정확히 분리해 제거할 수도 없었다.그 말을 듣자 은희의 안색이 더 하얘졌다. 그래도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네. 할 수 있어요.”사실 굳이 다시 꺼내지 않아도 그 기억들은 수시로 은희를 덮쳤다.다만 늘 조각난 장면들뿐이었다.그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알겠습니다. 이쪽에 누워 주세요.”은희는 굳은 몸으로 시술대에 누웠다. 노레드는 여러 센서 선이 연결된 장비를 은희의 머리에 고정했다.은희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삿바늘이 피부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약물이 들어가자 머리가 서서히 멍해졌다. 곧 여러 장면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기억 전체를 다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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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이섭은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나도 남우한테 말할 생각 없어.”이섭이 보기에는 남우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 은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그건 이섭이 원하는 결과도 아니었고, 은희 역시 바라지 않을 게 분명했다.처음 나타난 행복했던 기억들에서는 은희의 반응이 비교적 잔잔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괴로운 장면들도 하나씩 늘어났다.은희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이후 이어진 일 중에는 이섭도 이미 아는 사건들이 많았다.은희는 분명 괴로워했지만 감정 반응이 폭발적으로 커지지는 않았다.기억이 납치 사건으로 넘어가고, 남우가 영은을 택했던 장면까지 나왔는데도 은희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이섭은 확신했다.지금 은희를 이 정도까지 무너뜨린 원인은 그 일이 아니었다.노레드 역시 수많은 환자와 극단적인 사례를 봐 온 사람이었지만, 은희가 살아온 장면들을 보며 결국 미간을 좁혔다.“은희 씨 정말 험한 일을 많이 겪었네.”이섭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은희가 지나온 시간은 지나치게 가혹했다.적어도 이섭의 생각에는 남우가 은희 곁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은희에게는 남우보다 더 나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사실 이섭이 노레드에게 은희를 맡기면서 아주 작게나마 사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노레드가 은희의 삶을 직접 보고 나면, 은희에게 마음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노레드는 성격이 까다롭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걸 어려워했지만, 한 번 마음을 준 상대에게는 누구보다 잘할 사람이었다.“응. 뒤에 나올 내용은 나도 보기 힘들 것 같아.”지금까지 나온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삶이었다.그래도 현재의 은희를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앞부분에만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노레드도 계속 반응을 살폈다. 앞선 경험들이 은희의 정신을 약하게 만들었을 수는 있었다.하지만 지금까지의 뇌파와 감정 반응만 보면, 은희가 현재처럼 무너질 정도의 원인으로는 부족했다.그러다 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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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하지만 노레드는 개인적으로 그런 증오까지 내려놓는 편이 은희에게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정말 고마워, 노레드. 이렇게 세심하게 봐 줄 줄은 몰랐네.”이섭도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며칠 동안 은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이섭에게도 편하지 않았다.“내가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될까? 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데, 은희 씨가 깨어날 때까지만 조금 돌봐 줄 수 있어? 담당 의사가 곁에 있는 편이 회복에도 나을 것 같아.”사실 이섭은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해 볼 생각도 조금은 갖고 있었다.그래서 반응을 보려고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노레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이섭이었다.남 부탁을 쉽게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섭도 큰 기대 없이 던진 말이었다.“그래. 요즘은 별로 안 바빠.”이섭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노레드를 다시 바라봤다.“진짜? 네가 이런 부탁을 받아 준다고?”노레드는 더 대꾸하지 않고 시술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 반응만으로도 이섭은 묘하게 만족스러웠다.“그럼 부탁한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 볼게.”이섭이 서둘러 나선 이유는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마음도 있었고, 실제로 회사에 밀린 일이 많은 탓도 있었다.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웬만한 부탁은 거절하는 노레드가 받아 준 게 너무 드문 일이어서,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노레드는 여러 문화권의 배경을 가진 의학 천재였다. 지금 이곳에서 활동한 기간보다 외부 의료기관과 연구 환경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이섭이 알고 지내는 동안 특별히 가까운 사람을 둔 적도 거의 없었다.예전에 연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왜 헤어졌는지는 노레드가 말하지 않았고, 이섭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온 것도 당분간 쉬기 위해서였다. 노레드에게 직접 진료받는 건 어디서든 쉽지 않은 일이었다.“이섭아. 은희 씨가 조사하던 일, 배후가 강씨 집안 쪽 맞지?”문 앞까지 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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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영상 속에는 은희가 이 집에 찾아와 노레드와 상담하던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남아 있었다.노레드는 은희가 왜 찾아왔는지도 설명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었고, 그 때문에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다만 은희가 정확히 어떤 일을 겪었는지까지는 말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간단히 알려 주었다.“제가 정말 그랬군요.”영상을 보면 분명 본인이 직접 요청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은희에게는 그와 관련된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사실이 오히려 두려움을 키웠다. 노레드는 은희의 표정만으로도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정신건강 분야의 진료 경험이 있는 만큼 환자의 감정 변화를 읽는 데 익숙했다.“영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시술 전에 은희 씨가 직접 남겨 둔 겁니다. 이것도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두 번째 영상에는 기억을 잃은 뒤에도 알아야 할 기본 정보만 정리돼 있었다. 화면 속 사람은 분명 은희 자신이었다.영상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은 은희였고 피아노를 좋아했다. 곡을 만들고 악보를 작업하는 일을 해 왔으며, 이섭과도 업무상 여러 번 협업했다. 이섭은 곡 제작을 맡기는 의뢰인이었고, 노레드 역시 이섭이 연결해 준 의사라고 했다.영상 속 은희는 자신이 겪은 큰 고통의 원인이 남우라고 말했다. 남우 때문에 아이를 잃었고,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까지 해를 끼치려 했다고 남겨 두었다.표정과 말투만 봐도 영상 속 은희가 남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은희에게 남우는 다시 가까이해서는 안 될 사람처럼 기록돼 있었다.“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은희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오래 걸리지 않아 대략적인 사정을 이해했다.사실 영상 원본에는 다른 내용도 있었다. 은희는 강씨 집안이 자신의 원수일 가능성이 높고, 그중에서도 강한철을 가장 의심한다고 말해 두었다. 고씨 집안에 벌어진 일과 연결돼 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노레드와 이섭은 상의 끝에 그 부분을 영상에서 제외했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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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가끔은 이유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정작 슬프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고,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듯한 느낌만 남았다.“이게 그 시술 후유증인가...”은희는 혼잣말하며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을 닦았다.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몸이 반응한다는 것만으로, 과거의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한편 은희는 고씨 집안의 사업에도 다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기억의 일부를 잃기는 했지만, 예전에 남겨 둔 영상을 통해 자신에게도 운영하던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문제는 관련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은희는 회사 자료를 하나씩 읽어 현재 경영상태를 파악했고, 임원들과도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은희가 자리를 비운 동안 고씨 집안의 사업은 일부 정체돼 있었지만, 다행히 큰 타격까지 입지는 않았다.그 사실에 은희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누군가 뒤에서 회사를 지탱해 준 흔적도 분명했다. 다만 누가 도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은희는 예전처럼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통유리 앞에 서서 따뜻한 커피가 든 머그잔을 들고,창밖으로 이어진 빌딩과 복잡한 도심 풍경을 내려다봤다.다시 일을 시작한 뒤 하루는 바쁘게 흘러갔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는 일도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다.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회사 입구에 낯선 남자가 서서 은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시선이 지나치게 집요하고 날카로워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래도 은희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하 대표님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직원의 말에 은희는 잠깐 멈칫했다.‘하 대표?’현재 은희의 기억 속에 그 직함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영상에서 본 남우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아까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남우였던 모양이었다.“안 만난다고 전해줘.” 은희는 망설임 없이 차분하게 답했다.[그런데 대표님... 하 대표님이 꼭 뵙겠다고 하십니다. 대표님이 만나 주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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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은희는 핸드폰을 세게 쥐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 희게 질릴 정도였다.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 남우를 기억하지 못했다.지금 남아 있는 기억만 놓고 보면 완전히 낯선 사람이었다. 다만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니, 눈앞의 남자가 영상 속에서 말했던 남우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해졌다.은희는 남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더 이상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다시 말할게. 난 그쪽을 몰라. 계속 이러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손가락은 이미 통화 버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실제로 신고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남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곧 은희의 손목을 잡았다. 세게 쥔 건 아니었지만 전화하지 못 하게 막기에는 충분했다.“은희야, 이러지 마.”남우는 감정을 억누른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냥 하세준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싶어. 지금 네 상태가... 걱정돼.”손목이 붙잡히자 은희의 몸에서 즉각 거부 반응이 올라왔다.팔을 빼내려 했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다.“놔!”은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하세준이 누군데? 난 그런 사람도 몰라! 나한테 더 가까이 오지 마!”남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은희야, 네가 나 싫어하는 건 알아.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까지 하지 마.”남우는 은희가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은희도 굳이 사실을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영상 속 자신은 남우를 몹시 싫어했다. 그렇다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까지 남우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기억 안 나...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고!” 은희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눈가도 붉어졌다. “놔줘!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아!”남우는 은희가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자 과거의 끔찍한 일을 다시 떠올린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미안해. 몰아붙이려고 한 건 아니야.”손목이 풀리자 은희는 바로 몇 걸음 뒤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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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그제야 남우는 노레드가 한 말 중 한 부분을 다시 떠올렸다. 이 사람은 본인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소개했다. ‘정말 은희 정신 상태에 문제가 생긴 건가?’“알겠습니다. 나가죠.” 남우의 목소리에는 눌린 감정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은희의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고집부려서 은희를 더 자극할 수도 없어 결국 돌아섰다.문이 닫히고 나자 사무실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은희의 몸은 아직 가늘게 떨렸고 호흡도 여전히 불규칙했다.은희는 다시 의자에 앉아 책상 모서리를 꽉 잡았다. 어떻게든 자신을 진정시키려 했다.노레드가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희 씨, 괜찮으십니까?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은희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노레드가 와 준 게 그저 고마웠다.“감사합니다, 박사님. 제때 와 주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야 했을지 몰랐을 거예요.”노레드는 옅게 웃으며 은희를 안심시켰다.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은희 씨는 지금 쉬면서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불안과 긴장이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요. 괜찮으시면 잠깐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가라앉혀 보죠.”은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 부탁드릴게요.”“지금은 저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듭니까?”노레드의 질문에 은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정말 기억에는 없는 사람이었다.그런데도 몸은 먼저 무서워했다. 그 반응만으로 과거에 남우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네. 무서워요.”은희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괜찮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보죠. 숨부터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봅시다.”노레드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시술 자체는 성공했다. 그런데 남우라는 남자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은희는 반사적으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괜찮아요. 사실 괴롭다기보다는... 그냥 저 사람이 무서운 쪽에 가까워요.”노레드는 은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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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은희는 사무실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했다.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남우가 갑자기 찾아온 일 때문에 겨우 잡혀가던 균형이 흔들렸다.더 화가 나는 건 회사 직원 누군가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남우를 안으로 들였다는 사실이었다.은희는 내선 전화를 눌렀다. “보안팀 책임자 바로 올라오라고 전해.”얼마 지나지 않아 보안팀 책임자가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왔다.은희 앞에 선 책임자의 이마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이미 일이 커졌다는 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대표님, 부르셨습니까?” 목소리도 긴장으로 조금 떨렸다.은희가 고개를 들었다.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오늘 하남우를 안으로 들인 사람이 누구죠?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대표실에 들어오게 하지 말라고 분명히 지시했고,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건가?”책임자가 고개를 숙였다. 말투가 다급해졌다. “대표님, 저희 실수입니다. 오늘 근무한 보안 직원들이... 하 대표님을 대표님의 배우자로 알고 있어서 막지 않았다고 합니다.”“배우자?” 은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단어 자체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난 그 사람과 이미 이혼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책임자는 더 당황해 서둘러 설명했다. “대표님, 몇몇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두 분이 실제로는 이혼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보안 직원들이 그 말을 듣고...”은희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 “오늘 근무한 보안 직원들 전부 올라오라고 해. 잘못된 소문 퍼뜨린 직원들도 같이. 누가 회사에서 멋대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지 직접 확인해야겠어.”책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나갔다.이섭에게 들은 바로는 이혼 사실은 이미 외부에도 알려져 있었다. 기억을 잃기 전 은희 역시 회사에 남우의 출입을 허용하지 말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그런데도 직원들이 임의로 들여보냈고, 핑계까지 터무니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보안 직원 몇 명과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은희 앞에 섰지만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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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은희는 그 자리에서 바로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누르고 먼저 책임을 묻기로 했다.“본인들 판단으로 잘못된 말을 믿고 규정을 어겼다면, 그 행동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오늘부터 이번 사건 관련 직원들은 일주일 동안 업무에서 배제할 겁니다. 경위서도 제출하세요.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그때는 더 무겁게 처리할 겁니다.”직원들은 은희가 바로 조치를 내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얼굴에 불만이 드러났다.그중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표님, 저희가 이 회사에서 몇 년을 일했는데요?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은희는 차갑게 웃었다. 지시를 어긴 것도 모자라 대표 앞에서 이런 태도까지 보인다는 게 황당했다.“규정은 근속연수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고, 오래 일한 직원이라면 오히려 먼저 지키는 게 맞죠. 앞장서서 규정을 무너뜨리라고 경력을 인정해 주는 게 아니니까.”은희의 말에 더는 맞서지 못한 직원들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사무실을 나갔다.모두 나가고 나서 은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번 일은 단순한 지시 불이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오래 일한 직원들이 이렇게 대놓고 회사 규정을 무시하려면 뒤에서 힘을 실어 주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은희는 다시 내선 전화를 눌렀다. “재무팀이랑 감사팀 책임자 바로 올라오라고 해.”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부서 책임자가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찾으셨습니까?”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회계 내역에 이상한 부분이 있었는지 다시 확인해 줘. 특히 방금 내려간 직원들이 맡았던 사업이랑 계약 건은 전부 꼼꼼하게 봐.”감사팀 책임자가 바로 답했다. “네, 대표님. 바로 확인하겠습니다.”두 사람이 나가려 하자 은희가 덧붙였다.“이 일은 밖으로 새지 않게 해. 추측 말고 확실한 자료가 필요해.”두 사람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갔다.며칠 뒤 감사팀 책임자가 두꺼운 조사 보고서를 들고 은희를 찾아왔다.표정이 무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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