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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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어린 게 겁도 없군. 그 옛날 일을 캐겠다고 여기까지 오다니...”“10억 원? 거기에 몇 곱절을 내놔도 못 사는 자료야.”그사이 은희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움직이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은희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바닥을 긁는 손톱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 은희가 충혈된 눈으로 노인을 노려봤다.그 모습을 본 노인은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들었다. 약이 그렇게 퍼졌는데도 은희는 여전히 저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노인은 서둘러 다가와 다시 은희를 붙잡으려 했다.은희는 이를 악물고 노인의 팔을 세게 깨물었다.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은희를 거칠게 떼어 냈다.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은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달렸다. 두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여기서 나가야 해!’노인은 곧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연기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쓰러진 은희를 보자 다른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게다가 방금 팔까지 물린 탓에 화가 난 노인은 원래 기다리기로 한 사람을 기다릴 생각도 없어졌다. 멋대로 은희에게 손을 대려 했다.욕설을 내뱉은 노인이 뒤쫓아왔다.노인의 손이 은희에게 닿으려던 때, 누군가가 문이 거칠게 걷어차서 열었다.남우였다.눈앞의 광경을 본 남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쉰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은희를 품에 안아 올렸다.“은희야!”남우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온몸에서 위압감이 번졌다.남우를 알아본 노인은 새파랗게 질렸다. 다리까지 가늘게 떨렸다.이 중요한 때에 누군가 들이닥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 사람이 하필 남우일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남우가 노인을 차갑게 바라봤다. 검게 가라앉은 눈에는 당장 무슨 짓이라도 할 듯한 살기가 맺혀 있었다.“말해. 누가 시켰어?”노인은 겁에 질려 입술을 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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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남우는 은희를 안고 빠르게 별장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은희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오는 길에 이미 효찬에게 연락해 둔 상태였다. 은희의 상태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하지만 은희의 뺨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의식은 더 흐려지고 있었다.은희는 초점이 흐린 눈으로 남우를 바라봤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나 좀 안아 줘...”남우의 가슴이 세게 조여 왔다. 지금까지 은희는 자신이 다가가기만 해도 밀어내고 경계했다.먼저 안아 달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우는 더는 참지 못하고 팔을 뻗어 은희를 품에 깊이 끌어안았다.그때 효찬이 다급한 걸음으로 별장에 도착했다.문을 열자마자 묘한 분위기를 느낀 효찬은 자신이 들어올 때가 아닌가 싶어 멈칫했다.문 앞에 어정쩡하게 선 채 들어가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잠시 뒤 남우가 위층에서 내려오며 차갑게 쏘아봤다. “거기서 뭐 해? 빨리 올라와.”‘둘이 이미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런데 나더러 뭘 더 확인하라는 거지?’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효찬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은희의 상태를 확인한 뒤 약효를 낮추는 처치를 시작했다.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급한 처치를 마친 뒤에는 몸 상태에 맞춰 좀 더 세심한 치료가 필요했다.남우는 내내 은희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한 번도 놓지 않았다.굳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한참 뒤 은희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됐고, 깊이 잠들었다.은희의 호흡이 편안해진 것을 확인한 남우가 효찬에게 말했다. “넌 먼저 가. 암시장에 있던 놈들 신원 좀 캐 줘. 특히 그 노인... 뒤에서 누가 시킨 건지 알아봐.”“알았어.”효찬은 답한 뒤 자리를 떠났다.방에는 잠든 은희와 남우만 남았다.남우는 침대 곁에 앉아 은희의 손을 가만히 쥔 채 지난 일을 떠올렸다.은희가 혼자 밖에 나갔다가 위험한 일을 당한 뒤부터 남우는 사람을 붙여 몰래 지켜보게 했다.이번에 은희가 혼자 암시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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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세준은 몸을 돌려 감시실 문을 걷어찼다. 노인이 숨어 있는 곳으로 거침없이 향했다.노인은 아직 구석에 숨어 몸을 떨고 있었다. 자신이 큰 사고를 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준도 남우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세준이 나타나자 노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빌었다.“전, 전... 전무님! 살려주십시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가서...”세준은 변명조차 듣지 않고 노인을 걷어찼다.“이 멍청한 늙은이야! 누가 너더러 먼저 손대라고 했어? 내 일을 다 망쳐 놓은 거 알아, 몰라!”노인은 바닥을 구르면서도 반항하지 못했다.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살려 달라고 빌 뿐이었다.“대체 누가 진짜로 은희 씨한테 손대도 된댔어? 연기만 하라고 분명히 말했잖아!”생각할수록 화가 치민 세준은 노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내 일을 망치면 어떻게 되는지 오늘 똑똑히 알아둬.”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세준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거친 숨을 몰아쉬던 세준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병원으로 데려가. 이렇게 쉽게 죽게 두지 마. 아직 할 게 남았으니까.”부하들은 서둘러 노인을 부축해 암시장을 떠났다.방에 혼자 남은 세준은 천천히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눈빛은 음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 안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벽에 집어 던졌다.탁자와 의자가 뒤집혔고 유리 장식품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왜!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세준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이미 다친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상처가 벌어졌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방 안이 완전히 엉망이 된 뒤에야 세준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남우가 은희를 데려온 별장에서.은희는 눈을 뜨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방을 둘러봤지만 어떻게 이곳으로 돌아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떠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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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은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흐릿한 기억을 하나씩 되짚었다.남우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귀 끝까지 열이 올라 민망함에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가능하다면 어제 일을 전부 되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마음을 겨우 추스른 뒤에 은희는 옷을 제대로 챙겨 입었다.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렸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남우가 재빨리 팔을 뻗어 은희를 붙잡고 억울하다는 듯 설명했다.“이건 진짜 나 때문이 아니야. 약이 너무 독해서 아직 부작용이 남은 거야.”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는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남우의 설명이 사실이기를 바랐다.은희는 짧게 대답하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부축하는 손을 떼어 내고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지만 다리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남우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답답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암시장 같은 데는 다시 가지 마. 그렇게 위험한 데를 목숨 걸고 혼자 그렇게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은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내 남편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도움이 됐으면 내가 혼자 갔겠어?’물론 입 밖으로는 절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남우를 자기 남편이라고 인정하는 것부터 싫었다.은희는 입술을 깨물고 고집스럽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신경 쓰지 마.”남우의 미간이 불쾌한 듯 구겨졌다.“고집 좀 그만 부려. 이번에 내가 제때 안 갔으면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 알아?”진지한 눈빛에 은희도 더는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기분은 상했지만 남우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알았다.입술을 삐죽인 채 작게 중얼거렸다. “알았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잖아.”‘근데 왜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신경 쓰는 거지?’‘암시장에는 어쩌다 그렇게 때맞춰 나타난 걸까?’‘설마 일부러 따라온 건가?’은희는 그 문제를 오래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마음 한편에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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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은희는 힘껏 팔을 빼려 했지만 남우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놔!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아.”‘자기 상태를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그 말을 떠올리니 남우는 다시 화가 났다. 암시장에서는 사람을 다룰 때 수단과 정도를 가리지 않았다.이번 일로 은희의 몸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효찬도 은희가 전부터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고 몸과 마음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왜, 나가자마자 또 세준이 만나려고?”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만 봐도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잘 들어. 이번 암시장 일은 세준이 직접 꾸민 판일 가능성이 커. 네가 나온 뒤에 세준이가 암시장에 들어갔어.”은희의 움직임이 멎었다. ‘근데... 그 사람이 왜 거기에 갔지?’하지만 곧바로 받아쳤다. “증거부터 가져와. 말만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암시장에 갔다고 뭐가 달라져? 너도 갔잖아.”남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화를 눌렀다. 목소리가 싸늘했다.“난 널 구하러 간 거야. 그게 같아? 세준이는 절대 좋은 의도로 간 게 아니야.”더 설명해 봐야 은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경고하는데 네가 또 세준이 만나면 나도 방법 안 가려. 아예 여기서 못 나가게 할 수도 있어.”은희는 눈을 크게 떴다. ‘또 나를 가둬 둘 거야?’“네가 감히 그런다고?”남우가 한 걸음씩 거리를 좁혔다.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또 위험해지는 꼴 못 봐. 세준이한테 이용당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고. 내가 진짜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한번 해 보든가.”은희는 화가 나 온몸이 떨렸다. 입술을 세게 깨물며 겨우 감정을 눌렀다.“좋아. 그럼 너도 앞으로 소영은 만나지 마. 그러면 나도 하세준 안 만날게.”‘자기는 마음대로 소영은을 만나면서 왜 나한테만 하세준을 만나지 말라는 건데?’세준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남우에게 의문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그날 암시장에 간 건 세준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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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남우가 떠난 뒤, 은희는 곧바로 이 집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좋지 않았지만 불편함을 참고 방안을 오가며 계속 생각했다.며칠 동안 지켜본 끝에 경비가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가장 느슨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었다.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 시간대를 이용해 빠져나가야 했다.며칠 뒤 마침 조건이 맞는 날이 찾아왔다. 은희는 작은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움직였다.창문을 타고 밖으로 내려온 뒤 몸을 낮춘 채 담장 쪽으로 발소리를 죽여 이동했다.예상대로 경비들은 졸음에 취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높은 담장 앞에 선 은희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벽을 타고 올라갔다.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한 끝에 간신히 담장 위까지 올라섰다.하지만 반대편으로 내려가려던 때 발이 미끄러지며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아...!”은희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다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에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였다.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꽉 물고 아픈 다리를 끌며 절뚝거리기 시작했다.안색이 창백해졌다. 지금 다리를 움직이면 안 되고 쉬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를 탈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그런데 멀리 가지도 못한 채 익숙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검은 세단 한 대가 다가오며 헤드라이트를 비췄다. 강한 빛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안 돼... 왜...”은희가 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남우의 차였다. 그가 떠난 뒤에도 감시 화면을 통해 은희의 움직임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은희가 몰래 탈출을 준비한다는 사실도 진작 알아차렸다.하지만 사냥감을 잡으려면 때로는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부터 주는 편이 더 확실했다.자유를 얻었다고 믿는 바로 그때 직접 길을 막아 버릴 생각이었다.이번에는 단단히 버릇을 고쳐야 했다.차가 은희 앞에 멈췄다. 남우는 엉망이 된 은희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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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은희의 이름을 듣자 효찬도 목소리에서 장난기를 지웠다.[알았어. 바로 갈게.]얼마 지나지 않아 효찬이 별장에 도착했다.방에 들어온 효찬은 고통스러워하는 은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은희 씨, 이건 어쩌다 다치신 겁니까?”은희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효찬을 바라보며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저 사람이 때렸어요. 제 다리를 아예 부러뜨렸어요.”효찬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었다. 곧바로 남우를 돌아봤다.“야, 아무리 그래도 여자 다리를 부러뜨리면 어떡해? 나 의사야. 이런 걸 보고는 모른 척 못 해. 은희 씨, 저랑 나가시죠.”남우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은희의 연기를 보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쟤 말 믿지 마. 혼자 도망치겠다고 담 넘다가 떨어져서 다친 거야.”효찬은 반신반의하며 은희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은희가 반박하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그제야 효찬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남우의 말을 믿었다.“두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사는 겁니까.”도망쳤다는 건 애초에 남우가 은희를 못 나가게 막아 두었다는 뜻이었다.굳이 자세히 묻지 않아도 사정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그래도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은희의 다리 상태부터 확인해야 했다.효찬은 은희의 다리에 난 멍과 찰과상을 꼼꼼히 살피고 몇 군데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그럴 때마다 은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검사를 마친 효찬이 말했다.“다행히 뼈는 괜찮습니다. 연부조직 타박상에 찰과상이 좀 심하네요. 당분간 충분히 쉬셔야 하고, 되도록 걷지 마세요.”효찬은 왕진 가방에서 소독약과 붕대를 꺼내 상처를 처치하기 시작했다.남우는 옆에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은희가 다친 것이 속상하면서도, 말을 듣지 않고 굳이 도망치려 한 건 화가 났다.처치를 끝낸 효찬이 남우에게 당부했다.“약 제때 갈아주고. 괜히 더 자극하지 말고 푹 쉬게 해.” 효찬은 왕진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방에는 다시 남우와 은희 둘만 남았다.“나 마사지도 좀 배웠어. 다리 풀어주면 회복하는 데 도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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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은희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남우의 말을 무시했다.이 문제로 더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어차피 나중에는 이혼할 사이였다. 지금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남우는 은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자신의 말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다친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뒤 천천히 근육을 풀어주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맨정신으로 이렇게 가까이 몸이 닿은 건 아주 오랜만인 것 같았다.은희도 낯선 기분이 들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오랫동안 서로를 밀어낸 탓인지 몸에는 아직 긴장이 남아 있었다.그런데 남우의 손길은 생각보다 능숙했다. 힘 조절도 적당해서 뻐근하던 다리가 조금씩 편안해졌다.은희도 서서히 긴장을 풀고 눈을 감았다.조용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한동안 다리를 풀어주던 남우가 손을 멈추고 은희를 바라봤다.“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내일 또 해줄게.”은희는 눈을 뜨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남우는 신경 쓰지 않고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줬다.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푹 쉬어. 다 나으면 보내 줄게. 대신 약속해. 세준이 찾아가지 마.”“응.”원래라면 무시했겠지만 은희는 짧게 대답했다.대꾸하지 않으면 또 이상한 말을 길게 늘어놓을 것 같았다.은희는 그 집에서 며칠 더 쉬었고 다리도 점점 회복되었다.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한 달 뒤에는 중요한 피아노 콩쿠르가 예정되어 있었다.은희는 피아노 콩쿠르에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맡아 둔 편곡 작업을 끝내는 틈틈이 피아노 콩쿠르 준비도 해 왔고, 지금은 곡의 절반 정도를 완성한 상태였다.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려는 이유가 음악을 좋아해서만은 아니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그 과정에서 기억 속 인물들을 다시 만나 오래전 고씨 집안을 무너뜨린 사람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은희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최근 남우도 회사 일을 처리하는 한편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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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형수님, 오랜만이네요. 형이 드디어 내보내 줬나 봅니다.”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세준도 알고 있는 듯해서, 은희는 무심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세요?”세준은 경계하는 태도를 알아차렸지만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지난번 일에 대해 제 입장을 형수님께 설명하러 왔어요. 형수님이 암시장에 갔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걱정돼서 저도 찾아갔던 거예요.”은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정도 설명만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세준도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서둘러 덧붙였다.“형이 제 얘기를 안 좋게 많이 했겠죠.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암시장에서 벌어진 일은 형이 만든 겁니다. 형수님은 이혼하는 걸 막고 자기 옆에 붙잡아 두려고 꾸민 일이에요.”세준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줬다. 남우와 암시장의 노인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사진을 본 은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떨렸고, 눈앞의 장면을 믿고 싶지 않았다.“이건... 말도 안 돼요...”사진이라는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은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남우가 정말 이런 일까지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인 건 맞아도 이 정도로 선을 넘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흔들리는 은희의 눈빛을 본 세준은 속으로 만족했다. 바로 그 반응을 원했다.“받아들이기 힘든 거 알아요. 그래도 전부 사실이에요. 저는 계속 형수님이 걱정됐습니다. 형에게 속아서 살지 않았으면 했어요.”은희가 고개를 들어 세준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그런 말 그만해요. 지금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요.”숨을 한번 고른 뒤 지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일에는 더 끼어들지 마세요. 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그때 이유도 없이 남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아내는 너 아니야?’‘웃기지도 않아.’은희는 남우를 믿고 싶었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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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남우는 은희가 아무 이유 없이 다시 자신을 차단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주변 감시 영상을 확인하게 했다.예상대로 은희는 세준을 만났다. 두 사람의 분위기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은희는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떠났고, 그 뒤에 남은 세준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세준이 또 은희 앞에서 자신을 모함하는 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세준이 분명 암시장에서 일을 꾸민 장본인이 나라고 말했을 거야.’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고, 남우는 곧바로 몸을 돌려 차를 가지러 향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영은에게서 온 전화였다.남우는 짜증을 숨기지 않은 채 받았다.“왜.”[맑음이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어. 지금 응급 처치 중인데 의사 선생님이 위험할 수도 있대. 빨리 와 줘!]‘맑음이 상태가 또 나빠졌다고?’‘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남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갈게.”...한 시간 전.영은은 병실 침대 옆에 앉아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화면에는 남우의 집에서 함께 있는 남우와 은희의 사진이 떠 있었다.남우가 계속 은희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도 들었다.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최근 벌어진 일들은 영은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 먼저 남우가 사람들 앞에서 은희와의 관계를 직접 밝혔다.암시장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남우는 은희를 구하러 갔다. 그 전부터 사람을 붙여 보호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게다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은희를 별장에 붙잡아 두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두 사람은 이미 이혼 직전까지 간 사이였다.“왜! 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남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나잖아!”영은은 이를 갈며 남우를 자기 곁으로 불러들일 방법을 계속 궁리했다.그러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떠올랐다. 맑음의 상태가 나빠지면 남우는 무조건 달려올 것이다.자신에게 맑음이 있는 한 남우도 결국 자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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