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를 만나고 돌아온 밤, 서지안은 오래 잠들지 못했다.미워하려 해도, 자꾸만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를 처음 사랑했던, 그 어리고 따뜻했던 시절이.서지안에게 'JL그룹 딸'이라는 이름은, 축복이 아니라 차가운 감옥이었다.열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은 뒤, 그 큰 저택은 온기를 잃었다. 아버지는 회사에 파묻혀 살았고, 친척들은 어린 그녀를 후계 구도의 '변수'로만 보았다. 명절이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뒤에서는 그녀의 약점을 캤다.그 집에서 서지안은 단 한 번도 '서지안'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늘 '회장님 따님', '서씨 가문의 핏줄'. 사람이 아니라, 가문의 자산이었다.후계 다툼이 거세지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녀를 불렀다."지안아. 한동안 네 신분을 지우고 살아라. 평범한 이름으로, 평범한 동네에서. 그게 지금 너를 지키는 길이다."처음엔 버려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본 그 동네에서, 서지안은 태어나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그리고 그곳에서, 강민호를 만났다.비 오던 날, 우산도 없이 처마 밑에 쪼그려 앉은 청년. 그는 면접에 떨어지고도, 우산을 내미는 그녀에게 멋쩍게 웃어 보였다.강민호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 JL도, 재벌도, 후계도 몰랐다. 그저 '지안 씨'라고 불렀다. 그녀의 옷차림을 재지 않았고, 그녀의 배경을 계산하지 않았다."지안 씨는 참 잘 웃네요. 그 웃음 보면, 나도 잘될 것 같아."그 말에, 서지안은 무너지듯 빠져들었다.평생 '자산'으로만 살아온 그녀를, 처음으로 한 사람으로 봐준 사람. 가진 게 없어서 오히려 계산이 없던 사람. 그가 차려주는 라면 한 그릇이, 저택의 그 어떤 만찬보다 따뜻했다.'이 사람이라면, 평범하게 살 수 있겠다. 따뜻한 가정을 만들 수 있겠다.'그래서 서지안은 모든 걸 걸었다. 신분도, 재산도, 아버지가 정해준 화려한 미래도.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숨긴 채, 그의 손을 잡았다."민호 씨랑이라면, 난 평범해도 행복할 자신 있어요."결혼식 날, 그
최신 업데이트 : 2026-06-2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