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Chapter 51 - Chapter 60

112 Chapters

제51화 — 되풀이되는 밤

별장으로 향하는 어두운 국도 위. 서지안은 운전대를 잡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똑같았다. 15년 전 그날과, 소름 끼치도록.핸들을 쥔 손끝이 떨려 왔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그 밤의 기억이, 헤드라이트 불빛을 타고 천천히 되살아났다.***15년 전, 주주총회를 며칠 앞둔 어느 밤.열다섯의 여울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어머니의 서재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안에서, 낯선 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장주련과, 고모 서영애의 목소리였다."언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서영애의 목소리는, 겉으로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늘한 칼날이 숨어 있었다."나를 해임하겠다니. …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여울이. 그 아이 앞날이, 과연 순탄할 것 같아요?"여울은, 제 이름이 나오자 숨을 죽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이 무언가 끔찍한 뜻을 품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지금, 그게."장주련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그게, 고모라는 사람이 할 소리니..? 감히… 내 딸을 입에 담아?""협박이 아니에요, 언니. 그냥… 세상이 무섭다는 거죠. 어린애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여울은 문틈으로,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그 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협박 앞에서, 세상 그 어떤 어미가 흔들리지 않을까.그러나 다음 순간, 장주련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울이는, 내가 지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고 내 남편 회사도,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이곳도… 네 손에 넘어가게 두진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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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 기댈 수 있는 어깨

집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서지안은 잠든 서아를 제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그녀는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작은 가슴이 오르내릴 때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 아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어 주는 그녀의 손끝이, 뒤늦게 파르르 떨렸다. 별장에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서영애를 몰아붙였지만, 사실 그녀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만에 하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엄마 곁에 있어, 서아야. 이제, 아무 데도 안 보내."아이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서지안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거실에는, 강도현이 서 있었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아는?""자요. 다행히, 겁먹은 기색도 없이."서지안이 옅게 웃어 보이려 했지만, 그 미소는 채 완성되지 못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다리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며, 그녀의 몸이 휘청였다."…서지안!"강도현이 재빨리 다가와, 쓰러지려는 그녀를 붙들었다. 넓은 품에 안기는 순간, 서지안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억눌러 온 감정이, 둑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무서웠어요."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가슴팍에서 잘게 부서졌다."별장 문을 열기 전까지… 서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그 생각에, 숨이 안 쉬어졌어요. 저, 사실은… 하나도, 안 괜찮았어요."늘 강했던 여자였다. 누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혼자 모든 걸 짊어지던 사람. 그런 서지안이, 처음으로 제 약한 속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강도현은 아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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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 죽은 자의 서명

"…어떻게 됐어요...?"서지안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긴장됐다. 법무팀장이 통화를 마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에 마침내 옅은 미소가 번졌다."…이겼습니다, 회장님."서지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정식 감정 결과, 유언장의 필적을 고(故) 장주련 여사 본인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건, 역시 그 표식이었어요."그가, 서류를 펼쳐 보였다."어머님이 직접 쓰신 모든 문서에는 예외 없이 그 갈고리 표식이 있었는데, 유독 이 유언장에만 없었죠. 감정인은 그 점을 '작성자의 오랜 습관과 명백히 배치되는 부자연스러운 정황'으로 짚었습니다. 게다가 잉크 성분 분석에서도, 종이의 추정 연대와 잉크가 산화된 정도 사이에 미묘한 시차가 발견됐고요.""…그럼.""네. 이 유언장은, 15년 전에 작성된 진본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인위적으로 낡게 만든 위조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재판부의 심증도, 완전히 이쪽으로 기울었습니다."서지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이, 뜨겁게 차올랐다.15년 전,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무심코 남긴 그 작은 갈고리 하나가, 훗날 딸을 지켜 줄 마지막 방패가 되리라는 것을. 죽은 자의 서명이, 산 자의 거짓을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엄마…"작게 새어 나온 그 한마디에, 15년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곁에 서 있던 강도현이, 그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어머님이, 끝까지 널 지켜 주셨네.""…네. 정말, 그러네요."서지안이 눈물을 훔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한 판은, 어머니와 함께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같은 시각, 서영애의 집무실.보고를 받은 서영애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갈고리 표식."15년을 완벽하다 믿었던 그 종이 한 장이, 죽은 언니가 남긴 작은 습관 하나에 무너졌다. 종이도, 잉크도, 세월마저 완벽하게 위조했건만. 그 사소한 표식까지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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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 여론이라는 칼

시작은, 인터넷의 작은 게시글 하나였다.'JL그룹 여회장의 두 얼굴.' 그럴듯한 제목을 단 글이, 커뮤니티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을 교묘하게 비튼 거짓들이었다. 냉혈한 어머니, 아이를 방치하는 워커홀릭, 이혼한 남편을 힘으로 짓밟는 재벌녀. 하나같이, 서지안을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가는 이야기들이었다.그리고 그 배후에는, 서영애가 있었다.그녀는 여론 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은밀히 동원했다. 수십 개의 계정이, 정교하게 짜인 각본대로 움직였다. 하나의 거짓이 열 개의 게시글로, 열 개가 백 개의 댓글로 불어났다. 진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것 같다'는 인상만 심으면 그만이었다.그 화룡점정은, 한 편의 영상이었다.***어느 인터넷 매체의 인터뷰.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다. 강민호였다."저는… 그저, 제 딸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그의 곁에서는 낮은 속삭임이 오갔다."자기, 여기서 한 번 울어 줘. 사람들은, 눈물에 약하니까."윤세라였다. 그녀가 강민호의 어깨를 매만지며, 능숙하게 코치했다. 대본은, 이미 서영애 측에서 완성해 넘겨준 것이었다. 어디서 목소리를 떨어야 하는지, 어느 대목에서 눈물을 훔쳐야 하는지까지,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카메라가 돌자, 강민호는 배운 대로 연기했다."이혼당하고, 직장에서도 밀려나고… 이제 남은 건 딸아이 하나뿐인데. 그 아이 얼굴 한번 보려고 했다는 이유로, 저는 지금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그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그 모습이, 카메라에 처연하게 담겼다."재벌 회장이라는 힘 앞에서… 저 같은 평범한 아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군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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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 흔들리는 그림자

지구 반대편, 낯선 항구 도시의 구석진 뒷골목. 술과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찬, 시끌벅적한 불법 도박장.그 한복판에, 한 남자가 충혈된 눈으로 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태식. 15년 전, 서영애의 지시로 장주련이 탄 차의 브레이크에 손을 댄 그 정비공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검은돈의 첫 세탁을, 제 손으로 도맡았던 자이기도 했다."…젠장, 또야."그의 앞에 쌓여 있던 칩이, 딜러의 손에 쓸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태식은 거칠게 술잔을 들이켰다.15년이었다. 이름을 세 번 바꾸고, 나라를 두 번 옮겼다. 돈세탁도, 신분 세탁도, 그는 누구보다 능숙했다. 마음만 먹으면 죽을 때까지 조용히 숨어 지낼 수도 있는 자였다.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도박판이었다.한번 손을 대면 멈추지 못하는 그 병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15년간 챙겨 둔 돈도,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입막음 돈도… 이 연기 자욱한 판에서, 모래처럼 다 빠져나갔다. 남은 것이라곤, 감당 못 할 빚과 그를 쫓는 사채업자들의 그림자뿐이었다.설상가상으로, 석 달 전부터는 그 입막음 돈마저 뚝 끊겼다."…버리겠다는 건가."오태식의 눈에, 짙은 불안이 깔렸다. 서영애가 국내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소식은, 그의 귀에도 들려왔다. 쓸모가 다한 카드는, 조용히 폐기하는 여자였다. 그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15년 전, 저와 함께 일했던 자들이 어떻게 하나둘 소리 없이 사라졌는지를.15년 전, 그 새벽을 오태식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저택의 차고. 그는 소리 없이 스며들어, 익숙한 손놀림으로 브레이크 계통에 손을 댔다. 누구의 차인지, 그 안에 누가 탈지는 알려 하지 않았다. 그저, 건네받은 돈의 액수만 헤아렸을 뿐이었다.며칠 뒤,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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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 한 발 먼저

오태식이 잠든 방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린 것은 새벽 두 시 무렵이었다.먼저 움직인 것은, 서영애의 사람들이었다. 검은 옷의 사내 셋이, 그림자처럼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손에는, 소음기를 단 것이 들려 있었다. 협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오태식과, 그가 쥔 자료. 그 둘을 이 세상에서 지우는 것. 그것이, 그들이 받은 유일한 지시였다.우두머리가, 침대를 향해 총을 겨눴다.그런데 이불 아래는, 비어 있었다."…없다? 어디.?"그 말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방 안의 불이, 일제히 켜졌다."찾는 사람이, 여기 있나?"문가에 선 것은, 강도현이 보낸 요원과 현지 조력자들이었다. 오태식이 흘린 미끼를 따라 한 발 먼저 그를 빼돌린 뒤, 텅 빈 방에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좁은 방 안에서, 짧고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서영애의 사람들은, 애초에 매복을 예상하지 못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셋은 모두 바닥에 제압됐다. 요원이 그들의 무기를 걷어차며, 낮게 내뱉었다."…한 발, 늦었군. 당신들 주인한테 전해. 이번엔, 우리가 먼저였다고."***한편, 인근의 낡은 창고.오태식은 잔뜩 경계한 얼굴로, 요원 하나와 마주 앉아 있었다. 15년을 도망쳐 온 짐승의 눈빛. 그러나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이 일렁이고 있었다."…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니라고?""우리가 죽이러 왔으면, 당신은 이미 이 자리에 없어."요원이 담담하게 답했다."방금 당신 방에 들이닥친 자들. 그게 서영애가 보낸 진짜 손님이야. 당신을 지워 버리려고. …우린, 그 반대편에서 왔고."오태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영애가 끝내 칼을 빼 들었다는 사실이, 그 한마디로 확인된 셈이었다."우리 쪽 제안은 간단해. 당신이 쥔 15년 전 자료. 그걸 넘기고, 정식으로 증언해. 그러면… 서지안 회장이, 당신의 신변 안전을 끝까지 책임진다. 새 신분, 새 삶. 서영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오태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도박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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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 주주총회 전야

주주총회를 사흘 앞두고, 두 진영의 물밑 싸움은 극에 달했다.서영애는, 가진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강민호를 앞세운 여론전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눈물의 인터뷰 영상은 조회수를 거듭 갱신했고, '냉혹한 재벌 회장'이라는 프레임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주가는 매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동시에 그녀는, 바다 건너에서 사들인 지분으로 주요 주주들을 은밀히 압박했다."…생각보다, 여론의 힘이 무섭네요."자금팀장의 얼굴에, 근심이 짙었다."부동층 주주 몇몇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회사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실추됐는데, 과연 현 회장 체제를 유지하는 게 맞느냐… 그런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어요."회장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 서서히 서지안의 목을 조여 오고 있었다.그러나 서지안은, 흔들리지 않았다."…예정대로, 진행해요.""회장님?""저들이 여론으로 흔든다면, 저는 실체로 맞설 거예요. 화려한 말이 아니라, 회사가 지난 3년간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숫자로."그녀가,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지난 3년간의 경영 성과와, 향후 5년의 청사진이 빼곡히 담긴 자료였다."주주총회 당일, 저는 변명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제가 이 회사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 그림을 똑똑히 보여 줄 거예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는, 결국 그걸로 판가름 날 테니까."***한편, 강도현은 또 다른 전선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해외에 확보한 오태식의 신병은, 철통같이 보호되고 있었다. 그가 넘긴 첫 번째 자료—서영애의 검은돈이 처음 흘러 나간 계좌의 흔적—는, 한무현의 손에서 하나의 완결된 그림으로 엮여 가는 중이었다."…생각보다, 빨리 윤곽이 잡히고 있습니다."한무현의 목소리에, 옅은 흥분이 배어 있었다."이 첫 단추만 제대로 풀면… 서영애가 15년간 빼돌린 돈이 어떻게 그 거대한 해외 자본으로 자라났는지, 그 전체 흐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주주총회에서 쓰든, 법정에서 쓰든… 이건,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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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 배신의 그림자

주주총회 당일. 그러나 그 운명의 아침이 밝기도 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판이 흔들리고 있었다.서지안 측은, 오태식을 은밀히 국내로 이송하는 중이었다. 그의 신변 안전을 완전히 확보한 뒤, 정비 기록 원본을 넘겨받기 위한 마지막 절차였다. 극비 중의 극비. 그 경로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런데 바로 그 정보가, 새어 나갔다.서지안의 사람들 가운데. 서영애에게 몰래 눈과 귀를 팔아 온, 첩자가 있었던 것이다.***새벽의 외곽 도로. 오태식을 태운 차량이,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가로막혔다.순식간이었다. 검은 옷의 사내들이 들이닥쳐, 호송하던 이들을 제압하고 오태식을 끌어냈다.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 오태식은, 그렇게 서영애의 손아귀로 되돌아갔다.***인적 없는 폐공장.끌려온 오태식 앞에, 서영애가 우아한 코트 차림으로 서 있었다. 주주총회장으로 향하기 전, 그녀는 이 마지막 뒤처리를 제 눈으로 확인하러 온 것이다."…오랜만이구나, 태식아."서영애의 목소리는, 서늘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했다. 오태식은, 피 묻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직접 오셨네. 바쁘실 텐데.""한때는, 넌 내가 아끼던 아이였지..."서영애가,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오래 묵은 회한 같은 것이 스쳤다."기억나니. 우리,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 넌… 술주정뱅이 도박꾼 아비를 두고도, 참 반듯했어. 어미 손을 잡고 그 지옥 같은 집을 도망쳐 나와서도, 기어이 명문 공대 장학생까지 됐으니까."그녀의 목소리에, 옅은 탄식이 배었다."그 총명한 머리가 아까워서, 내가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겼었더랬지. 내 첫 비자금 세탁을. …넌, 완벽하게 해냈어. 누구도 흉내 못 낼 만큼."오태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서영애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결국… 네 아비랑 똑같이,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구나. 그 좋은 머리로, 겨우 도박판에서 인생을 탕진하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야.""…안타깝다고?"오태식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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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 심판의 날

JL그룹 대강당. 임시 주주총회장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단상에 오른 서지안은, 담담하게 지난 3년의 성과와 미래 청사진을 설명했다. 흠잡을 데 없는 발표였다. 그러나 장내의 공기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거짓 여론이, 이 자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민호의 눈물 인터뷰, '냉혹한 재벌 회장'이라는 프레임. 그것이, 주주들의 마음을 이미 절반쯤 돌려놓은 뒤였다."…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말이야. 회사 이미지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저 사람한테 계속 맡기겠어."객석 곳곳에서, 그런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 부동층 주주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표 대결은, 서서히 서영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맨 앞줄에 앉은 서영애의 입가에, 승리를 확신한 미소가 번졌다."…조카님. 애는 썼지만, 여기까지구나."그녀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았다. 이제, 표결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표는, 이미 그녀의 것이나 다름없었다.바로 그 순간이었다."…잠깐만요."서지안이, 단상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손이,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표결에 앞서, 주주 여러분께 꼭 보여 드려야 할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대강당의 거대한 스크린에, 흐릿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둑한 실내.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 차, 손봐. 브레이크. 확실하게.』『…정말, 하시는 겁니까. 대기업 사모님을...정말 괜찮은 겁니까? 가족 아니십니까....?』『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장주련이 그 주주총회에 서는 순간, 우리 다 끝이야.』장내가, 얼어붙었다.화면 속 목소리의 주인은—15년 젊은, 서영애였다. 그리고 그 상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오태식이었다. 15년 전, 서영애가 오태식에게 장주련의 차를 손보라 지시하는—청부살인의 결정적 순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참이었다."이, 이게 무슨…"주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승리를 확신하던 서영애의 얼굴이, 처음으로 하얗게 질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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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 남겨진 사람들

서영애의 구속으로, JL그룹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살인교사와 증거인멸, 그리고 오태식 살해 지시까지. 그녀에게 씌워진 혐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15년간 완벽하게 감춰 온 죄가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서영애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주주총회는, 압도적인 신임으로 마무리됐다. 진실을 마주한 주주들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거짓 여론에 잠시 흔들렸던 부동층마저, 이제는 서지안에게 확고한 지지를 보냈다. JL그룹의 회장 자리는, 마침내 온전히 서지안의 것이 되었다.무너진 것은, 서영애만이 아니었다.서영애가 약속했던 그 임원 자리는, 그녀의 구속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강민호와 윤세라가 그토록 꿈꾸던 화려한 삶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물거품이 되었다.그뿐이 아니었다. 강민호가 돈을 받고 찍은 그 눈물의 거짓 인터뷰는, 서영애가 구속되며, 서지안의 지난 양육권 법정분쟁 당시 제출했던 이른바 독박육아 증거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며 거센 여론 역풍을 맞았다. 딸을 볼모로 전처를 협박하고, 살인자와 손잡는 파렴치한. 그것이, 세상이 그를 바라보는 눈이 되었다. "…자기, 이제 어떡해. 우리."윤세라가, 초조하게 물었다. 그러나 강민호는, 이미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다고 벌인 모든 일들이, 오히려 마지막 남은 것마저 빼앗아 가 버렸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난파선은, 끝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탔던 이들은, 함께 깊은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다신 떠오르지 못할 것만 같은 암흑속에 갇힌 기분이었다.***주주총회가 끝나고 며칠 뒤, 서지안은 오태식의 어머니를 다시 찾았다.주총 전야, 아들의 유언대로 그 결정적인 상자를 전해 준 여인이었다. 그 용기가 없었다면, 15년의 진실은 끝내 어둠에 묻혔을 것이다. 서지안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두 여인은, 조용한 찻집에서 마주 앉았다.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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