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서진은 회사에서도, 그리고 온기 하나 없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집에 돌아와서도 온통 머릿속이 설아의 생각뿐이었다. 일은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밤이 되면 지독한 이명이 그를 괴롭혔다. 특히 설아가 사라진 그 마지막 날, 자신이 휘두른 거친 손에 입술이 터진 채 비릿한 피를 흘리며 저를 바라보던 설아의 서늘한 마지막 눈빛이 환영처럼 눈앞에 아른거려 서진의 목을 죄어왔다. 후회와 집착이 한숨이 서진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그리고 서진의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다름 아닌 수현이었다. 수현은 서진과 설아의 사이가 틀어져가는 이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수현은 회사 안팎으로 서진의 곁을 맴돌며, 마치 세상에서 그를 가장 위하는 유일한 사람인 양 행동했다. 서진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위로해 주는 척, 영악한 혓바닥을 굴려 설아를 깎아내리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서진아, 너무 마음 쓰지 마. 설아 씨도 참 너무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집을 나가서 연락까지 끊어버려? 솔직히 사랑받는 게 당연해서 고마운 줄을 모르는 거야. 설아씨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이기적이다."수현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서진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동시에 설아를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인 여자'로 몰아갔다.수현은 헝클어진 서진의 셔츠 깃을 능숙하게 만지며,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목소리에는 서진을 위하는 척하면서도, 설아를 철저하게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영악한 독이 묻어 있었다."너무 신경 쓰지 마, 서진아. 설아씨 수중에 가진 돈도 얼마 없었다며? 지금 그냥 서진이 너한테 시위하는 거야. 여자들은 다 그래.“수현은 서진의 가슴팍에 살며시 손을 얹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가진 돈 떨어지면 알아서 들어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나랑 한잔하자. 어차피 텅 빈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는데, 들어가서 뭐 해? 기분만 상하지."'집에 아무도 없다'는 말을 흘리는 수현의 눈빛에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현실이 다시 밀려왔다. 임신 초기인 지금은 옷으로 감출 수 있다지만, 몇 달만 지나면 숨기려야 숨길 수 없이 배가 불러올 터였다. 아이가 없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들어간 회사인데, 만약 출근하자마자 임신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하지만 곧 설아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독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그런 앞날의 걱정 따위를 따지고 들 처지가 아니었다.'어떻게든 버텨내야 해, 이설아. 정신 똑바로 차려.‘설아는 어두운 모텔 방 안에서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듯 나직하게 읊조렸다.당장 수중에 가진 돈 100만 원은 하루하루 숨만 쉬어도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일 나가는 모텔 숙박비에 최소한의 식비만 더해도 보름을 버티기 아슬아슬한 액수였다.설아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발품을 팔아 보증금이 아주 저렴한 원룸이나 고시텔이라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서진이 자신을 찾을 수 없는곳다음 날 아침, 설아는 서둘러 움직였다. 가방 깊숙한 곳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꺼냈다. 발걸음을 재촉해 도심 외곽의 한 중고 명품상과 금은방을 찾아가 그것들을 미련 없이 처분했다. 수중에 총 600만 원이라는 목돈이 쥐어졌다.설아는 그 돈을 가방에 꼭 쥐고 출근하게 될 사무실 근처의 원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회사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탓에 역세권 오피스텔이나 원룸들은 하나같이 보증금이 터무니없이 비쌌고, 감당하기 힘든 월세 때문에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몇 군데의 부동산을 돌다 보니 절망감이 밀려왔다.결국 마지막으로 찾아간 낡은 복덕방에서 설아는 초조한 안색으로 제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지고 있는 보증금이 500만 원 정도밖에 안 돼서요……. 혹시 이 근처에 아주 작아도 좋으니 들어갈 만한 방이 없을까요?“설아의 야윈 얼굴과 절박한 눈빛을 가만히 살피던 나이 지긋한 부동산 사장이 안쓰러운 듯 혀를 차며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마침 딱 하나 있긴 한데…… 건물이
"이설아 씨, 이력서가 다소 특이하네요. 학업을 우수한 성적으로 유지하다가 3년 전에 돌연 자퇴하셨고, 그 이후로 실무 경력이나 대외 활동이 전혀 없어요. 우리 회사는 당장 실무에 투입돼서 거친 시장을 버텨야 하는 스타트업인데, 이 공백기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드는 질문이 었다.설아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면접관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그 3년은 제게 가장 치열하게 외로웠고, 동시에 가장 단단해진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서류에 적을 수 있는 화려한 경력은 없지만,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제 자리를 지켜내는 법을 몸으로 익혔습니다.“설아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구직자의 간절함을 넘어, 사선을 넘나든 사람 특유의 독기와 묵직한 에너지가 서려 있었다. 면접관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바닥을 치고 올라온 저는 절대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이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제 모든 걸 쏟아 붓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야윈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백에 면접실 안에는 잠시 짜릿한 정적이 감돌았다. 날카롭던 여성 팀장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듯 미소가 번지던 바로 그때였다.달칵-, 하며 면접장 뒷문이 열리더니 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늦어서 죄송합니다.“나직하면서도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면접관들의 상석에 서둘러 앉은 그는 곧바로 앞에 놓인 설아의 이력서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흐트러진 머리를 무심하게 쓸어 올리는 그의 얼굴은, 날카로우면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아우라가 풍겼다. 유서진과는 결이 다른,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단단한 존재감이 면접실을 가득 채웠다. 그의 등장에 설아는 전신이 팽팽해지는 더 큰 긴장감을 느꼈다.이력서를 한참 내려다보던 그의 깊고 묵직한 시선이 마침내 설아에게 닿았다. 그리고 이내 아주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예리한 질문이 날아왔다."나이가 꽤 어린 편인데 결혼을 하셨네요? ……혹시 아직 아이는 없으신가요
서진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애타게 자신을 찾는 그 시각.설아는 낡은 모텔 방 안에서 오랜만에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임신 후 늘 쏟아지던 깊은 피로감이 한결 가셔 있었다 비록 낯설고 퀴퀴한 방이었지만, 유서진이라는 숨 막히는 감옥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다.자리에서 일어난 설아는 전날 꺼두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화면이 켜지자마자 숨이 막힐 정도로 요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부재중 전화만 수십 통, 전부 유서진이었다.설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휴대폰을 꺼버리려던 그 순간, 화면 상단에 뜬 '모르는 번호'의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설아의 손가락이 멈추었다.[안녕하세요, 이설아 지원자님. 채용 담당자입니다. 제출해 주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면접 전형을 안내해 드립니다. 면접 일자는……]며칠 전, 유서진의 그늘에서 벗어나 제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이력서를 넣었던 그 스타트업이었다.면접 날짜는 내일모레로 잡혀 있었다. 날짜를 확인한 설아의 눈빛은 이전의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던 것과 달리, 무언가를 결심한 듯 생생하게 반짝이고 있었다.지독한 입덧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해 속은 쓰라렸고, 컨디션 또한 최악이었지만 설아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녀는 모텔 한구석에 놓인 때 묻고 허름한 거울 앞에 정자세로 앉았다. 거울 속 비친 제 야윈 얼굴을 보며, 설아는 가슴 벅찬 설렘과 긴장감 속에 면접 연습을 시작했다."안녕하세요, 지원자 이설아입니다. 제가 가진 역량은…….“목소리가 갈라져 나왔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이 면접은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유서진의 세상에서 완벽하게 독립해 아이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여전히 설아의 휴대폰에는 유서진이라는 세글자가 쉴 새 없이 떠올랐다.설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무음 상태로 바꿔 버리고는 화면을 바닥으로 엎어 놓은
'친정으로 갈까…….‘생각이 골목 끝에 닿자마자 설아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사라진걸 알면 유서진은 가장 먼저 친정집으로 들이닥칠게 뻔했고,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으신 부모님에게 자신의 이런 꼴을 보여드릴 수는 없었다.결국 설아는 지나가는 택시를 황급히 잡아탔다."어디로 모실까요?""……일단 도심을 좀 벗어나 주세요. 조용하고 외진 곳으로요.“기사의 의아한 시선이 백미러로 스쳤지만 설아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참을 달린 택시는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뒤로 밀려나고, 번화가에서 비껴간 한적한 유흥가 골목의 외딴 모텔 앞에 멈춰 섰다."감사합니다.“짧게 인사를 건넨 설아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퀴퀴한 담배 냄새가 뒤섞인 모텔 로비로 들어서자,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주인의 무미건조한 시선이 닿았다."방 하나 있나요?""6만 원입니다.“설아는 가방에서 만 원짜리 지폐 여섯 장을 꺼내 조용히 건넸다.열쇠를 받아 들고 들어선 모텔 방 안은 어둡고 음산한 붉은 조명이 일렁이고 있었다. 낡은 벽지와 삐걱거리는 침대.지내오던 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초라한 곳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임신 때문인지 순간 지독한 피로감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설아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낡은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그 순간, 얇은 벽면 너머 옆방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적나라한 신음과 교성이 흘러나왔다.그날 밤 서진의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박수현의 추악한 소리가 오버랩되며 설아의 머릿속을 뒤집어 놨다.설아는 소리를 차단하듯 베개를 머리에 꼭 가로누운 채, 제 배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괜찮아, 아가. 이제 완전히 우리 둘뿐이야.‘안도감이 온몸을 감싸자, 옆방의 야릇한 소음마저 아득해지며 설아는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서진이 거칠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 것은 해가 완전히 저문 늦은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도, 자신의 손에 맞아 피를 흘리며 자신을 쳐다보던 설아의
설아의 눈동자에 거친 소용돌이가 몰아쳤고, 제 손을 내려다보며 뒤늦게 당혹감에 휩싸인 서진의 숨소리가 거칠게 맴돌았다.바닥으로 고꾸라진 설아의 하얀 뺨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거칠게 터진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입술 아래로 뚝 떨어졌다."하아…… 하아…….“거실을 채운 것은 이성을 잃은 서진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얼얼하게 떨리는 제 오른손과 바닥에 짓겨진 채 피를 흘리는 설아를 번갈아 바라보던 서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마비시켰던 두려움과 분노가 가라앉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서진은 쓰러져 있는 설아에게 다가갔다. 가늘게 떨리는 손을 뻗어 설아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려 했다.탁-!그러나 서진의 손가락이 채 닿기도 전에, 설아는 남은 힘을 쥐어짜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살이 부딪히는 서늘한 마찰음이 다시 한번 거실을 울렸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이설아…….“서진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자신을 올려다보는 설아의 눈빛은 서진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것이었다.서진을 향한 원망이나 증오를 넘어, 지독한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서진은 심장이 도려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놔두면 정말로 이 여자가 제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공포가 머리 속을 헤집어 놨다.서진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쓰러진 설아를 내려다보며 흐트러진 옷을 거칠게 바로잡으며,잔인할 정도로 단호하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그래,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하지만.“서진이 설아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이혼은 절대 안 돼”그 잔인한 멘트를 마지막으로, 서진은 화가 난 듯 현관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고 나가버렸다.쾅- 하는 굉음이 거실을 울리고 난 뒤, 집안에는 오직 적막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설아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 안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
불도 켜지 않은 채였다. 소파에 팔짱을 낀 자세로, 굳은 얼굴로 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어디 다녀와?"낮고 날이 선 목소리였다.설아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냥 바람 좀 쐬고 왔어요.""병원에서 왜 퇴원했어?""아무 이상 없다길래요.“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간호사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빈혈 수치, 면역력,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몸. 그런데 설아는 지금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아무 이상 없다고?""네. 걱정 안 하셔도 돼요."평소와 달랐다. 목소리에 온기가 없었다. 기대도,
기운을 차린 설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내려다보다가조용히 뽑아냈다.작은 통증이 왔지만 설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침대 옆에 개어두었던 자신의 옷을 집어 들고 환자복을 벗었다.손이 떨려 단추를 잠그는 것조차 생각보다 힘들었다.겨우 옷을 갈아입고 일어서는 순간,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어지러움이 물밀듯 밀려오며 몸이 휘청였다. 설아는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잠시 버텼다. 숨을 고르고, 다시 섰다.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이설아씨, 잠깐만요!"담당 간호사였다. 링거 알람이 울렸는지, 빠르게 들어온
설아는 매일 서진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렸다. 다림질한 셔츠를 옷장에 걸어두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간혹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서진은 설아를 찾았다. 하지만 그건 설아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다정함도, 온기도 없었다. 그저 거칠고 무심한 손길이 지나가고 나면, 서진은 돌아누워 잠들었다. 설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이게 결혼인가.’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울면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일도 밥을 차리고, 셔츠를 다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버텼
결혼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화려하지 않았다. 서진의 부모는 끝까지 탐탁지 않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설아의 부모는 딸의 손을 잡고 눈물을 삼켰다. 그래도 서진은 설아의 곁에 있었다. 식이 끝나고 설아의 손을 잡으며 작게 말했다."잘 부탁해. 이설아“그 한마디가 설아에게는 충분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신혼 초, 서진은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이었다.바쁜 와중에도 설아를 챙겼고, 서툴지만 함께 밥을 지어먹었고, 설아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설아는 그 시간들이 영원할 거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하지만 행복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