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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는 공범이었다: Chapter 191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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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화

“그럼 안 됩니까?”“네.”어쭈, 이거 봐라? 또 면접 때의 패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네.“뭐라고요?”“다른 직원들과 동등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부담 갖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억울해 미치겠네. 안면 인식 장애 때문이 아니라니까. 아.. 이 답답한 병아리 같으니라고.“집은 어디입니까? 시장 근처?”“네? 네..”“회사까진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 정도 되겠네요.”“네.”“흠, 내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도 주워줬는데.”바닥? 종이? 헉!무언가가 떠오른 세화가 고개를 돌려 석현을 바라보았다. 면접 날, 웬 친절한 아저씨가 종이도 주워주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며 웃었었는데.. 그 아저씨가 정말 이사님이었다고? “설마 면접날이요? 그때 그.. 지하철역 출구에서요?”“아저씨는 너무했습니다.”“죄송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사님.”어떡해... 젊은 기업인으로 유명한 신준호 대표님 친구면, 이사님도 스물아홉이란 소리인데. 그땐 그냥 아저씨인 줄 알았지 뭐람. 무릎 위에 놓인 손이 바르르 떨렸고, 발까지 동동 굴렀다 석현은 곁눈질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얼큰이가 맛있습니까, 멸치가 맛있습니까.”“네...?”“칼국수요.”“저.. 저는... 멸치를 더 좋아합니다.”“그럼 오늘은 멸치로 먹어야겠네.”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식당 문을 열자, 석현을 알아본 부모님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어..? 세화 회사 이사님 아니신가요?”“또 뵙겠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요.”“어서 앉으세요! 어서요!”세화가 물병과 컵을 쟁반 위에 올리자, 어머니가 손을 내저으며 속삭였다.“엄마가 할게. 어여 이사님 챙겨드려.”“으응..”영 불편하고 민망했던 세화는 작은 손으로 수저를 세팅하고 손끝만 바라보았다.석현이 턱을 매만지며 메뉴판을 쓰윽 훑었다.“사장님! 멸치 칼국수 2인분이랑, 김치만두 하나, 고기만두 하나요. 아, 그리고 만두는 2인분씩 포장해 주세요.”만두다. 그날처럼 또 만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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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세화는 보란 듯이 앞치마를 목에 걸었다. 드디어 불편했던 식사가 끝났다는 사실이 어찌나 후련하던지.“이사님, 그럼 안녕히 가세요.”“뭡니까, 꽈배기 집 안 알려줍니까?”“나가셔서 우측 골목으로 쭉 직진하세요.”석현의 표정이 이내 시무룩해졌다.끄응.... 너무해. 후식까지 같이 먹음 좋잖아. 왜 말로만 알려주는데. “시장이 너무 복잡합니다.”“바로 보일 거예요. OO 꽈배기, 노란 간판이에요.”“....”“죄송해요, 곧 손님 몰릴 시간이라서요.”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듣던 어머니가 세화의 목에 걸린 앞치마를 벗겨냈다.“모시고 다녀와, 하나도 안 바쁘니까!”“엄마!”“얼른!”이제야 석현의 입이 귀에 걸렸다. 사장님, 전 오늘부터 여기 단골입니다. 지독한 단골이 되어버릴랍니다. “갑시다!”“아..”등 떠밀려 가게 밖을 나선 세화는 시장 길이 익숙하다는 듯 앞장서 걸었다. 총총총, 작은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석현은 뒤를 따르며 그 뒷모습을 보고 히죽거렸다.손에 들린 만두 봉투가 리듬감 있게 흔들렸다.“홍세화 씨!”“네?”“같이 좀 갑시다!”애석하게도 꽈배기 집은 멀지 않았고, 세화는 정확하게 노란 간판 앞에 멈춰서 고개를 숙였다.“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나 안 기다려 줘? 왜? 뭐가 그렇게 급한데? 가게도 안 바쁘시다던데? “주차장은 어떻게 갑니까? 길이 영 헷갈리네.”“가끔 오시는 시장이라면서요.”“길치라니까요.”확실하다. 이사님은 절대로 길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징징거리고 있을 뿐이다. “사장님! 꽈배기 10개 포장이요!”석현이 주문을 마치자 마자 세화의 목소리가 무서우리만큼 낮게 가라앉았다.“이사님.”“네.”“저한테 관심 있으세요?”컥, 뭐야..? 왜 또 당돌해졌어..? 이러지 마. 이러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잖아.“예?”“그런 게 아니라면, 여기까지만요.”“...”“회사에 소문이라도 나면 저 진짜 못 다녀요. 아직 수습 기간도 안 끝났는데 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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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아... 어떡해요.. 부모님이랑 친한 분인데..”세화의 중얼거림에, 쫄래쫄래 그 뒤를 따르던 석현의 걸음이 빨라졌다. “미안합니다.”“시장 바닥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알아요? 병아리라뇨.. 하.. 병아리라뇨!”“지금은 꼭 화난 병아리 같습니다.”“하지 마세요!”이힛, 소문? 겁나게 빨리 났으면 좋겠다.서울 바닥에 이렇게나 앙증맞은 인간 병아리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홍 삐약씨!”“하아...”세화는 고개를 푹 숙이며 걸으면서도, 끝끝내 주차장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가세요.”“홍 삐약 사원. 내일 아침에도 내 방으로 오세요.”“싫어요.”“지금 상사한테 대드는 겁니까?”아... 할 말 없게 이럴 땐 또 상사래. 지위를 악용한 치사한 이사님 같으니라고.“만약 안 오면, 직접 마케팅 부서로 찾아가 삐약삐약 거릴 겁니다.”“제가 올라가겠습니다...”“옳지.”등을 홱 돌려 자리를 떠나는 모습도 귀여움 투성이었다. 석현은 룰루랄라 차에 올라타 봉투 두 개를 조수석에 올려두고는, 세화가 사라진 방향을 끝까지 바라보았다.“아오, 귀여워! 귀여워 죽겠다니까!”***다음날 아침, 유독 출근 시간이 빨랐던 석현은 세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향이 좋은 커피를 골랐다. “아침엔 룽고가 굿이지.”똑똑.드디어 왔구나, 노크소리가 이토록 반가운 소리였다니!“네!”문이 열리고,“홍 삐약..! 아...”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젠장, 왜 우리 삐약이가 아니고 멀대 같은 신준호가 떡하니 서 있는 거냐고. 저 새끼는 왜 안 하던 노크를 하고 지랄이냐고.석현은 실망했고, 준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 번졌다.“홍 삐약?”“뭐,”“홍세화 사원 애칭이냐? 삐약? 설마 병아리냐?”“그런 거 아니거든.”“와.. 시골 장닭같이 생긴 놈이 진짜 웃기지도 않네?”그만둘까? 지금이 딱 퇴사 적기인가?아무래도 이 짜증 나는 놀림은 끝이 없을 것 같은데.억울해 죽겠는 건,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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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세화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이러다 회사에 소문이 퍼지는 건 정말 한순간 일 텐데. 아직 안면 인식 장애에 대해 팀원들한테 털어놓지도 못했는데.“진짜입니다. 진짜로 걸린 겁니다.”“네..”“내가 왜 싫습니까?”“안 싫습니다.”“그럼 왜 자꾸 한숨만 쉽니까?”“죄송합니다.”싫지 않다는 대답은 마음에 쏙 드는데, 말투가 왜 이렇게 딱딱하냐고.사람 불안하게! 무섭게!“지금은 2026년입니다.”“압니다.”“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입니까? 사내 연애한다고 누가 안 잡아먹습니다!”켁, 커피가 목구멍에 걸린 세화가 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석현은 개의치 않았다.“우리 회사 슬로건이 뭡니까?”“기... 술은 차갑게... 방향은... 따뜻하게..”“그러니까, 사랑이 있어야 더 따뜻하지 않겠습니까.”신준호, 미안하다. 이러라고 만든 슬로건이 아닌데, 뜻이야 갖다 붙이기 나름이니까. “이사님.”“네.”“그럼 해요, 사내 연애.”?석현의 두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뭐야..? 이건 또 무슨 전개야? 나 지금 꿈꾸는 거야? 아직 꿈에서 안 깨어난 거야?“방금 뭐라고 했습니까?”“겪어봐야 알죠. 만나 보면 분명해지겠죠.”“왜 고백을 그쪽이 합니까!”“고백보단 제안에 가깝습니다.”응..? 연애를 이렇게 시작하는 커플이 있던가?자존심은 긁히는데 또 속은 들뜨고, 막상 웃음은 나는데 참아야겠고. 일단은 머리를 굴려 세화의 말을 이해해해보려 애를 썼다.“그러니까 연애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자, 그 뜻입니까?”“네. 시작을 해야 결론이 나니까요.”“흠, 난 연역법을 좋아합니다.”연역법, 전제가 참이면 결론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구조. 즉, 사랑하는 사람은 연애를 한다. 고로, 우리는 연애를 한다. 논리적으로는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사랑이 연애로 귀결된다는 명제는 어디에도 없다.짝사랑, 금지된 사랑, 스스로 접어버려야 하는 감정들을 무시한 논리니까. 하지만 석현에게 그런 누락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전제를 밀어붙일 자신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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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야. 강석현.”“뭐.”“더블데이트 어때? 찜질방 데이트 가즈아!”석현이 가자미 눈으로 준호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은 왜 또 헛소리인가 싶어서.“미쳤냐? 첫 데이트부터 개망신당할 일 있냐?”“왜? 어색할 텐데 잘 됐지 뭐.”그런가..? 하긴, 어색하긴 할 거야.게다가 어디를 가야 할지 내내 고민 중이었는데... 찜질방 괜찮네. 나쁘지 않네. 영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찜질방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궁금해요.”“이거 봐! 강 이사! 같이 가자고!”눈동자를 굴리던 석현이 결국 OK 사인을 내렸다.“좋아. 대신, 삐약이 앞에서 놀리지 마라. 망신 주지 마라.”“당연하지.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인데.”“믿는다.”“기 팍팍 살려줄게. 기대해.”사무실로 돌아온 석현은 사내 메신저로 세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갑자기 데려가면 놀랄까 봐. 그래도 의사 정도는 묻는 게 예의니까.- 홍세화 씨. 퇴근하고 찜질방 데이트 어때요?- 찜질방이요? 갑자기요?- 네. 몸도 지지고, 맛있는 것도 먹고. - 음, 좋아요.- 혹시.. 더블데이트도 괜찮은가요?빠르게 오던 답장이 일순 멈췄다.아씨, 불편한가? 첫 데이트부터 너무 부담스럽게 굴었나?손가락이 책상 위를 하염없이 두드리던 중,- 누구랑요?- 신준호랑 유영 비서요.- 아, 두 분이 사귀신다는 이야긴 들었어요. - 불편하면 둘이 갑시다.- 아니에요. 퇴근하고 봬요.오예! 고민은 끝났다. 첫 데이트 장소는 찜질방이다.거기서 먹는 식혜랑 계란이 또 죽여주지. 라면이랑 미역국도 최고지.세상 신나고 설레긴 했지만 유난히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걸 넘어 꼭 멈춰버린 것 같은 날. 비소로 6시가 되었을 때,-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정리하고 내려와요.- 네.세화는 두리번두리번 눈치를 보며 석현의 차에 올라탔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준호의 차가 그 뒤를 따랐다. “영아, 안 불편하겠어? 홍세화 사원이랑 같이 씻어야 되잖아.”“음.. 창피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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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진작에 나와 두 사람을 기다리던 준호와 석현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만 동동 굴렀다.“왜 이렇게 오래 씻어?”“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한 시간이나 걸릴 일이 뭐가 있냐고.”“미치겠네. 뭔데 도대체.”잠시 후, 두 사람이 핑크색 찜질방 옷을 입고 나란히 들어섰다. 착 달라붙어 떠드는 모습이 벌써부터 꽤 친해 보였다.“영아! 왜 이렇게 오래 씻어!”“나 세화 언니가 등 밀어줬어.”“언니...? 등..?”“응. 엄청 개운해. 기분 완전 좋아.”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때를 밀고 나왔다니. 호칭마저 정리가 끝났다니. 첫 만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홍 삐약씨. 고맙습니다.”“대.. 대표님. 아닙니다.”“야! 하지 말라고! 나만 부르는 애칭이라고!”석현이 씩씩거리는 사이, 영이가 불가마 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저기 들어가 봐요.”문이 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느껴졌다.둘러앉은 네 사람의 이마엔 금세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더워.”“나도.”준호와 석현은 하필이면 왜 불가마로 들어온 건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무릎을 끌어안은 영이와 세화는 그저 편안해 보였다.“우와. 이게 불가마구나. 이게 찜질이구나.”“유 비서님, 온도 괜찮아요?”“네 언니!”세화가 작게 웃었다. 영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석현은 그런 세화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말이다.“우리 삐약이가 언니라니.”“이사님.... 제발 그 호칭 좀...”“싫으면 오빠~ 해봐.”세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오빠라니, 아무리 밖이라도 불과 오늘이 첫 데이트인데.“네?”“어차피 회사도 아니잖아! 오빠! 오빠!”“음, 저 식혜랑 계란 좀 사 올게요.”세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호와 석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워 죽겠는데 우리가 가야지. 암, 우리가 나가는 게 맞아.“가자. 강석현.”“당장. 신준호.”영이와 세화가 키득거리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니, 석현 오빠는요..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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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계란으로 입가심을 마친 준호와 석현은 입맛이 돌았는지, 라면과 미역국은 물론 돈가스까지 박살 내 버렸다.마지막으로 커피를 쪽쪽 빨며 둘러앉은 네 사람, 준호의 진짜 놀림이 시작되었다.“홍 사원님은 강석현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네?”찌릿.석현이 아무리 노려보아도 준호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세화가 입을 열었다. “나쁜 사람 같지 않아서요.”“에이, 어떻게 압니까.”“저 때문에 매일 같은 시계를 차고 다니시는 것도, 안 매던 사원증을 매시는 것도. 다 감사하고 따뜻해요. 배려가 당연한 건 아니니까요.”와, 요즘 이 새끼가 같은 시계만 주구장창 차고 다니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그것도 어울리지 않는 겁나게 튀는 디자인으로.“오, 강석현~ 흑기사 노릇 제대로 하는데~”“사원증이나 똑바로 매고 다녀라.”맞다, 카리스마가 흘러넘치는 이메일도 보냈었지?“그거 아세요? 이 자식이 회사 임원진들한테 이메일을 아주 그냥..”“야...! 신준호!”“넥사이드 이름 아래~ 직위와 상관없이~ 모두가 기본을 지켜주길 당부합니다~ 어머~”처음부터 신준호를 믿었던 게 아니었는데, 더블데이트를 수락한 내가 또라이지. 내가 멍청이지. 석현은 부들거리기에 바빴지만 세화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모두가 사원증을 착용하는 거구나.덕분에 걱정을 한시름 놓고, 마주치는 직원들을 이리저리 살피며 체형과 스타일, 목소리만 달달 외웠다. “고맙습니다. 이사님.”“여기 회사 아니라니까.”“고맙습니다. 오빠.”씰룩씰룩. 드디어 병아리가 오빠라고 불렀다. 영이가 오빠라고 하는 거보다 더 기쁘다. 더 신난다. 힛.지켜보던 영이는 어깨를 흔들며 준호의 어깨를 때려댔고, 준호는 석현을 한심하게 바라보면서도 내내 웃었다. “그렇게 좋냐고.”“어.”“주책맞은 장닭 새끼.”찜질방 데이트는 성공적이었다. 밤 11시가 지나서야 나온 네 사람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내일 봬요 언니.”“네, 유 비서님.”“다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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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수화기 너머, 잠시 말이 없던 영이의 숨이 거칠어졌다."왜 안 깨웠어? 또 일부러 그런거지?""어.""결혼하자며.""영아,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결혼을 하면 가족이 되는 거잖아. 슬픈 일도 힘든 일도 함께 이겨내는 거잖아.""나 안 힘들어, 안 슬퍼."준호의 말에 영이는 더더욱이 서운해졌다.물론 중장님은 온전히 용서하지 못했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을 향해 미움이라는 감정을 얹고 싶지 않았다.적어도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길 바랐고, 자신 역시 마지막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았다."준비하고 갈게. 주소 남겨줘."***장례식장에 도착한 영이는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끔찍하고 지옥같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손길이, 혀가 자신의 몸을 기어다니던 감각은 여전히 또렷했다."영아. 굳이 뭐하러 왔어."영이는 아무말 없이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대신 전했다.'저는 아직도 중장님이 싫습니다. 아직도 왜 저에게 그런 짓을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 합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기만 했던 영이로 온 게 아니에요. 준호 오빠랑 결혼 하기로 했어요. 그 이야기는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온 겁니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다음생에서는 만나지 말아요.'짧은 인사를 끝내고, 아무렇지 않게 준호의 옆에 섰다. "오빠, 우리... 미워하는 마음은 이제 조금 내려놓자.""그게 잘 안 돼.""노력하면 돼."숙경과 보람은 영이의 등장에 입에 꾹 다물렸다.어떻게 여길 올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차마 말을 건네진 못했다.결국 장례기간 내내 준호는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화장이 끝났을 땐 후련하다는 생각마저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끝까지 불효자식이지만 저, 하나도 안 죄송합니다.'그게 못난 아버지를 향해 아들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였다.***며칠 뒤,- 마케팅 부서, 홍세화 사원입니다. 세화에게 도착한 메일을 클릭한 준호는 입을 틀어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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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오늘따라 마케팅 팀 사무실이 소란스러웠다.이제 막 대리로 승진한 두 명의 직원은 김민주 팀장 책상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김 팀장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이 대리, 박 대리. 제정신이야?”“죄송합니다..”“사원증을 바꿔 매?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껏이지! 승진하자마자 이렇게 실망스러운 행동을 해?”세화 역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아침부터 사원증을 바꿔 매고 커피를 마시자며 다가온 두 사람. 같은 팀 직원인데 그 정도도 몰랐을까. 당연히 곧바로 알아차렸다. 자신을 상대로 같잖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정확한 호칭으로 불러드렸을 뿐인데, 그들의 장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안면 인식 장애 테스트 화면을 띄워놓은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눈앞에서 해보라는 명확한 뜻. “이런 장난은 불편합니다. 테스트엔 응하지 않겠습니다.”세화의 대답에 이 대리와 박 대리는 길길이 날뛰었다. 관심을 받고 싶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며. 요즘엔 관심이 고픈 애들이 꽤나 많다며 세화를 몰아 세웠다.결국 그 모습을 팀장한테 걸려버렸고, 김민주 팀장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우리 팀 직원들 인성이 이렇게 바닥이었어?”“죄송합니다 팀장님..”“면목 없습니다..”아침부터 세화가 보고 싶어 사무실을 방문한 석현은 평소답지 않은 상황에 문을 벌컥 열고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세화는 고개부터 푹 숙였고, 김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이사님, 아닙니다. 팀 내에서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그러니까 무슨 소란이요.”잠깐, 이 대리랑 박 대리가 왜 사원증을 바꿔 매고 있는 거야? 이 인간들이 설마..“사원증은 왜 바꿔 맨 거죠?”그들은 입술을 깨물었고, 석현은 성큼성큼 다가가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안에는 각기 다른 표정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상단에는 ‘안면 인식 장애 테스트’라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구구절절 한심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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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퇴근 후, 커피숍으로 향한 석현과 세화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세화였다. “이사님,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 주시지 그러셨어요.”“회사 아니니까 호칭부터 바꿔.”평소답지 않은 석현의 말투에 세화는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생각은 변함없었다.만약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었어도 그렇게까지 나섰을까. 업무적인 문제도 아니고, 팀 내에서 발생한 작은 소란일 뿐인데.“시말서까지 쓸 일은 아니잖아요.”“정말 그렇게 생각해?”“네.”“확 자르려다가 참고, 또 참아서 그 정도로 끝낸 건데.”“이사님!”“오빠.”이 와중에 호칭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건데.그래, 불러줄게. 불러주면 되잖아.“오빠, 만약 제 일이 아니었어도 그러셨을 거예요?”“당연하지.”“거짓말.”“그따위 인성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뽑지도 않았어. 씨발.”헉, 이사님이 욕을 했다.그것도 엄청나게 찰지고 무섭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만큼.“...”“미안. 미안해 삐약아.”“아.. 아니에요.”“네 일이라 유독 더 화가 났던 건 맞아. 근데, 넥사이드가 왜 직원들 대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지 생각해 봐.”맞다. 넥사이드는 타사 대비 연봉도, 처우도, 보상도 탁월한 회사다. 그래서 지원했고 어떻게든 입사하고 싶었다. 세화는 지금 석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 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노력이 더해져야 의미 있는 거겠죠.”“우리 삐약이! 아고 기특해!”“?”“저녁 먹으러 가자. 뭐 좋아해? 뭐 먹고 싶어?”“즉떡이요.”끄억, 우리 삐약이가 즉석 떡볶이가 먹고 싶었구나. 오빠는 튀김이랑 순대랑 볶음밥까지 시켜 먹을 거야. 사리도 잔뜩 추가하고. ***영이와 준호도 오늘은 집이 아닌 식당으로 향했다.밥을 먹는 내내 이미주 대리와 박성호 대리 일이 대화 주제였고 말이다. “너무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할 수가 있어?”“그러니까. 실망이네.”“이게 시말서로 끝날 일이야? 오빠가 어떻게 좀 해봐!”“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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