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아내가 바람난 날, 내 슬럼프가 끝났다: Kapitel 161 – Kapitel 170

182 Kapitel

161화 추락한 백조의 애원(2)

"뭐……? 결국 터졌네? 너 지금 그게 말이라고 나와? 너한테는 이게 남 얘기야? 그 갤러리가 나한테 어떤 곳이었는지 몰라? 내 전부였어! 내 인생이자 내 목숨 같은 곳이었다고! 내 손으로 바닥부터 일궈낸 내 왕국이었단 말이야! 내 지위, 내 명예가 다 거기 있었는데…… 그런데 네가…… 네가 날 완전히 망쳤어!"서아는 주먹으로 운전대를 거칠게 내리쳤다. 경적이 길게 빵- 하고 울리며 주변의 공기를 찢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안의 무신경한 태도가 그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넘어 송곳으로 찌르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에, 이안은 그저 날씨 얘기하듯 가볍게 대꾸하고 있었다.누나, 진정해. 그깟 갤러리 관장 자리가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그래? 어차피 그 돈 많은 영감탱이들 비자금 세탁해 주고 그림 장사하는 꼭두각시 방패막이였잖아. 백서아라는 이름 석 자보다 '강도진의 아내'라는 타이틀 덕에 앉아 있던 자리 아니었어? 솔직해지자고. 누나도 알고 있었잖아. 그 자리가 누나 진짜 실력으로 얻은 게 아니라는 거.이안의 뻔뻔하고 날카로운 대답에 서아는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에게 그 갤러리는 단순히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는 직장이 아니었다. 강도진이라는 거대한 천재의 그늘 밑에서 존재감을 잃고 말라 죽어갈 때, 오롯이 '백서아'라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성벽이었다. 그것을 이안은 '꼭두각시', '가짜 자리'라며 거침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너한테는 그게 그렇게 우습고 천해 보여? 내가 그 자리를 지키려고 어떤 짓까지 했는지 알아? 대기업 사모님들 비위 맞추고, 비위 상하는 더러운 꼴 다 보면서 십 년 넘게 지켜온 자리야! 네가 뭘 안다고 내 인생을 네 멋대로 지껄여! 네가 내 고통을 단 일 분이라도 상상해 봤어?!"누나한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아직도 몰라서 그래? 누나는 내 뮤즈야. 내 지저분한 작업실에서, 내 그림 속
Mehr lesen

162화 추락한 백조의 애원(3)

서아는 구두 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성큼성큼 다가가 이안의 어깨를 붙잡아 억지로 돌려세웠다."이안! 내 말 안 들어?! 똑바로 내 눈 보고 말하라고!"이안은 붓을 멈추고 귀찮다는 듯 서아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매캐한 회색 연기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흐리며 시야를 답답하게 가로막았다."왔어? 생각보다 빨리 왔네. 차 막히는 시간인데 샛길로 잘 찾아왔나 봐.""시치미 떼지 마. 이사회에 CCTV 캡처본과 문자 일부를 넘긴 거 너지?! 나를 완전히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서 네 장난감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터뜨린 거잖아!"서아의 눈이 핏발로 가득 차 번들거렸다.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갈라져 가늘게 떨렸다. 이안은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담배를 바닥에 던져 구두 굽으로 비벼 껐다. 바닥에 검은 그을음과 담배 재가 새로 추가되었다."그래. 내가 넘겼어."이안은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은 채 인정했다."누나가 끝까지 갤러리랑 그 잘난 체면 뒤에 숨으려고 했잖아. 그 성벽이 무너지면 더는 나를 버리고 돌아갈 곳이 없을 테니까. 그래서 누나가 내 작업실을 드나든 CCTV 캡처본이랑 우리가 주고받은 문자 일부를 이사회에 던진 거야.""이 미친 새끼…… 나를 완전히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서 네 손아귀에 쥐려고?"서아가 이안의 멱살을 잡으려 다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안은 가볍게 그녀의 두 손목을 낚아채며 비릿하게 웃었다."이제야 알아듣네. 진실을 전부 증명할 필요도 없었어. 원본이 없더라도 누나가 겁먹고 무너지는 모습만 만들면 충분했으니까. 누나는 이제 그 가짜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갈 곳은 여기뿐이야.""닥쳐! 그래도 도진 씨에게만은 절대 알릴 수 없어.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해 주는 내 남편이야. 날 위해 평생을 헌신했어!""고결? 사랑? 평생의 헌신? 푸하하!"이안이 배를 잡고 크게 웃어 젖혔다. 그 날것의 웃음소리가 지하실 벽을 타고 기괴하게 반사되어 서아의 고막을 잔인하게 찔렀다. 비웃음
Mehr lesen

163화 추락한 백조의 애원(4)

툭.무릎이 차갑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닿았다. 그 충격이 뼈를 타고 전신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에서 직구한 수백만 원짜리 명품 실크 스커트가 바닥의 먼지와 검은 유화 물감 얼룩에 그대로 쓸려 더러워졌다. 하지만 서아에게는 그 비싼 옷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목숨줄이 끊어지게 생겼는데 옷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이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언제나 고고하고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자신을 아랫사람 대하듯, 혹은 장난감 대하듯 내려다보던 '상류층의 백조' 백서아가, 지금 자신의 발밑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 완벽한 굴복의 형태에 이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이 극상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누나……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쳤어?"이안의 목소리에서 거만함이 싹 가셨다. 대신 당혹감과,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상황이 주는 기묘한 충격이 그 자리를 채웠다.서아는 고개를 숙인 채, 양손으로 더러운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는 거친 모래먼지와 굳은 물감의 감촉이 그녀의 비참함을 더욱 극대화했다. 참아왔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시멘트 위의 먼지를 적셨다. 어둠 속에서 눈물 자국만이 투명하고 슬프게 빛났다."이안…… 제발…… 제발 부탁이야…… 내 평생 처음으로 남한테 빌게……"서아가 바닥에 엎드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가득 차 가늘게 갈라져 있었다. 자존심 같은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만이 그녀를 지배했다."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쳤었어. 다 내 잘못이야. 네 말대로 내 가식이었고, 내 이기적인 허영심이었어. 내가 감히 널 이용하려고 했어.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나를 살려줘. 나를 이 지옥 같은 파멸에서 꺼내줘.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서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우아하게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뺨에 지저분하게 달라붙었고, 마스카라와 아이라
Mehr lesen

164화 파국의 조건(1)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테레빈유 냄새.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언제나 눅눅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숨이 막혔다. 서아는 축축하게 땀이 밴 손바닥을 코트에 문질러 닦으며 철문 앞에 섰다.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몇 시간 전, 이안은 바닥에 엎드린 서아의 애원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작업실 밖으로 내쫓았고, 서아는 해가 완전히 진 뒤에야 한남동 저택으로 돌아왔다.그러나 밤 10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이안에게서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안 오면, 내가 그 완벽한 집으로 갈게. 형이랑 같이 마실 와인이라도 사 들고.'첫 번째 애원에서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채 저택으로 돌아온 서아를, 한 시간 전 도착한 그 문자가 다시 이 지옥 같은 지하실로 끌어냈다. 도진이 서재에서 원고에 집중하고 있는 틈을 타, 도망치듯 빠져나와 택시에 올라타는 내내 서아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쳤다.끼기긱-.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캄캄한 작업실 한가운데에 이안이 앉아 있었다.불조차 켜지 않은 어둠 속. 오직 철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빛만이 그의 실루엣을 기괴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이젤 앞에 앉아, 붓 대신 맨손으로 캔버스를 짓이기고 있었다."……이안아."서아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힘없이 떨어졌다.그제야 이안의 손이 멈췄다. 허공에 떠 있던 그의 손에서 붉은색 유화 물감이 핏방울처럼 뚝, 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왔어?"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음성. 평소 그녀를 향해 애타게 짖어대던 짐승 같은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도진 형은? 자?" "너… 진짜 미쳤어? 밤 열한 시에 거기로 오겠다는 둥, 그런 문자를 겁도 없이 막…!" "겁? 누가?"탁.이안이 스위치를 올리자, 작업실의 백열등이 깜빡이며 눈을 찌를 듯한 빛을 쏟아냈다. 서아는 순간적으로 눈을 찡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서아는 그만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Mehr lesen

165화 파국의 조건(2)

"난 잃을 게 없거든. 애초에 밑바닥이었으니까. 그런데 넌 다르지. 백서아 관장님. 유명 소설가 강도진의 우아한 아내. 네가 가진 그 알량한 명예, 지위, 돈, 그리고 완벽한 가정."이안이 서아의 뺨을 물감 묻은 손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서아의 하얗고 비싼 실크 블라우스 위로, 이안의 손에 묻어 있던 붉은 물감이 마치 핏자국처럼 흉측하게 번져갔다."이 그림들, 형 출판사로 보낼까? 아니면 네 갤러리 로비에 걸어둘까." "안 돼… 안 돼, 제발. 넌 예술가잖아. 네 재능을 이런 데 쓰지 마. 넌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어? 제발, 내가 뭐든 다 해줄 테니까…."서아가 이성을 잃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은 참혹했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동정심이라고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차가운 얼음장 같았다."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이안이 서아의 손목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페인팅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서아는 그가 자신을 찌르기라도 할까 봐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하지만 이안은 나이프의 날카로운 끝으로 서아의 얼굴이 그려진 캔버스를 툭툭 치며 말했다."도진 형한테 말해." "……뭐?" "내 앞에서."이안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그 잘난 형 얼굴 똑바로 보고, 네 입으로 직접 말해. 지금까지 날 기만하고 내 뒤에서 이딴 짓을 벌였다고. 네가 사랑하는 건 강도진이 아니라 나, 이안이라고." "미쳤어…? 도진 씨가 알면 널 가만둘 것 같아?! 그 사람은 내 남편이야! 날 사랑한다고!" "사랑? 형이 널 사랑해?"이안이 미친 사람처럼 폭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텅 빈 지하실을 섬뜩하게 울렸다."착각하지 마. 형은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냥 자기 소설을 완성시켜 줄,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뮤즈이자 장식품이 필요한 것뿐이야! 네가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그 새끼는 널 가차 없이 버릴 걸?" "아니야… 도진 씨는 널… 내가 아끼는
Mehr lesen

166화 파국의 조건(3)

서아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안과의 대화창 맨 아래에는 조금 전까지도 자신을 작업실로 끌어당겼던 협박성 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녀는 삭제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없애 버리면 편해질 것 같았다. 도진에게 들킬 가능성도, 누군가 우연히 화면을 볼 가능성도 줄어든다.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안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증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었다.서아의 엄지가 화면 위에서 떨렸다.결국 삭제하지 않았다.대신 메시지 몇 장을 캡처했다. 사진첩에 저장됐다는 표시가 뜨자 서아는 곧바로 후회했다.'미쳤어. 이걸 왜 남겨.'그녀는 캡처 화면을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삭제할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지하 계단을 빠져나와 골목에 섰다. 찬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서아는 가로등 아래에서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첫 글자를 두 번이나 지웠다.1. 도진 씨에게 전부 말한다. 2. 경찰이나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3. 이안을 다시 설득한다. 4. 돈이나 계약으로 끊는다. 5. 모르는 척 버틴다.다섯 줄을 적고 나니 오히려 숨이 막혔다.도진에게 말하는 순간 결혼 생활 전체가 심판대 위에 오른다. 경찰에 가면 갤러리와 작품, 문자와 사진, 자신이 숨긴 관계까지 설명해야 할 수 있다. 이안을 설득하는 건 이미 실패했다. 돈을 건네면 협박의 증거가 아니라 거래의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안이 먼저 움직인다.마지막 선택지가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위험했다.서아는 다섯 번째 줄을 지웠다.그리고 한참 뒤 첫 번째 줄도 지웠다.남은 세 줄을 바라보다가 결국 메모 전체를 닫았다."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목소리가 갈라졌다.골목 저편에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다. 헤드라이트가 스치자 서아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그녀는 담벼락 쪽으로 더 몸을 붙였다.그 순간 처음으로 한 단어가 떠올랐다.변호사
Mehr lesen

167화 가장 따뜻한 지옥(1)

  "기사님, 빨리요. 제발 조금만 더 빨리 가주세요."서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뒷좌석에 웅크리듯 앉은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손님, 지금 과속 카메라 구간이라서요. 여기서 더 밟으면 딱지 날아옵니다."룸미러로 서아를 힐끗 쳐다본 택시 기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제가 낼게요! 벌금 제가 다 낼 테니까, 그냥 밟아주세요. 네? 제발요…."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서아의 눈빛은 반쯤 초점을 잃고 있었다. 기사는 혀를 쯧 차며 속도를 조금 올렸지만, 서아에게는 그것조차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야경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가로등 불빛이 마치 이안의 작업실에서 번뜩이던 백열등처럼 서아의 눈을 찔렀다.『내일 밤. 도진 형한테 이 대표작 한 점이 배달되기 전에, 네가 먼저 형을 끌고 이리로 와.』귓가에 이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하아… 하아…."서아는 숨을 고르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코끝에서는 여전히 지독한 테레빈유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미친놈. 그건 사람이 아니야. 미쳤어, 완전히 돌았어.'자신의 가장 추악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담아낸 수십 장의 캔버스. 그중 가장 노골적인 대표작 한 점이 도진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손님, 어디 아프세요? 안색이 영 안 좋은데, 병원으로 모실까요?""아니요! 아니요, 그냥 집으로 가주세요. 똑바로 가고 있는 거 맞죠? 다른 길로 새는 거 아니죠?""아 참, 내비게이션대로 똑바로 가고 있다니까요. 손님이 방금 타셔놓고 무슨…."서아는 기사의 말을
Mehr lesen

168화 가장 따뜻한 지옥(2)

  "그랬구나.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사 왔을 텐데.""아니야, 당신 글 쓰는데 방해될까 봐. 어차피 바람도 좀 쐬고 싶었고….""그래서, 샴페인은 샀어?""아… 그게, 결국 못 샀어. 파는 곳이 없어서."서아는 시선을 피하며 코트 자락을 꽉 쥐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도진이 서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서아는 무심코 숨을 참았다. 이안의 손에 묻어 있던 유화 물감이 자신의 블라우스 어딘가에 묻어 있지 않을까, 역겨운 테레빈유 냄새를 그가 알아채지 않을까 두려웠다.도진이 손을 들어 서아의 어깨로 가져갔다.움찔. 서아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움츠렸다."왜 그래? 많이 놀랐나 보네.""어? 아, 아니. 손이 갑자기 다가오니까….""머리카락에 나뭇잎이 붙어 있어서."도진이 서아의 어깨 위에서 작은 마른잎 하나를 떼어내 보여주었다. 서아는 그제야 억눌렀던 숨을 몰아쉬었다."고, 고마워.""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입술도 파랗고. 밖이 많이 추웠나 보네. 외투는 이리 줘, 정리해 둘 테니까."도진이 서아의 코트를 벗기려 손을 뻗었다. 서아는 기겁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코트를 벗으면 그 안에 구겨지고 물감이 튄 실크 블라우스가 드러날 게 뻔했다."내가 할게! 내가, 내가 걸어둘게. 옷방에 바로 놔두면 돼.""그래? 그럼 그렇게 해. 손부터 씻고 나와. 따뜻한 차 좀 타줄게."도진은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순순히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서아가 옷방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현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코트 아랫단 한쪽이 거칠게 찢겨 있었고, 맨살이 드러난 발목에는 회색 먼지와 검은 물감 가루가 얇게 들러붙어 있
Mehr lesen

169화 가장 따뜻한 지옥(3)

  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진의 성격을 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자신의 소설만큼이나 자신의 삶도 오점 하나 없이 깨끗해야 하는 사람이었다.그의 고결한 세계에, 백서아라는 오물이 묻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참지 못할 것이다. 가차 없이 그녀를 도려내 버릴 것이다."그냥, 요즘 신경 쓸 일이 조금 많아서 그래. 연말 전시 기획도 다가오고 하니까… 머리가 좀 복잡하네."결국 서아는 또다시 거짓말의 장막 뒤로 숨었다."그랬구나."도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무리하지 마. 갤러리 일도 좋지만, 서아 씨 건강이 우선이잖아. 내가 뭐 도와줄 일은 없고?""도진 씨가 어떻게 도와줘. 당신은 원고 마감이나 신경 써. 거의 다 써간다며?"서아가 짐짓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며 물었다.도진은 찻잔을 내려놓고 손깍지를 꼈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응. 거의 다 왔어.""결말은 정했어? 저번엔 주인공들이 어떻게 파국을 맞을지 고민이라고 했잖아.""아, 그거."도진의 안경 너머, 서늘한 눈빛이 번쩍 빛났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아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완벽한 결말을 찾았어.""정말? 다행이네. 어떤 결말인데?""음… 그건 아직 비밀이야. 서아 씨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려고 아껴두고 있거든."도진이 손을 뻗어 찻잔을 쥐고 있는 서아의 손등을 부드럽게 덮었다.서아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그의 크고 따뜻한 손길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기대할게. 도진 씨 소설은 항상 최고였으니까.""그래, 기대해도 좋아. 이번 소설은…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 될 것 같으니까."도진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
Mehr lesen

170화 고해성사의 시간(1)

  아침 햇살이 암막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서아의 눈두덩이를 찔렀다."……."서아는 눈을 뜬 채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눈을 감으면 백열등 아래 전시되어 있던 자신의 기괴한 나체 그림들이 아른거렸고, 귀를 막으면 이안의 섬뜩한 웃음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결국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옆자리에서는 도진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의 넓고 단단한 등판을 바라보며, 서아는 이불자락을 꽉 틀어쥐었다.어젯밤 이안이 내민 최후통첩의 시한은 오늘 밤이었다.그 미친놈이 이 평화로운 집에 쳐들어오거나, 아니면 그중 가장 구역질 나는 대표작 한 점을 도진 앞으로 보내버릴 시간이었다."하아…."서아가 갈라진 입술을 달싹이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눌렀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서아 씨. 일어났어?"그때, 등 돌려 자고 있던 도진이 몸을 뒤척이며 서아를 향해 돌아누웠다. 잠이 덜 깬 탓에 약간 잠긴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다정했다.서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어, 어어. 깼어? 더 자지. 어제 늦게까지 원고 썼잖아.""당신 앓는 소리에 깼지. 왜 그래? 어디 아파?"도진이 상체를 일으키며 서아의 이마에 커다란 손을 얹었다."세상에, 불덩이네. 땀 흘린 것 좀 봐."도진의 미간이 훅 좁혀졌다. 그의 손길은 서아의 이마에서 뺨으로, 그리고 목덜미로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걱정이 가득 담긴 그 다정한 손길이 닿을 때마다, 서아는 심장이 칼에 베이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아, 아니야. 그냥… 그냥 밤에 좀 추웠나 봐.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얼굴이
Mehr lesen
ZURÜCK
1
...
141516171819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