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아내가 바람난 날, 내 슬럼프가 끝났다: Bab 41 - Bab 50

182 Bab

041화 완벽한 거짓말, 그리고 추락의 방향(2)

갤러리 업무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서아는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포르쉐 파나메라에 올라탔다.운전대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룸미러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창백하게 질린 뺨. 하지만 묘하게 상기된 눈가. 평소라면 절대 바르지 않았을, 짙고 붉은 립스틱."미쳤어, 백서아. 진짜 돌았어……."서아는 이마를 운전대에 처박으며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차를 돌려 한남동 집으로 가야 한다. 도진이 기다리고 있는, 안전하고 완벽한 그 거실로 돌아가야 한다. 머릿속의 이성은 피가 나도록 경고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발은 이미 엑셀을 밟고 있었다.휴대전화에는 도진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떠 있었다.[혜진 씨는 만났어?]서아는 한참 뒤 답했다.[응. 이제 막 만났어. 오랜만이라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보내기 버튼을 누른 순간 마지막 퇴로가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결국 차를 돌리지 않았다.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가 아니었다.너무 잘 알면서도 갔다.부웅-.차를 출발시키기 전 서아는 이안에게 보낼 메시지를 세 번이나 썼다 지웠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연락하지 마.’라고 적었다가 지웠고, ‘오늘은 못 가.’라고 적었다가 그것도 지웠다. 마지막에는 전시 일정과 작품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짧은 업무 문장만 남겼다. 읽는 사람이 보면 관장과 작가 사이의 평범한 연락처럼 보일 내용이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서아는 자신이 왜 굳이 흔적을 정돈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가고 싶지 않다면 가지 않으면 됐다. 그런데 그녀는 가지 않는 선택보다, 가는 이유를 깨끗하게 꾸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그 모순을 생각하는 순간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었다.고급 세단이 미끄러지듯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할 필요조차 없었다. 한남동의 넓고 쾌적한 대로를 지나, 남산 소월길을 타고 넘어가는 길.점점 가로등 불빛이 드물어지고, 도로의 포장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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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화 완벽한 거짓말, 그리고 추락의 방향(3)

끼이익-.등 뒤에서 무겁고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서아는 숨을 들이켜며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열린 문틈 사이로, 권이안이 서 있었다.그는 방금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듯, 헐렁한 흰색 티셔츠와 회색 스웨트 팬츠 차림이었다. 옷 곳곳에는 붉고 검은 물감 자국이 선혈처럼 튀어 있었다.헝클어진 머리칼.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 한 개비. 그리고, 서아를 내려다보는 그 서늘하고 오만한 시선."어디 가."이안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며 툭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밤안개처럼 낮고 축축했다."……."서아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며칠 동안 애써 억눌러왔던 알 수 없는 갈증과 텐션이 둑이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다."왔으면 들어와야지. 기껏 여기까지 기어올라와 놓고 도망치려고?"이안이 문에 비스듬히 기댄 채 턱짓으로 안을 가리켰다."내가…… 당신이 부른다고 올 줄 알았어?"서아가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도도한 갤러리 관장의 가면은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겨 나간 지 오래였다."안 불렀는데."이안이 피식 웃으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난 그냥 다음엔 네 발로 오라고 통보만 했을 뿐이지. 선택은 네가 한 거고.""……!""그 완벽하고 잘난 남편한테 뭐라고 거짓말하고 왔어?"정곡을 찌르는 이안의 말에 서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야근? 아니면 뻔한 친구 모임?"이안이 담배를 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는 천천히 서아를 향해 걸어왔다."가까이 오지 마……."서아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이안의 긴 다리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거짓말을 했으면 끝까지 뻔뻔해져야지. 왜 이렇게 떨어, 불쌍하게."이안의 커다란 손이 서아의 목에 둘러진 스카프를 신경질적으로 잡아챘다. 스르륵, 실크 스카프가 바닥으로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다."이거 놔…….""네 발로 찾아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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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화 무너진 캔버스, 그리고 완벽한 타락(1)

잠긴 철문 너머로 외부의 소음이 완전히 끊겼다.한남동의 저택도, 갤러리의 클래식 선율도, 도진의 다정한 목소리도 이제 닿지 않았다. 서아는 방금 잠긴 문을 등진 채 숨을 삼켰다. 등 뒤의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고리를 더듬어 볼 틈도 없이 이안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서아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구두 굽이 바닥에 널브러진 빈 물감 튜브를 밟고 미끄러졌다."아앗."비틀거리는 순간, 이안의 거친 팔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듯 감아올렸다."어딜 도망가려고."이안의 목소리는 낮고 짐승처럼 긁히는 소리를 냈다."이거, 이거 놔. 당장 문 열어."서아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고, 밀어내는 손끝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이안은 코웃음을 쳤다."네 발로 기어들어 와 놓고 이제 와서 내빼겠다고?""내가, 내가 미쳤었나 봐. 제정신이 아니었어. 갈래. 당장 문 열어, 권이안!"서아는 발버둥을 치며 이안의 품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이안은 오히려 서아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더 꽉 주며, 그녀를 자신의 몸 쪽으로 빈틈없이 밀착시켰다."거짓말."이안의 뜨거운 숨결이 서아의 이마 위로 쏟아졌다."남편한테 야근한다고, 아니면 친구 만난다고 구라까지 치고 여기까지 와놓고. 문 열어주면, 진짜 나갈 수 있어?"정곡을 찌르는 이안의 말에 서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할 수 있어. 갈 거야. 그러니까 놔…….""그래? 그럼 가봐."이안이 돌연 서아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갑자기 사라진 압박감에 서아는 오히려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안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서아를 빤히 내려다보며 턱짓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가리켰다."열어줄 테니까, 가라고.""…….""가서, 그 숨 막히는 샌님 남편 옆에 누워서 평생 완벽한 마누라 연기나 하면서 살아."서아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손잡이를 돌리고 나가면 끝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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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화 무너진 캔버스, 그리고 완벽한 타락(2)

그래. 이 남자는 날 완벽한 아내로 보지 않는다. 도진의 통제 아래 박제된 전시물이 아니라, 그냥 욕망에 헐떡이는 밑바닥의 여자로 대하고 있다.그 사실이 서아를 미치게 만들었다.서아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서아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바닥에 짓눌려 있던 그녀의 두 팔이 스르륵 풀리더니, 어느새 이안의 넓은 등과 목을 꽉 끌어안았다."……!"서아의 능동적인 반응에 이안의 움직임이 찰나 멈칫했다."네 말이 맞아."서아가 이안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헐떡이며 속삭였다."나 미쳤어. 그러니까…… 더 망가뜨려 줘. 그 사람 생각, 1초도 안 나게 해줘……."서아의 그 한마디는 짐승의 목줄을 완전히 풀어버린 기폭제였다."후회하지 마라."이안의 눈빛이 잡아먹을 듯 돌변했다. 그는 서아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부드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피가 날 것처럼 물어뜯고 탐하는 난폭한 키스였다. 서아 역시 지지 않고 이안의 혀를 옭아매며 그의 뒷머리를 미친 듯이 헝클어뜨렸다.숨이 턱턱 막히고 입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났다.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이안이 주는 강렬한 자극과 쾌락만으로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었다.바스락. 바스락.등 밑에 깔린 캔버스가 두 사람의 몸부림에 맞춰 거친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바닥에 흩어진 붉은색, 검은색 유화 물감들이 튜브에서 터져 나와 서아의 맨살과 이안의 옷 위로 무자비하게 번져갔다."아, 아앗! 하아아……."이안이 서아의 몸을 완전히 갈라내고 파고드는 순간. 서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교성이 터져 나왔다.평생 느껴본 적 없는, 온몸의 핏줄이 터져나갈 것 같은 압도적인 충족감과 고통이 동시에 밀려왔다."하아, 씨발…… 백서아……."이안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그의 움직임은 갈수록 더 거칠고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마치 서아의 몸 깊숙한 곳에 자신의 흔적을 새겨 넣으려는 듯,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그녀를 밀어붙였다."흐앙! 읏, 안 돼, 너무 깊……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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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화 무너진 캔버스, 그리고 완벽한 타락(3)

그녀는 천천히,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널브러진 찢어진 옷가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서아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가장 완벽했던 일상의 박제. 그 화려한 유리관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서아의 귓가에서 환청처럼 이명과 함께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타락은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붉은 물감이 일상을 어떻게 집어삼키는지를 지켜보는 일뿐이었다.작업실을 나서기 직전 서아는 현실의 물건부터 확인했다. 휴대전화, 자동차 열쇠, 카드지갑. 화면에 표시된 시각을 보는 순간 몸에서 열이 빠져나갔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이곳에 있었다.그녀는 거울 대신 검은 휴대전화 액정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와 번진 화장을 손가락으로 정리했다. 손목과 목 주변에 남은 흔적은 옷깃으로 가렸다.이안은 뒤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또 그 얼굴 하네.""무슨 얼굴.""아무 일 없었던 사람 얼굴."서아는 대꾸하지 않았다.차 안에 앉자마자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었다. 물감과 담배 냄새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창문을 열었다.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가 없었다. 도진은 연락하지 않았다.그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해졌다.서아는 근처 편의점에 들러 생수와 물티슈를 샀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손톱 사이에 남은 붉은 물감을 몇 번이나 긁어냈다. 세면대 위 거울 속 여자는 갤러리 관장 백서아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달랐다.그녀는 집에 가기 전 한 가지를 정했다.오늘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그 결정은 죄책감보다 빨랐다. 설명보다 은폐가 먼저 나온 순간, 서아는 자신이 이미 이전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차에 올라탄 서아는 출발하기 전에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 도진이 물으면 할 말을 두 문장으로 정리했다. ‘작업실에서 작품 상태를 확인했다.’ ‘시간이 늦어져서 연락을 못 했다.’ 사실의 일부만 남겨두면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문장을 외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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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화 죄책감의 온도, 그리고 관찰자의 아침(1)

쏴아아아-최고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한남동 2층 단독 대저택의 넓은 욕실. 해바라기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서아의 정수리를 때리고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욕실 안은 이미 뽀얗고 매캐한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흐읏…… 하아……."서아는 샤워 부스 벽에 이마를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운 온도였지만, 그녀의 턱끝은 추위에 노출된 사람처럼 잘게 떨렸다.벅벅, 벅.서아의 양손은 쉴 새 없이 자신의 쇄골과 가슴, 허벅지를 문지르고 있었다. 샤워볼에 바디워시를 잔뜩 묻혀 몇 번이나 거품을 내고 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피부가 벗겨질 것처럼 손톱을 세워 살갗을 긁어내렸다."안 지워져…… 왜 안 지워지냐고!"신경질적인 서아의 목소리가 물소리에 묻혀 욕실 바닥으로 흩어졌다.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왼쪽 쇄골 아래에 머물렀다. 어젯밤 이안이 짐승처럼 물어뜯고 빨아들였던 자리에, 검붉은 피멍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리와 골반 부근에는 이안의 크고 거친 손가락 모양대로 푸르스름한 멍 자국이 찍혀 있었고, 손톱 밑에는 아무리 솔로 문질러도 미세하게 남아 있는 붉은 유화 물감의 찌꺼기가 보였다.'이렇게 한 번 풀어놓으면, 걷잡을 수 없는 천박한 년이니까.'귓가에 이안의 낮고 긁히는 조소가 환청처럼 맴돌았다."아아악!"서아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뜨거운 물줄기가 무방비하게 웅크린 그녀의 등을 때렸다.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흐르는 물에 섞여 자신이 울고 있는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미쳤다.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 더럽고 먼지 쌓인 옥탑방 바닥에서, 널브러진 캔버스를 깔아뭉갠 채 짐승처럼 헐떡이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다.밀어내야 했다. 뺨을 때리고 그곳을 도망쳐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이안의 목을 끌어안고 더 깊이 파고들어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 도진의 그 서늘하고 완벽한 통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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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화 죄책감의 온도, 그리고 관찰자의 아침(2)

도진에게 있어 삶은 너무나도 지루한 정물화 같았다. 완벽한 명성, 완벽한 재력, 완벽한 아내. 이 모든 세팅은 도진이 철저하게 계산하고 설계한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함이 그의 예술적 영감을 말라 죽이고 있었다. 서아는 훌륭한 아내였지만, 소설의 소재로 쓰기엔 단조롭고 납작한 종이 인형에 불과했다. 그녀에게는 그림자나 흠결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종이 인형이 스스로 진창에 구르고 들어왔다. 권이안이라는 싸구려 붓의 터치를 온몸에 묻힌 채, 죄책감과 공포에 바들바들 떠는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섰다."하하."도진의 입술 틈으로 참지 못한 웃음이 작게 새어 나왔다. 손끝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당장이라도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이 상황을 활자로 미친 듯이 쳐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딸깍.그때, 욕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진은 순식간에 얼굴에서 냉랭한 미소를 지워내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남편의 가면을 태연하게 뒤집어썼다.끼이익. 문이 열리고, 하얀 샤워 가운을 여며 입은 서아가 밖으로 나왔다."도진 씨……."서아는 침대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도진을 발견하고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나왔어? 목욕이 꽤 기네."도진이 커피잔을 사이드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아…… 네. 피곤해서, 따뜻한 물에 좀 오래 있었어요."서아는 시선을 도진의 눈동자에서 슬쩍 피하며 화장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모르게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허벅지 안쪽의 뻐근한 통증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다.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아의 뒤로 다가갔다."앗."도진의 큰 손이 서아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감싸 쥐자, 서아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왜 그래? 놀랐어?""아, 아니요. 손이…… 갑자기 닿아서."서아가 화장대 거울을 통해 등 뒤의 도진을 바라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도진은 화장대 서랍에서 드라이기를 꺼냈다."내가 말려줄게.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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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화 죄책감의 온도, 그리고 관찰자의 아침(3)

서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 집구석에 도진과 단둘이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면, 그녀는 정말 미쳐버리거나 모든 것을 자백해 버릴지도 몰랐다."그래, 무리하지는 말고."도진이 서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짧은 입맞춤의 순간, 서아는 도진의 몸에서 미세하게 풍기는 낯선 한기를 느꼈다.도진은 몸을 일으켜 드레스룸 쪽으로 걸어갔다."아, 참."드레스룸 문을 열던 도진이 고개를 돌려 서아를 바라보았다."빨래 바구니에 있던 낯선 셔츠, 아줌마한테 버리라고 할게. 와인 얼룩은 지우기도 힘들고, 남의 남자 옷을 우리 집에 계속 두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잖아?""……!"서아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어차피 싸구려 원단 같던데. 혜진이 오빠분한테는 내가 아주 좋은 셔츠로 하나 사서 보내라고 카드 줄게."도진은 한결같은 호의를 베푸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서아의 가장 깊고 더러운 비밀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서늘하고 집요하게 빛나고 있었다."……네. 그렇게, 해요."서아가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로 대답했다.도진이 드레스룸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서아는 화장대 모서리를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손발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알고 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권이안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다른 남자와 외도했다는 사실만 직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확실한 것은, 도진이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을 추궁하지 않는다.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덫에 걸린 쥐가 발버둥 치는 모습을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 생생한 공포와 죄책감을 핥아먹듯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하아……."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도진의 말대로였다. 죄책감에 찌들어 창백하게 질려 있으면서도, 그녀의 두 뺨은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파멸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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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화 완벽한 세계의 균열, 불청객(1)

부아앙-!매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포르쉐 파나메라의 엔진음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운전대를 쥔 서아의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하아……."막히는 올림픽대로 한가운데. 서아는 신호 대기에 걸리자마자 운전대에 이마를 처박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에어컨을 가장 낮게 틀어놓았는데도 원피스 안쪽은 온통 식은땀으로 축축했다.아침 내내 남편 도진의 그 서늘하고 기묘한 시선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방금 막, 사랑에라도 빠진 여자 같아.' 다정하게 웃으며 제 귓불을 만지작거리던 도진의 손길. 그 감각이 떠오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올랐다.도진은 알고 있을까? 아니, 모를 것이다. 그가 완벽주의자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서아였다. 만약 자신의 외도를 눈치챘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짐을 싸서 내쫓거나 이혼 서류를 집어 던졌어야 맞다. 그렇게 여유롭게 웃으며 머리를 말려줄 남자가 아니었다.'그래, 그냥 기분 탓일 거야. 내가 지레 겁먹은 거야.'서아는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백미러로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었다. 창백한 피부 위로 도발적으로 칠해진 붉은 립스틱. 평소의 단정하고 우아한 '청담동 갤러리 관장'의 모습과는 묘하게 이질감이 들었다.징징- 징징-조수석에 던져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서아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 발신자 제한 번호? 아니, 화면에 뜬 이름은 더욱 끔찍했다.[권이안]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서아는 입술을 꾹 깨물며 핸드폰 화면을 뒤집어 버렸다. 하지만 전화가 끊기자마자, 이번에는 카카오톡 알림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카톡!] [카톡!] [카톡!]참지 못한 서아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어디야?벌써 남편 출근시키고 출근 중?어제 급하게 가느라 속옷 두고 갔던데. 버려? 아님 퀵으로 보내줘?"미친 새끼……!"서아의 입에서 험악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속옷이라니. 어젯밤, 그 더러운 작업실 바닥에서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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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화 완벽한 세계의 균열, 불청객(2)

"그런데, 서아 관장."사모님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췄다."저기 바깥 홀에 전시된 신진 작가들 그림 말이야. 그중에서 메인에 걸려 있는 추상화. 그거 누구 작품이야?""아, 기획전 말씀이시군요. 이번에 저희 갤러리에서 새로 발굴한 루키들인데…….""아니, 다른 애들은 다 고만고만하고. 그 왜, 검붉은 색 잔뜩 써서 엄청 거칠게 그려놓은 거 있잖아. 묘하게 야해 보이기도 하고, 막 소름 끼치기도 하고. 그거 작가 이름이 뭐더라?"서아의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사모님이 말하는 그림은 단 하나뿐이었다."……권이안 작가 작품 말씀하시는 건가요?""맞아! 권이안. 그 작가 아주 물건이던데? 선 쓰는 게 꼭 누구 잡아먹을 것처럼 흉폭한 게, 아주 매력 있어. 오늘 그 작가 혹시 갤러리에 있어?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서아는 입안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피 맛이 비릿하게 퍼졌다."아…… 권 작가님은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계시는 분이라서요. 외부 일정은 일절……."똑똑-그때, VIP 라운지 문에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울렸다. 최 대리가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관장님. 죄송하지만, 밖으로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왜요? 지금 사모님이랑 미팅 중인 거 안 보여요?"서아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최 대리가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꼭 지금 관장님을 뵙고 싶다고 떼를 쓰셔서…….""누군데 예의도 없이 약속도 안 잡고 찾아와? 돌려보내요!""그게…… 권이안 작가님이라고 하시는데요."쨍그랑-!서아의 손에 들려 있던 베르사체 찻잔이 테이블 위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뜨거운 홍차가 서아의 치마 위로 엎질러졌지만, 그녀는 뜨거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누, 누구라고요?"서아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찢어졌다."권이안 작가님이요.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어머! 방금 내가 말한 그 작가 아냐? 잘됐네! 서아 관장, 얼른 모셔 와. 나도 인사 좀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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