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창문 너머로 직접 본 장면은 추측이 아니었다. 도진은 의자를 끌어당겼다. 지금부터는 비어 있는 원고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이야기를 전혀 다른 속도로 밀어붙일 차례였다.그때,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진동 소리가 서재 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화면을 보니 '문학정신 김 편집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받지 않았을 전화였다. 도진은 잠시 화면을 노려보다가, 충동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 김 편집장."어우, 강 작가님! 이 시간에 전화를 다 받으시고, 웬일이십니까? 요새 통 연락이 안 되셔서 걱정했습니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 편집장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은근한 압박이 묻어 있었다."그냥…… 좀 바빴어."아이고, 그러시겠죠. 사모님 갤러리 일도 도우시느라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저, 작가님…… 다름이 아니라 이번 분기 특집호 원고 때문에 혹시나 해서…… 에이, 아닙니다. 그냥 목소리나 좀 들으려고 전화했습니다. 부담 가지지 마세요.김 편집장은 늘 이런 식이었다. 3년째 신작을 내지 못하는 국내 최고의 스타 작가에게 대놓고 독촉은 못 하고,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보는 꼴이 가련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 독촉조차 다르게 들렸다.도진은 모니터에 열려 있는 기존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응시했다. 손가락 끝이 찌르르하게 울렸다."김 편집장."네, 작가님. 말씀하세요."원고 쪼지 마. 나 안 죽었으니까."예? 그, 그게 무슨……?"쓰고 있어. 오늘 밤은 끝까지 밀어붙일 거야."어…… 정말입니까? 그럼 원고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까? 어떤 내용인지 살짝만 힌트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가 지면 비워놓고 기다리겠습니다!김 편집장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흥분으로 뒤집어졌다."힌트? 힌트라."도진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걸렸다. 머릿속에 방금 전 목격한 아내의 헐떡이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완벽하게 길들여진 짐승이 혀를 내밀고 스스로 목줄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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