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 씨가요? 원래 내 일에는 잘 안 나서잖아요. 사람 많은 곳 싫어하기도 하고.""이번엔 좀 다가서 볼까 해. 당신이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기획전인데, 남편으로서 얼굴 한 번 비추는 게 예의지."도진은 서아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것을 즐겁게 감상하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 이안이라는 작가.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네.""……!""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또 어떤 눈빛을 가진 사람인지. 궁금해졌거든."서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숨이 턱 막혀왔다.그 천박하고 통제 불능인 이안과, 차갑고 예리한 남편 도진이 한 공간에서 마주친다?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도, 도진 씨. 굳이 안 와도 되는데. 기자들도 많이 오고 번잡해서 피곤할 거예요."필사적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도진은 단호했다."아니야. 갈게. 벌써 스케줄도 다 비워놨어."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차 다 마셨으면 먼저 들어가서 자. 난 서재에서 일 좀 더 하다 갈게."서아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도진은 주방을 빠져나갔다.식탁에 홀로 남겨진 서아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식어가는 찻잔만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녀의 세계에, 조금씩 파멸의 금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딸깍.서재의 문을 닫고 들어온 도진은, 문에 등을 기댄 채 어둠 속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책상에 앉은 도진은 새 문서를 열었다. 날짜와 시각을 적고, 오늘 본 것들을 짧게 기록했다. 귀가 시각. 평소보다 진한 향수. 오래 지속된 샤워. 질문 뒤 느슨해진 어깨.그는 그것을 ‘증거’라고 쓰지 않았다.‘관찰.’아직은 그 단어가 더 정확했다.도진은 자신이 왜 묻지 않는지 알았다. 진실을 빨리 확인하는 것보다, 사람이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는 일이 훨씬 흥미로웠다.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키보드 위 손가락이 움직였다.세 해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기록을 마친 도진은 문서 속 단어 하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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