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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에 비친 눈물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 - チャプター 10

24 チャプター

제1화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상황을 짐작했다. 이윽고 눈짓으로 그들을 안심시킨 뒤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방 안에서는 유시연이 궁녀에게 안마를 받고 있었다. 나는 공손히 인사를 올린 뒤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마, 이 아이들이 무슨 일로 마마의 노여움을 산 것입니까?”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들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딱히 잘못한 건 없단다. 그냥 눈에 거슬렸을 뿐이야. 저렇게 떼로 엎드려 벌벌 떠는 꼴을 보니 이제야 좀 기분이 나아지려 하네.”말을 마친 그녀는 곁에 있는 궁녀에게 화로를 하나 더 가져오라 명했다.“마침 잘 왔어. 네 자리도 비워뒀으니 저리로 가서 무릎 꿇어. 한 시진은 채우고 일어나.”화로 속에서는 불길이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 저 위에 무릎을 꿇었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살점이 타들어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명을 거역하는 순간, 애꿎은 궁인들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나는 말없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겨울이라 옷을 두껍게 껴입었음에도, 무릎을 타고 올라온 열기는 곧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으로 번져 갔다. 궁에서 형벌을 겪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으나, 살점이 뜯겨 나가는 통증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하지만 나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 뿐, 비명 따위는 내뱉지 않았다. 유시연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묵묵히 버티는 내 모습을 보며 유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폐하 납시오!”내관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시연은 곧장 얌전하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엎드렸다. 그녀를 부축하러 달려온 이형주의 시선이 이내 바닥에 웅크린 내게 머물렀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본 그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그 표정에 당황한 유시연은 서둘러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입을 열었다.“이 계집들이 잘못을 저질러 훈계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명월이가 앞을 가로막고는 제게 뜨거운 물을 끼얹으려 하지 뭡니까. 너무 화가 나서 그저 조금 손을 좀 봐주고 있던 참이었답니다. 폐하,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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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마침내 한 시진이 지났다. 곁에 있던 궁녀들이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내 무릎은 살점이 짓물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도 극에 달하면 감각조차 마비되는 모양이다.예전, 손목 굵기만 한 몽둥이로 다리를 얻어맞았을 때도 이와 같았다. 그때 나는 나를 걱정할 이형주를 안심시키려 피가 흐르는 다리로 억지로 춤을 추어 보였었다.“소인은 괜찮습니다. 정말 하나도 안 아픕니다.”당시 그는 새빨개진 눈으로 나를 끌어안으며 맹세했다.“명월아, 맹세할게. 내가 보위에 오르는 날, 다시는 너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않겠다.”귓가에 선명하게 되살아난 그 애틋한 목소리가, 지난 시절의 모든 기억을 산산조각 내며 내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의 맹세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저 멀리 병풍 너머에서 이형주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네가 풍등을 좋아한다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등을 보여줄 터이니 함께 가자.”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궁궐 담벼락을 짚고,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밤이 깊자 수만 개의 풍등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화려하게 떠올랐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긴 복도를 지나던 궁녀들과 내관들은 머리 위를 가득 메운 풍등을 보며 저마다 부러움 섞인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폐하께서 마마를 참으로 아끼시는구나. 황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겠어.”“말해 뭐 해. 마마가 입만 열면 내일이라도 당장 황후로 책봉해 주실걸?”“그럼 명월 언니는 어쩌고? 너희들에게만 몰래 말하는 건데, 지난번 당직 때 폐하께서 몰래 언니 방으로 드시는 걸 봤어. 그날 밤 신음 소리가 끊이질 않더라니까. 폐하께서 절대 떠나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도 들었어.”“그게 무슨 소리야. 폐하가 어떤 분인데 일개 궁녀 방에 몰래 드셔서 그런 말씀을 하셔? 내가 보기엔 명월 언니는 어려서부터 폐하 곁에 있었으니, 그냥 밤시중이나 드는 것뿐이야.”“맞아. 그러니 폐하께서 명월 언니를 후궁으로 들이지 않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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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사흘 뒤는 유시연이 입궁한 이후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이형주는 이를 기념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조정의 대신들과 그 가족들까지 모두 초대된 자리로, 사실상 궁중의 큰 행사와 다름없었다. 비록 황후의 품계는 아니었으나 그녀가 받는 대접은 이미 황후 그 이상이었다.나는 연회가 탈 없이 진행되기를 바라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고, 그것이 무고한 궁녀들에게까지 화가 번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연회가 시작되기 전, 유시연을 모시러 가던 길에 나는 그녀가 부모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시연아, 아비는 폐하께서 너를 이토록 애지중지하는 이유가, 과거 폐하가 벌을 받을 때 네가 겉옷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라 들었다. 그때 폐하는 그저 총애받지 못하던 황자였을 뿐인데... 설마 그때부터 폐하가 보위에 오를 것을 내다본 것이냐?”유시연은 가볍게 웃어넘겼다.“아버지, 너무 과찬이십니다. 당시에는 저도 전혀 몰랐어요. 그저 공주들과 술을 마시다 겉옷에 얼룩이 묻어 더는 입기 싫어 대충 던져버린 것뿐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제 행동을 그리 착각하실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유시연의 아버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다급히 일러두었다.“그렇다면 그 일은 절대 폐하께서 알게 해서는 안 된다.”“물론이지요. 그 비밀은 평생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겁니다.”문밖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 자신이 우습고, 이형주가 참으로 가여웠다. 그가 유시연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결국은 허망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니...그때 안에서 인기척을 느꼈는지 서늘한 목소리가 문밖을 향해 날아들었다.“밖에 누구냐!”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감추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연회가 시작되고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가던 중이었다.유시연이 이형주에게 술을 올리려 자리에서 일어나던 순간,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형주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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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호위들이 덮쳐오자 나는 저항할 틈도 없이 바닥에 짓눌렸다. 곧이어 날카로운 칼끝이 가슴을 파고들더니 귓가에 맴돌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져 갔다.지금 이 순간 나를 짓누르는 고통이 가슴을 꿰뚫은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이형주 때문에 찢기는 마음 때문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의식을 잃은 뒤, 나는 끔찍한 악몽 속을 헤매었다. 꿈속의 나는 이형주와 함께 냉궁의 계단에 앉아 있었다. 공주의 장신구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형벌을 받은 직후였다. 그는 안타까움이 서린 눈빛으로 내 상처 입은 손에 약을 발라주며 속삭였다.“손가락 끝은 심장과 이어져 있다는데... 무척 아프겠구나.”나는 그의 다정한 손길을 바라보며 애써 웃었다.“아닙니다. 저하께서 소인을 믿어주신다면 아무리 큰 상처를 입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품에 안았다.“당연히 널 믿지. 나는 평생 너를 믿을 것이다.”정신을 차렸을 때, 이형주가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내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그가 얼른 물었다.“이제야 정신이 드느냐. 어디 더 아픈 곳은 없느냐?”나는 그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변명부터 꺼냈다.“폐하, 소인이 한 일이 아닙니다. 소인은 마마께 독을 먹이지 않았습니다.”이형주는 침묵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알고 있다.”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알고 계셨습니까?”“시연이가 중독되지 않았다는 것도, 네가 독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심혈로 해독한다는 것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다. 허나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래야 시연이가 기뻐할 테니까. 네가 어쩌다 시연이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네가 억울함을 참아다오. 너에게 가장 좋은 연고를 가져왔으니 바르면 금방 나을 것이다.”이형주가 평온한 얼굴로 잔인한 진실을 뱉어내자,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 그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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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의 등장에 방 안에 있던 어린 궁녀는 겁에 질려 털썩 무릎을 꿇었다.나는 아이를 서둘러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내보낸 뒤, 방문을 닫고서야 입을 열었다.“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어 출궁 절차를 일러주던 참이었습니다.”내 말에 이형주는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머릿속에는 내가 그를 영영 떠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짐작대로, 그가 대낮부터 나를 찾아온 이유는 유시연 때문이었다.“명월아, 시연이가 네가 만든 떡을 먹고 싶다 하니 얼른 만들어 함께 가자.”나는 군말 없이 한상전의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바탕 분주히 움직인 끝에 곱게 빚은 떡을 유시연의 앞에 내어놓았다.창밖의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유시연은 갑자기 기분이 동했는지, 궁 밖으로 나가 유람을 즐기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썼다. 그녀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이형주였기에, 그는 즉시 마차를 준비시키고 대궐 밖으로 나섰다.유시연의 시중을 들기 위해 나 역시 마차에 올랐다. 좁은 마차 안에서 유시연은 커다란 눈을 굴리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나를 향한 노골적인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유시연이 또 어떤 음해와 악랄한 수단으로 나를 몰아붙일지 짐작하던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명월아, 차를 마시고 싶구나. 네가 직접 우려 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자에서 미리 준비해 둔 찻잎과 물 주전자를 꺼내 화로 위에 올렸다. 물이 끓어오르자 정성스레 우려낸 차를 찻잔에 따르고, 그녀의 앞에 조심스레 내밀었다.“마마, 차를 드시지요.”그녀는 찻잔을 받아 들자마자 내 얼굴에 차를 끼얹었다.“이렇게 뜨거운 차를 내놓으면 어쩌라는 거야? 날 죽이기라도 하려는 셈이냐?”얼굴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물기를 닦아낼 겨를도 없이 나는 서둘러 다시 차를 따랐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이번엔 너무 식었구나. 넌 차를 제대로 우릴 줄은 아는 것이냐?”그녀의 트집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같은 일이 몇 차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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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호숫물은 살을 에듯 차가웠다. 나는 필사적으로 팔을 저어 마침내 아래로 가라앉던 유시연의 옷자락을 낚아챘다.허우적대던 그녀는 살기 위한 본능인지, 나를 죽이려 작정한 것인지 내 어깨를 짓누르며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쳤다. 사력을 다해 유시연을 구해주었건만, 그녀는 도리어 나를 심연으로 처박았다.스무 대의 채찍질로 찢어진 등이 터지며 호숫물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져 깊은 수렁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뒤늦게 달려온 호위들이 내민 대나무를 붙잡고서야 겨우 물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다.뭍에 올라오자 매서운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벌벌 떨리는 몸을 웅크린 채 숨을 겨우 골랐다.저 멀리에서 이형주는 겉옷을 벗어 유시연을 감싸안은 채,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 그녀를 애지중지 옮기고 있었다.한참을 가던 그가, 그제야 내 존재를 떠올린 듯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명월아, 괜찮으냐?”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소인은 괜찮습니다. 폐하의 염려에 감사...”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폐하께서는 잊으셨습니까. 폐하께서 어린 시절 물에 빠졌을 때, 소인이 건져 올렸던 일을요. 소인은 본래 물을 다루는 데 익숙하니 아무 탈도 없습니다.”그 말에 이형주는 제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얼굴 위로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분명 옛 기억을 떠올린 것이리라. 이형주가 아직 힘없는 황자이던 시절, 그의 삶은 모진 수모의 연속이었다. 여느 황자들은 그를 시기하여 한겨울 얼음이 낀 호수에 밀어 넣기 일쑤였고, 곁에 있던 내관들조차 보복이 두려워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그때마다 망설임 없이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든 것은 나였다. 열다섯의 어린 몸으로 장성한 소년을 끌어올리는 일은 매번 사투에 가까웠다. 나는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그를 붙잡았다.이형주가 가장 위태로웠던 날, 자신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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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요양하는 이 날들 동안에, 이형주가 유시연을 극진히 총애한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 나갔다.이형주는 물에 빠진 뒤 크게 앓아누운 그녀가 안쓰러워 사람들을 시켜 변방의 진귀한 약재들을 가득 구해오게 했다.더불어 유시연이 편히 잠들지 못할까 염려해 천금을 호가한다는 고급 비단으로 침상 옆 장막까지 마련해 주었다.나는 그 모든 소식을 뒤로한 채 짐을 꾸리고, 궁을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그러던 어느 날 밤, 이형주가 다시 내 방을 찾았다. 그는 연고를 건네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의원에 들러 직접 가져온 것이다. 네 상처를 낫게 하는 데는 이것이 제일이라 하더구나. 그날, 네 상처가 터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은 시연이 곁을 비울 수 없어서 시연이가 잠든 틈을 타 겨우 시간을 내어 왔다. 이제 좀 어떠하냐?”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붓을 들어 글씨 연습을 이어갔다. 그는 내 등 뒤로 다가와 종이를 내려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어찌 그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실력이 늘지 않느냐. 이리 오너라, 내 다시 가르쳐 주마.”과거 이형주가 글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는데, 배우는 도중 우리는 그림을 그리며 뒹굴곤 했기에 내 글씨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는 내 뒤로 다가와 내 손을 겹쳐 잡고, 한 획 한 획 천천히 써 내려갔다.그러다 종이 위에 ‘유시연’이라는 이름이 적히는 순간, 이형주는 내 손끝이 서늘하게 식어 가는 것을 느꼈는지 비로소 멈칫했다. 그는 손을 거두며 변명하려 했으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폐하께서는 마음속에 마마만을 품고 계시니, 그 곁을 더욱 살뜰히 지키심이 옳습니다. 이리 지극하시니 머지않아 마마께서도 폐하의 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이형주는 내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잇지 못하였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하자, 그 속에는 뜻밖의 애처로움이 서려 있었다. 아마도 내가 담담히 이형주를 축복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도리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는 침묵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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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 순간, 내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였다.해가 지고 인적마저 끊긴 마당에서 나는 백구를 품에 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붉은 피에 젖은 작은 몸은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가여웠다.예전처럼 백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지만, 녀석은 다시는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심장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통증에 입을 벌려 보았으나 억울함을 토해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모두 나의 불찰이었다. 백구를 지키지 못했으니... 나는 뜰 한구석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백구를 묻어주었다.깊은 밤, 익숙한 손길이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이형주가 등 뒤로 바짝 다가와 몸을 밀착했다.“고작 개 한 마리다. 그리 슬퍼 마라. 나중에 그 개와 닮은 녀석으로 다시 구해다 주마.”닮았다 한들 그 무엇이 백구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유시연이 개를 그토록 혐오하는데, 그가 다시 데려온들 그녀가 또다시 잔혹한 짓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나는 대꾸 없이 그저 몸을 한쪽으로 물렸다.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명월아, 내일 시연이를 데리고 행궁(行宮)에 가서 며칠 쉬다 올까 한다. 그곳의 냉천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효험이 있다더구나. 너도 함께 가자꾸나. 네 몸에도 채찍 자국이 남았으니 마침 잘된 일이다.”나는 단호히 거절하였다.“소인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어 가지 못할 듯싶습니다.”뜻밖의 거절에 그가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일이 있단 말이냐?”나는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답하였다.“폐하, 소인은 그간 폐하께 무엇 하나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간청은 소인이 기르던 백구의 목숨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폐하께서는 들어주지 않으셨지요. 두 번째로 간청합니다. 부디 소인을 데려가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만은 꼭 들어주시길 바랍니다.”내가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이형주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아마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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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순간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만끽하였다.궁 밖의 세상은 궁 안의 숨 막히는 적막함과는 달리, 오가는 사람들과 수레로 시끌벅적하고 생기가 넘쳐흘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 섞인 사람 사는 냄새가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처음이었다.나는 단출한 보따리를 짊어지고 인파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나를 옥죄던 저 거대한 궁궐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한참을 걷다 보니 한적하고 평온한 기운이 감도는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거리 양옆으로는 자그마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꾸밈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적당히 깨끗해 보이는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방 안에 앉아 창밖의 거리 풍경을 내려다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지난 세월, 나의 세상은 오직 이형주와 네모난 궁의 담벼락뿐이었는데, 갑자기 광활한 세상에 홀로 던져지니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날이 저물 무렵, 나는 주막으로 가 국밥을 시켰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사내들이 나누는 대화가 귓가에 닿았다.“들었는가? 폐하께서 유씨 가문 아씨를 그리도 애지중지하신다지. 이번 행궁길에도 온갖 하사와 배려가 끊이질 않았으니, 머지않아 유씨 가문 아씨가 황후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네.”“그럼, 나도 들었지. 유씨 가문이 날로 위세가 당당해지니 조정의 권세도 그들 손에 쥐어지는 모양이야.”나는 묵묵히 들으며 밥을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가슴이 미어질 일이었으나, 이제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던 지난날의 고통은 어느새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나는 식사를 마치며 더 이상 지난 일을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마을에 머무른 지 며칠이 지나자, 생계를 꾸릴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니고 온 노잣돈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언제까지고 여관에 머물 수는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한 자수방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안을 살펴보니 여인들이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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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형주가 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 달이 흐른 뒤였다.궁녀와 내관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감히 숨조차 쉬지 못했다. 이형주의 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서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자아냈다.“명월이는 어디에 있느냐?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단 말이냐!”“저희도 명월 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출궁할 나이가 되어 스스로 궁을 나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허튼소리! 짐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이 궁 밖으로 나갈 수 없다!”이형주가 탁자 위의 물건들을 다 쓸어버리자, 쌓여 있던 장계들이 바닥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시연이 황급히 다가와 그를 말렸다.“폐하,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일개 궁녀일 뿐인데 어찌 이리 화를 내십니까.”이형주는 고개를 돌려 유시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입 다물라. 평소 네가 심술궂게 굴며 개 한 마리조차 편히 두지 않았으니, 명월이가 견디다 못해 떠난 것이 아니냐!”이형주가 이토록 격하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 유시연은 내심 불안에 휩싸였다. 과거 그녀는 이형주가 명월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저 보잘것없는 계집종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뿜어내는 기운을 보니 결코 단순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이형주는 호위를 불러 엄명을 내렸다.“명월이의 행방을 찾아내라! 만약 찾아내지 못한다면 네 목을 칠 줄 알아라!”이형주는 명월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 음식조차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홀로 이화원(御花園)을 서성였다. 이화원의 말리화는 유난히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그는 냉궁에 유폐되어 모진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혼자 벽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때, 어디서 꺾어왔는지 모를 말리화를 건네주었던 이가 바로 명월이었다. 그때 그녀의 미소는 마치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듯 눈이 부셨다.나중에 민간을 유람하던 중 들으니, 여인이 정인에게 말리화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지금 이화원에 흐드러지게 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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