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초가에 혀를 대기 전에 — 운설은 이미 부탁을 놓고 있었다.저택의 연못에게. 우물 둘에게. 행랑 뒤의 실개천에게. 설산에서 배운 결대로, 세우지 않고, 조르지 않고 — 물의 일을 청했다.물이 응답했다.연못이 통째로 몸을 일으켰다. 검은 밤물이 낮은 담을 넘어 행랑 지붕 위로 — 이불을 펴듯 — 넓게, 고요히 덮였다. 떨어진 횃불이 첫 연기를 올리다 그 밑에서 소리 없이 꺼졌다. 우물 두 개의 물이 두레박도 없이 솟아 지붕의 결을 타고 흘렀다. 기와가 젖고, 초가가 젖고, 담장의 마른 덩굴까지 젖었다.불이 붙을 자리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을 — 백여 자루의 횃불이 지켜보았다.재앙이라 했다. 물의 마녀라 했고, 강이 일어서면 세상이 끝난다 했다. 그 힘이 지금 눈앞에서 하는 일은 — 남의 집 지붕을 적시는 일이었다. 밤하늘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안개에 횃불 빛이 번져 마당이 온통 붉고 부옇게 어른거렸다."물은 이 집 편도, 여러분 편도 아닙니다."운설이 물안개 속에서 말했다."물은 타는 것을 못 견딜 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그녀의 반 보 뒤에서 지팡이가 한 번 땅을 짚었다.갓 쓴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한 걸음에 숨을 고르고, 또 한 걸음. 운설이 팔을 잡으려 하자 그가 손끝으로 괜찮다는 뜻을 보였다. 괜찮지 않은 낯으로.마당 한가운데에서 선우현은 갓을 벗었다.물안개가 걷힌 자리로 그 낯이 드러났다. 소문으로 죽은 검신. 천하의 칼들이 먼저 길을 비키던 사람. 한데 지금 허리에는 검이 없고, 지팡이 없이는 서지도 못하는 사내.무리의 숨이 한꺼번에 멎었다."살아—""살았소."선우현은 짧게 답했다."선우가가 지은 죄를 덮으러 온 것이 아니오. 내 아버지도 법정에 있고, 죄가 있다면 내 이름의 몫까지 받게 할 것이오. 다만 이 담 안의 죄 없는 사람을 태우려거든—"그는 빈 오른손을 보았다. 예전이라면 검병이 있었을 자리."나부터 밀고 가시오.""검도 없는 자가 뭘 막는다고!"뒷줄에서 누군가 외쳤다.선우현은 대답 대신
Last Updated : 2026-08-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