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답대로 사는 것이었다.봉서는 남쪽으로 떠났으나 신패는 대전에 남았다. 이지러진 달이 새겨진 쇳조각. 앓는 사람이 임자라 적어 놓고, 임자를 가리는 패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녹이겠습니다."운설의 말에 대전의 숨들이 갈렸다.흑요가 제일 먼저 일어섰다. 왼귀가 안 들리는 노파는 화가 나면 온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오늘은 쓰러질 듯 기울어 있었다."그 패가 마지막입니다. 왕의 인장도, 왕관도, 옥새도 다 없어졌습니다. 피가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 저것 하나입니다.""제가 여기 있습니다.""사람은 죽습니다."노파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지 않는 물건 하나를 붙들고 열여덟 해를 버틴 사람의 떨림이었다.혈비가 상석 없는 자리에서 내려왔다.언니는 신패를 집어 들고 오래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아우보다 먼저 태어나 왕가의 법도를 보았고, 왕가가 지워지는 것도 본 사람. 이 쇳조각을 지킬 까닭도, 없앨 까닭도 둘 다 아는 손이었다."사람은 죽지." 혈비가 말했다. "그래서 물건이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 물건의 시대가 너무 길어진다."언니는 신패를 아우에게 돌려주었다."녹여라. 다만 없애지는 마라."바토의 대장간에 화덕이 올랐다.외눈의 대장장이는 신패를 집게로 물고 이쪽저쪽 비춰 보았다. 거리감을 못 잡는 눈이 자꾸 쇠를 화덕 가까이 들이밀어, 흑요가 두 번이나 소매를 잡아당겼다. 노파는 화덕 곁에서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녹는 순간까지 제 눈으로 볼 참이었다."여덟이면 되겠소." 바토가 말했다."어째서 여덟이지.""처음 배우겠다는 손이 여덟이니까."대전의 말이 마당을 도는 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월하심법의 문을 연다. 핏줄과 성별과 출신을 묻지 않는다. 고치는 법부터 가르친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손든 것이 여리였다."동상부터 배우고 싶어요." 아이는 없는 왼 새끼손가락을 펴 보였다. "겨울이 가져가는 걸, 하나라도 덜 주게."두 번째는 진눈이었다. 평생 침상에 누워 누가 제 폐를
Last Updated : 2026-08-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