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설야팔부 (雪夜八部): Chapter 201 - Chapter 210

270 Chapters

제201화 — 동지 (혈비)

동지의 무한에는 팥죽 냄새가 났다.세 강이 만나는 물목마다 붉은 김이 올랐고, 사람들은 한 그릇씩 손에 든 채 부교로 모였다. 같은 자리에서 반년 전에는 향 안개가 도시를 덮었다. 오늘 물 위에 뜬 것은 팥 삶는 냄새와 젖은 종이 냄새뿐이었다.혈비는 증인석 맨 앞에 앉았다.무릎 위에는 이름 이백삼십육 개가 든 두루마리가 놓여 있었다. 삭월의 무덤 벌판에서 베껴 온 이름들. 글자 없는 무덤의 것까지 부수와 운백천이 밤을 새워 기억해 냈다. 죽은 자들은 오늘 수에서 이름으로 돌아와 법정에 들었다. 두루마리 끝이 강바람에 낮게 떨렸다.단 위의 한겸이 판결문을 폈다.젊은 당주는 여전히 글을 읽을 때 등이 곧았다. 다만 곁의 남궁완이 소매 끝으로 그의 붓을 한 번 밀어 주자, 너무 세게 쥐었던 손에서 힘을 조금 풀었다. 가는눈은 그 아래 서기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한 자도 놓치지 않았다.열두 줄이 다시 읽혔다.이번에는 공훈이 아니었다. 거짓 척후를 만든 이름. 물길을 판 이름. 명부를 고친 이름. 죽은 왕의 방에서 아이의 신을 가져간 이름. 어느 가문의 몇째 줄이라는 격식이 벗겨지고, 사람이 한 명씩 단 위에 섰다.선우가주의 이름도 첫머리에 있었다.토벌 참여. 전리품 은닉. 증거 말소. 아들의 손목에 남긴 불까지 판결문에는 들지 않았으나, 늙은 사내는 그 줄에서 처음 고개를 숙였다. 종신 옥. 남은 날마다 실종자의 자리와 빼돌린 유품을 진술할 것. 가산의 반은 북방 복구와 속아 죽은 병졸의 유족에게 돌릴 것.죽는 것보다 긴 형이었다.혈비는 칼자루에 손을 얹지 않았다. 예전의 저라면 법이 너무 느리다 했을 것이다. 오늘은 느린 문장이 한 사람의 평생을 정확히 찾아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마지막 죄목이 읽힌 뒤, 방청석에서 늙은 장로 하나가 일어섰다."열두 가문의 문패도 내려야 합니다. 그 자손이 다시 검을 들지 못하게 하십시오. 뿌리가 남으면—""명부에 없는 이름은 벨 수 없습니다."한겸이 말을 잘랐다."죄를 물려주었기에 십팔 년이 이 지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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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 강의 임자

첫눈은 이틀을 머물다 녹았다.궁의 처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아이들이 밟아 다진 마당만 희끗희끗 남았다. 그네 밑에는 발자국이 둥글게 패여 있었다. 갔다가 돌아온 자국들이 한자리에서 겹친 모양이었다.혈비가 돌아온 것은 그 자국마저 마른 뒤였다.남행조의 말들이 문루를 넘자 여리가 뿔피리보다 먼저 달려 나갔다. 언니의 봇짐에서는 판결문과 붉은 실과, 혼례상에서 싸 온 굳은 떡 한 덩이가 나왔다. 새 신부가 북쪽 언니에게 보낸 것이라 했다."누가 언니예요?"여리가 묻자 혈비는 잠깐 셈을 못 했다. 남궁완과 아우와 저를 나이순으로 놓아 보는 낯이었다."먹는 자가 언니다."그 법으로 떡은 여리 것이 되었다.판결문은 대전에서 읽었다.이백삼십육 이름이 법의 기록에 오른 대목에서 부수 노인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오래 짚고 있던 것이 잠깐 없어도 되는 사람처럼. 속아 죽은 병졸의 유족에게도 곡식이 간다는 줄에서는 석삼의 형이 낯을 가렸다. 벌판에 이야기를 놓고 궁에 남은 사내는 그 줄을 세 번 읽어 달라 했다.운설은 선우가주의 형을 소리 없이 들었다.종신 옥. 남은 날마다 지워진 자리와 유품을 말할 것. 죽는 날까지 물으면 답하는 집의 첫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는 판결문 위에 손을 얹었다가 거두었다. 곁에 앉은 그 사람의 아들이 답을 고를 때까지 묻지 않았다. 강이 깊은 데서 한 번 굽이치는 것으로 먼저 제 몫만 받았다.대전 기둥 곁에 앉아 있던 선우현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소."모두의 눈이 그에게 갔다."법이 내 아버지를 살려 벌한 것이 다행스럽고, 그 벌이 끝나지 않을 것이 마땅하오. 내가 아들인 것과 그가 죄인인 것은 같은 문장 안에 있어도 서로를 지우지 않소."운설은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판결을 대신 받을 수도, 아들의 마음을 고쳐 줄 수도 없었다. 그저 떨림이 멎을 때까지 곁에 둘 뿐이었다."그리고 빈칸이 하나 남았다."혈비가 봉서를 폈다.월하심법의 임자.짧은 물음 하나가 대전을 오래 채웠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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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 여덟 개의 달

답을 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답대로 사는 것이었다.봉서는 남쪽으로 떠났으나 신패는 대전에 남았다. 이지러진 달이 새겨진 쇳조각. 앓는 사람이 임자라 적어 놓고, 임자를 가리는 패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녹이겠습니다."운설의 말에 대전의 숨들이 갈렸다.흑요가 제일 먼저 일어섰다. 왼귀가 안 들리는 노파는 화가 나면 온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오늘은 쓰러질 듯 기울어 있었다."그 패가 마지막입니다. 왕의 인장도, 왕관도, 옥새도 다 없어졌습니다. 피가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 저것 하나입니다.""제가 여기 있습니다.""사람은 죽습니다."노파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지 않는 물건 하나를 붙들고 열여덟 해를 버틴 사람의 떨림이었다.혈비가 상석 없는 자리에서 내려왔다.언니는 신패를 집어 들고 오래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아우보다 먼저 태어나 왕가의 법도를 보았고, 왕가가 지워지는 것도 본 사람. 이 쇳조각을 지킬 까닭도, 없앨 까닭도 둘 다 아는 손이었다."사람은 죽지." 혈비가 말했다. "그래서 물건이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 물건의 시대가 너무 길어진다."언니는 신패를 아우에게 돌려주었다."녹여라. 다만 없애지는 마라."바토의 대장간에 화덕이 올랐다.외눈의 대장장이는 신패를 집게로 물고 이쪽저쪽 비춰 보았다. 거리감을 못 잡는 눈이 자꾸 쇠를 화덕 가까이 들이밀어, 흑요가 두 번이나 소매를 잡아당겼다. 노파는 화덕 곁에서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녹는 순간까지 제 눈으로 볼 참이었다."여덟이면 되겠소." 바토가 말했다."어째서 여덟이지.""처음 배우겠다는 손이 여덟이니까."대전의 말이 마당을 도는 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월하심법의 문을 연다. 핏줄과 성별과 출신을 묻지 않는다. 고치는 법부터 가르친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손든 것이 여리였다."동상부터 배우고 싶어요." 아이는 없는 왼 새끼손가락을 펴 보였다. "겨울이 가져가는 걸, 하나라도 덜 주게."두 번째는 진눈이었다. 평생 침상에 누워 누가 제 폐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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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 아홉째

여덟 사람에게 물소리를 가르치는 첫날, 제일 먼저 들린 것은 타간의 뱃소리였다. 여리가 웃고 흑요가 살기를 뿜으며 수업이 시작됐다.바토가 만든 침통에는 녹인 신패의 달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여덟 사람은 그 달을 손바닥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운설은 상석을 치우고 그들과 같은 높이에 앉았다.단전이 남지 않은 선우현은 기둥 곁에서 여리의 숨을 지팡이로 세고, 진눈에게 물잔을 밀어 주었다. 검을 잃은 뒤 새로 배운 파수였다."소리를 찾지 마세요. 찾으러 가면 몸이 먼저 긴장합니다. 숨이 드나드는 자리부터 듣습니다."여리는 눈썹까지 떨었고, 진눈은 제 폐 소리만 들린다 했다. 누리는 숨을 들이마시란 말을 잘못 알아듣고 한참을 참았다.아무도 강을 듣지 못했다.두 시진째, 대전 밖에서 말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검은 모피의 사내가 들어왔다. 눈발을 어깨에 얹고, 걸음마다 피를 떨어뜨렸다. 허리에 칼이 없어도 빼앗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여리가 입을 다물었다.그것으로 사내의 용모에 대한 설명은 충분했다.운설은 얼음여울에서 사람들을 수레 뒤로 빼고 선우현의 자리를 넘보지 않던 모피를 알아보았다.연도하는 운설을 한 번에 찾아냈다. 웃기 직전의 입가 때문에 방 안이 좁아졌다.기둥 곁에서 지팡이 끝이 마룻바닥을 한 번 짚었다.연도하가 살아 있는 선우현과 마주쳤다. 놀람을 웃음으로 접는 데 한 호흡이 걸렸다."빚 받으러 왔소."선우현이 말했다."살아 있었군.""그대가 들어 놓고 모르는 척하오?""맥은 들었지. 얼굴까지 볼 줄은 몰랐소.""실망했소?"연도하의 시선이 운설을 한 번 스쳤다가 돌아왔다."곤란해졌지.""아픈 사람이 월하의 임자라고 들었소."그가 피 묻은 장갑을 벗었다."다녀왔소, 의원. 앓는 사람이 되어.""연도하.""이름을 기억하니 길값은 받았군.""앉으세요.""누우라고 할 줄 알았는데.""곧 그렇게 될 겁니다."연도하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나기 전에 무릎이 꺾였다.운설과 지팡이를 던진 선우현이 한쪽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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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 나누는 법

첫 물소리를 들은 아홉째는 곧 정신을 잃었다.연도하를 눕힌 곳은 상석 아래였다. 흑요가 외부인을 대전에 재우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했고, 혈비는 앓는 사람이 임자라 적은 붓이 누구 것이냐고 되물었다. 노파는 오른쪽 귀를 홱 돌리더니 직접 이불을 한 장 더 덮었다.선우현은 환자의 왼쪽에 앉았다. 연도하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자리를 일부러 고른 낯이었다. 운설이 한숨을 쉬자 그는 태연하게 물그릇을 들었다."환자에게 물을 먹이는 자리요.""그 환자가 깨어나면 서로 말하지 마세요.""그건 저 사람에게도 명하시오.""첫 수업을 계속합니다."운설은 여덟 사람을 환자 둘레에 앉혔다."이 사람의 맥은 길이 끊겨 있습니다. 강을 밀어 넣으면 사방으로 흩어져요. 그러니 오늘은 흘리는 법보다 — 나누는 법을 배웁니다."여리가 더운 물을 가져왔다. 더운돌 영감은 손을 담가 온도를 재고, 마르간은 물 한 되에 식는 시간을 적었다. 진눈이 연도하의 숨을 세었다. 누리는 열에 들뜬 환자에게 찬물을 먹이라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문밖으로 달려가 눈을 한 사발 퍼 왔다가 흑요의 지팡이에 쫓겨났다.타간은 죽을 끓였다. 간은 여전히 셌다.묵할멈이 연도하의 오른손을 잡았다. 떨리는 손끝과 제 가슴을 번갈아 짚고, 천천히 숨을 내쉬는 시늉을 했다. 환자가 따라 숨을 놓자 끊긴 맥의 가장자리에서 가느다란 울림이 났다."지금입니다."운설이 강을 흘렸다.한 줄기로 밀지 않았다. 여덟 개의 가는 물길로 갈랐다. 여리의 손은 식는 자리를 덥혔고, 진눈의 숨은 막히는 박자를 알려 주었다. 더운돌의 손바닥이 열의 경계를 잡고, 묵할멈의 고른 숨이 흩어지는 물을 제자리로 불렀다.첫 번째 물길은 끊겼다.두 번째는 너무 깊이 들어가 연도하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흑요가 그만두라고 지팡이를 들었으나, 환자가 눈도 못 뜬 채 웃었다."여덟이 달라붙었는데… 이 정도면 싼값이오.""말할 힘으로 숨을 쉬세요.""그 말투도 그대로군."운설의 손끝이 멎었다.무한의 물가. 새로 터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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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 빈 상석

연도하가 걸을 수 있게 된 날, 혈비는 대전의 빈 상석 앞에 장부를 펼쳤다.왕가의 마지막 물건은 여덟 개의 달이 되었다. 남은 것은 자리였다. 신패를 녹여도 상석이 그대로면, 언젠가 누군가 다시 그 위에 패를 올릴 것이라고 흑요가 말했다. 노파는 상석을 지키자는 뜻으로 말했으나, 혈비는 반대로 들었다."치워라."바토와 우르가 상석을 들었다.수백 근짜리 검은 나무가 대전 바닥을 긁으며 내려왔다. 열여덟 해 동안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 아래에는 먼지가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여리가 빗자루를 들고 와 그 네모부터 쓸었다. 왕좌가 사라진 자리를 어린 시녀의 빗자루가 처음 차지했다."그럼 마님은 어디 앉습니까." 진눈이 물었다."장부 앞."혈비가 답했다.그날 열린 회의에는 상석이 없었다. 모두가 같은 높이의 방석에 앉았다. 다만 연도하는 눕다시피 기대앉아 혼자 높이가 낮았다.선우현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약로 지도를 보고 있었다. 검보를 읽던 눈으로 고개와 눈길의 거리를 재는 중이었다. 붓을 쥔 오른손이 떨려 선이 두 번씩 겹쳤으나, 잘못 그은 줄을 감추지는 않았다."설로상단이 궁의 바깥길을 맡겠소." 그가 장부 한 권을 밀었다. "북관 밖 여섯 마을, 눈길 열셋. 약재와 의원을 먼저 싣고 소금과 석탄은 남는 자리에 싣지.""값은."혈비가 물었다."통행세를 없애시오. 약수레를 세워 값을 매긴 자는 붉은 달이든 중원 세가든 상단의 적으로 치고.""장사치가 공짜 길을 달라니.""길값 때문에 누이를 묻어 본 장사치라서."대전이 조용해졌다.연도하가 열아홉이던 겨울, 열두 살 누이는 열병을 앓았다. 약은 고개 너머에 있었고, 고개를 쥔 문파는 통행세를 세 배로 올렸다. 그는 문을 부수려다 칼을 맞았다. 명치 아래에서 단전까지. 내공이 흐를 길을 잃은 몸으로 약을 가져왔을 때, 아이의 열은 이미 식어 있었다."그 뒤로 길을 샀소. 하나씩." 연도하가 말했다. "사람 목숨보다 비싼 문은 문이 아니니."혈비는 그의 장부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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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 놓이는 강

첫 환자는 수업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북문 파수가 아이 하나를 안고 뛰어왔다. 눈길에서 발견한 일곱 살 남자아이였다. 신은 젖어 얼었고, 발가락 셋이 밀랍처럼 희었다. 여리가 제 왼손을 감싸 쥐었다. 겨울이 가져간 새끼손가락이 없는 손."제가 하겠습니다."아이의 젖은 신을 벗기며 여리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으나 손은 떨지 않았다.운설은 습관처럼 강을 한꺼번에 일으켰다. 따뜻한 물길을 발끝까지 밀어 넣으면 반 시진이면 살릴 수 있었다. 한데 여덟 개의 침통이 눈앞에 있었다. 가르치려면 제 손이 먼저 물러나야 했다.강을 여덟 자락으로 갈랐다.더운돌이 물의 온도를 잡고, 타간이 마른 천을 데웠다. 진눈이 아이의 숨을 세고 묵할멈이 여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흑요는 문밖 사람들을 내보냈다. 누리는 약방과 대장간을 제대로 오갔다. 마르간은 녹인 눈물과 데운 물의 양을 적다가, 여리가 째려보자 셈을 접고 아이의 손부터 잡았다."발가락이 아파요."아이가 울었다."아파야 살아 있는 거야." 여리가 제 없는 손가락을 보여 주었다. "울어. 나는 그때 너무 추워서 울지도 못했어."아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울음이 대전 기둥을 흔드는 동안 흰 발가락에 붉은빛이 돌아왔다. 세 개 모두. 여리가 아이의 발을 품에 안고 따라 울었고, 흑요는 오른쪽 귀가 시끄럽다며 대전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소매로 눈을 훔쳤다.운설은 제 안을 들었다.강바닥의 돌이 어제보다 더 많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를 살렸는데 강이 줄었다. 기쁨과 서늘함이 같은 자리에 들었다. 손끝이 빈 소매를 찾듯 허공을 한 번 더듬었다.그날 밤, 온천 아래 물가에서 강을 불렀다.한 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째 부름에 멀리서 실개천 하나가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골짜기 전체가 몸 안에서 일어났을 소리였다."무섭소?"연도하의 목소리가 뒤에서 왔다. 그는 세 걸음 밖의 바위에 앉았다. 의원이 부르지 않은 거리였다."그 사람이 돌아온 백열흘을 한 번 더 잃는 것 같습니다."운설은 물을 보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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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 무진의 답

강이 대답하지 않은 이튿날, 연도하가 제 모피 안감에서 방울 하나를 꺼냈다.작은 놋방울이었다. 설산 암자의 지팡이 끝에 달렸던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방울에는 접은 종이가 붉은 실로 묶여 있었다."무진 스님을 만났습니까.""서쪽 눈길을 열다 산 아래에서. 눈먼 노인이 길 한복판에 앉아 있더군. 내가 그대를 안다니 이것을 맡겼소.""어째서 이제 줍니까.""피를 흘리며 들어와 쓰러졌잖소." 연도하가 태연히 말했다. "멋있게 건넬 때를 놓쳤지."운설은 매듭을 풀었다.종이에는 두 줄뿐이었다.강이 너를 놓는 날, 빈손을 벌이라.놓인 손으로도 사람의 맥은 들리느니.무진다운 글이었다. 답을 주는 듯하다가 손 하나만 펴 보이고, 나머지는 제 손으로 만져 알게 하는 글.운설은 종이를 접지 못하고 오래 들고 있었다."그걸 가져오려고 사흘을 달렸습니까.""여섯 마을의 약길이 먼저였소.""편지만 파발로 보내도 됐습니다.""그럴 수도 있었지."연도하는 부정하지 않았다. 웃음도 없었다. 그가 정직해질 때마다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당신이 살아 있다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소."운설의 손에서 방울이 한 번 울렸다.그는 무한에서도 그녀를 그렇게 보았다. 남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 아내이기 전부터 살아 있던 여자를. 선우현은 그것을 알아보고 싫어했다. 싫어하면서도 칼을 뽑지 않았다."들었습니까.""너무 크게.""무슨 소리였는데요.""처음에는 문 두드리는 소리였소. 이제는 — 문 안에서 서성이는 소리."연도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둘 사이에 방울 하나와 한 치보다 긴 겨울 공기가 놓여 있었다.운설은 무진의 종이를 침 함에 넣었다.실밥 토막. 두 푼짜리 쪽지. 어머니의 수. 그네 줄 그림. 지나간 날들이 남긴 물건 곁에, 살아 돌아온 사내가 가져온 종이가 놓였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아프고 이상하게 따뜻했다."마지막 물소리를 들으러 가겠습니다.""어디로.""궁 아래 여울로요. 강이 처음 이 몸에 들어온 길과 이어진 물입니다.""같이 가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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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 마지막 물소리

강은 해가 다 진 뒤에야 운설을 불렀다.물 밑에서 자갈 하나 구르는 소리로 시작했다. 실개천이 하나, 또 하나. 몸 안에서 멀어졌던 물이 여울의 얼음 밑으로 모여들었다. 예전처럼 골짜기를 세우는 큰물이 아니었다. 돌아갈 길을 찾은 작은 물들이었다.운설은 신을 벗고 여울에 들어갔다.겨울물이 발목을 물었다. 혈비가 반 걸음 나왔다가 멎었다. 선우현은 왼쪽 물가에, 연도하는 오른쪽 세 걸음 밖에 섰다. 둘 다 약조한 선을 넘지 않았다. 여덟 사람만 침통을 들고 얕은 물에 함께 섰다."손을 펴세요."여덟 손바닥 위에 달 걸쇠가 놓였다.운설은 강을 흘렸다.여덟 줄기의 물이 손바닥마다 닿았다. 여리는 얼어 죽을 뻔한 손가락을, 진눈은 남에게 맡겨 온 숨을 떠올렸다. 타간에게는 덴 사람들의 살이, 마르간에게는 모자란 약재의 무게가 있었다.묵할멈은 소리 없는 입술로 무언가를 말했다.물은 그 말까지 들었다.달 걸쇠들이 울렸다. 얼음 밑 물살과 피가 손끝까지 가는 소리, 앓는 몸이 살겠다고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들립니다."여리가 울며 말했다.일곱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요는 오른쪽 귀를 막고 왼손을 물 위에 폈다."시끄럽군." 흑요가 말했다. "산 것들은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가."여덟 개의 물길이 자리를 잡았다.운설의 몸 안에서는 물이 빠져나갔다. 강바닥이 드러나고, 돌 사이의 마지막 고임까지 여울 쪽으로 흘렀다. 붙잡으려면 붙잡을 수 있었다. 한 줄기쯤은 소매 안에 감출 수 있었다.힘을 놓으면 평범한 의녀가 된다. 죽을 몸을 되돌리거나 골짜기의 물을 세우는 일은 다시 못 한다.그때 심장 소리가 떠올랐다.견갑 사이에 귀를 대고 듣던, 얼음여울에서 손바닥을 밀던 소리.그것은 강 안에 없었다.제 몸이 기억했고, 물가에 선 사람의 가슴이 계속 만들고 있었다.운설은 선우현을 보았다.그는 놓으라고도 잡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대의 답을 믿는다는 눈으로 기다렸다.반대편 연도하도 세 걸음 밖에서 기다렸다.운설은 빈손을 벌렸다.마지막 물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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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 두 채의 집

강을 놓은 뒤 사흘 동안 운설은 평범하게 앓았다.열이 났고 손발이 시렸다. 맥은 약하되 고르게 뛰었다. 예전 같으면 몸 안의 강이 병을 밀어냈을 것이나, 이제는 타간의 쓴 탕약과 여리의 찬 수건과 잠이 필요했다.선우현은 병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환자가 환자를 돌보네요.""누가 더 잘 걷는지는 명백하오.""어제 문지방에서 넘어졌잖아요.""문지방이 높았소."운설은 웃다가 기침했다. 그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힘없는 손으로도 이불 여미는 법은 능숙해졌다.닷새째, 대전에 궁 사람들이 모였다.여덟 전승생은 아침마다 물소리를 들었고, 혈비는 약재와 곡식 장부를 같은 궤에 넣었다. 설로상단의 여섯 길로 약수레가 오갔다. 왕좌와 깃발이 없어도 궁은 움직였다."이제 제가 없어도 되겠네요."운설의 말에 흑요가 지팡이를 세게 내리쳤다."없어도 된다는 말과 가도 된다는 말은 다릅니다.""가려고요."대전이 조용해졌다."백로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문 닫은 약방이 있어요. 제 첫 집."혈비는 놀라지 않았다. 아우가 처음 궁에 왔던 날부터 알고 있던 답처럼 장부를 덮었다."여기는.""제 두 번째 집입니다. 집이 둘이면 오가는 길이 생기는 거지, 하나를 버리는 것은 아니잖아요."운백천이 고개를 숙였다. 딸을 한번 잃어 본 아비는 붙잡는 말 대신 길의 날씨부터 물었다."남쪽 고개는 눈이 쌓였을 게다.""천천히 가겠습니다.""내가 같이 가오."선우현이 말했다."당연하죠.""물어보지도 않는군.""당신 첫 집은 어디인데요?"선우현은 답을 고르다 운설을 보았다."지금 정해졌소."대전 문간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연도하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상처가 덜 아문 몸으로 벌써 길옷을 입었다."말 한 필과 약재 수레 하나를 내놓겠소.""값은요.""나."선우현의 지팡이가 마룻바닥을 짚었다."상단주는 여기서 약길이나 보시오.""내가 있어야 수레가 남쪽 관문을 지나오.""수레만 보내시오.""말이 길을 모르지.""내가 아오.""지팡이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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