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현은 사내를 문 안에 들이지 않았다.약방 처마 아래 세워 놓고 의자를 하나 내주었다. 걱정하는 아비에게 베푸는 예처럼 보였으나, 눈이 쌓인 골목 한복판에서 모두의 눈을 받게 하는 자리였다."딸이 몇 살이오.""스물둘이오.""왼손잡이요, 오른손잡이요."사내의 눈이 문틈으로 움직였다. 침상에서는 여자의 왼손만 이불 밖에 나와 있었다."왼손이지."선우현은 답을 듣자마자 다음을 물었다."어릴 적 부르던 이름은.""채령이라 했소.""그건 지금 이름이오."사내가 입술을 핥았다."겨울에 열이 나면 무엇을 먹소.""죽을 먹지.""무슨 죽.""쌀죽."침상에서 채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운설은 그 작은 움직임을 보았다. 가족은 병날 때 먹인 것의 냄새를 기억한다. 땔나무가 모자라 물처럼 묽었는지, 소금을 못 넣었는지, 아이가 싫어해 꿀을 훔쳐 넣었는지까지.선우현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딸의 글씨는 어떻소.""계집 글씨가 다 그렇지.""그 아이 손가락에는 붓 굳은살이 있소. 아비라면 한 번쯤 자랑했을 텐데."사내의 흰 눈동자가 가늘어졌다.운설은 약탕관 앞에 앉아 그 문답을 들었다. 선우현은 가족이 아니면 모를 법한 것과, 눈만 밝으면 훔쳐볼 수 있는 것을 번갈아 물었다. 몸의 점, 좋아하는 음식,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던 빗의 재료.사내는 쉬운 것만 길게 말했다.모르는 것 앞에서는 딸이 아파 기억을 잃었다고 했다. 채령의 어깨가 질문마다 굳었다. 마침내 선우현이 물었다."딸이 열 살 때 크게 다친 곳은 어디요.""오른쪽 무릎."침상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났다."그런 적 없어요."사내의 얼굴에서 슬픔이 사라졌다."아픈 아이가 헛소리를 하는 거요.""내 아버지는 제가 열한 살 때 돌아가셨어요."여자가 이불을 걷었다. 다리가 떨렸으나 일어섰다."그리고 저를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은 령이가 아니라 종달이였어요. 새벽마다 장부 읽는 아버지를 깨웠으니까."골목 문들이 하나씩 열렸다. 떡집 노파가 밀대를 든 채 나왔고, 글 배우
Last Updated : 2026-08-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