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설야팔부 (雪夜八部): Chapter 231 - Chapter 240

270 Chapters

제231화 — 한 치 안쪽

연도하의 몸은 보기보다 뜨거웠다.운설이 가슴을 받치는 순간 옷 너머의 열이 손바닥에 번졌다. 그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운설의 어깨 위 허공을 짚었다. 닿을 수 있는데도 닿지 않는 손이었다."선우현, 반대쪽 잡아요."선우현은 붓을 내려놓았다. 잠깐 두 사람의 거리를 보았으나 말없이 연도하의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걸을 수 있소?""그대보다는 잘 걷소.""쓰러진 자가 할 말은 아니군.""한 번 죽은 자에게 듣고 싶지는 않소."두 사내는 서로를 기대지 않으려다 똑같이 비틀거렸다. 운설이 가운데에서 소리를 질렀다."둘 다 환자답게 좀 걸어요!"국밥집 안쪽 작은 방에 연도하를 눕혔다. 운설은 그의 모피 옷깃을 풀었다. 열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보려 손등과 목, 갈라진 단전 위를 차례로 짚었다.갈라진 단전 자리에는 오래된 칼흉터가 비스듬히 지나갔다. 안에서부터 터진 상처라 살이 매끄럽게 붙지 못했다. 운설의 손끝이 그 위를 누르자 연도하의 배가 단단해졌다."아파요?""그대 손이 차서.""거짓말.""의원 앞에서는 거짓말이 잘 안 팔리는군.""그러니 값을 치러요. 숨 들이쉬고, 내쉬고."운설이 귀를 가슴 가까이 댔다. 심음은 빨랐으나 박자는 아직 고르게 이어졌다. 문제는 며칠 굶고 달린 몸과, 분노를 누르며 안으로 치솟은 열이었다.문밖에 있던 채령이 따뜻한 죽을 가져왔다. 두 사람의 거리를 보고 발을 멈추자 선우현이 그릇을 받아 들었다."환자를 보려면 저렇게 해야 합니까?"채령이 아주 작게 물었다."내게는 저만큼 가까이 안 오던데."선우현의 답에 채령이 웃음을 삼켰다. 질투하는 남편을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오른손 끝의 떨림이 심했다."며칠이나 못 잤어요?""사흘.""제대로 먹은 건요?""그대 약방 죽.""그건 나흘 전이잖아요.""그러니 아직 배가 부른 모양이지."운설은 대꾸하지 않고 그의 턱을 들어 눈동자를 보았다. 열에 젖은 눈이 그녀를 피하지 않았다. 연도하의 웃음은 사라졌는데 시선은 웃을 때보다 노골적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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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 흔들리는 밤

연도하의 열은 자정 무렵 내렸다.운설은 찬 수건을 갈고 떨림을 가라앉히는 침을 놓았다. 선우현은 한 번도 방을 나가지 않았다. 물도 직접 갈았고 약도 직접 달였다."병구완이 아주 정성스럽군."연도하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빨리 나아야 내 아내 손을 덜 잡을 것 아니오.""그대 아내가 먼저 잡았는데."약탕관 뚜껑이 조금 세게 닫혔다.운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이불을 연도하의 턱까지 올려 주었다."더 말하면 다시 열 올라요. 둘 다 조용히 해요."그날 밤 부부는 국밥집 다락방에서 잤다. 정확히는 눕기만 했다.창밖 장터 불이 꺼질 때까지 선우현은 등을 보이고 있었다. 운설은 그 등의 흉터를 하나씩 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화났어요?""아니오.""당귀 두께가 안 맞을 때랑 똑같은 목소리인데."선우현이 돌아누웠다."그대는 아픈 사람 앞에서 거리를 잊소.""환자를 남자로 보면 진료를 못 해요.""그대가 안 본다고 그 사내까지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오."운설은 대답하지 못했다. 연도하의 눈을 떠올렸다. 열에 젖고도 한 올의 거리를 남긴 눈. 몰랐다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자신을 향해 있었다."알고 있었소?"선우현이 물었다."뭘요.""그가 그대를 원하는 것.""이제는 알아요.""오늘 전에는."운설은 이불 가장자리를 만졌다."아예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선우현의 턱이 굳었다. 화보다 두려움이 먼저 지나가는 것을 운설은 보았다. 검과 내공을 잃은 뒤 그는 빼앗기는 일을 예전보다 현실로 느꼈다.운설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 사람이 잘생긴 것도 알고, 저를 보는 눈이 뜨거운 것도 알아요. 가끔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 눈으로 알게 될 때도 있고요.""위로하려는 말이 맞소?""거짓말로 위로하면 당신이 더 싫어하잖아요."선우현은 손을 빼지 않았다."그럼 흔들리오?"운설은 오래 생각했다. 답이 늦을수록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당신은요?""무엇을 묻는 것이오.""남궁완을 보고 한 번도 흔들리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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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 한 치의 고백

구담의 초청장은 정중했다.적온산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강호 제일의 치유법을 지녔던 설야 의원에게 배합을 직접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끝에는 온생원에 머무는 환자 백여 명이 소란으로 약을 못 받고 있다는 문장이 붙었다."환자를 방패로 세웠군."선우현이 말했다."그래도 환자는 안에 있어요."운설은 봉투를 접었다.연도하는 열이 내렸으나 낯빛은 창백했다. 그는 침상에 기대 초청장의 종이와 먹 냄새를 맡았다."온생원 종이가 아니오. 관아에서 쓰는 닥종이요.""관아가 초청장을 대신 썼다는 뜻입니까?"채령이 물었다."둘이 한 장부를 쓴다는 뜻이겠지.""누군가 우리 수를 알려 줬소."선우현이 말했다."관아 포졸 중 하나겠지. 온생원 은표를 받은 자가 몇인지 아직 모르오.""그러면 정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포위될 수도 있어요."채령의 목이 굳었다.운설은 초청장을 화로 불에 대지 않고 접어 품에 넣었다."그래서 가야 해요. 저들이 준비한 얼굴을 직접 봐야 하니까."선우현은 역할을 나눴다. 운설은 초청받은 의원으로 정문에 들어간다. 연도하는 적온산 대신 새 약재를 대겠다는 투자자가 된다. 선우현은 손이 불편한 상단주의 장부 서기."나는요?"채령이 물었다."남으시오. 이미 낯이 알려졌소.""지하 서고 길은 저만 압니다.""그래서 더 안 되오. 저들이 가장 먼저 잡을 사람도 당신이오."채령의 얼굴이 굳었다. 선우현은 명령하듯 말했지만 빈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사람을 두고 가는 판단이 옳아도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운설은 연도하의 맥을 마지막으로 짚었다."오늘은 쉬어야 해요.""초청받은 의원이 투자자 없이 가면 문전박대당하오.""다른 사람을 보내요.""내 도장으로 사람을 죽였소. 내 얼굴로 들어가야지."그가 손을 뒤집어 운설의 손바닥을 받쳤다. 진맥받는 모양이었으나 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선우현의 시선이 두 손에 내려앉았다.연도하는 놓지 않은 채 물었다."어젯밤 답을 얻었소?""무슨 답 말이오.""그대가 내 손을 놓으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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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 온생원

온생원은 따뜻했다.높은 회벽 안에 화로가 스무 개나 놓였고, 지붕 아래에는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약초가 매달려 있었다. 무료 죽을 받는 줄이 안뜰을 한 바퀴 돌았다. 아이들은 붉은 뺨으로 뛰어다녔다.사람을 죽인 곳이라고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운설은 뜰을 지나는 동안 세 번이나 붙잡혔다. 동상 자국이 남은 노인이 손을 맞잡고 온생원 덕에 발을 자르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아이를 업은 아비는 죽 한 그릇 때문에 산을 내려오지 않아도 됐다고 울었다.거짓말하는 얼굴들이 아니었다.채령의 검은 장부와 이들의 살아 있는 손이 같은 전각 안에 있었다. 운설은 어느 한쪽도 지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온생원이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이 죽인 죄를 없애지 못하듯, 죽인 죄가 살아난 사람까지 거짓으로 만들지는 못했다."그래서 저도 오래 믿었어요."채령이 하녀의 두건 아래에서 속삭였다.구담 원주는 정문까지 마중 나왔다.쉰을 조금 넘긴 사내였다.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었고, 남은 손톱에는 오래 밴 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말할 때 상대의 얼굴보다 손과 입술을 먼저 보았다. 환자의 병색을 읽는 의원의 버릇이었다."설야 의원을 뵙습니다."그는 운설에게 깊이 절했다."강을 한 사람의 소유에서 놓아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원이 의술보다 커지는 세상에 귀한 선택이지요."칭찬 안에 탐색이 있었다. 힘이 정말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말이었다."그래서 지금은 맥을 오래 봅니다."운설이 답했다.구담의 눈이 잠깐 빛났다.연도하는 새 약재 견본 궤를 내밀었다. 정상적인 계피와 생강, 감초였다."적온산 소란을 끝낼 물건이오. 값은 전보다 세 배지만 내가 절반을 대지.""설로상단주께서 장터에 전 재산을 건다더니 사실이었군요.""소문이 빠르오.""아픈 사람은 소문으로 먼저 옵니다."구담은 운설 일행에게 먼저 죽을 대접했다. 제 몫도 같은 솥에서 퍼 왔다. 숟가락을 들 때 없어진 새끼손가락 때문에 그릇이 한쪽으로 기울었다."역병 돌던 해 환자에게 물려 잘랐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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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 서고의 불

채령은 저녁 종이 세 번 울릴 때 지하문을 열었다.불침번이 교대하고 약동들이 죽을 먹는 짧은 틈이었다. 훔친 열쇠는 녹이 슬어 두 번이나 걸렸다. 세 번째에 쇠문이 낮게 울며 열렸다.지하는 약고가 아니었다.좁은 방 다섯에 아이와 노인 스물셋이 누워 있었다. 잇몸은 붉게 부었고 손발은 밧줄로 침상에 묶여 있었다. 경련하다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이었다."물을…"가장 가까운 아이가 속삭였다.운설은 무릎을 꿇어 입술을 적셨다. 맥은 가늘고 빨랐다. 적온산을 거둔 뒤에도 온생원은 중독 환자를 감춰 두고 있었다. 밖의 칠백열세 명을 지키기 위해 안의 스물셋을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방마다 작은 목패가 걸려 있었으나 이름은 없었다. 첫째 방 열둘, 둘째 방 여섯. 사람 대신 숫자로 부르기 위한 패였다.채령이 목패를 하나씩 떼었다."이 아이는 소미예요. 어머니가 빨래터에서 일해요. 이분은 마 노인. 문 앞에서 매일 바둑을 뒀어요."기억나는 이름을 목패 뒤에 적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붓을 멈추고 직접 물었다. 말할 힘이 없는 환자는 손가락으로 성의 획을 그렸다.운설은 침을 아껴 가장 위급한 셋에게 놓았다. 기침을 억누른 가슴이 조금 열리자 지하에 사람 숨소리가 돌아왔다."전부 위로 옮겨야 해요.""정문은 이미 막혔소."연도하가 계단 위를 보았다.구담은 처음부터 알았다.쇠문 밖에서 빗장 거는 소리가 났다. 이어 원주의 목소리가 들렸다."설야 의원, 그들을 광장에 내놓으면 온생원은 끝입니다. 그러면 내년 겨울에는 마흔일곱이 아니라 사백이 죽어요.""문을 여세요.""사흘만 주십시오. 새 배합으로 바꾸고 저 환자들은 제가 끝까지 돌보겠습니다."채령이 문을 두드렸다."복칠이에게도 끝까지 돌본다고 했잖아요!"밖이 잠깐 조용해졌다."채령이구나. 네가 숫자를 훔쳐 이름을 붙였어.""원래 이름이 있었어요. 원주님이 지운 거예요."선우현은 문과 벽을 살폈다. 쇠문은 부술 수 없었다. 천장 가까이에 약재를 나르는 작은 환기구가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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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 업는 사람

서고 안에서는 낮도 밤처럼 검었다.젖은 천을 둘렀어도 연기가 코와 목을 파고들었다. 선우현은 바닥 가까이 몸을 낮췄다. 책장 넘어지는 소리 사이로 채령의 기침을 찾았다."장채령!"대답이 없었다.그는 이름을 다시 불렀다. 이름은 사람을 붙드는 줄이라고 운설에게 배웠다. 세 번째에 오른쪽 안쪽에서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무너진 책장 아래 채령이 엎드려 있었다. 등에 불붙은 서책이 쏟아졌으나 두 팔로 작은 함 하나를 감싸고 있었다."놓고 나오시오!""마지막 장이 여기 있어요!""당신이 죽으면 읽을 사람이 없소."선우현은 책장을 들어 올리려 했다. 나무는 꿈쩍하지 않았다. 예전 몸이라면 한 손으로 밀었을 무게였다. 어깨에 힘을 주는 순간 옆구리 상처가 터졌다.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잃은 내공과 돌아오지 않는 힘, 급할 때마다 늦는 왼쪽 다리. 불보다 익숙하고 오래된 적이었다.선우현은 이를 악물고 제 몸을 꾸짖으려다 멈췄다. 무진이 설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없는 강을 다그치지 말고 남은 몸의 말을 들으라.힘이 없다면 방법을 쓰면 되었다.따뜻한 피가 허리를 타고 흘렀다.그는 힘을 빼고 주변을 보았다. 부러진 서까래 하나를 책장 밑으로 밀고, 굴러온 벼루를 받침으로 삼았다. 몸 대신 지렛대를 썼다."셋을 세면 기어 나오시오. 하나, 둘—"책장이 손바닥 하나만큼 들렸다.채령이 함을 밀어냈다."사람부터!""이 안에도 사람이 있어요!"죽은 이름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선우현은 욕을 삼키고 함을 발로 걷어 밖을 향해 밀었다. 채령이 빠져나온 순간 서까래가 부러졌다.책장이 다시 내려앉으며 불티가 튀었다.채령은 발목을 다쳐 설 수 없었다. 선우현이 등을 내주었다."업히시오.""상처가—""한 사람 무게는 압니다. 검보다 조금 무겁군."채령이 울며 그의 등에 팔을 둘렀다. 선우현은 원본 장부 함을 가슴에 안고 한 걸음씩 문을 찾았다."제가 괜히 돌아왔어요."채령이 그의 등에서 기침하며 말했다."그 말은 나간 뒤에 하시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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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 죽지 않은 증인

공청은 불탄 온생원 앞에서 열렸다.관아 대청은 현령의 도장이 장부에 찍힌 뒤로 믿을 수 없었다. 포졸장은 광장에 긴 탁자를 놓고, 장터 사람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문을 열었다.구담은 포승에 묶이지 않았다.중독 환자 스물셋의 처방을 아는 사람이 그뿐이었다. 그는 의원 옷을 입고 환자를 살피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탁자 앞에 앉았다. 죄인과 의원이 한 몸 안에 있어 어느 한쪽만 당장 없앨 수 없었다.그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죽은 아이의 아비는 구담이 환자 손을 잡을 때마다 주먹을 쥐었다. 반대로 온생원에서 살아난 노인들은 그가 돌을 맞을까 앞을 막았다.포졸장은 양쪽 사이에 빈 자리 한 줄을 만들었다."오늘은 목숨값을 바로 받는 날이 아니오. 누구 죄가 어디까지인지 듣는 날이오."그의 콧등 동상 홈이 추위에 붉어졌다. 전날까지 구휼 수레를 호위했던 사람도 제 잘못을 장부에 올리겠다고 했다.첫 증인은 복칠의 어미였다.그녀는 금 간 약사발을 내려놓고 아들이 죽기 전 한 말을 전했다."덥다고 했소. 눈이 오는데도 덥다고. 내가 이불을 덮을 때마다 살려 달라고 했어."둘째는 손 떨리는 짐꾼이었다. 셋째는 아이를 밴 여자. 살아 있는 증인이 늘어날수록 구담의 칠백열셋이라는 수는 얼굴을 얻었다.채령은 마지막에 나왔다.목의 멍을 가리는 천을 풀었다. 온생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음으로 제 상처를 드러냈다."장채령입니다. 온생원 장부를 삼 년 썼습니다. 첫해에는 살아난 이름을 적었고, 둘째 해에는 죽은 이름을 지우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셋째 해에 지운 이름을 따로 베꼈습니다."구담이 물었다."내가 너를 굶겼느냐, 품삯을 떼었느냐. 네 아비 장례도 원에서 치렀다."채령의 입술이 떨렸다.복칠의 어미가 채령 뒤에 섰다. 용서는 아직 멀었다. 증언하는 사람이 혼자 쓰러지지 않게 등을 받치는 자리였다.노관도 그 뒤에 서려다 멈췄다. 자신이 설 자리는 아직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람 셋만큼 거리를 두었다."그래서 사흘 늦게 도망쳤습니다. 은혜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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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 겨울값

현령은 남문에서 붙잡혔다.잡은 것은 포졸도 무림인도 아니었다. 적온산을 장작으로 바꾸러 온 짐꾼들이었다. 관아 말이 붉은 봉지 수레를 피해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길을 막았다.그의 말 안장에서는 은표 서른두 장과 새 관인이 나왔다.옛 관인은 온생원 허가서에 찍어 둔 채 불 속에서 없어졌다고 주장하려던 것이다. 그러나 채령이 구한 장부에는 현령의 수결과 받은 은 날짜가 모두 남아 있었다."나는 구휼을 허가했을 뿐이오. 약 배합을 어찌 아나!"현령이 외쳤다.복칠의 어미가 금 간 사발을 그의 발 앞에 놓았다."모르면 왜 입막음 은자는 받았소?"대답은 나오지 않았다.사흘 뒤 북방 순찰사가 도착했다. 동지 선고 뒤 새로 만든 법에 따라 죄를 가문에 묻지 않고 이름마다 나눴다.순찰사는 절름발이 중년 여자였다. 십팔 년 전 토벌군에 말을 빼앗기고 산길을 걷다 다리를 잃었다. 복수의 이름으로 온 사람이었으나 판결문 첫 줄에는 혈비의 새 법을 그대로 썼다.사람의 죄를 집과 피에 물리지 않는다.구담의 아들은 약동으로 남았고 현령의 어린 딸은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대신 죄를 고른 손은 살아서 따로 값을 치르게 했다.현령은 관직을 빼앗기고 무한으로 압송되었다. 구담은 장부 조작과 위해를 숨긴 죄로 재판을 기다리게 되었다. 온생원 약동과 환자, 구담의 가족에게는 죄를 잇지 않았다.현령의 몰수 재산은 장터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절반은 죽은 마흔일곱 집에, 절반은 살아남은 중독 환자의 긴 치료에 넣었다. 사죄비를 크게 세우자는 말은 복칠의 어미가 막았다."돌에 이름 새길 돈이면 겨울 장작을 사. 우리 애는 돌 보려고 죽은 게 아니야."그래서 광장에는 비석 대신 큰 장작 곳간이 섰다. 문 위에 마흔일곱 이름만 작은 글씨로 적었다."원의 문을 닫으면 환자가 갈 곳이 없습니다."운설이 말했다.그래서 온생원은 사라지지 않았다.구담의 이름이 적힌 현판만 내렸다. 장터 의원 셋과 운설이 새 배합을 만들고, 처방과 부작용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벽에 붙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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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 돌아오는 사람

연도하는 해 뜨기 전에 떠날 채비를 마쳤다.검은 말 일곱과 약재 수레 둘. 예전보다 작은 행렬이었다. 창고와 말을 내놓은 빈자리는 컸지만 방울 소리는 오히려 맑았다.운설은 마구간으로 약 상자를 가져갔다."오른손 내놔요.""작별 인사보다 진맥이 먼저요?""환자는 떠나기 전에 더 말을 안 들으니까요."연도하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열은 없었으나 떨림이 남았다. 운설은 손바닥 가운데와 팔목에 침을 놓고, 손가락을 하나씩 눌렀다."힘을 주세요."그가 운설의 두 손가락을 쥐었다. 처음에는 약했고 두 번째에는 조금 나았다. 세 번째에 운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도하는 놓지 않았다."이제 됐어요.""한 번 더.""진료에 욕심내지 마요.""진료에만 내는 욕심 같소?"운설이 손을 빼자 그는 순순히 놓았다. 선우현이 문에 나타나기 전이었다. 보지 않아도 지킬 한 치라는 점이 운설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했다.그는 치료보다 의원의 고개 숙인 낯을 보고 있었다."또 그렇게 봐요.""이제는 아는군.""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보는 맛은 달라지지."운설이 마지막 침을 조금 세게 눌렀다."아프군.""값입니다.""무슨 값.""불 속에 들어간 값. 다시는 열 내린 날 그런 짓 하지 마요.""선우현에게도 했소?""그 사람은 더 많이 혼났어요.""그래서 오늘 걸음이 느렸군."연도하의 눈이 문 쪽을 향했다. 선우현이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 하는 말이었다.운설은 침통 뚜껑으로 그의 손등을 때렸다."그 뜻 아니에요.""나는 아무 뜻도 말하지 않았소.""두 분 다 정말—"운설의 얼굴이 붉어지자 마구간 일꾼들이 모르는 척 말 먹이를 뒤집었다. 설로상단주가 떠나는 아침에 가장 숨 막히는 것은 북풍이 아니었다."밤새?"운설의 손이 멎었다. 연도하가 낮게 웃었다."골목 끝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 않았나.""그 얘기는 언제까지 할 거예요?""내가 잊을 때까지. 꽤 오래 걸리겠군."선우현이 마구간 문으로 들어왔다."그대가 잊기 전에 늙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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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 혼인 소문

봄은 장부보다 먼저 백로진에 도착했다.약방 살구나무에 두 번째 꽃이 피었다. 아직 그네를 매기에는 가지가 가늘었으나 선우현은 아침마다 굵기를 쟀다."어제보다 반 푼 굵어졌소.""나무가 당신 눈치 보느라 빨리 크겠네요.""그러면 좋은 일이지."그는 아이들에게 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더하고 빼는 법보다 장부에 사람을 남기는 법이 먼저였다.감초 두 냥.한 아이가 쓰자 선우현이 물었다."누가 가져갔지?""기침하는 할아버지요.""이름은.""몰라요.""그럼 기침하는 할아버지라고 써라. 다음에는 물어보고. 숫자만 쓰면 사람이 없어진다."장채령에게 배워 온 말이었다.물문에서는 달마다 편지가 왔다. 소미는 밤 기침이 절반으로 줄었다. 복칠의 어미는 노관이 쌓은 장작 중 비뚤어진 것만 골라 다시 쌓게 했다. 구담은 재판을 기다리며 중독 처방을 모두 적었고, 그 종이에는 처음으로 환자 이름이 함께 들어갔다.현령은 무한으로 압송되었다. 온생원의 새 현판은 아직 비어 있었다. 이름을 먼저 정하면 사람이 그 이름을 지키느라 다칠 수 있다는 채령의 고집 때문이었다.설로상단에서는 편지가 오지 않았다.봄이 시작된 뒤 한 달, 두 달.어느 밤 운설은 잠결에 먼 방울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어 보니 바람에 부딪힌 약방 방울뿐이었다. 돌아서자 선우현이 이불을 들고 문간에 서 있었다."기다리지 않는다더니.""환자인 줄 알았어요.""그 사내도 늘 환자로 오지."운설은 대꾸 대신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현은 그녀의 찬 발을 제 다리 사이에 넣어 녹였다."오면 다시 객점 방을 잡아 줄 거예요?""이번에는 북쪽 끝으로 잡을 것이오.""백로진에 북쪽 객점은 없는데.""그러니 좋은 방이지."운설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그 뒤로 선우현은 방울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보다 먼저 문을 보았다.운설은 기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북쪽 약길은 멀고 연도하는 글보다 직접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약재 궤를 열 때 회색 삼실이 보이면 잠깐 떠오르는 정도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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