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의 봉인은 흰 종이보다 빨랐다.백지장 쇠문과 여덟째 문 문설주에 같은 날 붉은 봉인이 붙었다.무호적 인원을 사사로이 숨기거나 부리는 일을 금함.숨기는 것과 살리는 것이 한 줄에 묶여 있었다.아련은 봉인을 뜯지 않았다. 대신 그 아래 작은 종이를 붙였다.안에 마흔일곱 명 있음. 숨기지 않음.현승이 다시 와 종이를 떼려 하자 류단이 문 안에 섰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검문을 만나면 죽은 호적을 도용한 죄로 붙잡혔다.“우리를 여기 두면 숨긴 거고, 내보내면 죄인이래요.”류단이 말했다.“법이라는 문은 앞뒤로 다 잠겼네요.”현승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도 사흘째 옛 호적책을 뒤지고 있었다.봉인 때문에 약방에서 보내는 약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운설은 처방마다 환자 이름 대신 허락한 표식을 쓰고, 현승이 보는 앞에서 직접 건넸다.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의 기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백지장 사람들은 봉인 안쪽에서 일을 멈추지 않았다. 종이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가마를 씻고 창문을 넓혔다. 관청이 작업장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도, 자기들이 머물 집으로 고치는 일까지 금할 조항은 없었다.유경은 매일 문 앞에 새 수를 붙였다.오늘 살아 있는 사람 마흔일곱.다음 날도 같은 수였다. 법이 세지 않는 동안 자기들이 먼저 세는 일이었다.“살아 있는 것을 의심하는 게 아니오.”“그럼 무엇을 의심하오?”선우현이 물었다.“이름이 누구 것인지.”죽은 호적 하나를 되살리면 그 이름으로 상속된 땅과 빚, 혼인과 죄까지 함께 돌아왔다. 허담이 한 사람에게 죽은 이름 셋을 붙인 탓에 어느 이름을 살릴지도 정할 수 없었다.“새 이름을 주면 되잖아요.”아련이 말했다.“누가 주지?”현승이 되물었다.“본인이요.”“사람이 제 이름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으면 죄인도 빚진 자도 모두 이름을 바꿀 거다.”“남이 마음대로 바꾸는 건 됐잖아요.”아이의 말에 현승의 손이 봉인 위에서 멎었다.선우현은 관청 서고로 갔다.
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