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70

270 فصول

제261화 — 살고 싶은 쪽

문밖의 여자는 들어오지 않았다.아련이 문을 반쯤 열어 둔 채 기다렸다. 여자는 젖은 머리칼 사이로 객주 안을 살폈다. 창문 둘, 뒷문 하나, 마당으로 난 쪽문 하나. 출구를 다 세고 나서야 문턱에 발을 올렸다.“문이 모두 몇 개입니까?”“여덟째 문인데 문짝은 넷이에요.”아련이 답했다.여자는 웃으려다 기침했다. 흰 가루가 입술 사이에서 날렸다. 밀가루보다 고왔고 젖은 종이 냄새가 났다.운설은 곧장 그녀를 부축했다.“숨을 크게 쉬지 마요.”“크게 쉴 숨이 없어요.”여자의 손목은 지나치게 가늘었다. 소매 안쪽 피부에는 둥근 화상 자국이 다섯 개 이어져 있었다. 화상 사이마다 먹으로 글자를 지운 흔적이 겹쳤다.선우현이 문을 닫으려 하자 여자가 몸을 뒤틀었다.“닫지 마.”존대가 깨질 만큼 빠른 목소리였다.선우현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비가 방 안으로 들었으나 문은 그대로 두었다.“닫지 않겠소.”여자는 그 말을 듣고서야 힘을 놓았다. 무릎이 꺾였다.연도하가 먼저 팔을 받쳤고 운설이 머리를 안았다. 두 사람이 들어도 몸은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옷만 젖은 것이 아니라, 종이죽을 말릴 때 쓰는 잿물 냄새가 살갗에 밴 듯했다.운설은 여자를 볕이 드는 첫 방에 눕혔다. 묘선이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 문밖에서 밤을 새운 사람에게 비워 둔 방이었다.묘선은 새 이불을 가져오지 않았다. 낯선 천이 몸을 덮으면 놀랄 수 있다며, 류단이 두르고 온 겉옷을 물에 헹궈 다시 덮었다. 옷에서는 흰 물이 세 번이나 빠졌다.아련은 열린 문 옆에 앉았다. 제 몸 하나가 지나갈 만큼만 자리를 비워 두고, 류단이 눈을 뜰 때마다 출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아무도 안 막아요.”류단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으면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었다.“물부터 먹이면 안 돼요?”아련이 물었다.“입 안부터 봐야 해.”혀와 잇몸이 하얗게 벗겨져 있었다. 잿물 김을 오래 마신 사람의 상처였다. 운설은 물에 꿀을 아주 조금 풀고 천을 적셔 입술만 닦았다. 갑자기 많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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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 지워진 둘

류단은 사흘 동안 문을 열어 두고 잤다.밤비가 방바닥을 적셔도 닫지 못하게 했다. 묘선은 문턱 안쪽에 모래를 두껍게 깔고, 아련은 젖은 모래를 아침마다 갈았다.선우현은 열린 문 맞은편에서 잤다. 누가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면서도 류단이 나갈 길을 막지 않는 자리였다.운설은 종이죽 가루를 빼내는 약을 조금씩 먹였다. 도라지와 꿀, 폐의 열을 내리는 풀을 묽게 달였다. 류단이 기침할 때마다 흰 가래가 나왔고 셋째 날에는 처음으로 가루가 섞이지 않은 물이 나왔다.“이제 말해도 돼요?”아련이 물었다.“그 질문을 사흘이나 참았니?”“환자한테 말 많이 시키면 약값 더 든대요.”류단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그녀는 열한 해 전 일을 띄엄띄엄 말했다.진무경이 풀어 준 아이들은 느티나무 객주에서 헤어졌다. 여덟은 북쪽으로, 셋은 남쪽 절로 갔다. 류단과 유경은 같은 마차 밑에 숨었다가 사흘 뒤 다시 잡혔다. 진태오와 함께 있던 호송인 하나가 아이들의 발목에 묻은 느티나무 진을 알아봤다.“우리를 관가에 데려간다고 했어요.”“안 데려갔군.”선우현이 말했다.“관가 종이를 데려왔죠.”빈 관인이 찍힌 사망 호적 두 장이었다. 류단은 열두 살에 죽은 박씨 셋째 딸이 되었고, 유경은 이름 없는 익사자의 몸이 되었다. 죽은 사람은 품삯을 요구하지 못했다. 달아나도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백지장은 강가의 담 안에 있었다.새벽에는 종을 세 번 울렸다. 첫 종에 일어나고, 둘째 종에 손을 잿물에 씻고, 셋째 종이 울리기 전에 가마 앞에 서야 했다. 늦은 사람은 하루 품삯 대신 이름표의 밥 한 끼를 잃었다.류단은 처음 몇 해 동안 달아날 날을 벽에 그었다. 백 번째 금을 긋던 날 허담이 벽을 새 종이로 발랐다. 그 뒤부터는 유경이 날짜를 외웠다. 류단은 문 수를, 유경은 사람 수를 맡았다.“둘이 합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실제로 나왔잖아요.”아련이 말했다.“반만.”류단은 열셋째 빈칸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사람들은 닥나무를 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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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 종이로 만든 사람

죽은 사람은 길에서 검문받지 않았다.연도하는 백지장 운송표를 읽다가 그 사실을 알아냈다. 수레꾼 이름은 해마다 바뀌었으나 호적의 사망 날짜는 십 년 전 그대로였다. 죽은 이름 하나가 수레 세 대를 몰고, 또 다른 죽은 이름이 종이값을 받았다.“사람이 종이를 만드는 게 아니었군.”그가 말했다.“종이가 사람을 만들었소.”선우현은 호적소에서 거둔 빈 관인을 책상에 늘어놓았다. 위조 인도장 사건 뒤 파면 심리를 받는 아전의 창고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관인은 같았지만 종이 가장자리마다 눌린 자국이 달랐다.현승은 관인을 빌려 주면서도 사람 둘을 붙였다. 선우현이 또 관청 밖에 법판을 벌일까 두려운 얼굴들이었다. 선우현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관인 수를 세고, 종이마다 빛이 비치는 방향을 달리했다.석 장에는 같은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오른손 약지가 짧아 먹이 한쪽으로 번진 모양. 파면된 아전의 손은 온전했다.“안에서 찍은 사람이 하나 더 있소.”연도하가 말했다.“빈 종이를 넘긴 자와 죽은 이름을 채운 자가 다르군.”그들은 호적소 뒷문에서 종이 부스러기를 찾았다. 닥섬유 사이에 검은 모래가 섞여 있었다. 백지장 앞 흰 강에서만 나는 모래였다.아련은 류단이 가져온 흰 종이와 겹쳤다.“이건 여기서 찍은 거예요.”“무엇을 보고 아느냐.”“모서리가 한 번 젖었어요. 이 종이도요.”아이의 갈라진 손톱이 희미한 물결 자국을 짚었다. 백로진 호적소에서 빈 관인을 찍은 뒤 백지장으로 보내고, 거기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죽은 이름을 붙였다.운설은 류단의 낡은 저고리를 뒤집었다. 옷 안쪽 솔기에는 세 갈래 닥잎이 수놓여 있었다. 설로상단의 옛 운송지에서 종이짐을 표시하던 무늬였다.연도하는 말없이 그 표식을 잘라 냈다.“왜 버려요?”류단이 물었다.“버리는 것이 아니오.”그는 자기 장부 첫 장에 천 조각을 붙였다.“내 상단이 무엇을 날랐는지 모른 척하지 않으려고.”선우현은 백지장까지 거리를 셌다. 말로 이틀, 강을 타면 하루 반. 관가 병력을 기다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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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 타지 않는 이름

선우현은 불을 끄러 달려가지 않았다.“사람부터.”그 한마디에 움직임이 갈렸다.운설과 묘선은 첫 방의 류단을 부축했다. 아련은 빈방 문을 하나씩 열어 손님이 남았는지 확인했다. 연도하는 마구간 줄을 끊어 검은 말 둘을 골목으로 몰아냈다.왕철과 시장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온 것은 그다음이었다.불은 문에서 시작했으나 기름은 장부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사람보다 종이를 정확히 노렸다.불길이 기름 자국을 따라 달렸다. 왕철이 물을 끼얹자 기름불이 옆으로 퍼졌다. 선우현은 젖은 흙을 쓰라고 소리쳤다. 시장 사람들은 물통을 버리고 화단과 도랑의 진흙을 삽으로 퍼 날랐다.운설은 불을 끄는 손의 화상부터 막았다. 소매를 걷으라 하고, 젖은 천을 얼굴에 묶었다. 불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은 뛰어드는 용기보다 다음 숨을 남겨 두는 순서에 가까웠다.아련은 제 장부방이 타는 것을 보면서도 안으로 가지 않았다. 선우현이 정한 순서를 지키느라 발가락으로 땅만 팠다.“장부 안 가져와요?”아련이 물었다.“네가 나간 뒤에.”선우현은 아이의 등을 문밖으로 밀었다. 무릎이 좋았다면 안으로 먼저 뛰어들었을 사람이, 이제는 순서를 입으로 지켰다.지붕 절반이 내려앉았다.연도하가 젖은 모포를 뒤집어쓰고 장부방까지 갔다. 원장부는 이미 불이 붙어 가장자리가 붉었다. 그는 장부 대신 벽에 걸린 빈 자루를 들고 나왔다.“비었잖아요!”아련이 소리쳤다.“장부는 그대가 세 장 만들었지.”자루 안에는 빈 종이와 먹, 수결판이 들어 있었다. 다시 쓸 도구였다.약방과 국숫집에 둔 두 장은 타지 않았다. 아련은 울음을 삼키며 젖은 땅에 종이를 펼쳤다. 시장 사람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읽어 주었다.“한 사람에 하나씩 외워 주세요.”왕철은 류단을 외웠다. 묘선은 유경을, 운설은 마소분을 맡았다. 글을 모르는 이들은 이름 옆의 흉과 버릇을 함께 들었다.종이는 탈 수 있어도 스무 사람의 입을 한꺼번에 태우기는 어려웠다.류단은 쉰 목소리로 열두째 이름을 직접 말했다. 제 이름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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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 흰 강

백지장 앞의 강은 흰색이었다.닥나무 섬유와 잿물이 물 위에 얇은 막을 만들었다. 물고기는 배를 드러낸 채 갈대 사이에 걸렸고, 비가 내려도 냄새가 씻기지 않았다.운설 일행은 종이를 사러 온 사람들처럼 들어갔다.연도하가 상단주, 운설이 종이독을 살피는 의원이었다. 선우현은 장부를 보는 늙은 서기 행세를 했다. 지팡이와 느린 걸음은 숨길 필요가 없었다.류단은 수레 바닥에 누웠다. 아직 열이 남았으나 길을 아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출발 전 운설은 돌아갈 것을 세 번 권했다. 류단은 세 번 모두 싫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백지장의 안쪽 문이 어느 쪽으로 열리는지, 수문 사슬 열쇠가 허담의 왼쪽 허리춤에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선우현이 네 번째에는 묻지 않았다.“그대가 앞장서지 않게 하겠소. 다만 길을 고르는 것은 그대가 하시오.”류단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구하러 온 사람이 제 선택까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먼저 내려요.”“환자는 누워 있어요.”“여기서 환자는 누워 있으면 종이 밑에 묻혀요.”운설은 대답 대신 류단의 손에 얇은 천을 감았다. 도망칠 때 줄을 잡아도 화상이 터지지 않게 하는 매듭이었다.백지장 문은 셋이었다.바깥 나무문, 수레를 들이는 쇠문, 사람만 지나는 작은 쪽문. 류단이 객주에서 출구를 네 번이나 센 까닭을 운설은 그제야 알았다. 여기서는 문이 많을수록 나갈 길이 줄었다.장주 허담이 쇠문 앞에서 맞았다.왼손 전체가 먹물에 데인 듯 검었다. 손가락 두 개는 잘 펴지지 않았으나 옷과 말투는 단정했다.“설로상단주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흰 종이에 검은 소문이 많아서 직접 보러 왔소.”연도하가 웃었다.허담은 웃지 않았다.“종이는 소문을 남기지요. 사람보다 오래 갑니다.”“그래서 사람을 종이에 맞추었소?”두 사람의 말이 부딪히는 동안 선우현은 안쪽을 보았다.허담 뒤에는 장정 넷이 서 있었다. 칼은 없고 닥 방망이만 들었지만, 방망이는 사람 팔뚝만큼 굵었다. 선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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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 마흔일곱 장

유경은 류단을 안지 않았다.말리는 마당 뒤, 젖은 종이 더미 사이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열한 해를 함께 갇혀 지낸 얼굴들이 서로 살아 있는지 눈으로 먼저 셌다.“기침은.”유경이 물었다.“밖에서도 해.”“약은.”“써. 너무 써.”“그럼 됐네.”둘의 인사는 그것으로 끝났다.유경은 열여덟이었다. 오른손 약지가 첫마디에서 굽어 펴지지 않았고, 머리카락에는 종이풀을 말린 흰 조각이 붙어 있었다. 열한 해 전에는 류단보다 작았으나 지금은 반 뼘 컸다.운설은 유경의 손을 보자마자 잡지 않았다. 먼저 손바닥을 보이게 하고 허락을 물었다. 유경은 손보다 출구를 한 번 본 뒤 내밀었다.굽은 약지 안쪽에는 실이 살을 파고든 자국이 있었다. 장부 열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손가락에 감고 잔 세월의 흔적이었다.“펴려고 하면 아파요?”“기억하려 하면 아픕니다.”“어떤 걸요?”“열쇠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운설은 억지로 펴지 않았다. 손가락을 고치는 일보다 열쇠 없이도 장부가 사라지지 않는 곳을 만드는 일이 먼저였다.“바깥사람은 누구야?”“진무경의 딸, 그를 벤 사람, 그 사람의 아내, 우리를 옮긴 상단주.”류단이 한숨에 말했다.유경은 웃지 않았다.“죄가 많은 행렬이네.”“그래서 문은 열 줄 알아.”유경이 선우현을 보았다. 빈 허리춤과 지팡이, 느린 오른발을 살폈다.“칼은 어디 있습니까?”“없소.”“우리를 데리고 나갈 힘은요?”“나 하나의 힘은 없소.”선우현은 작업장을 가리켰다.“마흔일곱의 힘은 아직 세지 못했소.”유경의 굳은 약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그녀는 지하 장부칸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닥나무 껍질을 쌓은 창고 아래, 마른 우물처럼 깊은 방이었다. 선반에는 죽은 호적과 새하얀 이름패가 계절별로 묶여 있었다.한 사람의 몸에 이름이 셋 붙은 기록도 있었다. 첫 이름으로 세금을 피하고, 둘째 이름으로 품삯을 받고, 셋째 이름으로 죽음을 적었다. 돈을 받은 것은 늘 허담이었고 죽은 것은 늘 일꾼이었다.유경이 바닥 널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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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 문 없는 집

허담은 장부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검은 왼손에는 등불, 온전한 오른손에는 수문 열쇠가 들려 있었다. 뒤에는 닥 방망이를 든 장정 넷이 섰다.“종이를 사러 온 분들이 종이 밑까지 보시는군요.”연도하가 앞으로 나섰다.“사려는 물건에 사람이 섞였으면 값을 다시 물어야지.”“사람값은 내가 냈습니다.”허담은 마흔일곱 권이 숨은 바닥 위에 섰다.“굶어 죽을 아이, 호적에서 쫓긴 과부, 빚 대신 넘겨진 죄인. 내가 먹이고 재우고 병들면 약을 썼소. 관가는 버린 사람들입니다.”“그래서 주인이 되었소?”선우현이 물었다.“주인이 없으면 이들은 다시 팔립니다.”“그대가 먼저 샀군.”“밖에서 죽는 것보다 안에서 사는 편이 낫지.”허담의 말에는 거짓만 있지 않았다. 작업장 지붕은 비를 막았고 겨울 솜옷도 있었다. 그가 산 약 때문에 살아난 사람도 있었다.운설이 말했다.“살려 준 값은 살아 있는 사람이 정해요.”“병든 자는 의원 말을 듣지 않습니까?”“듣는 것과 제 몸을 넘기는 건 달라요.”허담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 아니었다. 이해하고도 손해가 더 크다고 여기는 얼굴이었다.“해 뜨면 전원 떠납니다.”“모레라 들었소.”“여덟째 문에 불을 놓은 자가 잡혔더군요. 값을 높여 오늘로 당겼습니다.”수문 열쇠가 그의 허리춤으로 돌아갔다.선우현은 싸우지 않았다. 장부칸에서 나온 일을 사과하고, 산 종이값을 치른 뒤 물러났다. 허담은 그들이 포기했다고 믿지 않았지만 당장 잡아 둘 죄목도 찾지 못했다.작업장 뒤 오두막에서 계획을 바꿨다.선우현은 마흔일곱 사람을 한꺼번에 불러 놓고 명을 내리지 않았다. 여섯 사람씩 들어오게 해 길을 설명하고, 빠뜨린 것을 고쳐 달라고 했다.종이 뗏목을 묶는 노인은 물살이 강해지면 가로 매듭이 풀린다고 했다. 가마를 맡은 여자는 수문을 열기 전 불부터 죽이지 않으면 뜨거운 잿물이 따라온다고 했다. 열두 살 아이는 작은 쪽문의 아래 빗장이 낮아 자기만 기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선우현의 계획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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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 젖는 종이

첫 뗏목은 문 안에서 부서졌다.투명해진 종이가 문틈에서 떨어진 순간 사람들은 말없이 움직였다. 첫째 묶음 여섯이 뗏목에 올랐고, 둘째 묶음은 뒤에서 발을 받쳤다. 누구도 종을 울리지 않았다.그러나 수문 앞 물은 계획할 때보다 한 뼘 높았다. 산 위에서 내린 비가 닥나무 수로를 타고 먼저 도착한 탓이었다. 선우현은 물에 뜨는 나무 조각의 속도를 보고 남은 시간을 삼십 호흡으로 줄였다.불어난 물이 닥나무 발 아래로 파고들었다. 매듭 하나가 풀리고 가장 약한 모서리부터 들렸다.“사람 내리지 마시오!”선우현이 소리쳤다.내리면 허리까지 찬 잿물에 발이 닿았다. 그는 뗏목을 벽 쪽으로 붙이라 하고, 마른 발 두 장을 세로로 밀어 넣게 했다. 넓게 받치는 대신 물살을 가르는 모양이었다.첫 수는 뗏목을 배로 바꾸는 일이었다.류단이 자물쇠를 돌로 쳤다. 세 번 만에 돌이 깨졌다. 연도하는 장정에게 빼앗은 닥 방망이를 사슬 사이에 넣었다.“오른쪽으로 반 바퀴.”선우현이 말했다.“그대는 와서 직접 하시오.”“무릎이 물에 잠기면 아무것도 못 하오.”연도하가 욕설을 삼키고 방망이를 비틀었다. 그의 오른손이 떨려 힘이 빠졌다. 류단이 두 손을 그 위에 겹쳤다.“나는 열한 해 했어요.”“나는 열여덟 해 장부를 들었소.”“둘 다 쓸모없네.”“그러니 같이 하지.”사슬 한 고리가 벌어졌다.둘째 수의 값은 류단의 손바닥이 다시 터지고 연도하의 손목이 부은 것이었다.허담의 장정들이 작은 문으로 들어왔다.선우현은 닥 방망이를 들지 않았다. 수문 옆 쌓아 둔 젖은 종이 발을 발로 밀었다. 무거운 발이 비탈을 타고 내려가 첫 두 사람의 무릎을 감쌌다.그가 지팡이로 위쪽 매듭을 끊자 종이 발 여섯 장이 벽처럼 펼쳐졌다. 칼을 막지는 못해도 시야를 가리고 발을 묶었다.세 번째 장정이 종이를 찢고 나왔다. 선우현의 지팡이가 손목을 스쳤으나 힘이 모자랐다. 방망이가 그의 옆구리를 때렸다.숨이 빠졌다.선우현은 물속에 한쪽 무릎을 짚었다. 통증보다 잿물이 상처에 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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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 아이를 사는 법

선우현은 아련을 데리러 돌아가지 않았다.돌아가면 이틀이 걸렸다. 그 사이 백지장 수레가 흩어지고 허담의 장부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즉시 여덟째 문에 전서구를 보냈다.문을 잠그지 말 것. 혼자 나가지 말 것. 네 이름은 네가 지킬 것.아련의 답은 그날 밤 연도하의 빠른 말로 돌아왔다.문은 열어 둠. 혼자는 아님. 이름 세 장 더 씀.종이 아래 왕철과 묘선, 시장 사람 열일곱의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선우현은 그제야 옆구리 상처를 운설에게 내주었다.아련의 답에는 짧은 줄이 하나 더 있었다.왜 저를 사려고 하는지도 알아낼 것.선우현은 그 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아이를 안전한 곳에 숨기는 것만으로 끝내면 또 누군가 같은 흉을 가진 아이를 골랐다. 아련은 자기를 미끼로 쓰겠다는 뜻이 아니라, 제 이름이 거래된 까닭을 빼지 말라는 뜻이었다.“무릎도요.”“시간이 없소.”“그러다 다리도 없어져요.”운설은 젖은 바지를 잘라 내고 잿물에 덴 피부를 씻었다. 선우현이 이를 악물자 연도하가 맞은편에서 다음 매입 명단을 읽었다.이름 대신 몸의 특징이 적혀 있었다.갈라진 손톱, 목의 조름 자국, 한쪽 눈 사시, 화상 입은 양손. 여덟째 문을 거친 사람들의 상처였다.“장부를 베낀 자가 있소.”유경이 명단의 종이를 문질렀다. 백로진 관청 먹에서 나는 송진 냄새가 났다.파면된 호적 아전은 빈 관인을 빼돌린 뒤에도 처남 집에 숨어 있었다. 현승의 심리가 끝나기 전 마지막 값을 받으려, 여덟째 문 방문 장부를 허담에게 팔았다.현승이 보낸 포졸들은 아전을 붙잡아 백지장으로 데려왔다. 그는 아련 이름을 왜 첫 줄에 썼느냐는 질문에 눈을 들지 못했다.“객주가 아이 이름으로 넘어가면 집값이 생깁니다. 호적이 사라지면 큰집이 다시 받을 수 있고.”“그 값에서 그대 몫은.”“은 한 냥.”선우현이 되물었다.“아이 하나에?”아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련의 열두 냥 몸값에서 큰집과 마방과 호적소와 백지장이 제 몫을 떼고 있었다. 아이를 사는 법은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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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 이름을 적는 손

백지장은 사흘 동안 종이를 만들지 않았다.가마의 불을 끄고 잿물을 강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흰 강은 비를 먹으며 조금씩 본래 흙빛으로 돌아갔다.마흔일곱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갈 곳이 없는 자도 있었고, 기억하는 고향이 너무 멀어진 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관청은 죽은 호적을 들고 길에 나선 사람을 다시 백지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했다.“구했는데 왜 못 나가요?”아련이 물었다.그녀는 묘선과 함께 수레를 타고 왔다. 선우현의 전서구를 지키느라 문을 열어 둔 채 시장 사람들과 사흘을 보낸 뒤였다.“문은 열렸는데 길이 없어서.”류단이 답했다.아련은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덟째 문 현판에서 붉은 고삐 조각을 떼어 백지장 쇠문에 묶었다.“그럼 여기에도 문을 만들어요.”일은 종이보다 먼저 바뀌었다.누가 일할지도 각자 정했다. 폐가 상한 류단은 가마에서 떨어진 장부방을 택했고, 굽은 손가락의 유경은 붓을 오래 쥐지 않도록 한 시진마다 사람을 바꿨다. 방망이질을 싫어하는 이는 닥나무를 삶았고, 강을 무서워하는 이는 마른 창고를 맡았다.예전에는 허담 한 사람의 종이 울리면 모두 움직였다. 이제는 아침마다 하고 싶은 일과 못 하는 일을 먼저 말했다. 대답하는 데만 반 시진이 걸렸다. 생산한 종이는 절반으로 줄었으나 다친 손도 절반으로 줄었다.닥 방망이를 내려놓고 가마의 묵은 잿물을 모두 퍼냈다. 운설은 작업장을 치료 순서대로 나눴다. 숨이 짧은 사람은 강바람이 드는 창가, 화상 깊은 사람은 물 가까운 방으로 옮겼다.연도하는 남은 종이값을 미리 치르지 않았다. 대신 새 종이가 팔릴 때마다 일한 사람 이름과 품삯이 같은 줄에 적히는 장부를 만들었다.“이름이 없는 사람은요?”유경이 물었다.“그 사람이 고른 표식을 쓰오.”“관청이 안 받습니다.”“관청보다 먼저 먹는 장부요.”품삯은 호적을 거치지 않고 일한 손에 돌아갔다.아련은 품삯 줄마다 손의 특징을 그렸다. 검지 끝이 없는 손, 손바닥에 별 모양 흉이 있는 손, 먹을 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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