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은 물 높이를 손가락 마디로 세었다.첫 마디에는 아랫마을 논이 잠기고, 둘째에는 수뢰 지붕이 닿았다. 셋째 마디가 차면 백련제 안의 열여덟 관이 모두 떠올라 황도 수로로 흘러갔다.“문을 열어라!” 혈비가 누각을 향해 외쳤다.“삭월왕의 명은 황실 물문에 닿지 않는다.”“나는 왕인을 두고 왔다.”“그러니 더 들을 까닭이 없지.”노광의 왼쪽 귀는 뿌리부터 잘려 있었다. 스무 해 전 전쟁 때 삭월 군은 북쪽 수문을 닫으라 했고, 황실 군은 남쪽을 열라 했다. 무한 관부는 논을 지키라 했으며, 노광의 아비는 집부터 구하자고 했다.젊은 수문장이던 노광은 네 명을 모두 들었다. 북쪽을 반쯤 닫고 남쪽을 반쯤 열었다. 물은 가운데 마을로 몰렸다. 그의 아비와 아내, 형제 둘이 지붕 위에서 손을 흔들다 사라졌다.그 뒤 네 곳에서는 모두 노광 탓이 아니라고 했다. 삭월 군은 황실 명을 섞은 탓이라 했고, 황실은 왕조 잔당의 말을 들은 탓이라 했다. 관부는 수문장이 제 판단을 보탰다고 했으며, 살아남은 친족들은 너무 많은 말을 듣느라 늦었다고 했다.용서처럼 보이는 말들이 한데 모여 노광 한 사람에게 모든 잘못을 남겼다. 그는 차라리 죽인 자의 이름이 뚜렷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미워할 곳도, 벌할 곳도 생긴다고 믿었다.“그날 명령이 하나였다면 우리 집은 잠기지 않았다.”한겸이 누각 아래 장부를 펼쳤다.“어느 명이었으면 살았다는 말이오?”노광의 손이 물레 위에서 멎었다.“무엇?”“삭월 명대로 북문을 닫으면 위 감옥이 잠겼소. 황실 명대로 남문을 열면 아래 논이 떠내려갔지. 관부 말대로 논을 지키면 그대 집이 잠겼고. 하나만 따르면 누가 살았소?”“적어도 누가 죽였는지는 분명했을 것이다.”노광이 원한 것은 모두를 살리는 명령보다 실패했을 때 책임질 이름 하나였다. 그는 그 이름이 없어서 스무 해 동안 자기만 탓했고, 이제는 어떤 강도 한 사람 뜻 밖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려 했다.한겸은 젖은 장부를 누각 계단에 펼쳤다. 그날 죽은 집 이름 옆에는 마
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