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 Chapter 101 - Chapter 110

169 Chapters

101. 서로가 숨긴 패

-의금부-수양대군이 갇혀 있는 옥사에 어둠이 내려앉자, 내시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인기척을 살핀 사내가 옥 앞에 멈춰 서서 목소리를 낮췄다.“대군마마, 접니다.”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수양대군이 천천히 눈을 떴다.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그래. 뭘 좀 들었느냐?”“예. 전하께서 중전마마를 비롯한 몇몇 사람을 은밀히 불러 대군마마에 관한 이야기를나누셨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해서?”“우선 대군마마의 처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리고…….”사내가 잠시 주위를 살핀 뒤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백윤이라는 자를 하루빨리 잡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백윤을?”“예. 대군마마께서 옥에 계시면서도 지나치게 평온하시다는 것을 김종서 대감이 수상하게여긴 듯합니다.”그 말에 수양대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김종서답군.”“그리고 전하께서도 대군마마의 처결을 마냥 미루지는 않으실 듯합니다.”“…….”이번에는 수양대군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생각보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구나.”“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이상한 이야기?”“중전마마께서 수양대군께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수양대군의 표정이 순간 멈췄다.“……뭐라?”“마치 대군마마께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알고 계시는 것처럼 들렸다고…….”“잠깐.”수양대군이 사내의 말을 끊었다.조금 전까지 여유롭던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방금 중전이 뭐라고 했다고 했느냐?”“아, 중전마마께서 대군마마께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다…….”“예. 그런데 아무래도 실수로 내뱉으신 말 같았습니다.”“실수?”“예. 사람이 무심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나면 순간 아차 하지 않습니까.”사내는 잠시 당시의 모습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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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아우를 찾는 길

‘자네 아우인 백윤이 수양대군과 함께 붙잡히는 과정에서 도주한 뒤 종적이 묘연하다는군.혹시 자네에게 따로 기별이 온 것은 없는가?’백현은 모화관 석실의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에 족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수양대군을 따르는 이상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막상 하나뿐인 아우가 도망자가 되어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되자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백윤…….’백현은 씁쓸하게 느껴지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석실 밖에는 마침 쿠란과 사신단 수행원들이 있었다.“쿠란, 혹시 족장께서는 어디 계십니까?”“조선의 왕과 맺을 화친 문서를 살펴보고 계시는데. 무슨 일인가?”백현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아우를 찾고 싶습니다.”쿠란의 표정이 굳었다.“안 된다.”“쿠란…….”“백윤은 지금 수양대군의 측근으로 쫓기고 있다. 그런 자를 우리가 몰래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화친은 물론이고 수양대군과 내통한다는 오해까지 받을 수 있어.”백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쿠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그래도 하나뿐인 아우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형으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그때였다.“가게 둬.”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족장?”족장이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 뒤에 서 있었다.그는 백현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조선 몰래 찾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설마 전하께 허락을 구하시려고요?”족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처음부터 사정을 밝히고 허락을 구한다면 괜한 의심을 살 이유도 없겠지.”쿠란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연한 이방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화친까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은 명심하십시오.”“알고 있다.”족장은 수행원에게 시선을 돌렸다.“전하께 보낼 서신을 준비하게.”“예.”백현은 멀어지는 수행원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백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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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형제만의 약속

백현과 김종서 휘하의 젊은 군사는 말을 타고 한양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산길은 외길이었지만 생각보다 험하거나 좁지는 않았다.사람의 왕래가 아주 끊긴 곳은 아닌 듯 군데군데 말발굽 자국도 남아 있었다.백현은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뒤따라오는 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큰 나무 한 그루가 나올 것이오. 그곳까지 가면 됩니다.”젊은 군사는 고개를 들어 앞쪽 산길을 바라보았다.“그곳이 백윤과 만나기로 한 장소요?”“정확히는…… 아우에게 연락을 남길 수 있는 곳입니다.”“연락을 남긴다?”백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예. 예전부터 우리 형제가 급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하던 곳이지요.”군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말을 몰았다.다그닥— 다그닥—한적한 산길 위로 두 필의 말발굽 소리만이 길게 울려 퍼졌다.그렇게 얼마를 더 가자 작은 언덕배기 위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냈다.뒤따르던 군사가 나무를 바라보며 물었다.“저 나무요?”“예. 맞습니다.”백현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근처 나무에 단단히 묶어두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언덕 위의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잔잔한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가볍게 흔들었다.백현은 한동안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았다.‘이곳도 그대로구나…….’어린 시절 백윤과 함께 이곳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이내 백현은 품에서 작은 단검을 꺼냈다.그리고 나무 아래로 몸을 숙여 땅에 짧은 칼집 몇 개를 남겼다.슥— 슥—그 모습을 지켜보던 군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다요? 쪽지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오?”백현은 단검을 다시 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저 표식을 백윤이 알아본단 말이오?”“이렇게 표식을 남긴 뒤 근처 주막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우가 그곳으로 찾아올 겁니다.”군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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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남겨진 흔적

백현은 사내의 말에 잠시 젊은 군사를 바라보았다.단종은 분명 그와 함께 움직이라고 했다.하지만 백윤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 혼자 가야 했다.백현이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던 순간, 젊은 군사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좋다는 뜻이었다.백현은 잠시 군사를 바라보다 이내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좋소. 그럼 나 혼자 가겠소.”그 말에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사내는 먼저 주막을 나섰다.백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끼익—두 사람이 주막을 빠져나가고 문이 닫혔다.젊은 군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천천히 식어버린 국밥을 한술 떴다.하지만 그의 시선만큼은 잠시 전 백현이 사라진 문을 향하고 있었다.‘……이제부터가 내 일이군.’군사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주모, 여기 국밥 값이오.”젊은 군사는 상 위에 국밥 값을 올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백현과 사내가 주막을 나선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였다.너무 빨리 뒤따랐다가는 자신을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들킬 수 있었다.군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주막 밖으로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조금 전 백현과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이쪽이군.”군사는 주변을 한번 살핀 뒤 두 사람이 사라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얼마쯤 걸었을 때 군사의 발걸음이 멈췄다.길 한쪽에 작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이건…….”군사는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그것을 살짝 문질렀다.말린 약재를 곱게 빻은 가루였다.조금 더 앞으로 가자 똑같은 가루가 다시 눈에 띄었다.‘백현 의원…… 처음부터 내가 뒤따를 것을 알고 있었군.’그제야 군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백현은 앞서 걷는 사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손가락 사이에 끼워 둔 약초 한 조각을 슬며시 떨어뜨렸다.툭—얼마쯤 더 걸어간 뒤, 다시 약초 한 조각을 길가에 떨어뜨리려던 순간이었다.“잠깐.”앞서 걷던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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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엇갈린 형제

백현은 백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통나무로 지어진 집 안에는 작은 횃불 몇 개와 중앙에 놓인 탁자 하나가 전부였다.사람이 오래 머무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간소한 공간이었다.“그동안 이곳에서 지낸 것이냐?”“아, 그건 아닙니다.”백윤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원래 머물던 곳은 이미 노출될 위험이 있어 흔적을 모두 없앴습니다.그래서 얼마 전 이곳으로 옮겼지요.”“흔적을…… 모두 없앴다고?”“예. 지금은 조정에서 아무리 찾아도 발견하기 어려울 겁니다.”백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그러나 백현은 그런 아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분명 웃고 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아우의 웃음과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예전의 백윤이 웃을 때는 장난기라도 느껴졌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에서는 좀처럼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백현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저번에도 그렇고 지금도…… 넌 여전히 내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구나.”백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나름 잘 지내고 있습니다.”백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는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백현은 그런 아우를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래. 너는 늘 그렇게 말했지.”“…….”“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백현의 시선이 백윤의 얼굴에 머물렀다.“하지만 정말 잘 지내는 사람은 자신의 형을 만나기 위해 이런 깊은 산속까지 숨어들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다만 찻잔을 내려놓는 그의 손길이 조금 전보다 무거워져 있었다.“형님도 기억하시지 않습니까.”백윤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졌다.“우리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춥고 배고팠던 기억뿐이었습니다.”“…….”“적어도 이제는 그럴 일 없지 않습니까?”백현의 표정이 굳어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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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숨겨진 칼날

-의금부 추국장-평소에도 무거운 기운이 감도는 의금부 안쪽에서 간간이 사람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으윽…….”추국장 한가운데에는 수양대군과 함께 붙잡힌 사내 몇 명이 포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양대군의 명을 받들며 거리낌 없이 움직이던 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그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그들 앞에 앉아 있던 의금부 관리가 탁자 위의 문서를 천천히 내려놓았다.“다시 묻겠다.”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추국장 안을 울렸다.“백윤은 어디에 있느냐?”“……모릅니다.”“모른다?”관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너희가 수양대군의 명을 받아 함께 움직였다는 증좌가 이미 나왔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대군을 보필하던백윤의 행방은 모른다?”사내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정말…… 모릅니다.”“그럼 전하와 중전마마를 가두었던 곳은?”“…….”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관리는 잠시 사내를 바라보다 옆에 서 있던 나장에게 시선을 돌렸다.“계속하라.”“예.”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하지만 관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백윤의 행방, 숨겨둔 군사들의 수, 그리고 수양대군이 따로 마련해 둔 근거지.”관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천천히 두드렸다.탁. 탁.“그중 하나라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사내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아는 것이 없습니다.”“그래?”관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그렇다면 기억이 날 때까지 물을 수밖에.”바로 그 순간이었다.“영감!”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관리 하나가 추국장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무슨 일이냐?”“김종서 대감께서 급히 전하라 하신 것이 있습니다.”“말해라.”관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사내가 목소리를 낮췄다.“백윤과 관련된 흔적을…… 찾은 듯하답니다.”그 순간이었다.고개를 숙이고 있던 죄수 하나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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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거사의 때

-김종서의 집무실-김종서는 집무를 보던 중 탁자 위에 펼쳐놓은 문서를 살펴보고 있었다.수양대군이 붙잡힌 뒤에도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수양대군과 함께 붙잡힌 자들의 명단부터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한 백윤과 한명회에 관한 보고까지.김종서의 시선이 문서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그때였다.“대감, 의금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문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김종서는 보던 문서에서 눈을 떼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들라 하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의금부 관리가 안으로 들어왔다.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김종서는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오?”“오늘 수양대군의 부하들을 고신하던 중 알아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합니다.”김종서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무엇을 알아냈다는 것이오?”“수양대군이 붙잡히기 전, 백윤에게 따로 내린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백윤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종서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그토록 군사들을 풀어 찾아다니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였다.“무슨 명이었소?”의금부 관리가 한층 목소리를 낮췄다.“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라는 명이었다고 합니다.”“흩어져 있는 사람들?”“예.”김종서는 미간을 좁혔다.“그게 누구인지는 알아냈소?”“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죄수 역시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모르는 듯했습니다.”“…….”“다만 그자가 들은 것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김종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말해 보시오.”의금부 관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때가 오면…… 그들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했답니다.”순간 김종서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담담함이 사라졌다.“……궁으로 들인다?”“예.”김종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모은다.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을 궁으로 들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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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폭풍 전야의 편지

-편전-편전 안에는 단종과 지우가 마주 앉아 있었다.조금 전까지 두 사람은 거란족 사신단과의 화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문밖에서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전하, 김종서 대감이 급히 뵙기를 청하옵니다.”단종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김종서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렇듯 갑작스럽게 편전을 찾을 사람이 아니었다.“들라 하시오.”“예, 전하.”잠시 후 문이 열리고 김종서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전하를 뵙사옵니다.”“어서 오시오.”단종은 김종서의 얼굴을 살피다 곧바로 물었다.“무슨 일이오? 대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구려.”김종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지우 쪽을 바라본 뒤 다시 단종에게 시선을 돌렸다.“전하.”평소보다 한층 무거운 목소리였다.“아무래도 전에 전하와 중전마마께서 염려하시던 일이…… 사실인 듯하옵니다.”단종의 눈빛이 달라졌다.“우리가 염려하던 일이라니?”김종서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수양대군에 관한 일이옵니다.”그 이름이 나오자 지우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숙부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말이오?”“오늘 의금부에서 수양대군의 측근들을 고신하던 중 새로운 사실 하나가 드러났사옵니다.”김종서는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수양대군이 붙잡히기 전…… 백윤에게 은밀히 내린 명이 있었다고 하옵니다.”“백윤에게?”“예, 전하.”단종과 지우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공교롭게도 백현이 아우인 백윤을 만나러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단종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명이었소?”김종서가 천천히 대답했다.“흩어져 있는 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라는 명이었다고 하옵니다.”“사람들을…… 모은다고요?”지우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김종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뿐만이 아니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때가 오면 그들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하였답니다.”순간 편전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단종의 표정이 굳었고, 지우 역시 아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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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지우와 단종은 부원군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호위 두 명과 함께 궁을 나섰다.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호위들 역시 두 사람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주변을 경계하며뒤따랐다.두 사람이 향한 의금부 입구에는 김종서가 미리 언질해 둔 덕분인지 관리 한 명과나장 한 명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을 발견한 관리가 곧바로 앞으로 나와 허리를 깊이 숙였다.“두 분께 직접 가져다 드리지 못하고 이곳까지 오시게 한 점 송구하옵니다.”관리가 미안한 기색을 보이자 지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네. 김종서 대감에게 들으니 중요한 증좌가 될 수도 있어 이곳에 보관하고 있었다하지 않았는가.”“예, 중전마마.”“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와서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지.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옵니다.”관리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그러자 옆에 있던 단종이 의금부 안쪽을 바라보며 물었다.“그 편지는 지금 어디에 있소?”“안에 안전하게 보관해 두었사옵니다. 이쪽으로 드시지요.”관리가 앞장서자, 지우와 단종이 그 뒤를 따랐다.지우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꼭 맞잡았다.‘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조금 전까지만 해도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편지가 가까이에 있다고생각하자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관리가 자신의 업무실 앞에 당도하자 문을 열고 단종과 지우를 안으로 안내했다.“이쪽으로 드시지요.”단종과 지우가 말없이 안으로 들어서자 관리 역시 뒤따라 들어왔다.“두 분께서는 잠시 이곳에 앉아 계십시오.”관리가 방 한쪽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부원군께서 남기신 편지는 혹시 훼손될까 따로 보관해 두었사옵니다. 제가 바로 가져오겠습니다.”“그리하시오.”단종의 대답에 관리가 허리를 숙인 뒤 방 안쪽에 놓인 문갑으로 향했다.지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움직였다.관리가 문갑을 열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작은 함 하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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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그들이 기다리는 때

-의금부 추국장-평소보다 더욱 무거운 기운이 감도는 의금부 추국장 안.수양대군은 포박된 채 한쪽에 앉아 있었지만, 죄인의 신분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표정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그의 맞은편에는 한명회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한동안 서로 떨어져 조사를 받아왔던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붙잡힌 이후처음이었다.한명회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수양대군을 바라보았다.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하지만 어느 쪽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마치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짧게 시선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그 모습을 맞은편에서 지켜보던 김종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역시…….’붙잡힌 뒤 서로 한마디 나눌 기회조차 없었을 텐데 두 사람에게서는 이상하리만큼 초조함이 느껴지지 않았다.김종서는 탁자 위에 놓인 두 사람의 진술서를 천천히 펼쳤다.“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두 분이겠군요.”수양대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대감께서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이오?”“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김종서는 수양대군의 농을 받아주지 않은 채 한명회를 바라보았다.“그동안 두 분을 따로 조사해 보았으나 좀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그러자 한명회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엇이 그리 맞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그것을 지금부터 알아보려는 것이네.”김종서는 진술서 한 장을 들어 보였다.“두 사람에게 같은 것을 묻고, 같은 대답이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이 아닌가.”한명회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그러나 수양대군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좋소.”수양대군이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대감께서 그토록 궁금하시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시오.”“그럼 그리하지요.”김종서는 잠시 수양대군을 바라보다 진술서를 내려놓았다.그리고 첫 질문을 던졌다.“백윤.”순간 한명회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그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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