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 Chapter 111 - Chapter 120

169 Chapters

111.편지 속에 숨겨진 것

사신단 연회가 내일로 정해지자 중궁전에도 궁녀들과 지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특히 지우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어서인지 다른 때보다 연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마마, 사신단을 맞을 때 입으실 예복은 준비를 마쳤사옵니다.”“연회에 올릴 음식은?”“그것은 사옹원에서 준비하고 있사오나, 마마께서 따로 살펴보라 하신 것은 확인해 두었사옵니다.”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놓인 목록을 내려다보았다.“혹시 모르니 사신들에게 올릴 음식과 술은 다시 한번 확인해 줘. 특히 음식에 이상한 것이 섞이지 않았는지도.”“예, 마마.”궁녀가 지우의 말에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가자, 곁에 있던 소하가 빙그레 웃으며 작은 함 하나를 내밀었다.지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함을 바라보았다.“이 함은 무엇이냐?”“전하께서 보내신 것이옵니다.”“전하께서?”소하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예. 마마께서 이번 연회 때 쓰실 장신구를 친히 준비해 주셨사옵니다.”지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전하께서 직접?”“예. 그러니 어서 열어보셔요.”소하가 재촉하듯 함을 지우 앞으로 조금 더 내밀었다.지우는 소하의 재촉에 옅게 웃으며 함을 받아 들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함을 열어보았다.함 안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단아한 꽃비녀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어머, 마마. 전하께서 꽃비녀를 준비해 주셨네요.”소하의 말에 지우는 아무런 대답 없이 꽃비녀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그런데 그 순간이었다.비녀가 놓여 있던 자리 아래로 접힌 종이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응?”지우의 시선이 종이 위에 멈췄다.“이게 뭐지……?”종이에는 단종이 직접 쓴 듯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꽃을 보다가 문득 중전이 생각나 골라보았소.연회 때 꽂아준다면 과인이 기쁠 것 같소.’지우는 한동안 말없이 글귀를 바라보았다.짧은 몇 마디였지만 자신을 생각하며 직접 비녀를 골랐을 단종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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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죽기 전 남긴 단서

-부원군이 죽기 하루 전-의금부 밖으로 차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부원군은 차가운 옥 안에 앉아 창살 너머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고요한 빗소리 사이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저벅, 저벅—부원군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잠시 후 옥문 앞에 나장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철컥—나장이 옥문을 열며 말했다.“부원군께서는 잠시 나오시오. 관리께서 형식상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다 하시오.”부원군은 잠시 나장을 바라보았다.“……알겠네.”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부원군은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옥 밖으로 나섰다.나장이 앞장서자 부원군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그러나 몇 걸음 옮기던 부원군의 시선이 문득 복도 끝을 향했다.어째서인지 평소와 달리 주변이 지나치게 조용했다.‘……이상하군.’부원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다 왔소. 들어가시면 관리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오.”부원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안에서는 관리가 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오셨습니까, 부원군.”이후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이 이어졌다.부원군은 관리의 물음에 차분히 대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는 끝이 났다.다시 나장과 함께 옥으로 돌아가는 길.다행히 조금 전까지 내리던 비는 어느새 완전히 그쳐 있었다.나장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허참, 지나가는 비였나 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그쳤군요.”그 말에 부원군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먹구름이 걷힌 자리로 맑은 하늘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그러게 말일세.”부원군은 잠시 걸음을 늦추며 하늘을 바라보았다.“비가 내리고 나니 오히려 전보다 더 맑아 보이는군.”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부원군의 시선이 우연히 멀지 않은 곳에 멈췄다.“……?”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그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그곳에는 수양대군과 백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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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사라진 일곱 명

잠시 후 나장은 종이 몇 장과 붓, 먹을 가지고 돌아왔다.“여기 있습니다.”“고맙네.”부원군은 나장이 건넨 것들을 받아 한 장씩 살펴보았다.그러다 문득 손을 멈췄다.“나장.”“예?”“혹 이것보다 조금 얇은 종이도 구할 수 있겠는가?”“얇은 종이 말씀이십니까?”나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부탁하네.”나장이 사라지자 부원군은 옥 안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조금 전 우연히 들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대군마마께서 원하시는 자들은 거의 모였습니다.’단순히 나라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라면 굳이 저렇듯 은밀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더구나 그 대상이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라면 더욱 마음에 걸렸다.하지만 아직은 의심일 뿐이었다.수양대군이 역모를 준비하고 있다고 단정할 만한 증좌는 아무것도 없었다.무엇보다 자신은 지금 의금부에 갇힌 몸이었다.자신이 수양대군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 편지가 딸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평범한 편지처럼 보여야 한다.’그때 나장이 다시 돌아왔다.“부원군, 말씀하신 종이를 가져왔습니다.”“고맙네.”부원군은 건네받은 얇은 한지를 손끝으로 천천히 만져보았다.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붓을 들었다.먼저 한 장의 종이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사랑하는 내 딸에게.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아마 이 아비는 더 이상 네 곁에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겠구나.한 자 한 자 글을 적어 내려가던 부원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중전이 되어 궁으로 들어가던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하지만 부원군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붓을 움직였다.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라는 당부.궁 안에서 언제나 몸을 조심하라는 걱정.그리고 마지막에는—전하와 함께 오래도록 웃으며 살아가거라.부원군의 붓이 멈췄다.그는 한동안 마지막 문장을 바라보다 편지를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어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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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궁을 향한 칼날

한양의 저잣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하지만 그 사이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낯선 사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두세 명씩 서로 다른 골목에서 나타난 사내들은 서로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곳은 모두 같았다.저잣거리 깊숙한 곳에 자리한 허름한 창고.이미 그 안에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잠시 후 그들 앞에 선 사내 하나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제 내일이면 궁으로 들어간다.”웅성거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그러니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라. 한순간이라도 망설이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사내가 모여 있는 자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그리고 명을 잊지 마라.”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전하는 죽이지 않는다. 반드시 생포한다.”잠시 침묵한 사내가 다음 말을 내뱉었다.“대신 중전은 반드시 제거한다.”순간 창고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이것이 대군마마께서 내리신 명이다. 알겠느냐?”“예!”“그리고 어제 따로 불러둔 열 명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사내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오늘 새벽, 김종서 대감의 집으로 간다.”그중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종서 대감도…… 죽이는 것입니까?”백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래.”짧은 대답에 사내가 침을 삼켰다.“김종서가 살아 있는 한 궁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다.”백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덧붙였다.“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김종서를 없앤다.”“예, 알겠습니다.”열 명의 사내들이 굳은 표정으로 일제히 대답했다.백윤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품에서 작은 종이 뭉치를 꺼냈다.“너희 가운데 의금부에 있었던 자는?”세 명이 앞으로 나섰다.“훈련원 출신은?”이번에는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백윤은 다섯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나머지 다섯은 이미 신분과 출신을 확인해 둔 자들이었다.백윤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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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다가오는 밤

백윤은 의금부를 나서자마자 수양대군의 명대로 한양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을찾아 나섰다.무당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다행히 백성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이 한양 외곽에 살고 있었기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무당집 앞에 도착한 백윤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자신을 따라온 자가 없는지 먼저 살폈다.한동안 주변을 살핀 뒤에야 백윤은 조심스럽게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이곳인가…….’겉보기에는 여느 민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백윤은 잠시 집을 바라보다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안에는 중년의 여인이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었다.백윤이 안으로 들어서자 여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높으신 분의 명을 받고 오셨나 보군요.”백윤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여인의 맞은편에 앉았다.한동안 여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백윤이 입을 열었다.“그래서 내가 무슨 일로 왔는지도 알고 계시오?”“그걸 물으러 오신 겁니까?”“한번 맞혀보시겠소?”여인은 백윤의 말에 피식 웃었다.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작은 그릇에서 쌀을 한 줌 집어 바닥에 흩뿌렸다.사르륵—여인은 아무렇게나 흩어진 듯한 쌀알을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보았다.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조금 전보다 더욱 묘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이상하군요.”“무엇이 말이오?”“당신이 모시는 분…….”여인의 손끝이 바닥에 흩어진 쌀알 몇 개를 천천히 훑었다.“평범한 곳에 계신 분이 아니군요.”백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계속해 보시오.”“높은 곳에 계셔야 할 분인데…… 지금은 아주 낮고 어두운 곳에 갇혀 계시는군요.”순간 백윤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여인은 그런 백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묘하게 웃었다.“그리고 그분께서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제 도움이 필요하신 모양이고요.”“……제법 하는군.”“이제 제가 맞혀야 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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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뒤집힌 암살

-김종서의 집-깊은 밤이 되자 김종서의 집 근처로 검은 두건을 쓴 사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그 수는 모두 열 명.그들의 앞에는 백윤이 서 있었다.백윤은 사내들에게 손짓으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뒤 홀로 담장 가까이 다가갔다.그리고 인기척을 죽인 채 담장 너머를 조심스럽게 살폈다.‘……?’예상과 달랐다.늦은 밤인데도 집 안 곳곳에는 횃불이 밝혀져 있었고, 대문과 담장 주변을 지키는 장정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백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그는 몸을 낮춘 채 집 안을 천천히 훑어보며 경계가 허술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역시 김종서 대감의 집이라 그런가.’백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지키는 자들의 수가 만만치 않군.’백윤은 그렇게 한동안 집 안을 살펴보았다.그러던 중 뒤편 담장 쪽에 다른 곳보다 경계가 허술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백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저쪽이군.’그는 조심스럽게 담장에서 내려온 뒤 기다리고 있던 사내들에게 돌아갔다.“뒤편에 빈틈이 있다. 우린 그쪽으로 들어간다.”백윤은 목소리를 낮춘 채 사내들을 바라보았다.“다만 생각보다 지키는 장정들이 많다. 각별히 조심하도록.”사내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자.”백윤이 먼저 움직이자 열 명의 사내들도 인기척을 죽인 채 그의 뒤를 따라 집 뒤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예상대로 뒤편은 다른 곳에 비해 경계가 허술했다.백윤이 손짓하자 사내들은 한 명씩 재빠르게 담을 넘어 집 안으로 잠입했다.모두가 무사히 안으로 들어오자 백윤은 주변을 한번 살핀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은 서재 쪽을 살펴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안방으로 간다.”사내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곧 열 명의 사내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서재와 안방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백윤은 나머지 사내들과 함께 안방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창호 너머로 희미한 호롱불이 비치고 있었다.‘김종서가 이곳에 있었군.’백윤은 혹여 안에 있는 사람이 발소리를 들을까 더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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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무당의 고변

-의금부-“뭐라? 조용하다고?”수양대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김종서를 치러 갔다면서, 아직 아무런 소란도 없단 말이냐?”“예, 대군마마.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듯하옵니다.”옥문을 사이에 두고 옥졸의 보고를 듣던 수양대군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이상하군.’정말 김종서가 죽었다면 이토록 조용할 리 없었다.다른 사람도 아닌 조정의 중신 김종서였다.그가 한밤중에 습격을 받아 죽었다면 벌써 그 소식이 궁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터였다.그런데 지나치게 조용했다.‘잠깐…….’순간 수양대군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그리고 잠시 후—“하…… 하하하.”수양대군이 돌연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대군마마?”“내가 또 중전마마께 한 방 먹었구나.”옥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아무것도 아니다.”수양대군의 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아무래도 김종서를 치는 일은 틀어진 모양이구나.”“그럼 어찌하시겠습니까?”수양대군은 잠시 침묵하다 옥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그대로 둬라.”“예?”“애초에 궁을 뒤엎는 일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릴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수양대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김종서가 살아 있다면…… 그에 맞춰 다음 수를 두면 그만이지.”“다음 수라 하시면…….”“우선 궁으로 들어가기로 한 자들에게 계획이 바뀌었다고 전해라.”옥졸이 수양대군을 바라보았다.“내가 거란족 사신단과 대면 조사를 위해 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 해.”“그럼 사신단의 연회가 시작되자마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옵니까?”“그래.”수양대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김종서를 치는 일부터 틀어지지 않았느냐. 놈도 이제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게다.”수양대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처음 계획대로 정면으로 들이닥쳤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 있어.”“그렇다면…….”“기다려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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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불길한 예언

‘스윽—’단종은 순식간에 관리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칼을 빼 들었다.차가운 칼날이 그대로 무당의 목을 겨누었다.순간, 집무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래, 어디 더 말해보거라.”단종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네 목숨을 걸고도 할 말이 남아 있는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꾸나.”날카로운 어투에도 무당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저를 죽이시려거든 죽이십시오. 허나 그러신다 한들, 제가 아뢴 말까지 사라지는 것은아니옵니다.”“뭐라!”단종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관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나는 이자의 말을 한마디도 믿을 수 없구나. 하니 이자를 당장 하옥하라.”“예?”“하옥하라 하였다!”단종의 서늘한 시선이 관리를 향했다.“그리고 명심하거라. 앞으로 또 한 번 이따위 허황된 고변으로 중전을 의금부에 불러세운다면, 그때는 그대 또한 엄히 문책할 것이다.”“……명심하겠사옵니다.”지우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얼굴로 단종을 바라보았다. 단종은 그런 지우의 손을 꼭 잡고집무실을 나서려 했다.그때 뒤에서 무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중전마마, 잊지 마십시오. 중전마마로 인해 결국 전하께서도 위험해지실 수 있습니다.”단종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단종은 잡고 있던 중전의 손을 놓고 무당에게 다시 한마디 하려 몸을 돌렸다.그러나 중전이 가만히 단종의 손을 다시 잡았다.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전하, 그냥 가시지요. 이 정도로 하셨으면 충분합니다.”단종은 지우의 말에 마음을 추스르고는 지우와 함께 집무실을 나갔다.두 사람은 궁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다.단종은 지우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 차마 무어라 말을 건넬 엄두가 나지 않았다.지우 역시 무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한참을 말없이 걷던 지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전하, 만약에 말입니다.”지우가 잠시 머뭇거리다 단종을 바라보았다.“만약 그 무당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는 어찌하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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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감춰진 과거의 증인

수양대군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족장을 바라보았다.“그날의 일이라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수양대군이 태연한 목소리로 되묻자 족장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정녕 모르시겠소?”“알지 못하니 묻는 것이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맞부딪쳤다.족장은 잠시 수양대군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좋소. 정녕 기억하지 못하시겠다 하니, 내 직접 말씀드리리다.”그 말에 연회장에 자리한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단종은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지우 역시 긴장한 채 족장의 다음 말을기다렸다.족장은 대신들을 한번 둘러본 뒤 다시 수양대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얼마 전, 우리 거란의 사신단이 조선으로 향하던 중 습격을 받았소.”수양대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아직 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소.”족장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우리 일행을 습격한 자들은 단순한 도적 떼가 아니었소.처음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움직였지.”연회장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족장은 수양대군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더욱 이상한 것은 그들이 우리의 재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오.”“…….”“그들이 원한 것은 오직 하나였소.”족장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수양대군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천천히말려 들어갔다.그 모습을 지우가 놓치지 않았다.족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 목숨.”순간 대신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단종의 표정도 한층 굳어졌다.“헌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 있었소.”족장은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그러자 수양대군의 시선이 처음으로 족장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족장은 품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 단종 앞의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탁.작은 소리가 유난히 크게 연회장 안에 울렸다.“습격한 자들 가운데 하나가 이것을 떨어뜨리고 갔소.”수양대군의 얼굴에서 아주 잠깐 핏기가 가셨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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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끝내지 못한 증언

“예. 우호의 뜻으로 바르칸에게 건넨 것은 사실이옵니다.”수양대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었다.“당시는 선왕께서 지병으로 자주 자리에 누우시던 때였습니다. 혹여 나라에 혼란이 생길까 염려하여 저자를 만나 서로 우호를 다졌을 뿐이옵니다.”수양대군의 말이 끝나자 대신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대군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허나 어찌 왕명도 없이 외부의 세력과 접촉했단 말인가.”대신들의 반응은 뚜렷하게 엇갈렸다.수양대군을 따르던 대신들은 그의 말이 옳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반대편에 선 대신들은 굳은 표정으로 수양대군을 바라보았다.어느새 화려했던 연회장은 수양대군을 둘러싼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으로 가득 차기시작했다.“선왕의 병환으로 나라의 혼란을 염려하셨다는 분께서, 정작 사신단조차 꾸리지 않은 채 홀로 그곳을 찾아가셨다는 겁니까?”지우가 날카로운 어조로 되묻자 수양대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참으로 이상하옵니다.”“무엇이 말입니까?”“중전마마께서는 유독 신을 대하실 때마다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시거나 이렇듯 날 선 말씀을 하시는군요.”“그거야 대군께서 의심을 살 만한 모습을 여러 번 보이셨기 때문이지요.”그 말에 수양대군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대신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이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의심을 살 만한 모습이라…….”수양대군의 시선이 다시 지우에게 향했다.“헌데 소신이 언제 중전마마께 의심을 살 만한 모습을 직접 보였는지 모르겠사옵니다.”“그건…….”지우가 대답하려는 순간 단종이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를 만류했다.“숙부.”단종의 낮은 목소리에 수양대군의 시선이 단종에게 향했다.“지금 본질을 흐리고 계시는군요.”연회장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이 자리는 중전이 숙부를 어찌 생각하는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오.”단종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숙부께서 어찌하여 조정에도 알리지 않은 채 거란의 사람과 은밀히 접촉하였는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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