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 Chapter 121 - Chapter 130

169 Chapters

121. 시작된 정변

연회장은 단종의 명으로 철저히 통제되었다.안에 있는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밖에 있는 자 역시 함부로 안으로 들어올 수없었다.바르칸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더욱 살벌하게 변해갔다.그러나 단 한 사람.수양대군만은 달랐다.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단종과 지우, 족장은 그런 수양대군을 이상하게 여기며 유심히 바라보았다.잠시 후 수양대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전하.”“…….”“오히려 신을 이리 도와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옵니다.”단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숙부, 그게 무슨…….”그러나 수양대군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굳게 닫힌 연회장 문으로 향했다.지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설마…….’바로 그때였다.“비켜라!”연회장 밖에서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뒤이어—챙! 챙!칼날이 거칠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냐!”단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연회장 안에 있던 대신들도 놀라 문 쪽을 바라보았다.챙!“으악!”이번에는 누군가의 비명까지 들려왔다.지우는 본능적으로 단종의 팔을 붙잡았다.“전하…….”그 순간 수양대군의 입가에 다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전하 덕분에 오히려 일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그게 무슨 뜻이오?”수양대군은 굳게 닫힌 연회장 문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이리 대신들과 거란의 사신들까지 한자리에 모아주지 않으셨사옵니까.”단종의 표정이 굳었다.“설마…….”잠시 후 단종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정변을 일으키려는 것이오? 끝내 무력으로 궁을 장악할 생각이셨습니까?”그 말에도 수양대군은 당황하지 않았다.오히려 단종에게 늘 보여주던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예.”너무나 태연한 대답에 연회장 안이 술렁였다.“본래는 조금 더 때를 지켜볼 생각이었습니다.”수양대군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그리고 마침내 지우에게서 멈췄다.“허나…… 중전마마께서 자꾸만 신의 일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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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그대를 살리기 위해

어둠 속을 쉼 없이 달리던 단종과 지우는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하아…… 하아…….”더는 앞으로 나아갈 곳이 없었다.지우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단종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전하…….”단종은 그런 지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리고는 안심시키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그러나 잠시 후, 그의 표정이 단호하게 변했다.“아무래도 더는 함께 도망치기 어려울 것 같소.”“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단종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지우의 손을 천천히 감싸 쥐었다.“과인이 수양대군의 군사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겠소.”“전하!”“중전은 이곳에 몸을 숨기고 계시오. 밖이 잠잠해지거든 그때 궁을 빠져나가시오.”지우의 얼굴이 굳었다.“지금 저보고 전하를 혼자 보내라는 말씀이십니까?”“그래야 중전이라도 살 수 있소.”단종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저들이 원하는 것은 과인일 테니, 과인이 모습을 드러내면 중전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은없을 것이오.”“싫습니다.”“중전.”“전하께서 저들을 유인하러 가시면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습니까?”“…….”“대답하지 못하시잖아요.”지우의 눈가가 붉어졌다.“전하를 살리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저 혼자 살겠다고 전하를 보내라고요?”“중전…….”“싫습니다. 죽더라도 같이 가겠습니다.”중전의 말에 단종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단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우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전하…….”지우는 단종의 품에 안긴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이상했다.이렇게 단종의 품에 안겨 있는 순간이 왠지 마지막일 것만 같아 가슴 한편이 서글퍼졌다.갑작스럽게 조선에 오게 된 그날부터 지우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살아남아야 해.’낯선 시대, 낯선 궁궐.처음에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다.하지만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더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않았다.그리고 그중에서도 지우를 가장 많이 웃게 해준 사람은 단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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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왕좌와 옥새

“결국 중전마마를 지키기 위해 수를 두셨군요.좋습니다. 지금 제가 왕좌에 앉기 위해선 전하만 있어도 되니까요”수양대군의 말에 단종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왕좌가…… 그리도 탐이 났습니까?”단종의 시선이 주위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향했다.“이토록 많은 피를 묻혀야 할 만큼 말입니다.”“아니옵니다.”수양대군은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했다.“소신도 처음부터 왕좌를 탐했던 것은 아니옵니다.”“…….”“헌데 대군으로 살아가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한 가지 의문이 들더군요.”단종은 아무런 말 없이 수양대군을 바라보았다.수양대군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품에서 천을 꺼내 천천히 피를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어찌하여 왕좌는 오직 정해진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인지.”“…….”“어찌하여 같은 왕의 핏줄을 타고난 다른 대군들에게는 그 자리를 탐내는 것조차 죄라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수양대군의 손에서 붉게 물든 천이 힘없이 떨어졌다.“태어난 순서가 조금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한다니…….”수양대군이 단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전하는 그것이 정녕 공평하다 생각하십니까?”“숙부께서는 잘못 알고 계십니다.”“무엇을 말입니까?”“왕좌는 원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오.”단종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백성의 삶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요.”“…….”“숙부께서 정말 왕의 자격을 말씀하고 싶으셨다면, 먼저 저들을 보셨어야 합니다.”단종은 피로 물든 연회장을 바라보았다.“숙부의 욕심 때문에 죽어간 저 사람들을 말입니다.”“그 말씀……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군요.”수양대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형님이신 선왕께서도 늘 그리 말씀하셨지요.”수양대군은 마치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백성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던 것까지 볼 수 있다.’”단종의 표정이 굳어졌다.수양대군은 그런 단종을 바라보며 피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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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중전에게 맡겨진 옥새

금성대군과 함께 궁을 빠져나온 지우는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금성대군 역시 그런 지우에게 말을 건네지 않은 채 묵묵히 말을 몰았다.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산 아래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샛길이 나타났다.금성대군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마마,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어째서요?”“형님께서 이미 군사를 풀었을 것이옵니다. 계속 말을 타고 움직였다가는 흔적을 남길 수 있사옵니다.”지우가 말에서 내리자 금성대군도 뒤따라 내렸다.그는 주위를 살핀 뒤 말의 엉덩이를 가볍게 쳤다.“가거라.”히이잉—말은 짧게 울음을 터뜨리더니 두 사람이 지나온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일부러 저쪽으로 돌려보내신 겁니까?”“예. 운이 좋다면 뒤쫓는 군사들을 잠시 속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지우는 멀어지는 말을 바라보다 다시 궁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전하…….’“가시지요, 마마.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지우는 결국 금성대군을 따라 어두운 샛길로 들어섰다.한참을 걷던 지우가 물었다.“혹시 저번에 갔던 암자로 가는 건가요?”“아니옵니다. 그곳은 형님께서도 알고 계시니 위험하옵니다.”“그럼 어디로 가는 겁니까?”“북방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옵니다.”지우의 걸음이 멈췄다.“금성대군도 그곳을 알고 계셨네요.”“예. 오래전 선왕께서 살아 계실 때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사옵니다.”“그럼 수양대군도 알고 있지 않나요?”금성대군은 고개를 저었다.“아마 모르실 것이옵니다. 선왕께서 이 마을의 존재를 아는 자는 극히 적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북방인들도 안전하고, 훗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셨지요.”‘훗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지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설마 선왕께서도 수양대군을 전적으로 믿지 않으셨던 건가?’그 생각을 곱씹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덧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커다란 나무 아래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마마.”“김종서 대감!”지우의 표정에 안도감이 스쳤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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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칼끝에 맺힌 경고

-경복궁 집무실-정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궁궐은 아직 완전히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곳곳에는 수양대군의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궁인들 역시 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그 혼란 속에서도 수양대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무실에 앉아 상소문을 살펴보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탁.수양대군이 읽고 있던 상소문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말이냐?”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군사가 고개를 더욱 숙였다.“송구하옵니다. 전하의 처소를 비롯하여 궁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옥새는 발견하지 못하였사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중전은?”“그 역시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하였사옵니다.”“금성대군과 김종서는?”“모두…….”군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수양대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모두 놓쳤다는 것이냐?”“죽여주시옵소서.”수양대군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손가락으로 책상을 천천히 두드릴 뿐이었다.톡. 톡.“옥새가 사라지고 중전까지 자취를 감추었다…….”수양대군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우연이라 하기에는 참으로 절묘하군.”그때였다.집무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안 됩니다!”“대군께서는 지금 누구도 만나지 않으십니다!”“비켜라!”수양대군의 손가락이 멈췄다.“무슨 소란이냐?”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이었다.쾅!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수양대군의 호위 군사 몇 명이 황급히 칼을 뽑아 들었다.그들 사이로 한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거란족 족장이었다.수양대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족장께서 어찌 이곳에…….”스릉—수양대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족장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족장!”호위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려 했지만 족장이 먼저 수양대군에게 다가갔다.그리고—척.차가운 칼끝이 수양대군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집무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그러나 수양대군은 놀라기는커녕 자신의 목을 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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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왕의 은밀한 외출

족장은 경복궁 집무실을 나서며 수양대군이 늘어놓았던 말을 곱씹었다.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처음 조선에서 자신을 초청한다는 서신이 왔을 때만 해도 호기심이 앞섰다.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조선의 어린 왕이 직접 자신을 초청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별다른 망설임 없이 조선으로 가겠다는 답신을 보냈다.하지만 막상 조선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본 모습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어린 왕은 분명 왕좌에 앉아 있었다.그러나 그 왕좌를 둘러싼 권력은 다른 자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수양대군.그리고 오늘, 그는 기어이 군사를 일으켜 궁궐마저 장악했다.족장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조금 전 자신이 나온 집무실이 보였다.‘저자가 사실상 조선을 쥐고 있었던 것인가…….’‘그렇다면…….’족장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그 어린 왕은 대체 무엇을 믿고 나를 조선으로 불러들인 것이지?’“쿠란.”“예, 족장.”“지금 조선의 왕은 여전히 강녕전에 머물고 있는 것이냐?”“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수양대군이 궁을 장악했는데도?”“예. 정변에는 성공하였으나 아직 왕위를 넘겨받지는 못한 모양입니다.”족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이상하군.”“무엇이 말입니까?”“궁도, 군사도 저자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작 왕좌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다…….”족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강녕전으로 가자.”“예?”“조선을 떠나기 전에 그 어린 왕을 직접 만나봐야겠다.”쿠란이 족장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자 족장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러느냐?”“그것이…….”족장은 쿠란의 표정을 살피다 무언가를 눈치챈 듯 물었다.“혹시 조선의 왕이 지금 처소에 갇혀 있는 것이냐?”“예. 강녕전 주변을 수양대군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어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족장의 표정이 굳었다.“왕의 처소를 다른 자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족장이 입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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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왕의 자격

-사신단 객관-똑똑.족장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들어오시오.”문이 천천히 열렸다.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확인한 족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조선의 왕.”족장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단종과 늘 그의 곁을 지키던 내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앉으라는 듯 맞은편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단종은 아무 말 없이 의자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족장 역시 맞은편에 천천히 앉았다.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먼저 입을 연 것은 족장이었다.“내가 왜 거란으로 돌아가기 전에 조선의 왕을 한번 만나보려 했는지 아시오?”단종은 족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대답했다.“숙부 때문이 아니오?”족장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족장께서 숙부의 집무실을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소.”“그렇다면 하나 묻겠소. 지금 이 조선의 왕은 누구요?”“그게 무슨 뜻이오?”“궁을 지키는 군사는 수양대군의 군사들이고, 조정을 움직이는 것 또한 수양대군이오.”족장이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였다.“그런데도 그대가 아직 조선의 왕이라 할 수 있소?”족장의 물음에 단종은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내려다보았다.“그러고 보니 그렇군.”단종이 씁쓸하게 웃었다.“족장께서 보신 지금의 궁궐만 놓고 본다면, 조선의 실세는 내가 아니라 숙부로 보일 만도하오.족장은 묘한 눈빛으로 단종을 바라보았다.단종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숙부가 그러더군요. 왕에게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단종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소.”“어째서요?”“그 힘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이의 피를 묻혀야 한다면…….”단종이 족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설령 백성을 위한 일이라 말한다 한들, 그것을 옳은 일이라 할 수는 없소.”족장은 한동안 단종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듣기에는 참으로 좋은 말이오.”“…….”“허나 힘이 없으면 백성을 지키는 것조차 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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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고향을 향한 칼

-수양대군의 사저, 서실-주인인 수양대군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서실.백윤은 다친 어깨를 흰 천으로 동여맨 채 서실 한쪽에 앉아 있었다.평소 자신의 무예에 상당한 자신감을 느끼고 있던 백윤이었다.하지만 김종서와의 대치에서 끝내 그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도망치듯 물러난 것도 모자라어깨에 상처까지 입었다.백윤은 붕대로 감싼 어깨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물론 자신과 수양대군이 계획했던 대로 궁궐을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대군께서 이번 일을 문제 삼으시면…….’백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한명회가 떠올랐다.혹여 자신 역시 쓸모를 다한 순간, 한명회처럼 내쳐지는 것은 아닐까.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때였다.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대군마마께서 돌아오셨다.”백윤의 몸이 순간 굳었다.잠시 후 서실 문이 열렸다.수양대군이 안으로 들어서며 백윤을 발견했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백윤의 얼굴에서 붕대로 감싼 어깨로 내려갔다.“……꼴이 말이 아니구나.”“대군마마…….”백윤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수양대군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앉아 있거라.”“김종서에게 당했다지?”“……송구합니다.”“송구할 것 없다. 네가 김종서를 죽이지 못한 것이 문제는 아니니.”“문제는 그자를 놓쳤다는 것이다.”그 말에 백윤의 눈빛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백윤이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을 보며 수양대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불안한 것이냐?”“…….”“너도 한명회와 같은 꼴이 될까 봐.”“아닙니다. 그저 제 실수로 이번 일에 변수가 생긴 것이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그래?”수양대군이 백윤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렇다면 그 변수, 네가 직접 만회해보겠느냐?”백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내 이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백윤의 눈빛이 달라졌다.“예. 맡겨만 주신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대답이 마음에 든 듯 수양대군의 입가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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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다가오는 그림자

지우는 금성대군과 김종서, 그리고 한명회와 함께 북방마을을 돌며 청년들의 무예 실력을살펴보고 있었다.활시위를 당기는 소리와 목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연무장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지우가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 김종서에게 물었다.“어때요? 계획대로 이 마을 청년들의 힘을 빌린다면 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김종서는 대답 대신 청년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한 청년이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날아가 과녁 한가운데에 꽂혔다.탁!그제야 김종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예.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상당합니다.”“그 정도예요?”“활을 다루는 솜씨도 그렇고 검을 쓰는 동작에도 군더더기가 없습니다.”김종서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웬만한 조선의 군사들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허나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한명회의 말에 지우가 그를 돌아보았다.“무슨 문제요?”“저들이 싸움을 잘하는 것과 궁을 빼앗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금성대군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한명회는 훈련 중인 청년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들은 군사가 아닙니다.”“…….”“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수양대군의 군사들과 진을 갖추어 싸워본 경험은 없을 겁니다.”“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아니요.”한명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군사가 아니라면, 군사처럼 싸우게 만들면 됩니다.”“지금 우리가 저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걸 잊었소?”김종서가 한명회를 바라보았다.“그대 말대로라면 저들을 우리 군사들처럼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소?”한명회가 피식 웃었다.“하하. 김종서 대감답지 않게 어찌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김종서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뭐요?”“수많은 전장을 누비신 분 아닙니까. 저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면, 채워주면 될 일이지요.”“말은 쉽소.”“물론 쉽지는 않겠지요.”한명회가 훈련 중인 청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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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돌아갈 수 없는 길

같은 시각, 북방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길.백윤은 말 위에서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뒤로 수양대군이 붙여준 군사들이 줄지어 말을 몰고 있었다.저 산 하나만 넘으면 자신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이 나타난다.백윤은 익숙한 산길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아…… 여긴 변한 게 없군.’예전에 형과 먹을거리를 찾겠다며 호미와 작은 낫을 들고 돌아다니던 때와 그대로였다.잠시 옛 기억에 잠겼던 백윤은 뒤따라오던 군사들을 돌아보았다.“여기서부터는 말을 타고 갈 수 없다. 모두 말을 나무에 묶어두고 저 샛길부터는 걸어서 간다.”“저 길로 가면 되는 겁니까?”“그래.”누구보다 익숙한 길이었다.그리고 다시는 걷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길이기도 했다.한참 좁고 험한 길을 걷던 백윤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멈춰라.”길가의 돌들을 살피던 백윤의 시선이 화살표 모양의 표식에서 멈췄다.‘……아직도 남아 있었군.’백윤이 앞쪽의 커다란 굴을 가리켰다.“다 왔다. 저 굴을 지나면 우리가 찾던 마을이 나온다.”군사들이 무기를 움켜쥐었고 몇몇은 칼까지 뽑았다.그 모습을 본 백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자신이 안내한 길을 따라 수양대군의 군사들이 고향을 향해 칼을 뽑고 있었다.“……검을 집어넣어라.”“예?”“아직 중전 일행을 숨겨주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수양대군께서 찾고 계신 물건부터 확인한다.”군사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지못해 칼을 집어넣었다.잠시 후 동굴을 빠져나온 백윤의 눈앞에 익숙한 마을이 펼쳐졌다.그런데 이상했다.너무 조용했다.사람들의 말소리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백윤 님. 이미 모두 떠난 것 아닙니까?”“……아니.”백윤은 몇몇 집의 빨랫줄과 평상에 널린 나물과 약초를 살펴보았다.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떠난 게 아니야.’백윤이 천천히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방금까지 여기 있었다면…….’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숨은 건가?’그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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