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든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도 혜진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는 설렘에 머물러 있기에는,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브랜드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론칭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혜진의 사업은 기획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BGC 중심가에 위치한 최고급 복합 빌딩의 매장 계약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한국의 유명 화장품 제조사와 추진하던 독점 원료 공급 협상도 예상보다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필리핀 현지 법인 설립과 제품 등록, 수입 허가를 비롯한 까다로운 행정 절차 역시 막힘없이 진행됐다. 혜진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무실과 공사 현장, 관공서와 거래처를 오갔다. 직원 채용 면접을 직접 진행했고, 인테리어 도면을 검토했으며, 한국 본사와 온라인 회의를 이어 갔다. 결정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대표 윤혜진의 판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수록 마음 한편에는 작은 의문이 쌓여 갔다. 혜진은 필리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외국인이었다. 현지 인맥도, 오랫동안 쌓아 온 신용도 없었다. 그런데도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BGC 핵심 상권에 매장 부지를 확보했고, 평소라면 수개월이 걸린다는 행정 절차도 유난히 빠르게 처리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기획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시장 조사도 철저했고, 브랜드 전략과 수익 구조도 허술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일이 이토록 한 번에 풀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혜진은 계약서가 놓인 책상을 바라보며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모든 길이 먼저 열릴 수 있을까?’ 처음에는 행사가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회가 따라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약
Last Updated : 2026-07-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