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배신당한 내가 재벌의 아내가 되었다: Chapter 31 - Chapter 40

55 Chapters

31화: 에이든의 진짜 세계를 목격한 혜진의 혼란

에이든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잠시 멈췄다. 혜진이 피하지 않자, 그제야 손끝으로 재킷 위를 가볍게 쓸었다. “높이 날아오르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혜진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도록 믿어 주는 한 남자의 확신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에이든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 기대었다. 에이든의 팔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다음부터는 꼭 말해 줘요.” 혜진이 그의 가슴에 이마를 댄 채 말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허락 없이 너무 큰일을 벌이지도 말고요.” 에이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부분은 노력해 보겠습니다.” 혜진이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자, 에이든은 결국 낮게 웃었다. 잠시 뒤 그는 혜진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연인이 된 뒤에도 그의 애정 표현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자신의 힘으로 그녀를 가두는 대신, 그 힘이 혜진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었다. 혜진은 그의 품 안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 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이든이 자신을 보호받아야 할 약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며칠 뒤, 혜진은 에이든의 초대를 받아 마닐라 외곽의 최고급 개인 저택에서 열리는 비공개 만찬에 참석했다. 에이든이 이끄는 투자 그룹과 주요 금융 기관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라는 설명만 들었을 뿐, 정확히 어떤 인물들이 참석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혜진은 목선과 소매에 섬세한 레이스가 더해진 짙은 네이비 드레스를 입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옷차림이었다. 에이든은 저택 입구에서 직접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 수트를 입은 그는 혜진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잠시 말을 잃었다. “왜 그렇게 봐요?” 혜진이 작게 물었다. 에이든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오늘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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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당신이 선택한 사람

만찬이 끝난 뒤, 혜진은 에이든과 함께 전용 차량에 올랐다. 차량이 저택을 빠져나오자 창밖으로 마닐라의 야경이 빠르게 흘러갔다. 화려한 불빛이 차창 위로 길게 번졌지만, 차 안에는 쉽게 깨뜨릴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조금 전 만찬장에서 목격한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금융계 인사들과 거대 기업의 경영자들이 에이든의 말 한마디에 숨을 죽였다. 그의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사업과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 혜진은 이미 에이든이 평범한 투자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의 실제 크기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니 오래된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강태성의 아내였던 시절, 그녀는 언제나 쓸모에 따라 평가받았다. 필요할 때는 내조를 잘하는 아내였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자 손쉽게 버려진 사람이었다. 혜진은 창밖을 바라본 채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았다. “에이든 씨.” 침묵 속에서 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만찬장에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본 것 같아요.” 에이든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세계에 있는 사람이더군요.” 혜진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 당신이 왜 저를 선택했는지 갑자기 모르겠어졌어요.” 그녀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이혼했고, 아이도 있어요. 남편에게 속았다는 사실조차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했고요. 아직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겁을 먹고 혼자 도망치려 할 때도 있어요.” 에이든의 눈빛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혜진은 마침내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저를 사랑하는 게 맞나요?” 짧은 질문이 차 안에 무겁게 떨어졌다. “제가 힘들어 보였기 때문에 지켜 주고 싶었던 건 아닌가요? 불쌍해서, 혹은 잠시 마음이 쓰여서…….” “차를 세워 주십시오.” 에이든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차량이 한적한 도로 옆에 멈추자, 그는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차단막을 올렸다. 그의 표정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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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라온의 첫걸음

그날 이후 혜진은 마음속에 남아 있던 두려움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았다. 대신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혼자 도망치지 않고 에이든과 이야기하려 했다. 에이든 역시 자신의 힘으로 혜진의 길을 대신 결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필요한 정보와 선택지는 제공했지만, 최종 결정은 언제나 혜진에게 맡겼다. 그런 신뢰 속에서 프리미엄 K-에스테틱 브랜드 ‘라온’의 첫 번째 공식 매장이 BGC 중심가에 문을 열었다. ‘라온’은 즐거운이라는 뜻을 담은 순우리말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감추기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되찾는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다는 혜진의 철학이 담긴 이름이었다. 오픈 당일, 혜진은 네이비색 정장 바지와 아이보리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매장 입구에 섰다.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 신뢰와 전문성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직원들의 동선을 직접 확인하고, 첫 고객을 맞이하기 전 상담실과 관리실을 하나씩 점검했다. “예약 고객 명단을 다시 확인해 주세요.” “네, 대표님.” “유명 고객이라고 해서 다른 고객보다 먼저 안내해서는 안 돼요.” 혜진은 매장 안을 둘러보며 또렷하게 말했다. “라온의 가치는 유명한 사람이 찾는 곳이라는 데 있지 않아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직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열 시, 매장의 문이 열렸다. 론칭 행사에서 브랜드를 접한 현지 기업인과 정계 인사의 가족들, 연예계 관계자들이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한국식 맞춤 상담과 체계적인 사후 관리 시스템은 빠르게 호평을 받았다. “관리 방법만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생활 습관까지 함께 점검해 주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피부 상태를 매번 기록해 변화 과정을 설명해 주니 믿음이 갑니다.”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신규 예약 문의도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혜진은 들뜨지 않았다. 예약 수보다 서비스 품질을 먼저 확인했고, 직원들이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한 명씩 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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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가족이 되어 가는 시간

라온 1호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혜진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신규 고객 상담과 직원 교육, 한국 제조사와의 화상 회의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밤늦은 시간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혜진이 사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이든의 도움이 컸다. 그는 혜진의 사업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도,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민지의 곁을 지켜 주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에이든은 평소의 수트 대신 밝은 리넨 셔츠와 편안한 면바지 차림으로 혜진의 숙소를 찾았다. 거실에는 민지의 색연필과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었다. “아저씨, 구름은 무슨 색으로 그려야 해요?” 민지가 진지한 얼굴로 묻자 에이든은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민지가 본 색으로 그리면 됩니다.” “구름은 흰색이잖아요.” “해 질 무렵에는 분홍색일 수도 있고, 비 오는 날에는 회색일 수도 있죠.” 그는 민지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그림에는 틀린 색이 없습니다.” 민지는 곧 연한 보라색으로 구름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건 저녁 구름이에요.” “정말 멋집니다.” 에이든의 진심 어린 칭찬에 민지는 환하게 웃었다. 테라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진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 태성은 민지가 다가오기만 해도 귀찮다는 듯 밀어냈다. 하지만 에이든은 달랐다. 민지가 그린 그림을 끝까지 봐 주었고, 숙제를 함께 고민했고, 작은 성취에도 누구보다 크게 기뻐했다. 얼마 전 국제학교 미술대회에서 민지가 작은 상을 받아 오자 그는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에이든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민지가 목을 끌어안고 웃었다. 에이든도 보기 드문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다음으로?” 민지가 일부러 고민하는 척하더니 활짝 웃었다. “엄마랑 똑같이!” 거실에 웃음이 번졌다. 잠시 후 민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에이든 아저씨가 우리 아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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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다

디에고의 일로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며칠 뒤. 에이든은 혜진을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초대했다. 마닐라의 화려한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테라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테이블 위에는 와인과 가벼운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에이든은 셔츠의 윗단추를 하나 풀어 편안한 차림으로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지쳐 보이는 그의 모습에 혜진은 조용히 다가갔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다. 긴 침묵 끝에 에이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일은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혜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디에고 씨 일 말인가요?” 에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를 숨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혹시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합니다.” 혜진은 작게 미소 지었다. “오히려 당신이 솔직해서 좋았어요.” 에이든은 잠시 와인잔을 내려다보다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잃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 한마디는 혜진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다. 잠시 후 에이든은 자신의 과거를 처음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그는 성공만 바라보며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가장 믿었던 동업자와 약혼녀에게 동시에 배신당했고,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람을 믿었던 대가는 혹독했다. 그 이후 그는 사랑도, 신뢰도 모두 자신의 삶에서 지워 버렸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오랜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었지만, 사람을 믿는 일은 다시 배우지 못했습니다.” 혜진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완벽해 보이던 남자의 깊은 상처가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우리... 참 많이 닮았네요.” 에이든이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았고, 저도 그랬습니다.” 혜진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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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새로운 무대

마닐라 연례 자선 갈라가 열리는 국립미술관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클래식 선율로 가득했다. 필리핀 정·재계 인사들과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최고의 사교 행사답게 홀 안에는 품격 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후, 입구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내원의 차분한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에이든 그룹의 에이든 회장님, 그리고 라온 뷰티 그룹의 윤혜진 대표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순간 대화 소리가 잦아들었다. 수많은 시선이 동시에 입구를 향했다. 에이든은 완벽하게 재단된 블랙 턱시도를 입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딥 레드 컬러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우아하게 소화한 혜진이 서 있었다. 과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단정하게 올린 머리, 자신감이 담긴 미소까지. 이제 그녀에게서는 과거의 불안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분이 라온의 윤혜진 대표인가요?” “최근 가장 주목받는 K-뷰티 CEO라고 들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인상적인 분이군요.”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혜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당당한 걸음으로 에이든과 함께 홀 중앙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핀의 주요 기업 총수들과 금융계 인사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에이든은 자연스럽게 혜진를 소개했다. “제 파트너이자 라온 뷰티 그룹을 이끌고 있는 윤혜진 대표입니다.” 혜진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다. 영어로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도 그녀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K-뷰티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고객 맞춤형 관리 시스템, 앞으로의 글로벌 사업 계획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대화를 나누던 기업인들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라온의 사업 모델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필리핀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군요.”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혜진은 정중하게 명함을 건네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더 이상 에이든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과 능력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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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세상이 바뀌다

마닐라 연례 자선 갈라가 끝난 다음 날 아침. 필리핀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사교계 매거진의 1면은 모두 같은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닐라 갈라를 빛낸 두 사람.' '에이든 그룹 회장과 라온 뷰티 그룹 윤혜진 대표.' 갈라 행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도시 곳곳의 뉴스와 온라인 기사에 실렸다. 기사의 대부분은 에이든보다 그의 곁에 당당히 서 있던 한 한국인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라온 뷰티 그룹의 윤혜진 대표는 뛰어난 경영 능력과 세련된 글로벌 감각으로 이번 갈라의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K-뷰티 브랜드 라온의 성공은 윤 대표의 리더십에서 시작되었다."» 혜진은 출근길 차 안에서 기사를 조용히 읽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게 느껴졌던 자신의 이름이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라온. 그리고 윤혜진. 그 두 이름이 함께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 --- 그 무렵. 한국에서도 같은 기사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필리핀 한인회 SNS. 경제 관련 기사. 해외 교민 커뮤니티. 그리고 몇 년 전 혜진을 험담하던 국제학교 학부모 단체 대화방까지. "이 사람... 민지 엄마 아니야?" 한 사람이 사진을 올렸다. 잠시 뒤 메시지가 쏟아졌다. "설마..." "윤혜진 맞는 것 같은데?" "예전 모습이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사진 속 혜진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세계적인 기업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과거 한국에서 보았던 수수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진을 확대했고, 누군가는 기사 내용을 여러 번 읽었다. "라온 대표?" "필리핀에서 이렇게 성공했다고?" "에이든 그룹 회장 파트너라는데?" 단체방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혜진가 태성에게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사람들은 진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녀를 실패한 여자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같은 입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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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최고의 여자

갈라 파티 이후 라온의 이름은 필리핀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라온은 예약하기 가장 어려운 프리미엄 K-뷰티 브랜드.' 현지 언론은 앞다투어 라온을 소개했고, SNS에는 혜진의 인터뷰 영상과 갈라 파티 사진이 연일 올라왔다. 본점 예약은 석 달 이상 밀려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프랜차이즈와 투자 제안이 쏟아졌다. 혜진은 모든 제안을 서두르지 않았다. "라온은 매장을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본사 회의실. 수십 명의 임직원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혜진은 스크린에 새로운 사업 계획을 띄우며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는 고객의 신뢰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2호점은 마카티에 오픈합니다." 다음 화면이 넘어갔다. "3호점은 세부입니다." 직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서비스 교육과 운영 시스템이 완벽하게 준비되기 전까지는 절대 문을 열지 않습니다." "네, 대표님." 혜진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라온의 이름은 어느 지점을 가더라도 같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회의가 끝나자 임원들은 자연스럽게 박수를 보냈다. 라온은 이제 작은 매장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었다. --- 혜진의 하루는 누구보다 바빴다. 새벽 여섯 시.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간. 혜진은 펜트하우스 피트니스룸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운동이 끝나면 스트레칭과 요가. 가벼운 아침 식사 후에는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을 마쳤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는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관리하는 여자였다. 정갈한 베이지 컬러의 수트를 입은 그녀는 거울 속 자신에게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오늘도 잘 부탁해, 윤혜진." --- 오전에는 투자 미팅. 오후에는 직원 교육. 저녁에는 해외 화상회의. 하루가 숨 가쁘게 흘러갔다. 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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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평생 함께

크리스마스이브. 마닐라의 거리는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형 쇼핑몰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왔고, 거리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였다. 퇴근을 마친 혜진이 펜트하우스로 돌아오자 에이든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았다. "준비되셨습니까?" 혜진은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비밀을 알려주시는 건가요?" 에이든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저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혜진은 그의 손을 잡았다. "언제는 안 믿은 적 있었나요?" 두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검은 리무진은 조용히 마닐라 베이를 향해 달렸고, 도착한 곳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진 최고급 프라이빗 요트 한 척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었군요." 혜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에이든은 그녀를 배 위로 안내했다. 요트는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천천히 항구를 떠났다. 도심의 불빛은 점점 멀어지고, 눈앞에는 밤바다만이 끝없이 펼쳐졌다. 갑판 위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고, 따뜻한 촛불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혜진은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에요." 에이든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 두 사람은 와인을 나누며 지난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처음 만났던 날. 라온을 시작하던 순간. 민지와 함께 웃었던 시간들.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처음 이야기했던 밤까지. 혜진이 조용히 웃었다. "예전에는 제 인생에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에이든도 잔을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성공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도 늘 비어 있었습니다." 혜진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에이든은 그 손을 따뜻하게 감싸며 부드럽게 웃었다.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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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닫힌 문밖의 그림자

청혼을 받은 뒤 혜진의 삶은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충만했다. 아침이면 주방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에 눈을 떴다. 에이든은 중요한 회의가 없는 날이면 직접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거창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혜진과 민지가 좋아하는 메뉴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만든 팬케이크가 제일 맛있어.” 민지가 입가에 시럽을 묻힌 채 말하자 에이든은 냅킨을 들어 아이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럼 내일부터 매일 만들어야겠군.” “안 돼요.” 혜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이 팬케이크를 굽느라 회사에 늦으시면 제가 곤란하거든요.” “라온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회의 시간 정도는 조정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농담이 오가는 아침이었다. 민지의 웃음소리와 식탁 아래에서 가볍게 맞닿는 두 사람의 손. 혜진은 때때로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낮에는 라온의 대표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마카티 2호점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세부 3호점의 운영 계약도 마지막 검토 단계에 들어갔다. 해외 투자사에서는 싱가포르와 방콕 진출까지 제안해 왔다. 회의실에 앉은 혜진은 이전보다 훨씬 침착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라온의 기준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녀는 계약서를 덮으며 말했다. “본점과 같은 교육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오픈 일정을 늦추겠습니다.” “하지만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임원의 말에 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문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회의실을 천천히 훑었다. “하지만 한 번 잃은 신뢰를 되찾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라온은 속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기억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의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혜진은 다시 민지의 엄마로 돌아갔다. 세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민지의 숙제를 봐주었다. 때로는 결혼식에 사용할 꽃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다. 혜진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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