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배신당한 내가 재벌의 아내가 되었다: Chapter 41 - Chapter 50

55 Chapters

40화. 무너지는 제국

다음 날 아침. 라온 본사 집무실에 도착한 혜진에게 국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혜진아, 지금 통화 괜찮아?” 평소와 달리 다급한 목소리였다. “응. 무슨 일이야?” “너 혹시 강태성 소식 들었어?” 혜진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태성 커뮤니케이션이 지금 완전히 난리가 났어.” 친구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태성이 무리하게 추진했던 해외 가상자산 사업과 우회 상장 계획이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신뢰했던 해외 투자 중개업체가 허위 자료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고, 막대한 회사 자금이 회수되지 않은 채 묶였다. 그 과정에서 정식 승인 없이 자금이 사용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주주들은 경영진의 책임을 요구했고, 채권자들은 대출금 회수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 가능성까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회사 주가가 며칠째 폭락하고 있어.” 친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본사 앞에는 투자자들이 몰려와 있고 임원들도 줄줄이 사표 냈대. 회사가 정말 무너질 수도 있나 봐.” 혜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성의 몰락을 상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거짓말과 배신을 떠올릴 때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소식을 들으니 통쾌함보다 이상할 정도로 깊은 허무함이 먼저 찾아왔다. 한때 자신과 민지를 버리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돈과 명예.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게 있어.” “뭔데?” “강태성이 필리핀에 갔다는 말이 돌아.” 혜진의 손가락이 전화기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필리핀에?” “응. 마지막 투자를 받아내려고 직접 갔다나 봐. 필리핀의 큰 금융 그룹과 협상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혜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닐라의 고층 건물들이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어젯밤 에이든이 경계하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전화를 끊은 혜진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태성은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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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버린 아내와의 재회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의 입국장을 빠져나온 강태성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마닐라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지만, 그가 느끼는 답답함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때 한국에서 연 매출 수백억 원을 자랑하는 기업의 대표로 거드름을 피우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듯한 얼굴과 구겨진 셔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만이 그의 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태성은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비서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에이든 그룹에서 정한 미팅 장소가 정확히 어디야?” “BGC에 있는 계열사 본사로 안내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담당자는 연락이 없는 거야?” “현지 수행 직원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태성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이번 계약은 무조건 성사시켜야 해. 조건이 뭐든 받아들일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에게 이번 마닐라 출장은 단순한 투자 미팅이 아니었다. 무너져 가는 회사를 살릴 마지막 기회였다. 필리핀 금융권에서 특별 융자를 승인받지 못한다면 태성 커뮤니케이션은 채권자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태성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도움을 구하러 온 이 도시에, 오래전 자신이 버린 아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빈손으로 내쫓았던 윤혜진이 이제는 필리핀에서 가장 주목받는 뷰티 기업의 대표가 되었으며, 자신이 만나기 위해 애쓰는 에이든 그룹 회장의 약혼녀라는 사실도 상상하지 못했다. 태성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진실을 모른 채 검은 차량에 올라탔다. 차는 마닐라의 도심을 가로질러 BGC를 향해 달렸다. 같은 시각. 라온 뷰티 그룹 본사의 대표 집무실. 혜진은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빌딩 사이로 햇빛이 반사되고, 잘 정돈된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마카티 2호점과 세부 3호점의 최종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혜진은 계약서의 마지막 장을 검토한 뒤 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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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집무실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태성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혜진만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하찮게 여기며 버렸던 여자가 이제는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업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정교하게 재단된 정장, 흔들림 없는 눈빛, 그리고 자신감이 묻어나는 태도까지. 그가 기억하던 윤혜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혜진아….” 혜진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그때는 내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어.” 태성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회사 사정도 너무 힘들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된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함께한 10년은 거짓이 아니었잖아.” 혜진은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 10년을 먼저 버린 사람이 누구였죠?” 태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나와 민지를 버렸어요.” 혜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요?” 태성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혜진아, 내 말 좀—” 그러나 그의 손이 혜진의 손끝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선 넘지 마세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단호했다. “당신의 후회는 내 인생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태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 아직도….” “그만하세요.” 혜진의 눈빛에는 경멸만이 남아 있었다. “사랑이었다면 그렇게 버리지 않았겠죠.” 그 말은 태성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 그 순간. 집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차분한 발걸음과 함께 에이든이 안으로 들어왔다. 짙은 네이비 수트 차림의 그는 언제나처럼 침착했지만, 태성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에이든은 아무 말 없이 혜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습니까?” 혜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에이든은 태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 대표.” 낮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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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무릎 꿇은 남자

에이든의 국제 법무팀이 찾아낸 자료는 예상보다 훨씬 방대했다. 강태성이 이혼을 준비하기 전부터 회사 자금 일부를 해외 법인으로 옮긴 기록과 친인척 명의의 계좌를 거쳐 부동산을 매입한 정황까지 차례로 드러났다. 그중에는 결혼 생활 중 형성된 공동 재산을 의도적으로 축소해 신고한 흔적도 있었다. 혜진은 자료를 검토한 뒤 한국의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법무팀은 태성을 상대로 은닉 재산에 대한 추가 재산분할 청구와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했다. 태성이 재산을 숨기기 위해 제삼자의 명의로 돌려놓은 자산에 대해서도 가압류와 사해행위 취소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담당 변호사가 화상회의 화면 너머로 설명했다. “당시 이혼 합의가 허위 재산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승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혜진의 질문에 변호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보된 금융 기록이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해외 법인의 실소유주와 자금 이동 경로도 대부분 연결됐습니다.” 그는 화면에 여러 장의 서류를 띄웠다. “강태성 씨가 결혼 기간 중 형성된 재산을 고의로 숨겼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기존 합의와 별개로 책임을 물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혜진은 잠시 말없이 자료를 바라보았다. 과거 이혼 당시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성이 내민 자료가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된 법률 조언을 받을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는 그런 혜진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했다. “진행해 주세요.” 혜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받아야 할 것을 되찾고 싶어요.” 에이든은 그녀의 곁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모든 결정을 혜진에게 맡겼다. “이건 복수가 아닙니다.” 혜진은 스스로에게 말하듯 덧붙였다. “민지와 제 몫을 되찾는 일이에요.” --- 한국 법원에 관련 자료가 제출되자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졌다. 태성 측은 처음에는 해외 법인이 자신과 무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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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마침내 되찾은 것

혜진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동정도,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태성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혜진아, 제발…….” 그러나 경호원들이 즉시 그의 앞을 막아섰다. 혜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태성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나에게 가짜 명품 가방을 주며 비웃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재산을 모두 숨겨 놓고 법정에서 내가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몰아갔을 때.” 태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당신은 관심조차 없었죠.” “내가 잘못했어.” “알아요.” 혜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제 당신이 책임지는 거예요.” “소송만 취하해 주면 내가 반드시 갚을게.” 태성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당신은 이미 나에게 갚을 기회를 여러 번 잃었어요.” 혜진은 한 걸음 물러섰다. “민지를 버렸을 때도, 재산을 숨겼을 때도, 조금 전까지 세은 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을 때도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다시 내 삶을 희생하지 않을 겁니다.” 태성의 눈에서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혜진아…….” “용서는 언젠가 내 마음을 위해 할 수도 있어요.” 혜진의 시선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당신이 저지른 일의 책임까지 없애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는 돌아서서 대기 중인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태성이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혜진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검은 세단의 문이 닫히고 차량이 천천히 출발했다. 과거에는 혜진이 떠나는 태성의 차를 바라보며 울었다. 그러나 이제 바닥에 남겨진 사람은 태성이었다. --- 몇 달 뒤. 한국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태성이 혼인 기간 중 형성된 재산 일부를 고의로 숨기고, 이혼 과정에서 허위 자료를 제출한 사실을 인정했다. 해외 법인과 친인척 명의로 이전된 자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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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새로운 봄

한국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난 밤.펜트하우스는 오랜만에 고요했다.승소를 축하하는 작은 파티가 끝난 뒤, 혜진은 욕실 안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은은한 아로마 향이 물 위로 퍼졌고, 통유리 너머로는 마닐라 베이의 야경이 잔잔하게 반짝였다.혜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결혼생활 내내 남편의 거짓말을 의심하면서도 모른 척해야 했던 시간.법정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무너져야 했던 순간.민지의 손을 잡고 낯선 필리핀 땅에 첫발을 내디뎠던 두려움까지.수많은 기억들이 물결처럼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따뜻한 물속에 몸을 맡긴 채 긴 숨을 내쉬자,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감정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욕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에이든은 아무 말 없이 부드러운 타월을 건네주었다.혜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에 가볍게 기대었다.“이제야 정말 끝난 것 같아요.”에이든은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 주며 말했다.“아니요.”“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혜진은 조용히 웃었다.그 말이 맞았다.복수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며칠 뒤.혜진 앞으로 한국의 법무법인을 통해 봉투 하나가 전달되었다.발신인은 강태성이었다.변호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구치소에서 직접 보낸 편지입니다.”혜진은 한동안 봉투를 바라보았다.과거라면 떨리는 손으로 뜯어보았을 것이다.혹시 또 어떤 말로 자신을 흔들려고 하는지 궁금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혜진은 봉투를 그대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읽지 않겠습니다.”잠시 후 그녀는 서재로 걸어가 작은 벽난로 앞에 섰다.봉투를 불꽃 위에 올려놓자 종이는 천천히 타들어 갔다.글자는 읽히기도 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혜진은 불꽃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바라보았다.그리고 비서를 향해 말했다.“앞으로 강태성 씨와 관련된 편지나 연락은 모두 법무팀에서 처리해 주세요.”“대표님께는 전달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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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우리가 돌아갈 집

며칠 뒤, 혜진은 집무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서류들을 정리했다.강태성과 관련된 법적 절차는 모두 법무팀으로 이관되었고, 한국에서 보내온 판결문과 재산 집행 서류도 분류를 마친 상태였다.이제 그녀가 직접 보관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혜진은 책상 가장 아래쪽 서랍을 열었다.서류들 사이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오래전 한국을 떠나올 때 가지고 왔던 이혼 신고서 사본이었다.종이 한쪽은 구겨져 있었고, 잉크가 번진 자리도 남아 있었다.그날의 혜진은 이 종이를 붙잡고 수없이 울었다.한 사람의 아내였던 시간이 끝났다는 증거이자,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던 흔적이었다.혜진은 한동안 말없이 종이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가슴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그저 아주 오래전에 끝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거실에서는 민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이번에는 내가 이겼어!”“아직 한 번 더 남았습니다.”에이든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뒤따랐다.혜진은 서류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바닥에 앉아 보드게임을 하던 민지와 에이든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엄마도 같이 해!”민지가 손을 흔들었다.“금방 갈게.”혜진은 미소를 지은 뒤 서류 분쇄기 앞에 섰다.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혼 신고서 사본을 넣었다.기계가 움직이며 종이는 가느다란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그녀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이름과 날짜, 서명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조각으로 변했다.혜진은 투명한 창 너머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과거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다만 더 이상 자신의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혜진은 분쇄된 종이를 정리한 뒤 거실로 돌아왔다.민지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엄마, 빨리 앉아. 아빠가 자꾸 규칙을 바꿔.”에이든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저는 정확히 규칙대로 하고 있습니다.”“아니야. 아빠가 지려고 하니까 갑자기 설명이 길어졌어.”혜진은 두 사람 사이에 앉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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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폭풍이 지나간 자리

강태성과 김세은을 둘러싼 모든 일은 마닐라의 거센 스콜처럼 지나갔다.한때 혜진의 삶을 뒤흔들었던 소란은 멀리 사라졌고, 새 저택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부드러운 바람만이 머물렀다.혜진은 아이보리빛 실크 가운을 걸친 채 창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한국 법원에서 보내온 마지막 집행 완료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은닉 재산의 반환과 위자료, 양육비 집행까지 모두 끝났다는 내용이었다.혜진은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천천히 덮었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순간이었지만, 마음속에는 통쾌함보다 깊은 고요함이 찾아왔다.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혜진이 테라스로 나가자 따뜻한 얼그레이 향이 코끝을 스쳤다.찻잔 옆에는 에이든이 남긴 짧은 메모가 놓여 있었다.오늘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요.혜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그때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에이든이 혜진의 뒤로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벌써 돌아왔어요?”“당신이 혼자 차를 마시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일찍 왔습니다.”에이든은 혜진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긴 뒤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혜진은 그의 팔 위에 손을 올리며 몸을 편안하게 기댔다.“마지막 보고서가 왔어요.”“마음은 어떻습니까?”혜진은 잠시 마닐라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생각보다 조용해요.”“좋은 고요함입니까?”“네.”혜진은 몸을 돌려 에이든을 바라보았다.“이제 당신과 민지만 생각하면서 살아도 될 것 같아요.”에이든의 눈빛이 따뜻하게 깊어졌다.“저는 오래전부터 그날을 기다렸습니다.”그는 혜진의 손을 들어 손등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당신의 남은 시간에는 좋은 일만 채워 넣겠습니다.”혜진은 그의 넥타이를 살짝 잡아당기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하지 말고 잘 지켜야 해요.”“평생 증명하겠습니다.”혜진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에이든은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오후가 되자 넓은 거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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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사랑이 머무는 섬

며칠 뒤, 세 사람은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가족 휴가를 떠났다.에이든이 준비한 목적지는 필리핀의 프라이빗 리조트 아만풀로였다.경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자 민지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했다.“엄마, 구름이 솜사탕 같아!”“정말 그러네.”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이든은 혜진의 손을 자신의 무릎 위로 가져와 손가락을 맞잡았다.혜진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민지 앞에서도 계속 이러고 있을 거예요?”“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에이든은 태연하게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었다.“제 약혼녀의 손을 잡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혜진은 웃으며 그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었다.민지가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엄마랑 아빠는 맨날 붙어 있어.”에이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그럼 나도 붙어 있을래.”민지가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끼워 넣었다.세 사람은 좁은 좌석에 나란히 붙어 앉아 웃음을 터뜨렸다.---섬에 도착하자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과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민지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아빠, 빨리 와!”에이든은 혜진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걸었다.“민지가 기다리는데 빨리 가야 하지 않아요?”“조금은 기다려도 됩니다.”에이든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당신과 이렇게 걷는 시간이 더 중요하니까요.”혜진은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요즘 말이 너무 달콤해졌어요.”“사랑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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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별빛 아래의 두 번째 약속

리조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이든은 해변의 가장 외딴 곳에 혜진만을 위한 특별한 저녁 식사 자리를 준비해 두었다.백사장 위에는 수백 개의 작은 촛불이 은은한 길을 만들고 있었고, 잔잔한 파도 소리가 고요한 음악처럼 밤공기 속에 퍼졌다.혜진은 에이든이 준비해 둔 화이트 실크 드레스를 입고 촛불 사이를 천천히 걸어왔다.바닷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드레스 자락과 달빛을 머금은 그녀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검은 수트를 입고 기다리던 에이든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만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봐요?”혜진이 수줍게 묻자 에이든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매일 보고 있는데도, 볼 때마다 처음 만난 사람처럼 설렙니다.”혜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요즘은 정말 말을 너무 예쁘게 해요.”“당신이 제게 예쁜 말만 하고 싶게 만드니까요.”에이든은 그녀를 자리로 안내했다.두 사람은 촛불과 별빛 아래에서 천천히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민지는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다 먼저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두 사람만의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휴가가 끝나는 게 아쉬워요.”혜진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다시 오면 됩니다.”“그때도 이렇게 전부 준비할 거예요?”“당신이 좋아한다면 매번 더 잘 준비하겠습니다.”혜진은 웃으며 그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이 정도면 충분해요. 당신이 옆에 있잖아요.”그 말에 에이든의 눈빛이 깊어졌다.식사가 끝날 무렵,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혜진 씨.”에이든은 그녀의 손을 잡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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