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혜진은 집무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서류들을 정리했다.강태성과 관련된 법적 절차는 모두 법무팀으로 이관되었고, 한국에서 보내온 판결문과 재산 집행 서류도 분류를 마친 상태였다.이제 그녀가 직접 보관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혜진은 책상 가장 아래쪽 서랍을 열었다.서류들 사이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오래전 한국을 떠나올 때 가지고 왔던 이혼 신고서 사본이었다.종이 한쪽은 구겨져 있었고, 잉크가 번진 자리도 남아 있었다.그날의 혜진은 이 종이를 붙잡고 수없이 울었다.한 사람의 아내였던 시간이 끝났다는 증거이자,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던 흔적이었다.혜진은 한동안 말없이 종이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가슴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그저 아주 오래전에 끝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거실에서는 민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이번에는 내가 이겼어!”“아직 한 번 더 남았습니다.”에이든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뒤따랐다.혜진은 서류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바닥에 앉아 보드게임을 하던 민지와 에이든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엄마도 같이 해!”민지가 손을 흔들었다.“금방 갈게.”혜진은 미소를 지은 뒤 서류 분쇄기 앞에 섰다.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혼 신고서 사본을 넣었다.기계가 움직이며 종이는 가느다란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그녀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이름과 날짜, 서명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조각으로 변했다.혜진은 투명한 창 너머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과거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다만 더 이상 자신의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혜진은 분쇄된 종이를 정리한 뒤 거실로 돌아왔다.민지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엄마, 빨리 앉아. 아빠가 자꾸 규칙을 바꿔.”에이든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저는 정확히 규칙대로 하고 있습니다.”“아니야. 아빠가 지려고 하니까 갑자기 설명이 길어졌어.”혜진은 두 사람 사이에 앉으
Last Updated : 2026-07-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