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의 아버지가 프러포즈를 해왔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1 - チャプター 20

30 チャプター

11화

은진은 깊은 밤, 밭은숨을 내뱉으며 눈을 번쩍 떴다.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몽마의 정체는 지독한 쾌락이었다.어둠이 내려앉은 침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그녀의 귓가에는 아직도 시아버지 도창수의 낮고 거친 음성이 환청처럼 맴돌고 있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이 지독한 자기혐오를 억누르려 애썼다.하지만 머릿속의 이성과는 정반대로, 하복부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시아버지의 그 시선에 꿰뚫린 듯 뻐근하고 노골적인 열기가 질척하게 맴돌고 있었다.허벅지 안쪽을 옥죄어 오는 낯선 경련과, 이미 흠뻑 젖어 들어간 얇은 속옷의 축축한 감촉이 그녀의 알량한 도덕심을 잔인하게 비웃었다.바로 곁에서는 세상모르고 잠든 다정한 남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를 울렸다.하지만 지훈의 평온한 얼굴을 볼수록, 남편이 아닌 그의 아버지에 의해 이토록 천박하게 달아올라 버린 제 육체에 대한 소름 끼치는 수치심이 목을 졸라왔다. "여보, 괜찮아? 또 가위눌렸어요?"곁에 누워 있던 지훈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 은진의 맨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늘 지친 모습의 지훈이었지만, 아내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다. 지훈은 은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스치는 감각이 눈물겹도록 부드러웠다."여보, 이번 초고층 주상복합 프로젝트 골조 공사만 무사히 끝나면… 나 본사로 복귀하겠다고 아버지께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그때부터는 우리 아기 가지는 것에만 온전히 집중해요. 내가 더 노력할게, 응?"은진은 지훈의 품에 흠칫 떨리는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체온은 한없이 따뜻하고 안전했다.하지만 동시에, 시아버지의 그 숨 막히는 위압감과 압도적인 지배력을 본능적으로 갈구했던 자신의 더러운 육체가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이토록 순수하고 다정한 남편을 두고, 어떻게 육체의 본능에 속절없이 흔들릴 수 있단 말인가."지훈 씨… 미안해.""왜 미안해요. 내가 현장 일에 치여서 당신을 더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렇지.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정말 달라질게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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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거실의 샹들리에 불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긴 다이닝 테이블 위에는 지훈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고, 디캔터에 담긴 최고급 레드 와인은 검붉은 향을 머금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은진은 샤워를 막 마친 촉촉한 모습으로 거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가운 안쪽에는 오늘 밤, 오직 남편만을 위해 준비한 도발적이고 아찔한 검은색 실크 란제리가 그녀의 풍만한 굴곡을 감싸고 있었다.'오늘 밤만 지나면 당분간 쉴 수 있어. 사랑해, 은진아.'휴대전화 화면에 뜬 지훈의 다정한 마지막 문자를 몇 번이나 매만지며, 은진은 달력에 붉게 쳐진 '최고의 배란일'을 떠올렸다.오늘 밤이야말로 지훈과 함께 완벽한 가정을 완성할 수 있는 날이었다.하지만 벽시계의 바늘이 밤 11시를 넘어가고, 자정을 향해 달려가도록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식탁 위의 음식은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낮 동안의 긴장과 피로가 몰려온 은진은, 휴대전화를 쥔 채 어느새 소파 위에서 선잠에 빠져들고 말았다.징-, 지이이잉-!고요한 거실의 적막을 깨는 진동 소리.은진은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켰다.잠결에 멍한 눈으로 확인한 휴대전화 액정에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낯선 번호가 명멸하고 있었다.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묘한 불길함을 애써 억누르며, 은진이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도지훈 씨 보호자 되십니까? 여기 XX대병원 중환자실입니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설고 다급한 의료진의 목소리, 그리고 그 뒤로 섞여 들어오는 기계음과 소음들이 은진의 고막을 때렸다.[도지훈 환자분, 추락에 의한 심각한 두부 손상으로 방금 이송되셨습니다.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였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로 겨우 호흡은 돌려놓았지만… 현재 의식이 전혀 없는 코마 상태입니다. 당장 보호자 분의 동의가….]은진의 손에서 휴대전화가 힘없이 미끄러져 카펫 위로 나뒹굴었다.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차갑게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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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리자, 새하얀 천장과 함께 병실의 환한 조명이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다.은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넓고 고요한 VIP 병실이었다.오른쪽 손등에는 굵은 바늘이 꽂혀 투명한 수액이 혈관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몽롱했던 의식이 서서히 선명해지며, 지난밤의 끔찍했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던 지훈.의사의 절망적인 선고.그리고 시아버지의 단단한 품에 안겨 정신을 잃었던 자신의 처참한 모습까지."아… 지훈 씨…!"은진은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옷차림을 보고 숨을 헉 들이켰다.정신 없이 뛰쳐나오느라 걸쳤던 트렌치코트는 온데간데없고, 환자복이 그녀의 몸에 입혀져 있었다.하지만 단추가 채워진 환자복 틈새로는 지난밤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입었던 도발적인 검은색 실크 란제리가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누가 이 환자복을 입혀준 걸까.당연히 간호사들이 갈아입혀 주었겠지만, 하필이면 시아버지가 곁에 있던 상황에 이 천박하고 야한 속옷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진은 소름 끼치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남편의 생사가 오가고 있었다.은진이 다급히 링거 폴대를 쥐고 침대에서 내려서려던 찰나였다.달칵-.무거운 병실 문이 열리며, 존재감을 뿜어내는 도창수 회장이 안으로 들어섰다.그의 뒤로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죽 그릇을 든 최 비서실장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아버님…! 우리 지훈이는요? 지훈 씨 깨어났나요? 제가 가볼게요, 당장 가봐야…!"사시나무처럼 떨며 맨발로 바닥에 나서려는 은진의 어깨를, 창수의 크고 단단한 두 손이 내리눌렀다.저항할 수 없는 완력이었다."진정하거라, 아가."창수의 낮고 굵은 음성이 병실의 차가운 공기를 짓눌렀다."지훈이는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다. 수술은 겨우 끝났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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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도창수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적막한 VIP 병실의 문을 열고 은진을 찾아왔다.그는 생사가 오가는 아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러 온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자주, 그리고 오래 병실에 머물렀다.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이 차가운 병원에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은 도창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저녁이었다.은진이 혼자 병실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지훈을 수술했던 주치의와 의료진이 찾아왔다.그들의 굳어진 얼굴은 마치 사형 선고를 앞둔 판사처럼 서늘하고 무거웠다."도지훈 환자분의 폐 기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습니다. 인공호흡기 없이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더 이상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보호자 분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이제는 연명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은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며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의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몸이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짐승의 울음과도 같은 처절한 통곡이 터져 나왔다.그녀는 이불을 움켜쥐고 창자가 끊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아니야… 아니라고요…! 우리 지훈 씨, 어떻게 보내요!"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도창수가 들어왔다.그는 오열하는 은진과 침통한 표정의 의료진을 한 번 훑어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주시오."의사들은 아무 말 없이 병실 밖으로 물러났다.창수는 천천히 은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녀린 팔을 잡아 일으켰다.은진은 완전히 힘이 풀린 다리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그의 거대하고 단단한 품으로 쓰러지듯 안겼다.그녀는 창수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흑… 흑… 지훈 씨… 아버님, 우리 지훈 씨 어떡해요…"창수는 그녀를 조용히, 그러나 숨이 막힐 정도로 단단히 끌어안았다.그의 두꺼운 팔이 은진의 떨리는 등을 완전히 감싸안았고, 한 손은 그녀의 뒷머리를 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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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대한민국 재계 1위 흑룡건설의 후계자, 도지훈의 장례식은 세상 그 어떤 행사보다 거대하고 엄숙하게 치러졌다.서울 한복판의 대형 병원 VIP 장례식장.복도 끝까지 빈틈없이 늘어선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화환들이 뿜어내는 짙은 국화 향기는, 오히려 죽음의 비릿한 냄새를 가리기 위한 기만처럼 느껴졌다.은진은 그 숨 막히는 공간 한가운데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하얀 상복을 입은 채 허리를 굽히고 또 굽혔다."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며느님.""어쩌다 그런 끔찍한 사고를…."끝없이 밀려드는 조문객들의 형식적인 위로가 고막을 때릴 때마다, 은진의 가슴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베이는 듯 너덜너덜해졌다.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린 발끝, 끊어질 듯 저려오는 허리.육체적인 고통은 오히려 이 끔찍한 현실을 도피하게 해주는 마취제였다.남편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토해낼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사치에 불과했다.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2시.파도처럼 밀려들던 조문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회사 직원들과 도우미들마저 모두 철수한 장례식장은 깊은 적막에 잠겼다.은진은 그제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상주 전용 휴게실에 들어섰다.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핏기 없는 입술, 푹 파인 뺨, 붉게 짓무른 눈가.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내일의 발인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핏대 선 눈을 감으려던 찰나였다.적막뿐인 바깥 빈소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려왔다.은진은 흠칫 놀라며 조심스럽게 휴게실 문을 열고 걸음을 옮겼다.서늘한 대리석 바닥에 닿는 맨발의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찼다.독한 향 냄새가 매캐하게 맴도는 빈소 한가운데,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시아버지, 도창수였다.도창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국화꽃에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 지훈의 영정 사진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은진은 숨죽인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때, 창수의 굳게 다물린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며 열렸다.소리 없는 읊조림.하지만 은진은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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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장례가 모두 끝난 날, 은진과 도창수는 지훈이 영원히 잠든 묘지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빗물에 젖어 서늘하게 빛나는 차가운 비석 위로, '도지훈'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창수는 침묵을 지키며 은진의 어깨를 조용히 끌어안았다.그의 손길은 며칠 전 그 은밀했던 입맞춤과는 달리, 한없이 경건하고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의 손길처럼 느껴졌다."혼자 지내기 힘들 텐데… 당분간만이라도 본가로 들어와 지내면 어떻겠니. 네가 무너지면, 우리 지훈이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겠어."은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기운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수를 노려보았다.장례식장의 적막 속에서,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자신을 짓누르던 그 거칠고 뜨거운 입술의 감촉이 환각처럼 되살아났다.죽은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며느리의 입술을 탐했던 남자가, 지금 죽은 아들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옭아매려 하고 있었다.은진의 눈에 분노와 혐오가 번뜩였지만, 창수는 인자한 표정으로 며느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그러나 은진은 그 분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자기혐오에 몸을 떨었다.그때 왜 그를 밀어내지 못했는가.왜 그의 품 안에서 울기만 했는가.지훈을 잃은 슬픔으로 점철되어야 할 장례식장에서, 시아버지의 입술이 닿았을 때 자신의 육체가 느꼈던 그 뒤틀린 안도감.그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더 무겁고 처참하게 짓눌렀다.은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창수의 손을 뿌리치고 묘지를 떠났다.등 뒤에서 느껴지는 창수의 침묵 어린 시선이,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일부러 놓아주며 다음 기회를 노리는 듯한 서늘함으로 다가왔다.집에 돌아온 은진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그날 이후 그녀는 현실을 거부했다.은진은 도창수의 본가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는 쪽을 택했다.음식은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고, 샤워조차 하지 않았다.집 안은 점점 먼지와 곰팡이로 더러워졌고, 은진은 그 어둠 속에서 폐인처럼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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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신혼집 거실 벽에 걸린 결혼사진 속 두 사람은 아직도 웃고 있는데, 정작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집 안을 맴도는 건 지훈의 잔향과, 매일 밤 은진의 목을 조이는 죄책감뿐이었다.창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왔다.초인종 소리가 울리는 순간, 은진의 심장이 먼저 덜컥 내려앉았다. 문을 열면 그의 손에는 언제나 무언가 들려 있었다.짐이 많을 땐 최 비서실장이 함께 들고 와서는 문 앞에 내려만 놓고 가는 모양이었다. 그가 가져오는 물건은 매번 달랐다.포장마저 고급스러운 보양식과 싱싱하고 값비싼 제철 과일, 말끔하게 새탁되어 있는 침구류. 그는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창문을 열어 탁한 공기를 내쫓고, 싱크대를 정리하고, 개수대에 쌓인 그릇을 닦았다.그리고 마지막엔 반드시 은진의 얼굴을 살폈다.그가 천천히 다가와 은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핏기 없이 마른 볼, 푸석한 입술, 초점 잃은 눈동자.그렇게 죽은 듯 했던 은진의 얼굴이 도창수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저릿하게 깨어났다.“오늘도 아무 것도 안 먹었구나.” 낮게 깔린 한숨과 함께 그가 은진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이끌고 침대로 향할 듯 했지만, 목소리는 놀라우리만큼 잠잠했다. 그가 부엌으로 가서 식탁 위에 있던 보양식을 꺼내 펼쳐놓기 시작했다. 은진은 물끄러미 그의 손등을 바라봤다.장례식 날, 무너지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아주던 손.그리고 지훈이 떠난 그날 밤, 자신의 어깨를 안고 다정하게 등을 쓸어주던 손.손가락 마디의 굳은살까지 기억났다.그 감촉이 환영처럼 되살아날 때마다 아랫배가 조용히 당겼다.보양식을 차려 놓은 뒤 도창수는 자신이 있으면 분명 안 먹으려 할테니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며 돌아갔다. 도창수가 떠나고 은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그가 직접 차려놓은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리에 앉았다. 수저를 들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문득 병원에 입원해있던 은진에게 그가 직접 식사를 떠먹여 주던 일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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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은진은 밤새 단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실타래처럼 얽혀 쉽게 풀리지 않았다.뒤척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침대 머리맡 시계가 새벽 네 시를 가리키자 그녀는 더 이상 잠을 기다리지 않았다.조용히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섰다.유리창 너머의 하늘은 아직 밤과 새벽의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적막한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오늘부터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가슴 한가운데 묵직한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불안인지, 긴장인지, 아니면 설레임인지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은진은 물기를 닦으며 거울 앞에 섰다.화장대 위에는 최 비서실장이 전해 준 작은 상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어젯밤에는 차마 열어보지 못했던 상자였다.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검은 레이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절제된 화려함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았고, 섬세하면서도 품위가 있었다.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취향과 체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릴 물건이었다.은진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손에 들었다.차가운 천의 감촉이 손끝을 스쳤다.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몸에 걸쳤다.옷깃을 정리하는 짧은 순간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단순히 새 옷을 입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가 자신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도창수가 보내온 정장을 꺼내 입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채웠다.목걸이와 귀걸이를 착용한 뒤 시계를 손목에 둘렀다.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출근 준비였다.하지만 평소와 같은 아침은 아니었다.핸드백을 든 순간 평소보다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현관문 앞에 선 은진은 한동안 손잡이를 바라보았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익숙한 일상과 새로운 현실이 나뉘어 있는 듯했다.짧게 숨을 내쉰 뒤 조용히 문을 열었다.엘리베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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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복귀한 지 이틀째 되는 아침이었다.커피를 들고 회의실로 향하는 직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경영지원팀 전체 회의가 시작됐다.본부장은 준비해 온 자료를 프로젝터에 띄우며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스크린에는 굵은 글씨로 프로젝트명이 나타났다.동남아 복합도시 개발 사업.흑룡건설이 해외시장에서 추진하는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였다.예상 사업비는 수천억 원.성공한다면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막대한 손실은 물론 기업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회의실 안의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이번 프로젝트는 건설만 잘한다고 끝나는 사업이 아닙니다. 환율 변동, 현지 법률 개정, 원자재 가격 상승, 금융 조달, 정치적 리스크까지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다음 화면에는 복잡한 도표가 나타났다.수많은 숫자와 그래프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지만, 대부분의 팀원들은 어디서부터 분석해야 할지 쉽게 감을 잡지 못했다.누군가는 연신 메모를 했고, 누군가는 화면만 바라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와 달리 은진은 노트를 펼쳐 몇 개의 핵심 단어만 적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사업 구조가 입체적으로 조립되고 있었다.자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느 구간에서 위험이 발생하는지, 어떤 변수 하나가 전체 사업성을 흔들 수 있는지까지 하나의 그림처럼 이어지고 있었다.회의가 끝나자마자 직원들은 각자 맡은 업무를 나누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은진은 곧바로 해외사업본부와 재무기획실에 연락을 넣었다.요청은 짧고 명확했다.잠시 뒤 메일함에는 각 부서에서 보낸 자료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맞느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였다."하 팀장은 진짜 다르네."한 대리가 조용히 감탄했다.그녀는 모니터 앞에 앉아 방대한 자료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엑셀 파일 수십 개가 화면에 펼쳐졌고, 그래프는 다시 그려졌으며, 수익률 계산식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됐다.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모니터에는 복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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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다음 날 오전, 흑룡건설 중역회의실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해외 복합도시 개발 사업의 최종 검토를 위해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회의실 맨 앞에는 도창수가 말없이 앉아 있었고, 경영지원본부장 역시 평소보다 굳은 표정으로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은진은 팀 내부 발표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밤새 반영해 발표 자료를 다시 다듬었다.부족했던 근거는 추가했고, 수익성과 리스크 분석은 더욱 세분화했다.화면에는 복잡한 그래프와 수치가 차례로 나타났지만 그녀의 설명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할 경우에는 투자 회수 기간이 평균 열한 개월 늘어납니다. 다만 금융 조달 방식을 일부 조정하면 손실 폭은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습니다."은진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료를 넘겼다.이어 현지 법률 개정 가능성과 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대응 방안, 협력업체 변경 시 예상되는 비용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준비된 근거를 제시했고, 수치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발표가 끝나자 회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해외사업 담당 임원이었다."검토가 상당히 치밀합니다. 실무에 바로 적용해도 되겠군요."다른 임원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리스크 분석이 명확합니다.""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군요."경영지원본부장 역시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역시 하 팀장이 복귀하니 든든합니다."칭찬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어딘가 씁쓸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은진은 굳이 그의 속내를 읽으려 하지 않았다.조직에서는 능력이 곧 경쟁이었고, 누군가의 불안 역시 그 경쟁의 일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발표를 지켜보던 도창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역시 하 팀장 실력은 변함이 없군요."짧은 한마디였지만 회의실의 시선이 모두 은진에게 향했다.은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그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도창수의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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