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그룹 본사 최상층, 28층 회장 집무실.과거 도창수가 군림하던 흔적은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벽면을 가득 메우던 금장식도, 묵직한 마호가니 가구도, 권위를 과시하듯 버티고 있던 거대한 호랑이 박제도 모두 사라졌다.그가 이곳의 주인이었던 시간까지 깨끗하게 지워진 듯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은진의 취향이 완벽히 반영된 미니멀하고 심플한 인테리어였다. 차가운 무광 블랙 마블 바닥과 절제된 그레이 월 패널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 중심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블랙 철제 프레임의 최고급 데스크가 놓여 있었다. 차갑고 절제된 공간에는 새로운 여왕의 냉철함과 우아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을 듯한 정적이 그곳을 지배했다. 그리고 집무실 한편, 벽면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히든 도어 너머. 바깥에서는 결코 존재를 눈치챌 수 없는 은밀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수 이중 방음 설비가 시공된 비밀 밀실. 은은하고 어두운 핀 조명 아래, 최고급 천연 가죽으로 제작된 결박대와 차가운 금속 족쇄가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에는 다양한 굵기의 가죽 채찍과 목걸이, 안대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섬뜩한 용도의 물건들이었지만, 그 배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우아하고 매혹적이었다. 흑룡의 왕좌 한가운데에는 여왕과 그녀의 사냥개만이 들어설 수 있는, 절대 복종의 성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은진이 인터폰을 눌러 서한준을 호출했다. “서 CLO, 지금 집무실로 들어와요.”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서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 잡힌 쓰리피스 수트에 빈틈없이 조여맨 넥타이. 회사 안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할 만큼 완벽한 엘리트 법조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책상 너머 은진의 깊은 시선이 닿는 순간, 미세한 긴장과 억눌린 갈증이 스쳐 지나갔다. 은진은 의자에서 천천
Last Updated : 2026-08-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