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이 모자란 나날이었다. 새벽에는 동틀 녘 배달되는 신문을 돌렸고,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으며, 저녁에는 고깃집과 편의점 알바를 전전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지만, 연수는 결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이끌어줄 부모의 인맥도 모두 사라진 이 지옥 같은 밑바닥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통제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시험지의 점수’뿐이었다. 공부만이 이 지독한 곰팡이 냄새나는 반지하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였다. 연수의 방에는 책상이 없었다. 좁은 방안에 밥상을 펴고, 밤마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책을 펼쳤다. 잠을 쫓기 위해 얼음물을 마시고, 허벅지를 볼펜으로 찔러가며 영어 단어를 외웠다. 졸음이 밀려올 때면 차가운 반지하 화장실로 가 찬물로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입는 옷은 늘 똑같았다. 학교에서 나누어준 낡은 교복 실린더 셔츠에 보풀이 잔뜩 인 조끼. 친구들이 최신 유행하는 화장품이나 연예인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릴 때, 연수는 귀를 닫고 오직 수학 정석 책의 여백에 문제 풀이를 써 내려갔다. 그녀의 교과서는 수백 번도 더 넘겨보아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중요 표시를 한 형광펜 줄로 빼곡했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해.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곳까지.’ 코끝을 스치는 퀴퀴한 습기를 맡으며 연수는 이를 악물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고통이 잊혀졌다. 활자들은 그녀에게 지독한 가난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인 동시에, 미래를 향해 쏠 수 있는 유일한 화살이었다. 가끔 너무 지치고 서러울 때면, 서준이 주머니에 넣어주던 반짝이던 초콜릿 포장지를 떠올렸다. 이제 그 달콤함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가 했던 말은 여전히 심장을 뛰게 했다.
Last Updated : 2026-07-0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