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비밀스러운 지시가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날 아침, 태성 기획의 9층 기획팀 사무실은 이른 시간부터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련된 유리 파티션 사이로 복사기의 거친 작동음과 전화벨 소리가 섞여 드는 가운데, 연수는 제 자리에 앉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날 연수는 단정한 흰색 셔츠 위에 단추가 깔끔하게 달린 검은색 니트 베스트를 겹쳐 입고 있었다. 대학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갈 때 입던 손때 묻은 옷이었지만, 구김 하나 없이 빳빳하게 다려진 덕에 외려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려한 장신구 하나 없이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생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내린 모습은, 맑고 투명한 피부와 어우러져 동양적인 아우라를 풍겼다. 스스로 꾸밀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연수였으나, 그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삭막한 사무실에서 단연 돋보였다. “하연수 씨, 아침 안 먹었으면 이 샌드위치 좀 먹어봐요. 출근길에 연수 씨 생각나서 좀 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제에 이어 다른 파트의 대리 한 명이 슬그머니 연수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포장된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주변 남자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연수는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었지만, 겉으로는 한 치의 흐름 없이 야무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 15년 동안 거친 생활전선에서 구르며, 제 예쁜 외모만을 보고 가볍게 접근해 오던 수많은 남자를 거절해 본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선을 긋는 법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머, 대리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연수는 샌드위치를 공손히 받아 들고는, 이내 목소리를 높여 주변 직원들을 향해 화사하게 웃었다. “마침 오늘 아침 일찍 나오느라 동기들이 다 배고파했는데, 다 같이 나눠 먹으면 정말
Last Updated : 2026-07-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