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본사의 럭셔리 라인 컨셉 보완 기획안은 연수의 삶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회의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참고 자료들,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도면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야근. 연수는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파리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 사원, 이 부분은 데이터 오류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기획팀 팀장이 지나가며 던진 한마디에 연수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수정을 시작했다. 그녀는 몸에 딱 맞는 그레이 컬러의 블레이저를 단정하게 걸치고, 긴 머리를 낮게 묶은 채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야근의 피로로 창백했지만, 그 정갈한 모습은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도 고고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그때, 탕비실 쪽에서 들려오는 여직원들의 웃음소리가 연수의 귀를 찔렀다. “오늘 대표님이 사내 식당 메뉴가 부실하다고 직접 셰프를 바꾸셨대. 진짜 다정하시지 않아?” “맞아, 지난번에 우리 부서 마감 때도 몰래 익명으로 야식 보내주신 거 다들 알지? 차가운 척하시지만, 우리 대표님만큼 섬세한 분도 없어.” 여직원들은 하나같이 핑크빛 볼을 하며 태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사의 복지가 좋은 이유, 어려운 처지의 직원을 남몰래 돕는다는 소문, 심지어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고개만 까닥여도 그 카리스마에 심장이 떨린다는 고백까지. 회사에서 강태성은 차가운 냉혈한이 아니라, 모두가 동경하고 비밀스럽게 짝사랑하는 ‘완벽한 왕자님’이었다. 연수는 묵묵히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시려왔다. 태성은 다른 직원들에게는 그렇게 다정하고 사려 깊은 배려를 베푸는데, 왜 자신에게만은 그토록 서늘하고 냉정한 걸까. ‘내가 뭐를 그렇게 잘못했을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연수는 회의실 벽면
Last Updated : 2026-07-1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