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잿빛 회상 속 너를 만나다.: Bab 71 - Bab 80

99 Bab

EP 71. 터틀 아일랜드의 마지막 밤

10년 전 산다칸의 밤바다처럼 ,터틀 아일랜드의 밤바다도 잔인하리만치 푸른 칠흑이었다.수평선 너머에서 밀려드는 은백색의 파도.청량한 밤바다의 서늘한 온도 속에서, 두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뜨거운 온도로 불타올랐다.서로의 영혼까지 모조리 태워버릴 듯한 격정적인 정사.마침내 한 방울의 영혼마저 서로에게 남김없이 쏟아부은 후, 유진과 요스케는 온전히 녹아내린 서로의 육체를 겹친 채 어두운 방갈로로 돌아왔다.방 안은 열대의 밤이 가진 특유의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극상의 오르가즘 뒤, 찾아온 훅 떨어진 체온의 급격한 온도 차에 스치는 바람마저 짓궂게 서늘했다.유진의 가녀린 어깨가 잘게 떨렸다.한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요스케는 말없이 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리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래와 바닷물, 그리고 서로의 흔적으로 끈적하게 젖은 옷을 거칠게 벗어던졌다.그리고 두 사람은 어둠이 짙게 깔린 좁은 샤워실로 향했다.낡은 밸브를 돌리자 쏟아지는 찌릿할 정도로 차가운 냉수.쏴아아서로의 몸을 때리는 물소리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요스케의 거칠고 커다란 손바닥이 유진의 젖은 등줄기와 잘록한 허리곡선을 따라 미끄러졌다.유진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요스케의 단단하고 넓은 구릿빛 어깨에 맺힌 물방울을 훔쳐냈다.차가운 물줄기 아래에서 살과 살이 마찰할 때마다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랐다.그것은 체온이라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지독한 갈증에 가까웠다.샤워를 마치고 나란히 누운 침대.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하기 힘들 만큼.사지가 노곤하게 풀려 있었고 뇌리는 몽환적인 피로감으로 절여져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칠흑 같은 어둠 속.오직 서로의 숨소리만이 고요를 깨우는 이 방갈로 안에서.둘만의 마지막 밤을 단 한 순간도, 단 일 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째깍거리는 시간의 흐름이 잔인한 칼날이 되어 심장을 조여왔다.요스케는 마치 갈증에 허덕이는 야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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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2. 12년의 이별 유예

순간, 요스케는 격분한 야수처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좁은 내벽 안으로 자신을 더욱 난폭하고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콰드득ㅡ.살과 살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리며 유진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절대로, 죽어도 너를 이대로 보내줄 수 없다고.그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유진을 향해 격렬하게 아우성치고 있었다.지독한 집착은 결합의 깊이를 더해갔다.그러나 그의 입술은 끝내 그 어떤 반박도, 그 어떤 분노도 내뱉지 못했다.저항하는 육체와 달리.그의 차가운 이성은 이미 지금 유진이 내린 결정을 이해하고 말았다.자신이 처한 진흙탕 같은 지옥.이미 시작부터 파탄난 지독한 결혼 생활과 아이라는 쇠사슬이 채워진 자신의 삶.그 엉망인 자신의 삶 속에 그녀를 4년 전처럼 다시 끌어들여 파멸로 함께 내달릴 수는 없었다.하지만 요스케의 정직한 육신은, 그리고 찢겨나간 심장은 그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유진의 가녀린 몸이 부서져라 강박적으로 끌어안을 뿐이었다.굵은 눈물 대신, 그의 거대한 어깨가 애처롭게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유진은 자신을 가두듯 옥죄어오는 남자의 흔들리는 어깨를 가만히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사랑해요.”그 애절한 고백에도 요스케는 여전히 유진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그리고 잔인하도록 아픈 현실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터져나왔다.“그런데...... 내가 자신이 없어요. 당신과 함께 하면, 겪어야 할 것들을 감당하고도 당신과 행복할 자신...... 그래서 당신과의 끝에, 오직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오염된 애증일까봐서...... 두려워요. 그러면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서.”요스케는 겨우 입술을 열어 피를 토하듯 낮게 읊조렸다.“내가...... 잘할게. 내가 너 힘들지 않게......”“알잖아요.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거. 20살에 당신 만나서. 다른 남자들에게 만족도 못하고 살다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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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3. 터틀 아일랜드의 일출.

방갈로 밖은 여전히 어슴푸레한 푸른 남빛의 암전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밤새 요스케와 나누었던 격정의 잔흔이 온몸의 세포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남아 있었지만, 유진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남기고 간 그의 체향이 코끝을 스쳤다.마지막이라는 아찔한 절망감 속에서, 유진은 이 섬에서의 마지막 일출이라도 두 눈에 담고 싶다는 열망에 어제 밤 그와 함께 했던 섬 반대편의 동굴로 향했다.어느새 그곳은 밀물이 깊숙이 차올라 있었다.어제 밤 두 사람의 뜨거웠던 동굴 앞 작은 백사장은 이미 흔적도 없이 투명한 바닷물 아래로 잠겨 있었다.밀려드는 파도는 마치 그들의 흔적을 완벽히 지워버리려는 듯 은백색의 포말을 내뿜으며 바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유진은 잠겨버린 낙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차가운 바닷물이 들이치지 않는 작은 바위를 찾아 가만히 걸터앉았다.얼마나 흘렀을까.바스락거리는 모래 밟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유진의 곁으로 다가왔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 역시 유진과 똑같은 생각을 한 듯 이 곳으로 왔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 들었다.새벽의 희뿌연 미명 속에서 서로를 향한 아픈 눈빛이 날것 그대로 마주쳤다.하지만 둘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비명 같은 변명도, 끓어오르는 화도, 서로를 향한 원망도 내뱉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탓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오직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마지막 모래시계의 알갱이들만이 수직으로 와르르 떨어지고 있었다.요스케가 조용히 다가와 유진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그는 말없이 커다란 팔을 뻗어 유진의 가녀린 어깨를 품 안으로 강하게 끌어당겼고,유진 역시 거부하지 않은 채, 그의 단단한 가슴에 몸을 기댔다.그리고 마주 잡은 두 손.사내의 두꺼운 손가락 사이로 유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깊숙이 얽혀 들었다.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서로의 손을 움켜쥔 채, 두 사람은 그렇게 정적 속에 파묻혀 있었다.서로의 심장 박동이 살결을 타고 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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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4. 잠시 이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을 탐하며 격정적으로 부딪쳐 나갔다.요스케는 유진의 아랫입술을 낚아채며 자신의 입안으로 빨아올렸고.유진은 사내의 단단한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혀를 얽어맸다.아침 일출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타액이 은밀하게 교착되며 끈적한 마찰음을 내뱉었다. 서로의 존재를 서로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박아넣으려는 듯.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숨이 턱 막힐 때까지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또 탐했다.붉게 부어오른 입술이 겨우 떨어졌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가쁜 숨소리만이 팽팽하게 맴돌았다.유진은 여전히 요스케의 뜨거운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댄 채 가냘프게 속삭였다.“사람은 한번 가졌던 감정을 잊는데 3배의 시간이 걸린대요.”그 뜬금없고도 서글픈 명제에, 요스케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머뭇거렸다.사내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그는 유진의 젖은 뺨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감싸 쥐며, 그녀의 입술 위로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듯 대답했다.“그럼...... 난 널 잊는데 30년이 걸린다는 건가. 올해로 10년이니까......”유진이 서글프게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어쩌면......”요스케는 유진의 해이즐넛 빛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며 말을 이어갔다.“그럼 넌...... 날 사랑한 게 6년이니까...... 18년인 거네. 그럼 12년은 우리...... 가뿐히 기다릴 수 있겠다.”12년.그 잔인하고 아득한 숫자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그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시간.유진은 헤어짐 대신 이별을 유예하는 이기적인 면죄부를 선택했다.4년 전 잔인하게 헤어지고 난 후 다시 만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이미 서로가 없는 지옥의 시간을 건너왔다.그런데 그 처절했던 시간의 무려 세 배에 달하는 세월을 또다시 떨어져 보내야 한다니. 그에게도, 그녀 자신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단 한 번의 뒤틀린 실수와 어긋난 타이밍으로 인해, 유진은 서로의 심장에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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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5. 또다시 찾아온 이별의 아픔

창이 공항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은 잔인하도록 투명했다.홀로 입국장에 발을 디딘 요스케의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유진과 만난 이후, 그는 잿빛 하늘을 사랑했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언제나처럼 폭우를 쏟아내기 직전의 그 묵직하고 농염한 먹구름이 숨이 막힐 듯한 관능미로 다가와 그녀와 자신의 운명을 옭아맸다.그러나 오늘, 싱가포르의 하늘은 오랜만에 눈이 시릴 만큼 화창한 쨍한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그 맑은 하늘에서 가차 없이 쏟아지는 햇살이 지독하게도 싫었다.유진을 그 섬에 홀로 두고 온 그의 망가진 심장을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그는 붉게 충혈된 눈을 가리기 위해 커다란 손으로 미간을 짚으며 서둘러 택시에 몸을 실었다.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열대 식물들의 초록빛마저, 그에게는 그저 무채색의 유령처럼 보일 뿐이었다.택시가 이스트코스트에 위치한 그의 고급 아파트 앞에 멈춰 섰다.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쥔 그의 왼손 약지에는, 아내와의 결혼반지 대신 유진과의 커플링이 여전히 완벽하게 끼워져있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이내 날카로운 파열음이 날라왔다.그리고 터틀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혹한 지옥이었다.그의 아내가 핏기가 가신 입술을 바르르 떨며 서늘하게 물었다.“그 여자...... 다시 만나니?”요스케는 캐리어를 내려놓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의 지독한 묵묵부답과 철저한 무시.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녀가 붉게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으로 요스케의 셔츠 소매를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분노를 터뜨렸다.그의 팔뚝 위로 아내의 손가락이 파고들었지만, 요스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또 이혼해 달라고 사람 잡을 거냐고?”요스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내를 바라보았다.감정이 완전히 소멸해 버린 무표정.그의 목줄기에 돋아난 핏대만이 그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혐오를 증명하고 있었다.그가 칼날처럼 서늘한 음성을 뱉어냈다.“그럼 해줄래?”단 한 마디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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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6. 나의 전부

아내의 목소리가 서재 벽을 때리며 더욱 극렬해졌다.“우리 13년이야. 그리고 저스틴이 있어. 근데도 당신에게 왜 그 여자가 여전히 일순위냐고?!!”여전히 요스케는 그녀에게 단 한 조각의 설명도, 단 한 줄의 위로도 주지 않았다.“말이라도 해. 사람 복창 터져서 죽게 만들지 말고.”요스케가 마침내 아내의 손목을 거칠게 떼어내며 피를 토하듯 내뱉었다.“난 충분히 말했고 넌 아무리 말해도 네 말뿐이야. 그런데 말...... 해야 해?”“나도 죽어라 당신한테 말했잖아. 돌아오라고. 근데…… 이렇게 그 여자를 또다시 만나고 와? 그건 당신도 내 말 안 들었다는 거잖아!”“10년!!!”콰르릉ᅳ.서재 안의 모든 가구가 진동할 정도로,거대하고 난폭한 폭발음이 요스케의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왔다.결혼 생활 내내, 처음으로 그는 꽥 소리를 질렀다.붉게 핏발이 선 요스케의 검은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그의 잘생긴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지며, 10년 치의 묵은 절망을 쏟아냈다.“내가...... 10년 전 산다칸에서부터 날 좀 놔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했잖아.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6년 전, 우리 결혼식을 식장 코앞에서 완전히 깨부쉈는데...... 그걸 내가 그저 재미로 그랬다고 생각해? 난 너에게 충분히 보여줬어. 너와 끝났다고. 이미 10년이나!!!”아내는 사내의 광기 어린 포효에 넋이 나간 듯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이내 핏발 선 눈으로 해묵은 원망을 꺼내 들었다.“그건…… 당신이 그 어린 여자애한테 정신 팔려서……”“맞아. 내 정신도 몸도 다 팔렸어. 그 사람한테……!!!”그는 아내의 턱밑까지 다가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말을 짓씹었다.“그런데 내가 동의한 적도, 아니 계획한 적도 없는 아이를...... 그것도 2년이나 내 뒤에서 몰래 가져놓고, 마치 복수하듯 그 사람과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그렇게까지 하고도 너와 내가, 우리가 잘 살 거라고 기대했니?”아내는 할 말을 잃은 채 입술만 파르르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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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7. 다시 쓰러진 유진

4년 전의 데자뷔였다.싱가포르에서 말도 없이 홀연히 귀국했던 그날.비행기가 인천공항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안착하고 출입문이 열린 순간.유진의 시야는 암전되었다.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더니 몸의 중심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공항 응급실의 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딸의 입원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부모님의 얼굴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부모는 입술만 바르르 떨 뿐 차마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불과 며칠 전만 해도 요스케와의 결혼 준비로 세상에서 가장 화사하게 물들어 있던 딸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버린 몰골 앞에서, 부모는 그저 서글픈 침묵 속에서 직감할 뿐이었다.유진이 그와 결국 파국을 맞이했음을.그런데 4년이 지난 오늘.또다시 말레이시아로 홀연히 여행을 떠났던 딸이 똑같은 공항 응급실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다는 연락이 날아들었다.이번에는 지독한 고열과 함께 폐렴까지 걸린 채.이불 위로 가슴을 들썩이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부모님은 이번에도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못했다.자식의 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아는 척 건드리는 순간.간신히 버티고 있는 딸의 가느다란 영혼의 줄이 툭 끊어져 영원히 나락으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그 거대한 공포가 그들의 목구멍을 막아버렸다.일주일간의 병원 신세가 끝나고.겨우 걸음만 뗄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한 유진은 서울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유진은 혼자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전등 불빛 하나 없는 방 안에, 그녀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멍하니 바닥만 응시했다.그러다 무언가에 홀린 듯, 유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그리고 욕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나신 위로 마지막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그의 흔적이 고스라니 남아있었다.그가 움켜쥐었던 자신의 허리와 골반 위에는 여전히 거뭇하고 짙은 손자국들이 약한 피멍으로 박혀 있었다.그의 흔적을 확인하자마자.그의 거대한 존재감을 받아내며, 그를 꽉 조여 물었던 연약한 내벽의 깊은 안쪽 세포들이 뻐근하고 밀도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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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8. 여전히 남은 친구 선호

4년 전.싱가포르의 숨 막히던 사내 스캔들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던 그때.26살이었던 유진의 가짜 남자친구를 스스로 자처했던 선호.물론 그의 대단한 활약 덕분에, 사내 지저분한 스캔들은 방어했지만……결국 얼마 안 가 유진과 요스케는 함께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같은 시기 귀국한 선호와 유진은 줄곧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솔직히 말해.요스케와 유진 사이의 지독한 서사를 날 것 그대로 알고 있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유진은 그에게 더더욱 정신적으로 기대었는지도 모른다.그리고 4년 뒤, 요스케와 다시 헤어진 30살의 유진.그녀의 모든 연락처가 사라진 상황에서도.선호라는 이름만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뭐냐? 번호 바꿨어?”금요일 저녁.유진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로비에 불쑥 나타난 선호가 스마트폰을 흔들며 물었다.“응.”“그럴 것 같더라.”선호는 이미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됐고. 술이나 사줘라. 온 김에.”“그러다 콸라 돼서 누구를 잡으려고. 그냥 밥이나 먹자.”“반주 마셔도 돼?”“아주 술 먹고 싶어서...... 머리 쓴다.”“됐다. 치사해. 내 돈으로 사먹고 만다.”티격태격하는 대화 끝에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이태원의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단골 와인바였다.보랏빛과 네온블루 조명이 눅진하게 깔린 지하 공간.은은한 캔들 라이트가 두 사람의 얼굴에 기묘한 음영을 드리웠다.한참 동안 두 사람은 시시껄렁한 농담과 한심한 가십거리만 뱉어냈다.투명한 크리스탈 잔 속의 붉은 와인이 어느새 두 병째 비워져 갈 때쯤.선호는 반쯤 취해 눈꺼풀이 무겁게 풀린 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이번에도 그 망할 놈의 현실은 못 넘은 거냐?”“응.”유진의 얇은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 같은 대답이 새어 나왔다.선호가 와인 잔을 가만히 내려놓으며 짓씹듯 말했다.“너도 진짜 징하다. 그냥 확 질러버리고 다 불태우고 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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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9. 32살. 여전히 지옥

“어...... 뭐야? 너 여기 이틀 출근이야?”북촌의 고즈넉한 이자카야.은은한 주홍빛 한지 랜턴 조명이 드리워진 미닫이문 앞에서 마주쳤다.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너야말로 어제 오늘, 우리 얼굴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니냐?”선호가 짐짓 투덜거리자, 유진은 목소리를 낮췄다.“뭐래. 그리고 말 조심해라. 나 오늘 여기 소개팅이니까.”선호의 시선이 유진의 어깨 너머.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깔끔한 수트 차림의 남자.“와우! 저 남자야? 남자가 너무 아까운데......”툭. 순간 유진의 뾰족한 팔꿈치가 선호의 옆구리를 제대로 가격했다.윽, 하고 신음을 삼키는 선호를 보며 유진이 눈을 흘겼다.“시끄러. 넌...... 여기 언제까지 있을 건데?”“왜? 눈 앞에서 꺼지라고?”“그래주면 나야 감사하지. 나...... 아는 척 하지마라.”선호의 시선이 오늘따라 유진의 착장에 머물렀다.목선이 깊게 파인 오프숄더 블랙 드레스, 살짝 흐트러진 머리칼.남자의 본능이 자극되는 차림이었다.“너...... 근데...... 오늘 옷차림이...... 완전 제대로 맘 먹었구나. 저 남자 꼬시려고.”“아니, 아직 생각 중. 근데 잘생겼지?”“그러네. 뭐 하는 남자냐?”“의사.”선호는 말없이 작게 엄지를 올려 보였다.유진은 생긋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소개팅 남자의 테이블로 향했다.하이힐의 굽바닥이 나무 바닥을 톡톡 때리는 소리가 멀어졌다.그런 그녀의 매혹적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선호는 가슴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무거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아예 아무나라도 좋으니까, 제발 좀 잘됐음 좋겠다. 너...... 괜찮은 척 하는 거 보는 것도 이제 솔직히 지친다.]그날 유진은 소개팅 남자와 꽤 오랜 시간 식사를 이어가며 술을 들이켰다.2차, 3차로 이어지는 호흡 속에 밤은 깊어갔고 유진은 깊게 취해버렸다.자정을 넘긴 시각, 어두운 대로변.차가운 가로등 불빛 아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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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80. 새로운 남자친구

욕실 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안개와 함께 라벤더 향이 거실로 밀려 나왔다.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유진은 물기 어린 머리칼을 타월로 툭툭 털어내며 걸음을 옮겼다.몸에 걸친 것은 오직 얇디얇은 화이트 실크 가운 한 장뿐.젖은 수건 사이로 떨어진 물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내렸고, 은은하게 밴 열기 탓에 가운 자락이 매끄러운 나신 위로 차갑게 찰싹 감겨붙었다.유진이 소파 쪽으로 다가서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선호가 은빛 트레이를 그녀의 가녀린 무릎 위로 툭 안겨주었다.차가운 금속 감촉이 피부에 닿자 유진이 자그마하게 소름을 피워 올렸다.트레이 위에는 묘한 조합의 디저트가 올려져 있었다.“이거 뭐야?”유진이 동그란 헤이즐넛 빛 눈동자를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했다.선호는 소파 깊숙이 등을 기대앉은 채, 가운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벌어진 유진의 매끄러운 다리를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훑어 올렸다.묵직한 온기가 피부를 따라 기어오르자 그녀의 가슴팍이 얕게 들썩였다.그는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가볍게 입맞춤을 남긴 뒤, 낮게 잠긴 목소리로 웃었다.“너…… 우리 어렸을 때 나왔던 치토스 딸기 먹고 싶다고 했잖아.”“………근데?”“그거 20년전에도 리미트드 에디션이어서, 구하는 건 불가능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조합해서 먹으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암튼 먹어봐.”노란빛 바나나 과자 그리고 먹기 좋게 손질된 붉고 싱싱한 생딸기 슬라이스.선호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잘 익은 딸기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잘게 부순 바나나 과자 가루를 붉은 딸기 표면에 꾹 눌러 묻히더니, 그대로 유진의 촉촉하게 젖은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아 해봐.”낮게 깔린, 거부할 수 없는 어조.유진은 홀린 듯 붉은 입술을 살짝 벌려 그의 손끝에 들린 과일을 받아 물었다.순간 새콤달콤한 딸기 과즙이 혀끝을 타고 진득하게 퍼져 나갔다.고소하고 바삭한 과자 가루와 수분 가득한 과즙이 엉켜 들며 묘한 감각을 자극했다.선호은 유진의 입술 경계선에 묻은 붉은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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